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육신은 법을 말하거나 들을 줄도 모르고, 비장(脾臟)․위․간․쓸개도 법을 말하거나 들을 줄 모르며, 허공 또한 법을 말하거나 들을 줄도 모른다. 그러면 무엇이 법을 말하거나 들을 줄 아는가? 바로 그대들 눈앞에서 또렷하고 역력한 것이 하나 홀로 고고하게 밝으니 이것이 법을 들을 줄도 말할 줄도 아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것을 볼 수 있다면, 곧 조사나 부처와 다르지 않다. 일체 모든 때에 이러함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이것이다. 다만 분별로 인해 지혜가 막히고, 생각이 일어나 본체를 둘로 나누기 때문에, 삼계를 윤회하며 많은 종류의 괴로움을 받는 것이다. 이 산승(山僧)의 견처(見處)로 보자면, 깊고 깊지 않은 것이 없고, 해탈하지 않은 것도 없다.
그대가 삶과 죽음, 가고 머묾, 집착과 벗어남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한다면, 지금 법을 듣는 그 사람을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모습도 없고 모양도 없고 뿌리도 없고 근본도 없으며, 머무는 곳도 없이 활발발하게 반응하여 수많은 것들에 작용하지만, 작용하는 곳이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이 사람은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멀어지고, 구할수록 더욱 어긋나니, 이름 하여 비밀(Secret)이라고 부른다.
이 산승의 견처에서는, 보신불(報身佛)과 화신불(化身佛)의 머리는 꺾어 버리고, 십지보살(十地菩薩)은 비천한 놈과 같고, 등각(等覺)과 묘각(妙覺)은 목에 칼을 차고 쇠사슬에 묶인 죄인 같고, 아라한(阿羅漢)과 벽지불(辟支佛)은 뒷간의 더러운 똥과 같고, 깨달음과 열반 또한 당나귀를 매는 말뚝과 같을 뿐이다.
일 없는 이가 귀한 사람이니 조작하지 말고 다만 평상심을 지니라. 바깥으로 구하러 다니며 할 일을 찾는다면 오해한 것이다. 그대는 찾아다니고 있는 바로 그것을 아는가?
마음이라는 법은 모양이 없으면서 온 우주를 관통하고 눈앞에 드러나 작용한다.
✔ 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육신은 사실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이 몸은 법을 말하거나 들을 줄도 모르고, 내 몸 속의 다양한 장기 기관들도 말하거나 들을 줄 모른다. 또 나를 둘러싸고 있는 허공 또한 법을 말하거나 들을 줄 모른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법을 말하거나 듣는 무엇이 있다. 무엇이 법을 말하거나 들을 줄 아는가?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생각도 일으키고, 느낌도 일으키고, 보고 들으며, 몸도 움직이면서 다양한 삶의 활동을 이어가는가? 몸이 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몸이 자기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죽은 시체라고 할지라도 스스로 몸을 움직이거나 생각하고 보고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바로 눈앞에서 또렷하고 역력한 것이 하나 홀로 고고하게 밝아 있으니 ‘이것’이 바로 법을 들을 줄도 말할 줄도 안다. 바로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 조사선 학인들의 공부다.
‘이것’을 확인한다면, 부처와 조사와 다르지 않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이것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이 이것이다. 이 우주 삼라만상 가운데 이것을 벗어나는 것은 한 티끌도 없다.
다만 분별심으로 인해 본래 있던 지혜가 가로막혀 있으며, 생각이 본성을 둘로 나누어 놓았기 때문에 온갖 괴로움도 생기고, 중생이라는 착각의 삶이 시작된 것일 뿐이다.
깨달은 견처로 본다면, 이 우주 삼라만상 가운데 깨닫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 온 우주가 그대로 하나의 부처다. 부처를 벗어나는 것은 없다.
지금 법문을 듣고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 이 참사람은 모양도 없고 뿌리도 없고 머무는 곳도 없이 활발발하게 반응하여 작용하지만, 작용하는 곳이 따로 없다. 이 참사람은 찾을수록 멀어지고, 구할수록 어긋나니, 언제나 바로 지금 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여기에 있는데 어떻게 이것을 다시 찾을 것인가?
이 참사람이 바로 시크릿(Secret)이다. 이 하나의 마음을 찾음 없이 찾는 것이야말로 참된 비밀이다.
이러한 견처에서는 부처님 머리를 꺾어 버리고, 십지보살을 비천한 놈과 같다고 하며, 아라한과 벽지불은 뒷간의 더러운 똥과 같고, 깨달음과 열반은 당나귀를 매는 말뚝과 같다고 할지라도 상관할 바가 아니다. 십지보살과 비천한 놈은 똑같은 부처요, 아라한과 더러운 똥이 똑같은 한 성품이며, 열반과 말뚝이 똑같은 불성의 현현이다.
이 견처에서는 깊고 깊지 않은 것도 없고, 높고 낮음도 없으며, 고귀하고 하찮은 것도 없다. 모두가 한바탕이요, 한마음으로 절대청정성을 지닌 불성 그 자체다.
그러니 이처럼 둘로 나뉘지 않는 청정한 이 하나의 마음을 깨닫는다면, 일 없이 한가하게 노닐 뿐이니, 무엇을 만들어 내려고 조작할 것도 없고, 다만 평범하게 삶을 살아갈 뿐이다. 만약 무언가를 바깥으로 찾아 나서며, 할 일을 찾는다면 그는 여전히 이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밖으로 찾아다니고 있는 바로 그것이 이것이다.
이처럼 마음이라는 법은 모양이 없으면서도 온 우주를 관통하여 여여하고, 언제나 매 순간 눈앞에 드러나 작용한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