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랑스러운 나..
내가 자랑스러럽다.
태안장로교회 원로목사
사회복지사
글:-남제현목사
태안신문사 칼럼니스트
인간의 두려움은 언제부터 시작했는가?. 뉴욕 전화회사의 조사에 의하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나’라는 말이다. 일반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5천 번 통화 중에서 ‘나’란 말을 3,790번이나 사용했다고 한다. 사람은 자연적으로 자기중심으로 산다. 그래서 내가 제일이며 내가 최고의 걸작으로 무력한 나를 믿고 강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너무나 무력하고 무능력한 나를 습관을 떨쳐 버리지를 못하고 지탱하며 회복 불가능한 부패성을 지니고 살아간다.
알코올 중독자의 고백은 “아무리 술을 먹지 않으려고 마음으로 노력하고 결심해도 술의 유혹과 무자비한 욕망을 이길 수가 없다” 고 한다.그리고 마약 중독자의 절규에는 “나는 마약의 악마적인 요구를 정신력도 의지도 없다. 내 인생은 마약의 노예이며 노리개이다. 우리나라 성인 5명의 1명은 알콜 중독자이고 마약중독자 수가 30만 이상이 추산되고 살인범 340명이다. 술과 마약은 처음엔 쾌감을 주나 그 후에는 양심을 마비시키고 인격을 중독시키고 파멸로 이끌어 가게 된다.
정신분석을 주장한 오스트리아의 의학자 프로이드는 근대 정신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훌륭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을 정복한다는 신념에서 실패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그의 심장박동이 불규칙한 것을 발견한 담당 의사는 지나친 흡연을 중단하라고 하자 잠시 중단했으나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는 턱뼈 암으로 35번이나 수술을 해야 하는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아무리 훌륭한 의사라도 담배의 유혹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담배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데는 그의 의지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아무리 의지력이 강하다 할지라도 자기 힘으로는 죄악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는 것이 인간이다. <하워드 휴즈>는 미국의 최대부호로서 1977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20억불이 넘는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나, 말년의 10년간은 가장 고독한 생활을 하였다. 그가 가지고 있던 거대한 물질이 그의 인생과 생활을 병들게 했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는 외부인과는 일체의 만남을 끊고
그 자신 또한 외부 세계에는 전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유령과 같이 밀폐된 공간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그가 죽었을 때는 슬퍼하며 울어 줄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 그는 아내도 자녀도 없었다. 그의 여성 편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죽음이 임박했을 때는 조강지처도 자녀도 없이 가장 외롭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자였으나, 그의 죽음의 원인은 어이없게도 영양실조였다고 한다.
올해 세계 최고령 (기네스북) 할머니 마리아 브라냐스 모레라가 117번째 생일을 맞이했다는 기사이다. 모레라는 지난 1907년 3월 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그는 8살이던 1915년 미국에서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으로 이주했다. 모레라 할머니 장수 비결을 연구한 과학자 마넬 에스텔라는 "그녀는 완전히 명료한 기억력을 갖고 있다"며 "불과 4살 때의 사건을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장수 비결로 질서나 평온함, 가족 및 친구와의 좋은 관계, 자연, 긍정성, 해로운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을 꼽았고…." 죽음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라면서도 "이 삶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알아갈 기회를 줬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 SBS 방송에서 서세원이 좋은 세상 만들기 진행하는 프로가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단어 알아맞히기 게임이다. 단어는 천생연분이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당신과 나 사이“? 할머니는 ”웬 수” 아니 두자 말고 넉 자? 할머니는 대답은 “평생 원수”? 천생연분이란 당신과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결혼하기로 숙명적으로 맺어진 부부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숙명적 운명이라고 한다. 오늘은 기구한 운명에 처했지만 비관하지 않고 새롭게 운명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용기 있는 도전 정신으로 내 운명을 스스로 바꾸는 용기와 새로운 운명 창조하고 도전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않는 노력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처칠 수상의 단 30초 연설은 유명한 세 문장은 “포기하지 말라”, 포기하지 않는 노력은 당신의 운명이 놀랍게 창조될 것이다. 시각장애인 두 형제가 다짐한 내용이다. "세상을 떠날 때 최소한 안일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고 말할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는가, 후회 없는 삶을 살자? 고 서로 격려한 내용이다. 1999년 한국과학기술원 수학과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한 김용수(32)씨와 , 형 양수(34)씨도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열일곱 살 때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고등학교를 중퇴한다. 그는 "안마사로 나설 생각도 했다.역경에 순응하는 삶이 싫었다. 우리에게는 아직 건강한 청각신경이 남아있다." 형제는 녹음 강의를 귀에 물집이 잡히도록 들었고 점자 서적은 책장이 닳아 없어질 만큼 반복해서 읽었다. 그 결과 시각장애인으로서는 국내 최초의 이공계 박사학위자가 되었다. 인간은 나의 길'이 있으니까 내가 나의 길을 가면 힘들고 지치지만 ‘나의 길’이 있으니까 승리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