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대계(百年大計)를 새롭게 세운다’는 야심찬 기획을 세우고 추진돼온 승가교육 개혁안이 첫 발부터 제동에 걸렸다.
교육원이 4월 30일 오후 2시에 마련한 ‘승가 기본교육기관 교육과정 및 교과목 개편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열리기 직전 총무원 국제회의장은 강원의 교직자 스님들의 고함과 몸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전국강원교직자연합회에서 공청회에 앞서 성명서를 발표하겠다고 단상을 점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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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청회장을 점거한 강원 교직자 스님들이 교육원 종무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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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말리는 교육원 종무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면서 단상을 점거한 교직자연합회 스님들은 플래카드를 펼쳤고 연합회 회장인 법광 스님(선운사승가대학장)은 성명서를 낭독했다.
교직자연합회는 성명서를 통해 “교육원이 이번에 제시한 강원교육과정 개편안은 조계종단의 가풍과 정체성 확립 및 올바른 수행자 양성과는 동떨어진 내용”이라며 “전통 교과목 교재를 모두 한글화한다는 발상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표본이고 각 교육기관의 장점을 무시한 획일적인 개편안”이라고 주장했다.
단상에서 내려온 스님들은 “토론회에 참가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며 일제히 토론장을 빠져나가 주변의 모 장소로 회의를 하기 위해 나갔다.
강원 스님들이 물러간 후 조계종 교육원은 계획대로 공청회를 진행했다. 교육원장 현응 스님은 기조연설에 앞서 “오늘 토론회는 지방강원의 강사, 동국대 교수, 중앙승가대 교수 등 교육에 직접 종사하고 있는 교수들의 의견을 취합하기 마련한 것인데, 지방강원의 강사 스님들이 아예 토론회 자체를 거부하고 이렇게 나가버렸으니 여러 가지로 아쉽다. 지정토론자 6명 가운데 4명을 지방승가대학 강사로 모시고 강원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토론회를 열었는데 이 또한 거부했으니 대단히 유감이다. 무척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거듭 아쉬움을 표했다.
현응 스님은 이어 기조연설을 통해 “승가교육을 현대적인 교과과정으로 바꾸고 승려들이 현대사회와 그 속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논의와 주장은 이미 창고에 가득 차 있다. 이제는 결단하고 실천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이는 우리 종단과 불교계의 명운을 건 우리 모두의 일이며,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모든 스님들의 미래”라고 강조했다. 현응 스님은 “한국불교의 백년대계를 위해 모두 지혜를 모으고 결단하자. 그리고 실행하자”는 말로 기조연설을 끝냈다.
현재 한국불교의 치문-사집 교육시스템은 무려 300년 전에 성립된 조선시대 승가교육체계이다. 한문경전 강독 중심의 승가교육을 개혁한다는 주장은 이미 만해 스님 때부터 제기돼온 것이었다.
현대에 들어 일부 승가대학에서 교양과목을 대폭 확충하는 등 부분적인 수정은 이루어져 왔지만 중국 선사들의 선어록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기본 틀은 이미 조선시대부터 시행돼오던 것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출범한 조계종 33대 집행부는 ‘교육을 통한 불교중흥’을 기치로 내걸고 현응 스님을 교육원장으로 임명했다. 현응 스님은 수년전 해인사 주지 시절 우리나라의 대표사찰로 일컬어지는 해인사 강원의 커리큘럼을 현대적으로 개편해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바 있는 인물로, 자승 총무원장이 승가교육의 현대화를 추진하기 위해 내린 인사로 평가됐다.
이후 조계종 교육원은 승가교육진흥위원회를 비롯한 수십차례 회의를 거쳐 기본교육기관 교육과정 개편안과 교육기관 조정안을 내놓았고, 이에 대한 논의를 위해 두차례의 공청회를 마련했다. 4월 30일 열린 공청회는 그 첫 번째로, 교육과정 개편안에 대한 논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데, 왜 강원의 스님들은 교육원의 토론 자체를 거부하고 공청회장을 점거하면서까지 성명서를 발표한 것일까.
강원교직자연합회 스님들은 “교육원이 우리의 요청을 근본적으로 거부했다”며 공청회장 점거 이유를 밝혔다. 연합회 대변인 도암 스님은 “이번에 열리는 공청회는 교육원 측에 지정토론자를 강원의 소임자, 전국 강원대표 각 1명씩으로 국한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교육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모든 기획을 다 끝낸 후에 통보하는 형태로 진행하는 토론회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연합회장 법광 스님도 성명서를 통해 “오늘 공청회는 교육원의 일방적 의견을 관철하려는 요식행사에 불과하므로 인정할 수 없다”며 “차후 전국강원교직자연합회와 함께 강원 교과과정을 재논의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운문사승가대학 강사인 운산 스님은 “교육원에서 마련한 교육개편안은 학력 콤플렉스가 있는 있는 일부 스님들이 서구식, 현대식 교육이 마냥 좋은 줄 알고 만든 문제가 상당히 많은 교육안”이라며 “전통 강원교육의 장점을 모두 무시하고 각 기본교육기관의 장점을 무시한 탁상공론식의 개편안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토론회에서는 이같은 의견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강원 교역자 스님들이 모두 보이콧을 한 탓인지, 이날 토론회에서 참가한 교육 관계자들은 대부분 교육원의 새로운 커리큘럼에 적극적인 환영을 표했다.
해인사승가대학장 법진 스님은 “전통에 발목이 잡혀서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며 승가교육 개혁에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표했다. 법진 스님은 “다만 이번에 발표된 커리큘럼을 보면서 불교를 교육받은 사람이 어떤 인간으로 성장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면서 또 “넓게 하면 정밀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데, 이같은 커리큘럼을 통해 현대적인 승가상을 구현할 수는 있겠지만 현재의 육시예불체제를 유지하면서 이런 커리큘럼이 가능할 것인가 의심스럽다. 또 어느 부분에서는 전통적인 강원교육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앙승가대 교수 본각 스님은 “중앙승가대의 학생수 부족을 목도하면서 출가자의 급감 특히 사미니의 급감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며 “무엇을 가르칠까도 중요하지만 가르칠 대상을 어느 수준으로 잡느냐. 그 대상이 어떻게 돼가고 있느냐를 되짚어야 된다”고 지적했다. 본각 스님은 “우리 사회의 교양수준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데 갖추고 승가교육은 ‘머트럽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지금까지 출가자로서 격외의 것이 찬탄돼 왔지만, 그 격외의 모습으로 포장된 이면에서 사회를 잘 알지 못하고 교양에 뒤떨어진 인간들을 양상하고 있지 않나 반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본각 스님은 이어 “한글로 경전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에는 찬성한다. 하지만 한글을 보되 대장경 (원문)을 볼 수 있는 끈을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같은 문제는 방학 때 한문을 비롯한 각종 어학교육, 실습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동화사 승가대학장 해월 스님은 “내 제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한글로 학인들 가르쳐도 충분히 가능했다. 선을 가르치는데 굳이 한문을 안 써도 가능하다. 교육방법의 한글화에 찬성한다”면서도 “이 커리큘럼이 어떤 승려 길러내느냐는 것에 대해서는 의구심 가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해월 스님은 “오늘 공청회가 열리기 전 교육현장에 있는 분들이 왜 이 공청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느냐. 충분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이런 초점의 키를 잡아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며 “시대가 요구하는 수행자를 길러낼 때 우리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조계종의 수행자를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 가운데 유일한 재가자인 윤창화 민족사 사장은 현재 승가교육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윤 사장은 승가교육의 문제점을 크게 세 가지로 꼽았다. 우선, 한문교재 중심의 커리큘럼은 너무 시대적으로 뒤떨어져 있다는 것. 학인들이 대부분 강원에서 3년 이상을 마쳐도 개론적 지식 갖추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한문교육으로 해당 과목의 핵심 줄거리 파악이 힘들다는 점을 꼽았다. 텍스트가 한문이다 보니 난자(難字)를 찾아내 익히고 한자 경구 익히는데 치중하는 결과로 이어져 정작 내용파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세번째 강원교육 4년을 마쳐도 한문독해능력이 배양되느냐,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오로지 한문경전만 갖고 공부하는데도 현토된 경전도 읽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윤 사장은 지적했다.
윤 사장은 “승가기본교육이 이루어지는 4년 동안 붓다의 생애, 불교교리, 불교사 등 기본적인 내용을 수학해야 하고, 이 과정을 통해 승가 일원으로서, 수행자로서 불교윤리를 갖추어야 한다”며 “승가 일원으로서 사명감과 긍지는 오로지 교육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데 기존 교과목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윤 사장은 또 “선(禪) 일변도의 수행관, 가치관으로는 어쩌다 한두 사람 건질 수 있지만 보편적 교육과정은 될 수 없다”며 “교육방법과 교과목은 시대흐름에 맞게 바뀌어져야 하고, 현재의 전통교육은 대학원 시스템으로 하거나 일부 강원을 그대로 두어서 유지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윤 사장은 이어 “앞으로 종교가 사회적 역할 하지 못하면 존립이 불가능하다”며 “현재 불교와 기독교의 비율이 30:70으로 바뀌어졌는데, 이는 그 어느 고승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이는 불교가 그만큼 시대상황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윤 사장은 “최근 30년 상황 보면 앞으로 30년 뒤에는 불교가 없어지는 것도 불가능한 일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불자들이 많아야 부처님 혜명 잇는 일 아니냐. 한사람 깨닫는 것이 부처님 혜명 잇는 일 아니지 않냐”고 반문했다.
이날 플로어에서도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한글 교육화와 현대식 커리큘럼 도입에 적극적인 찬성을 표했지만 일부 참가자는 전통교육을 바꾸었을 경우 발생할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제기했다.
조계종 기본선원장 지환 스님은 “시대상황에 맞게 발전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강원교육을 300년간 고수해왔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무사안일하게 살아온 것이 아닌지 전 교육자들 스스로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면서도 “전반적인 방향은 공감하지만 몇가지 조심스러운 대목이 있다. 획일화보다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커리큘럼이 좀더 고민돼야 하지 않을까”하고 지적했다.
중앙종회 포교분과위원장 지원 스님은 “한글화 개편이 시대적으로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예전에 우리 절에서 한글 법화경 백고좌법회를 열었는데, 일부 찬성 정도가 아니라 지지도 100%였다”며 “(교육원 커리큘럼의) 연구 검토는 이것만으로 족하다. 완전한 교과목은 없다. 금강경에도 무유정법이라고 하지 않았나. 하루속히 교육개혁이 이루어져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몇몇 스님들은 “전통적인 한문교육을 포기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개혁의 방향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중앙승가대 오인 스님은 “동아시아권에서 모두 통용될 수 있는 한문교육을 우리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올바른가 반문하게 된다”며 “교과목 개편안을 위한 공청회뿐만 아니라 교재에 대한 공청회도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전 불학연구소장 현종 스님은 “이 시대의 승가상은 ‘명상과 상담의 승려’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며 “명상과 상담 전문 승려가 되려면 이미 자기 문제는 해결해버린 존재할텐데 그런 사람을 구현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일선의 강사스님들이 가장 고민하는 문제도 (학인들이) 중물이 들어야 할텐데 하는 점이다. 전통강원교육 폐지할 때 중물이 꽉 든 스님으로 양성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큰 걱정이 남게 된다”고 지적했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 보광 스님은 “대학이든, 강원이든 시대흐름에 누구보다 더 빨리 따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광 스님은 “개혁을 빨리 하는 대학은 1류가 되는 것이고, 구성원 모든 이의 비위를 맞추면서 개혁을 안하는 대학은 뒤쳐질 수밖에 없다”며 “교과목뿐만 아니라 교육내용은 더더욱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광 스님은 “내가 요즘 동국대 불교대학원 MBA과정에 학생으로 등록해서 다니고 있는데, 이 과정에 타종단 총무원장, 지방 교구본사 주지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현대적인 교육에 목말라 하고 있다. 기존의 전통교육으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형근 동국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강원 교육에 원효, 의상 같은 한국 스님은 없고, 법장, 대혜 등 중국 스님들의 이야기만 있다”며 “강원교육이 보완되려면 이같은 부분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형근 교수의 지적을 끝으로 이날 토론회는 막을 내렸다. 교육원은 5월 4일 또 한번의 공청회를 열어 대중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5월 4일에는 1차 토론회보다 훨씬 더 민감한 문제인 ‘지방강원 조정안’을 다루게 될 예정이다. 정원부족으로 폐지될 일부 강원의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교육원의 야심찬 개혁안이 순항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미디어붓다
첫댓글 이참에 아예 동네 할머니들도 죄다 알아 들을 수 있는 '한글예불'까지도 해결했으면 싶다.
항성 참신한 글 올려주시는 선재동자님 감사합니다.부처님 가피가 항상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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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한문이든 한글이든 팔리어이든.. 언어에 잡혀 있다는 것은 망상일 뿐입니다.
전법의 기본은 그곳 사람들이 잘 알아듣도록 하는 게 아닌가요.
자신 만이 아닌 이웃을 위한 승가 교육이라면 이미 그 시대 언어로 들어와 있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벌써 늦었다고 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