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복 3시 40분께 눈을 떴다.
4시가 좀 못 돼서 항로페리 아저씨가 전화를 해준다.
도순씨 배웅을 받고 북항으로 차를 몰았다. 백련로 끄트머리에서 느긋허니 신호대기험시로 전화기를 봉게 4시 30분이다. '이크' 신호 무시하고 내달렸다.
4시 35분. 북항에 이르렀다. 불을 환히 밝히고 입을 하마맹키로 벌리고 있는 배가 있다. 그리 갔다. 항로페리가 맞다. 배에 아벨라를 싣는다.
운전석 의자를 뒤로 제치고 눈을 감는다. '흑산도라....' 최근에 박선생님께 받은 소리타래를 튼다. 흥얼흥얼 따라 허는 둥 마는 둥 허다가 풋잠이 들었는갑다. 춥다. 앉은 채로 옷가방에서 내복 바지를 꺼내 입었다. 그래도 춥다. 조수자리에 이불보따리가 있다. 황토 홋이불을 꺼내 두 겹으로 접어서 덮는다. 그래도 무릎팍이 시리다.
비몽사몽 간에 눈을 떴다. 8시가 조금 넘었다. 예정대로라믄 아직도 두 시간은 가야헌다. 먼 바다로 나왔는지 배가 좌우로 자로 논다. 바깥 구경을 하고잪아서 차에서 내렸다. 새복에 사람들이 가던 데로 가봤다. 캬~ 차를 기가 막히게 대놨다. 트럭하고 배 철판 사이를 겨우 빠져 나가 뒤로 통하는 문을 나선다. 하늘과 바다가 잔뜩 찌푸리고 있다. 마침 뱃고물(꽁무니쪽)에 있던 화장실이 반긴다. 오줌을 시원히 내갈기고는 갑판위로 오른다. 배가 좌우로 지우뚱헌다. 다리가 후둘거린다. 갑판에 올라보니 그야말고 망망대해다. 사방팔방을 봐도 바다 뿐이다.
여객실 간판이 붙었길래 창문으로 내다봤더니 두 사람이 누워서 자고 있다. 어쩔까 망설이다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불은 세 장인디 한 사람이 한 장 덮고 있고, 나이 늙수그레한 분이 나무베개를 이불로 감싸고 누워있다. 그 젙에 누웠다. 미선이한테서 문자가 날아온다. 걱정이 태산이다. 걱정 말라고 하고는 잠을 청햇다. 창문 틈새로 바람이 들어오기는 헌디 바닥은 따땃허다. 이물(배앞머리) 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웠다. 이 생각 저 생각 허다가 까무룩 또 잠이 들었다. 근디 또 배통아지랑 다리쪽이 시리다. 눈을 떴다. 하는 수 없이 늙수그레한 분이 베고 있던 이불을 조금 당겨서 책상다리로 접어 눕고는 덮었다. 한결 낫다.
눈을 떴다. 아홉시다. 아저씨가 신문을 뒤적이고 있다. 신문이 아니라 구문이다. 2월 26일자.... '인자 한 시간만 가믄 되는구나.' 책상다리를 하고 벽에 기댄 채 상념에 잠겼다. '엉? 9시 반이다.' 잠시 밖에 나가보았다. 언제 왔는지 섬이 지천으로 둥둥 떠있다. 찬 바람을 피해 다시 객실로 들어가서 또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다. 잠시 또 까무룩....(나도 인자 늙었나벼!)
10시가 넘었다. 근디 흑산도는 아직도 멀었다고 한다. 안개에 파도까지 드세서 속도를 못 냈능갑다. 어디론가 한참을 더 간다. 오리라는 섬이다. 선장의 접안 실력이 대단허다. 그 큰 배를 조그마한 선착장에 단박에 대분다. 회트럭이 언덕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덩치 큰 배는 몸을 빼더니 180도로 몸을 돌린다.
10시 40분이다. 흑산도 쓰레기 실러왔다는 젊은이가 트럭를 몰고 나가자 나도 그 뒤를 따랐다. 혹시나 해서 일하는 아저씨한테 다시 한번 확인한다. 흑산도가 맞단다.
10시 40분. 드디어 흑산도 선착장에 내렸다. 흑산중학교 선생님한테 전화를 해도 안 받는다. 행사중인 모양이다. 마침, 젊은 사내한테 흑산중학교 가는 길은 물었더니 친절허니 갤차준다. 가르쳐준 대로 이리저리 차를 몬다. 도로 상태가 엉망이다. 언덕을 오르자 해군부대가 나타나고 내리막길에 접어들자 오른쪽에 학교가 보인다.
11시 50분. 건물 옆에 차를 대고 교무실로 들어선다. 26일에 뵈었던 선생님들 몇 분이 반긴다. 임시시간표를 봉게 3교시 3학년 한문수업이 있다. 들어가야 허냥게 담임시간이란다. 1학년 일곱, 2학년 열하나, 3학년 셋인 학교다. 교실 여그저그 둘러본다. 2층에 1,2,3학년 교실에 몰려있다. 박훈희 선생님이 도서실이 욕심난다고 해서 그리로 가봤다. 아니나 다를까 새단장을 했는지 진열장 삐곡이 책들이 꽂혀있고 열람실이 널직하게 손님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런디 칠판 옆 교사 책상에 노랑머리 젊은이가 앙거서 무슨 일인가를 허고 있다. '분명히 도서실인디, 원어민이?'
복도에서 교장선생님하고 마주쳤다. 나를 맞이하려고 새로 말끔히 하고 있는 중이란다.
책상 정리를 허고 허는 일 없이 빈둥거리다가 낮밥을 묵자고 해서 급식실로 갔다. 스물허고 하나배끼 안 되는 학생들은 이미 묵고 간 뒤라 행정실 사람들까지 고작 열둘이다. 오늘은 유별나게 잘 나왔단디, 닭볶음하고 돼지찌개, 돼지 된장국이다. 나는 배추김치허고 오이무침 두 가지 것만 놓고 묵었다. 밥 맛은 그런 대로 괜찮다. '내일부터는 해묵어야제....'
관사 문제로 행정실 주사양반허고 한 판 붙을 뻔했다. 교무부장이 배정해준 방에 가봉게 전쟁터다. 2층 계단에는 어느 똥개가 퍼질러놨는지 똥무더기가 지뢰맹키 쌓여있다. 안내해준 방을 열어봉게 심란허다. 청소할라믄 족히 3시간은 걸리겄다. '헐 수 있냐. 호봉 낮은 것이 죄다.'
내려옴서 1층에 문이 안 잠겨있는 방을 열어봤다. '우와~~~~' 겁나게 깔끔허다. 냉장고에 콤푸타에 없는 것이 없다. 안방으로 썼음 직한 곳은 온기가 묻어있다. 알고보니 행정실 차석이 썼던 방이란다. 시방은 없는디 다른 차석이 오믄 줄 방이란다. 눈이 잠시 뒤집혔다.
교무실에서 1층방을 쓰고 싶노라고 교무부장한테 말을 했다. 근디 행정실 얘기를 허고는 안 되지 않을까 헌다. 그 때 교장이 쓰던 관사 어쩌고저쩌고 헌다. 기간제로 오신 미술 선생님한테 그리 갈라냐고 헌다. '교장관사? 아니 그 좋은 데를?' 내가 거기 좀 볼 수 있냐고 헝게 행정실에 열쇠 달라고 허믄 준단다. 그 방 좀 보자고 했더니 최주사 양반이 여기 있기 싫으믄 가서 애나 봐라고 헌다. '허걱! 완전히 핵폭탄이다! 이 양반이 나에 대해서 이미 한 소리 들었나?' 험시로 애는 보고싶어도 없어서 못 본다고 젊잖게 대꾸했다. 내가 교장관사 좀 보여주라고허자 생각 좀 해보고 보여준단다. '헐~'
한참 만에 최주사가 나타나더니 가보자고 헌다. 첫날부터 행정실 사람허고 부딪치게 되어서 좀 그렇다. 그래 내가 먼저 말을 꺼낸다. "어제 올라고 했는디 집안에 일이 있어서 부득이 오늘 왔습니다. 근디 목포서 화물선이 여섯 시간이나 걸려불대요?" "쾌속선 안 타고 왔소?" "짐이 있어서 차에 싣고 오니라고 그랬그만요?" "안개 끼고 바람 불믄 그러요."
명색이 교장 관사라고 해서 가봤더니 구조가 똑 같다. 여러 해 안 썼는지 처음 봤던 2층보다 훨씬 못허다. 냉장고도 없고 화장실도 엉망이다.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차라리 아니 봄만 못했다. 그 분허고 나옴시로 88년도 창평고 우리반 실장 박재안 얘기를 꺼냈다. 그 재안이를 이 양반이 안단다. 얼굴빛이 바뀐다.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 곡성이라고 대답했더니 아는 체를 헌다. 그 길로 우리 둘은 행정실로 갔다. 실장한테 1층을 쓰고 싶다고 했더니 최주사 양반이 거든다. 아까의 적이 아군이 되어 지원사격을 헌다. 실장이 차석 방이라 곤란허단다. 차석이 4월에 오믄 어쩌냐고 헌다. 그 때는 방 빼겄다고 헝게 최주사양반이 당신이 증인 서겄단다.
방문제는 일단 해결되었다. 책을 나눠줘야헌다. 16년만에 도서계를 해본다. 작년 담당한테 전화를 해서 신청도서목록을 뽑고 책상자 헐어서 일일이 확인허고 아그덜 학년별로 불러모아서 나눠주고 헝게 4시가 지나부렀다. 하이고 뻗치다.
5시가 좀 못 되자 식당으로 모이란다. 흑산도 홍어 묵잔다. 짐짓 빼다가 식당으로 갔다. 홍어에 초장, 양주.... 홍어 빛깔이 유난히 불그레허다. 교무부장이 양주를 권허는디 술은 안 헌다고 사양했다. 저 쪽에 앙거 있던 윤선생님이, 왜 오늘부터 6월 9일까지 술을 안 허냐고 묻길래 심심해서 어쩐가 볼라고 근다고 했더니 모두들 웃는다. (근디 흑산도에서는 홍어를 다 생것으로만 묵는지 알았는디 역서도 삭혀묵기도 헝갑습디다. 오늘 묵은 홍어는 참말로 찰집디다. 참, 삭힌 것은 더 싸다요. 수컷은 더더욱 싸고....)
워메, 시방 아홉시가 넘어부렀네,외?(교장선생님이 한 턱 쏜다고 해서 선창 쪽으로 나갔다가 들어온 터라....)
오늘 도서실에 갔는디 올망졸망헌 아그덜 셋이 오더니 지기들끼리 일(신입생 도서대출 카드)을 알어서 해불등만요? 김가연, 김현식, 김진주, 장선민 이 네 사람은 도서실에서 일 도와 준 이들. 3학년 이광명, 정경원?
아벨라에서 짐을 빼서 관사로 나르는디, 때마침 운동장서 야구허다가 올라오는 애들이 있어서 불렀는디 한 애가 저는 힘이 없어서 무거운 것은 못 든다고 엄살을 부리더이다. 그래 가벼운 것으로 지워주고 쌀자루 들쳐메고 다른 짐들 들고 옴서 갸한테, "늬 이름 뭥미?" 했더니 "저는 진뭥미고 저 애는 주뭥미에요"랍디다. 나중에 도시실에 나타나더니 나를 무술 고단자처럼 보인다나 어쩐다나 허고나서, "뭥미선생님~"으로 불러 불드랑게요?
교재연구 허로 가야쓰겄다. 후다닥! <땡>
첫댓글 ㅎㅎㅎㅎㅎㅎㅎ 오지에서 오지네!
ㅎㅎㅎㅎ 잘살고 있으쇼....놀러가게...
넙도에서 살던 생각 나네. 잘 지내시게. 그래도 섬에서 살 때가 좋은것 같아. 정년 때 까지 섬에서 살라고 하면 명퇴 안허고 살것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