【현진건 玄鎭健 (1900 ~ 1943)】
"「빈처」 · 「고향」 · 『적도』 소설가, ‘일장기 말소 사건’ 주도
1900년 8월 9일 경상북도 대구부(大邱府) 서상면(西上面) 계산리(桂山里)에서 현경운(玄炅運)과 이정효(李貞孝)의 4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연주(延州)이고, 자(字)는 문약(文若), 호(號)는 빙허(憑許)이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현정건(玄鼎健)이 셋째 형이다. 1936년 동아일보사에서 사회부장으로 근무하다가 ‘일장기말소사건’을 주도하였다.
어려서 한학을 배웠고, 대구노동학교를 졸업하였다. 1915년 11월 보성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갔다가 다음 해 자퇴하고, 일본으로 유학해 도쿄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敎)와 세이조중학(成城中學)에 입학하였다. 세이조중학을 중퇴하고, 1918년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후장대학(滬江大學)에 입학하였다. 귀국한 이후 1920년 『개벽』에 단편소설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1921년에는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였고, 1927년 동아일보사로 자리를 옮겼다. 사회부장으로 있던 1936년 손기정(孫基禎) 선수가 베를린올림픽 마라톤경기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같이 출전한 남승룡(南昇龍) 선수도 3위를 차지하였다. 두 선수가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시상대에 올랐지만, 당시 손기정은 단상 위에서 고개를 숙이고 어두운 표정을 지은 채 손에 든 묘목으로 일장기를 가렸다.
이 사진을 입수한 동아일보사 운동부 책임 기자 이길용(李吉用)은 편집국에서 일하던 동양화가 이상범(李象範)에게 일장기를 지워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상범이 흰 색 물감으로 일장기를 지웠고, 일장기가 말소된 사진이 8월 25일자 『동아일보』에 게재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길용을 비롯하여 일장기를 지운 이상범, 임병철(林炳哲) 편집기자, 신낙균(申樂均) 사진부장, 백운선(白雲善), 최승만(崔承萬) 등 11명이 경기도경찰부 일제 경찰에 연행되었다. 『동아일보』는 무기한 정간 처분을 받았다.
이때 동료들과 함께 붙잡혀 구속된 후 40여일 동안 고초를 당하다가, 강제로 서약서에 서명하고 9월 26일 풀려났다. 서약서의 내용은 “앞으로 언론기관에 절대 참여하지 않는다”, “시말서를 쓴다”, “만약 또 다른 운동에 참가했을 때는 이번 사건의 책임에 가중하여 엄벌을 받을 것이다” 등이었다.
이 사건으로 신문계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고, 장편소설 창작에 몰두하였다. 1939년 10월부터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장편역사소설인 「흑치상지」는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작품으로서 일제 경찰의 탄압으로 1940년 1월 16일 52회 만에 강제로 게재가 중지되었다. 한국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서 20편의 단편소설과 7편의 소설을 남겼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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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일장기 말소 보도 사진(『동아일보』 1936. 8. 25) [판형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