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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을 다 따랐을 거에요. 우리는 그렇게 배웠고 그게 옳다고 믿었으니까. 지00(18)
‘가만히 있으라’ 세월호에만이 아니라, 청소년들은 꾸준히 들어왔던 말이에요. 양00(18)
학교라는 그 자체가 ‘가만히 있으라’는 곳 아닌가요? 엉겹결에 왜요?라고 물어봤다가 엄청 혼난 적도 있어요. 최00(18)
큰 여객선 안에서 다 같이 모여 있다 누군가 혼자 나가려 한다면, 다른 아이들이 혼자 튀려고 한다, 싫어했을 거에요. 만약에 학교에서부터 가만히 있지않고 토론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면 어땠을까... 세월호가 과적이나 무리한 개조를 할 때, 선원들 간에 충분히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는 사회였다면 어땠을까. 최00(19)
어떤 분들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건에 동요하지 말고 공부에 집중하라. 그냥 아는 동생일 뿐인데 왜 분향소까지 가냐. 가만히 있는게 도와주는 거다. 조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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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무서운 말이었다. 그 말. 가만히 있으라! 어른들의, 권력자의, 전문가의 이 말 한 마디가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그 말씀이 하나님이다. 성경에 나오는 말이다.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개소리라고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한국 사회에서의 말씀은 너무나 높고 거룩한 나머지 인간의 목소리와 너무나 멀어졌기 때문이다.
“살고 싶으면 입을 다물라! ”
몇 년 전 개봉한 영화 <궁녀>의 포스터에 나온 핵심 광고구절이다. 혀를 함부로 놀리면 죽인다는 이 살벌한 구호는 조선시대 양반 치하에서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와 군사독재시대를 거쳐 지금도 횡행하고 있다.
‘까라면 까’라는 군대 고참의 명령만 말씀이 아니다. ‘차렷, 열중 쉬엇, 앞으로 나란히!’로 시작한 국민교육시대의 망령이 지금은 ‘입 다물어’와 ‘가만히 있으라’로 변질되었을 뿐 그 본질은 하나다. 타인의 삶에 관심 갖지 말고 세상의 문제에 눈길을 주지 말며 불의를 보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나서지 말라는 말이다.
탁월한 철학자 도올 김용옥 선생님도 이를 느꼈던가! 대한민국 새로운 교육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쓴 글에 다음 같은 구절이 가슴을 친다.
세월호 안에서 무기력하게 스러져간 어린 생령들의 행동은 주어진 상황에서 누구라도 취할 수밖에 없었던 최선의 방도였다는 것을 우리는 공감하고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그 학생들의 상당수가 애절하게 부모님들과 카톡을 했다. 그 덕분에 귀중한 자료가 많이 남았다. 그래서 국가 시스템의 무능의 실상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러나 우리가 교육적 차원에서 안타깝게 반추해볼 수도 있는 또 하나의 가설은 카톡이 아닌 생존의 방법의 모색을 위한 진지한 호상적 토론이 우선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선중의 마이크에서 울려퍼지는 “가만히 있으라”는 절대명령이 있었다 할지라도 생사의 기로에서는 생존을 향한 본능적 욕구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충분한 토론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시공간은 카톡과 더불어 개별화될 수밖에 없었던 문명의 구조적 현실태에 종속되어 있었고, 절대적 권위에 대한 물리적 순응만이 그들의 행위를 지배했다. 앞서 지방선거를 예견한 언론인이 헌법 수호를 운운했지만, 헌법이라 하는 것도 필요에 따라서는 개정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헌법 수정의 역사라 할 수 있다. 헌법도 수정될 수 있는 것이어늘 “가만히 있으라”는 마이크 소리가 개정의 대상일 수는 없겠는가? 생존의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기 위하여 탐색대를 밖으로 내보내면서 긴밀한 상황연락을 취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요번 6·4 지방선거는 “가만히 있으라”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표출된, 기존 세력의 역사몰이 전체에 대한 응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순결한 단원고 학생들은 우리 시대의 교육이 저지른 죄업의 희생양이었다.
(김용옥, 교육입국론, 한겨레신문사)
이제 더 이상 가만히 있어서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국가, 권력, 자본, 언론 등 막강한 힘을 가진 세력들이 보이지 않는 손을 꽉 잡고 국민들을 억압하는 시대에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주는 대로 먹고, 때리는 대로 맞고, 죽으라면 죽는 노예의 삶을 상징적으로 아니 사실적으로 웅변한다. 세월호가 그 명명백백한 증거가 아닌가!
<희망 제작소>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반성과 참회의 마음으로 나선 활동이 바로 노란테이블이다. 이대로 국가의 억압과 명령을 지켜볼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나서서 우리의 권리를 찾고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 폭력이나 불법이 아닌 시민적 이성과 지혜를 모아서! 그게 노란테이블이 만들어진 배경이고 정신이다.
이런 노란테이블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노란 테이블의 의미는
1.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시민들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기회 제공
2.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토론문화 확산을 통해 시민으로부터의 사회혁신운동 실현.
3. 우리 사회의 안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행동에 관심 있는 시민들이 함게(께) 네트워킹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4. 정부 기관 등과 함께 시민의 의견을 전달하고 실현시키는 협업과 협치 구현
이 네 가지를 기본 취지로 삼는다.
첫째. 세월호의 역사적, 사회적 가치는 앞서 언급한대로 결코 작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진행형으로 한국인들의 의식과 정서를 흔들어놓을 것이다. 세월호는 단지 자기 혼자만의 팔랑거림이 아니라 나비효과의 작은 나비 날개짓처럼 한국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흔들어놓을 초대형 태풍의 눈이기 때문이다.
둘째, 토론이 없는 한국사회에 건강하고 의미 있는 토론 문화를 조성한다. 토론이라고 하면 갑론을박이나 중구난방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게 우리네 토론 문화다. 청와대를 비롯한 사회 곳곳에 지록위마와 어불성설이 횡행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마이동풍에 우이독경이다. 대화는커녕 멱살잡이와 주먹다툼을 하지 않는 게 다행이다 싶을 만큼 경청과 수용이 안되는 사회다.
하지만 건강한 민주사회는 역지사지(易地思之)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다. 상대의 의견을 들으면서 그 처지를 이해해주고(인간에게 진정한 이해가 정녕 가능한지는 차치하고!) 동일자의 논리로 자기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하기보다는 각자 다른 의식과 문화 속에서 화평하게 공존하는 삶의 논리와 실천. 그게 바람직한 민주주의가 아니던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잃어버린 대화와 토론의 감각 그 정신을 문화적으로 새로 만들자, 그게 두 번째 의미다.
세상에는 의인만 있는 것도 아니고 죄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선악이 공존하고 그 자체도 수시로 바뀌는 게 현대사회다. 스님이나 신부님도 바람필 수 있고 살인자도 때로는 아름다운 시를 쓰거나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사회의 역동성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라 윽박지르는 뒤 켠에 절대 가만히 있지 못하는 깨어 있는 시민과 학생들도 있는 법이다. 사회가 워낙 원자처럼 쪼개져 있다보니 분열된 다중으로만 존재할 뿐이라서 그 힘이 미약하지만 이들도 뭉치면 권력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나아가 정권을 바꿀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러한 깨인 시민들을 연결하고 키우고 넓히는 작업. 그게 노란테이블의 세 번째 목적이다.
네 번째. 그렇다고 노란테이블이 저항만을 일삼는 조직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지방자치 단체 등을 배제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깨우고 살리고 키우는 큰 어머니를 꿈꾼다. 한 사람의 작은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권력집단에게 모여진 큰 소리를 전달하고 일방적인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함께 일하고 함께 다스려나가는 협업과 협치를 실현한다. 형식적 민주주의를 깨고 실질적 민주주의를 현장에서 이루어나가려는 몸짓이다.
어떤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갈등으로 얼룩진 한국 사회의 곳곳에서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면서 상대 의견을 경청하고 자기 목소리를 나지막히 제시하면서 공생과 자치의 길을 함께 찾아가는 운동, 노란테이블의 이런 정신 말이다.
노란 테이블 툴킷(toolkit)
자 그럼 노란테이블을 어떻게 진행해 나갈지 이제 그 실제 방법을 살펴보도록 하자. 노란테이블을 진행하는 데 꼭 필요한 ‘툴킷’을 소개한다.
토론을 하는데 그냥 말하면 되지 왜 툴킷을 활용하는가? 토론의 도구는 분위기를 밝게 하며 토론자들이 입을 여는데 유용한 사고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툴킷(toolkit)이란 목수나 일꾼들의 연장을 모아놓은 도구 상자를 말하는데, 노란테이블의 툴킷은 7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툴킷의 활용은 전체적인 과정을 시각화하여 빠르고 쉽게 공유할 수 있다. 또 승자 패자를 가르는 끝장토론이나 디베이트형 토론이 아니라 서로 협의하는 토론을 만들어가는 데 유용하다. 일직선적인 목표지향 토론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사고를 확산시켜나가면서 구체적인 요구안과 행동 약속으로 나아간다.
툴킷은 노란테이블보, 토론 카드 삼종세트 요구와 약속 보드, 스티커세트, 토론가이드와 토론자료집 그리고 소통벽보로 이루어져있다. 토론의 과정은 이 툴킷을 활용해서 차례대로 진행을 하면 된다. 하나씩 설명을 하면서 토론과정을 같이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노란색 테이블 보.
왜 노란 테이블일까? 빨강이나 파랑도 아니고 노란색? 세월호의 아픔을 같이 나누자는 취지의 노란 리본 때문이다. 사람이 죽으면 검은색이나 하얀색 리본을 다는데 세월호 참사 뒤에는 왜 노란 리본이 유행했을까?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유행했던 노란 리본의 기원은 미국으로 건너간다. 감옥에 갔다 출소한 사람이 귀향하면서 아직도 자기를 사랑한다면 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달아달라고 부인에게 부탁했다. 리본이 달려 있지 않다면 그냥 그 마을을 지나가겠다고. 가슴 졸이며 버스를 타고 나무 아래를 지나가려던 사내는 나무에 달린 수백 개의 리본을 보고 감동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고, 한 때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란 리본을 오크 나무에 달아주세요’라는 노래가 유행한 적도 있다. 그 후 노란 리본은 멀리 길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의 상징이 되었다. 아직도 배 안 혹은 바다 밑 어딘가를 떠도는 시신과 영혼. 그리고 육신은 돌아왔지만 생명은 끝내 건지지 못한 아픈 영령들의 귀환을 바라는 염원으로 노란 리본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노란 테이블 역시 노란 리본에서 유래한 안타까운 기도의 마음을 담은 상징성을 같이 갖는다.
노란 테이블 툴킷에는 툴킷 하나에 가로세로 110cm의 노란색 테이블 보자기 한 장이 들어있다. 10명 안팎 모임에서 진행한다면 툴킷 하나에 테이블보 하나를 상징적으로 깔아두면 된다. 학교처럼 인원이 40명 정도까지 되면 테이블보를 5장 정도 마련하면 좋다. 전교조에서 만든 노란테이블 툴킷은 희망제작소와 달리 노란 테이블 보가 다섯 장이다. 한 학급 다섯 모둠 정도를 염두에 두고 창의적으로 계산해서 만든 까닭이다. 노란 테이블 보가 없다면 노란색 전지를 책상 위에 깔아두고 토론을 진행해도 무방하다. 중요한 것은 천이 아니라 마음이고 상징이기 때문이다.
토론 카드는 실질적인 토론을 이끌어나가는 가장 핵심적인 도구다. 토론에서 도구의 힘은 막강하고 엄청나다. 어떤 도구를 사용하는가 여부가 토론을 재미있고 활발하게 이끌어가는 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런 점에서 노란테이블의 토론 카드는 매우 유용하고 필수적인 도구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색깔 없이 네모난 카드를 활용했으나 그냥 단순하게 카드를 늘어놓은 모양이 아이디어를 창의적으로 공유하기에 적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보드게임 아이디어를 활용해 6각형 벌집 모양을 만들고 색상도 넣어서 활동마다 개념을 구분하고 진행과정을 잘 알아보게 배치했다.
노란테이블의 토론 카드는 3종류로 되어 있다.
첫째 검은색으로 된 우리 사회 문제 카드. 이슈 카드라고도 부른다.
해상 사고와 분단국가, 원전사고, 고령화 저출산, 등등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만든 32장의 카드다. 물론 빈 카드도 충분히 마련하여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면 참가자들이 각각 기록할 수 있다.
둘째 문제 원인 카드로 검은색 사회 이슈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는 항목들이 적혀 있다. 색깔은 노랑색이다.
각종 사회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를 다양하게 적어놓은 카드다. 돈, 중요성을 몰라서, 무관심 등등
셋째는 주황색 상상 카드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가치와 방안을 제시한 카드들이다.
사람, 마을, 이웃, 등 공동체적이고 생산적인 가치들이 적힌 카드로 24장이 만들어져 있다.
위의 모든 카드들은 여백만 있는 여분의 카드를 여러 장 준비해놓았는데 창의적으로 참가자들이 채워서 넣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이다.
토론 가이드는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처럼 누구나 봐도 알기 쉽게 토론 진행 방법을 적어놓은 것이다. 토론의 초보에서부터 전문가까지 다 참고하고 활용할 수 있으나 아무래도 토론 경험이 풍부하고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되겠다.
토론 자료집은 토론의 과정을 상세히 수록한 것으로 역시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요구와 약속’ 보드가 노란테이블에서 아주 매력적인 회심의 도구다.
이글 서두에서 언급한대로 진정한 토론은 주제에 대한 해석이나 분석, 제안 등의 말잔치에 그치지 않고 작은 일이라도 내가 얼마나 다짐을 하고 실천하느냐의 문제다.
요구는 이 사회의 책임 있는 사람들과 단체에게 보내는 요구사항을 적는 판이고 그 아래 요구만 하지 않고 나도 실천한다는 의미의 다짐을 적는다.
소통 벽보는 모둠과 모둠 사이의 활동에 대한 통로다. 각자가 한 활동들을 벽보에 기록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은 어떤 고민과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앞으로 함께 어떤 의식들을 더 갖추어나가야 할지를 기록한다.
마지막으로 스티커 세트는
이 도구들을 사용해서 이루어지는 토론의 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토론자들은 이 과정을 통해서 생각이 점점 자라고 깊어지는 경험을 한다.
소개하기/기억하기(15분) ⇒ 발견하기(25분) ⇒ 논의하기(20분) ⇒ 공유하기(10분) ⇒ 상상하기(25분) ⇒ 약속하기(25분) ⇒ 공유하기(10분)
시간은 10명 정도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인원수와 사람들의 친숙도에 따라 어느 정도 융통성 있게 진행할 수 있다.
소개하기와 기억하기는 만남의 중요성을 나누는 자리다. 세상 어떤 일도 사람살이에서 사람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물론 우주 자연과 뭇 생명 가운데 소중하지 않은 것도 없지만) 더군다나 같이 발 디디고 살아가는 이 사회의 문제를 같이 머리 맞대고 고민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소개하기의 방법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명패를 활용해서 몇 가지를 적은 다음 그 내용을 토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방법도 있고, 자기만의 고유 단어를 하나 정도 생각한 뒤에 풀어나가는 방법이 있다. 나에게 세월호는 < >이다. 왜 그런가 그 이유를 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진행자는 이 과정에서 모인 사람들의 말하기 특징들을 눈여겨본다. 남들보다 더 많은 말을 오래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서기를 꺼려하고 소극적으로 듣기만 하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노란테이블의 원탁 토론은 기계적으로 발언 시간과 횟수를 정하지는 않지만, 한두 사람이 발언을 독점한다든지 최소한의 발언 기회마저 외면한다면 노란테이블의 정신과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
‘기억하기’는 세월호의 아픔과 원인을 마음 깊이 새겨보면서 돌아가신 영혼의 넋을 기리고 묵념하는 시간이다. 참가자들은 무겁고 짧은 음악을 들으면서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거나, 세월호 관련 샌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으로 대체해도 좋다.
소개하기를 마치면 ‘발견하기’로 들어간다. 모든 토론은 몸으로 하는 공부다. 아무리 자세한 설명도 실제로 해보는 활동보다 생생하게 기억되지 않는다. 노란 테이블에 관심을 가진 분들도 실질적인 토론 진행을 해보거나 토론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흐름의 어려움이나 혹 발생할지 모르는 문제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터이다. 그래서 나도 직접 교육 과정에 참여해보았다. 그 과정을 간략하게 요약 기록하면서 앞서 이야기한 흐름들을 정리해보자.
노란테이블 실습
세월호 사고가 5개월을 지나가는 9월 17일. 저녁 7시 희망제작소 사무실을 찾았다. 30명 정도의 신청자가 있었는데 내가 도착한 시각은 거의 7시. 절반 정도 참가자들이 5개의 모둠에 흩어져 앉아있었다. 나는 앞 부분 왼쪽에 있는 모둠으로 갔다. 여성 한 분과 남성 한 분. 나중에 남성이 한 분 더 오고 인원이 둘 밖에 없는 모둠 가운데서 한 분이 와서 나를 포함, 다섯 명이 한 모둠을 형성했다. 앞서 설명한 내용들이 다 공유되고 난 다음에 본격적인 실습에 들어간다.
1. 소개하기
전체 사회자 : 자 모둠 사회자를 알려드릴게요. 음~ 일단 머리가 가장 긴 분으로 할게요. 모둠별로 자기 소개를 이끌어주세요.
지명 받은 모둠 사회자는 소개하기부터 시작한다. 소개하기는 자기 소개, 참여 동기와 목적 등을 말하고 전체 발언 시간은 15분 이내. 모둠 활동을 마치면 전원이 함께 손뼉을 치는 것으로 마친다.
우리 모둠에는 "416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의 전문적 심리지원과 통합적 서비스지원을 위한 기관인 온마음센터 지역사회지원팀 사회복지사 최미정님, 원주시 청소년 수련관에서 일하는 이장형님, 은평구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일하는 구태희님, 한국글로벌코칭교육원 대표 장은영님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명이 있었다.
이 가운데 머리가 가장 긴 분은 단원고가 있는 안산에서 오신 최미정 님. 사회자가 먼저 자기 소개를 하고, 한 분씩 돌아가면서 발언을 하도록 독려한다.
최 : 저는 안산에서 사회복지사를 하는 최미정입니다. 광명에서 일하다가 안산으로 이직해서 일합니다. 27일 안산에서도 노란 테이블이 열리는데 미리 공부하러 왔습니다.
이 : 저는 원주에서 일합니다. 저도 사회복지사입니다.
(최, 저도 원주가 고향인데)
구 : 은평구 신나는 애프터 센터에서 일합니다. 애프터 서비스, 에이에스(AS) 아니고요. 은평구는 연대와 네트워크가 활발한 곳입니다.
장 : 전남 광주에서 왔어요. 프리랜서입니다. 노란테이블이 마인드맵이나 전지로 하는 활동과 달리 프로그램 모듈로 어떤 가치 있는지 공부하러 왔어요.
나는 토론을 공부하는 사람이고 토론의 전사라는 책을 썼으며 이 과정을 통해 노란테이블에 대한 글을 쓰고자 왔다고 이야기했다. 소개를 모두 마치고 다 같이 손뼉을 친다. 다른 모둠도 얼추 끝난 상태다. 전체 사회자가 다음 과정을 주문한다. 이번에는 토론 카드를 활용한 본격적인 논의하기다. 먼저 활용 방안을 설명해준다.
기억하기는 시간 관계상 따로 하지 않았다. 장소와 시간, 여건에 따라서 다양하게 짚고 넘어갈 수 있다.
2. 발견하기
전체사회자 : “툴킷에서 토론 카드를 꺼내보세요. 세 가지 종류가 있죠? 그 가운데 이슈카드와 문제카드를 확인하고 연결하기로 진행합니다.
검은색(이슈) 카드와 노란색(문제원인) 카드를 정렬할 때, 가운데를 비워서 해주셔야 합니다. 거기에 참가자들이 선택한 카드를 배치해야 하니까요. 한 사람 당 각각 한 장씩을 선택합니다.
내려 놓은 카드 가운데 상대방이 내가 선택한 것과 같으면 같이 입장을 정하셔도 됩니다. 내려놓아지는 카드 가운데 공통적으로 선택되는 것은 2중 혹은 3중으로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거죠. 그리고 문제 발견이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고 싶으시면 빈 칸을 활용하시면 됩니다. 빈 카드에다 직접 써넣으시면 돼요.
시간이 25분 정도인데 내려놓으면서 간단한 설명을 하시면 됩니다. 전체가 두 바퀴를 돌아도 되고 한 바퀴 돌면서 전원 1차 발언을 하시고 남은 시간은 2차로 희망자만 하셔도 됩니다. 적절하게 안배하셔요.”
내려놓는 과정은 브레인 라이팅 활동과 비슷하다. 앞 사람이 내려놓은 것과 연계하되 범주화하는 대신 유사성과 인접성을 띤 것들을 고려하면서 배치하는 것이 조금 다를 뿐.
카드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카드와 규칙은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도구이지 사람들의 말과 사고를 제한하는 도구는 아니다. 우리 모둠에서도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생일이 오늘로부터 가장 먼 사람이 사회자. 역시 안산의 사회복지사 최미정님이 사회자가 되었다.
최 : 제가 고른 카드는 ‘해상사고’와 ‘양심이 없다’입니다. 아무래도 안산에서 직접 세월호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이 일이 가장 크게 와 닿습니다. 원인으로는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든 양심이 없다를 뽑았습니다.
오른쪽으로 돌아 다음은 코칭 활동을 하는 장씨.
장 : 저는 ‘고령화저출산’을 문제로 삼고 싶어요. 원인으로는 ‘관련 법규가 없다’입니다. 회사를 다니다가 프리랜서로 전향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육아휴직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등등
그러면 카드 조합이 어찌 되는가? 해상 사고와 양심, 고령화와 법규 문제로 각각 간다. 하지만 해상사고 원인에 법규 문제도 있고 고령화저출산도 양심의 문제랑 겹치므로 네 장의 카드를 마름모 꼴로 배치했다.
다음 차례인 나는 분단국가를 뽑았다. 그리고 원인 카드는 직접 쓰기로 했다.
나 : 제가 ‘분단국가’를 뽑은 이유는 한국 사회의 모든 갈등이 분단에 원인을 두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인을 ‘한국 사회 갈등의 역사적 뿌리’로 정했고요. 한국 사회를 뒤흔든 주요 사건의 배후에는 남과 북의 갈등 혹은 남북분단을 핑계 삼은 이념적 정치적 공작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분단은 아직 진행 중이고 다른 어느 문제보다 뿌리가 깊은 문제라고 생각해서 골랐습니다. 이상입니다.
구태희 님도 나와 같은 ‘분단국가’를 뽑았고 원인으로는 ‘중요성을 인식 못하다’로 선택했다. 나와 비슷한 문제 의식 속에서 분단 문제를 깊이 바라보는 듯했다. 그리고 이장형님은 ‘어린이안전’과 ‘근시안적이다’를 뽑았다. 이유를 들어보니 청소년 수련관에서 일하면서 느낀 삶의 고민이 담겨 있는 말이다. 안전 불감증. 이 역시 세월호 문제와 무관할 수 없는 문제다.
이렇게 해서 모두가 돌아가면서 자기의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다른 참가자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고민을 담은 속 깊은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의외로 시간이 모자랐다. 시간이 조금 남는다면 질의응답을 하거나 추가로 보충 발언을 희망자 중심으로 들어도 좋다.
3. 1차 공유하기
공유하기는 각 모둠에서 나온 핵심 문제들을 정리해서 중앙으로 알려주는 과정이다. 커다란 판을 만들어서 포스트 잇에 붙여 알려주거나 한 모둠씩 돌아가면서 발표하기를 해도 좋다. 스마트폰으로 자기 모둠의 상황을 정리해서 중앙 의견 수렴자에게 보내면 그걸 정리해서 총괄적으로 발표하는 방안도 있다.
현재 우리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진단을 참가자들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하고 있나를 개괄적으로 정리하는 단계다.
4. 상상하기
그 다음은 상상하기. 대안을 찾아가는 희망의 시간이다.
테이블마다 앞 과정에서 내려놓은 이슈카드를 조망한다. 전체적으로 지도를 보면서 진행자가 연결고리를 같이 만들어보거나 그 가운데 우선 순위를 정해서 논의하기를 진행해도 된다.
진행자는 발언하기 시간에 적절히 메모를 해서 말을 못하는 분들의 입을 열도록 한다.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지거나 다른 사람 의견에 자기 의견을 덧붙이게 하는 방식으로 참여를 이끌어낸다.
상상하기 시간에 발언을 하는 것은 꼭 앞서 자기가 제시한 문제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이 제기한 문제도 얼마든지 상상하기가 가능하다.
전체 사회자 : “상상하기 카드는 주황색입니다. 노란색과 검정색 카드는 정리를 해도 좋고 혹 더 이야기하고 싶은 과제가 있다면 참고하셔도 좋습니다. 카드를 활용하실 때는 규칙에 너무 얽매이지 마세요. 일단 상상하기 카드는 발견하기 카드 사이에 배치를 합니다. 그러면서 벌집 모양을 만들어가는 것이고요 주변이 꽉 차서 더 이상 놓을 곳이 없다. 그러시면 위에다 살짝 올려놓으셔도 됩니다”.
다시 모둠 활동이 진행된다.
나는 먼저 분단 국가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상생’을 뽑았다.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배울 때 이북의 우리 민족을 적이 아닌 친구와 동반자로 인식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장은정 님은 배려. 우리나라 육아를 위한 오이시디 최하위 고령화 저출산 문제 해결에 필요한 가치라고 이야기한다.
나와 같은 분단국가를 문제제기한 구태희 님은 ‘평화적 감수성’을 제시했다. 카드 주변에 빈 공간에 없어 카드를 살짝 위에 올려놓았다. 인권을 넓은 범위로 인식하고 북한 주민과 더불어 살기 위해 평화의 마음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이장형 님은 사람. 모든 운동은 사람에서 시작한다.
최미정 님은 지역을 핵심 가치로 제시했다. 안산 지역에서 가족들을 치유하고 돌보는 일을 하는 입장이라 지역이 끌린단다. 현수막 걸고 지역에서부터 운동을 펼쳐나가는 모습이 좋아서.
이렇게 각자가 내려놓은 상상적 가치를 나누면서 희망적인 사회의 모습에 대한 상을 그려나간다. 아직, 우리 사회가 어둠의 그늘에만 가려있지 않다는 환상(?)과 함께 의지도 불끈 솟는다.
5. 약속하기와 행동하기
가장 어려운 시간이 돌아왔다. 앞서 논의하기 시간을 넘어 실천적인 자기 결단이 필요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논의는 거창하지만 실천은 소박하게. 이상은 높아도 발은 현실에 디뎌야하듯 몸과 마음, 이론과 실천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더군다나 말은 엄중한 무게를 지녀야 하는데 거기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 약속이 누구인들 쉬울 것인가!
전체 사회자 분도 이 대목을 쉽게 설명하지는 못하셨다. 상상하기에서 요구하고 약속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넘어가기가 그리 만만치는 않은 듯.
이 대목에서 참가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구체적인 실천 약속을 따로 만드는 과정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포스트잇을 활용하거나 본격적인 브레인라이팅, 댓글 쓰기 등의 형식으로 의견을 모아본 다음에 모둠별, 개인별 결론을 제시해보면 어떨까 하는 의견. 뭐 이렇게 어렵게 접근하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해도 되는데 어쩐지 분위기는 그런 쪽으로 흘렀다. 실천과 약속과 다짐의 의미를 모둠 혹은 전체 사회자가 잘 이끌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지역, 평화적 감수성, 배려, 상생을 아우를 수 있는 요구, 실천이 약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요구는 특정 인물이나 정책 기관 등에게 할 수 있고 실천의 약속과 다짐은 자기 스스로에게 혹은 모둠 차원에서도 가능하다.
아쉽게도 이날 연수에서는 시간이 부족한 까닭에 이 과정을 진행하지 못했다. 대신에 전교조 공동수업을 앞두고 한 결과를 사진으로 보여주고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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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공유하기
모둠 별 실천 약속을 나와서 공유하기 역시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다짐의 약속을 여러 사람 앞에서 공론화함으로써 결의가 더욱 굳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역시 전교조 활동 사진과 실제 그 뒤의 실천 활동 사례로 안내를 대신한다.
이렇게 해서 공유하기 과정까지 마치면 노란테이블의 한 과정이 마무리된다.
이 활동의 보급을 목표로 하는 희망제작소는 자료를 개방하여 공유를 추친한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내용으로 변화가 가능하고 어른들, 여성들, 노인들 각각 그 세대의 특성에 맞게 재활용이 가능할 듯 싶다.
희망 제작소에서는 조만간 소스까지 완전히 공개해서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토론 운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앞으로의 전망을 이야기했다. 온 나라가 노란 토론의 물결로 가득찬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이런 노란테이블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가?
노란테이블의 특징과 의의
1.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의 문제들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을 빠르고 쉽게 공유할 수 있다.
2. 문제의식을 시각화하는 과정을 통해 논의 내용에 대한 공유와 확인이 매우 쉽다
3. 누군가 이기고 지는 끝장 토론 형식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며 나아가는 확산형 토론과정이다.
4. 논의 내용을 구체적인 요구안과 행동과 약속으로 정리한다.
나는 2000년에 원탁토론을 처음 만났다. 강치원 교수님께 원탁 토론을 처음 배웠을 때 접한 심사의 6가지 기준이 생각난다. 교수님이 강조하시던 내용을 요약 정리해서 전달하면 이렇다.
1) 전문성
토론의 전문성은 전문적 용어 사용과 내용의 구사에 있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소화해서 실을 뽑아내듯이 많이 읽고 공부하고 경험하고 고민하는 데서 전문성이 찾아진다. 누에가 뽕잎을 먹지 못하면 실을 뽑아 내지 못하듯이 철저한 준비와 공부를 하지 못하면 토론의 전문성을 기르기 어렵다. 책만, 교과서나 성경책이나 법전처럼 꽉 막혀 있고 정답같은 책만 많이 보아서는 전문성 기르지 못한다. 세상 공부를 많이 해서 약하고 어려운 사람 처지도 알고, 전쟁이나 부당행위나 이런 현실에 대해서도 눈을 떠야한다.
2) 논리성
앞뒤 말은 바뀌더라도 논리적 일관성이 있어야 하며 토론의 흐름을 깨고 있지 않나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논리의 칼은 예민해야 한다. 말씀은 날이 선 검이며 뼈와 골수와 살을 쪼개는 치밀한 논리성이 필요하다. 법정 영화를 보면 치열한 논리 싸움 끝에 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이 멋있게 그려진다.
3) 인성
인성은 한마디로 겸손함과 담대함이다. 무조건 자기 주장을 펼치면서 설득하기 전에 진정으로 옳은 이야기를 인정하고 설득당할 용기와 아량을 갖고 있어야 한다.
겸손함과 담대함은 민주적 카리스마를 키워낸다. 부드러움을 통한 세력화가 가능하다. 그 부드러움 속에서도 마음의 심지는 강해야 하며 논자가 말하는 물처럼 부드러운 겸손함 속에 태산같은 무게로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이 겸비되어야 한다.
4) 창조성
토론자는 환상(독창성)과 이성(보편성)의 절묘한 조화 속에서 토론을 해야 한다. 피카소는 엄청난 데생 연습을 통해 추상화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 독창성은 사회의 보편성을 바탕으로 생겨난다. 사회의 보편성이 인정해주는 환상 즉 창조성이 있어야 한다.
부싯돌이 서로 부딪힐 때 빛난다고 볼테르가 말한 것처럼, 진리의 섬광은 서로 다른 견해들이 부딪힐 때 튀어나오므로 토론자들의 토론 안에서 새롭고 창조적인 인식이 창출되어야 한다.
5) 공동체성(객관성)
원탁토론의 교육목표에서의 공동체성은 사회적 객관성과 역사적 객관성을 포함한다. 사회적 객관성은 사회 구성원들의 지지를 얼마나 받고 있느냐를 의미하며 역사적 객관성은 과거와 미래의 후손까지 포함하는 의미에서의 객관성이다. 내가 한 발언은 현재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며 몇 십년 뒤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발언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토론교육은 역사의식에 관한 교육이라고도 할 수 있다.
6) 실천성
실천성은 말이 삶으로 실천되는가이다. 실천성에는 횡적(가로, 수평적) 실천성과 종적(세로, 수직적) 실천성이 있다. 횡적 실천성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실천, 곧 연대를 의미하며 종적 실천성은 한 순간만 실천하다 마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실천함 곧 지속성을 의미한다.
실천이 없는 말의 공허함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두 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행동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듯이, 말만 교묘하게 잘 하는 것이 진정으로 토론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땀흘리며, 자신을 던져서 온 삶을 걸 수 있는 말을 할 때 그 말은 힘이 생기고 다른 사람들과, 특히 약자들끼리 연대하는 강한 고리가 된다. 여건이 조금 나아진다고 나태하고 포기하고 물러선다면 그 또한 토론 내용의 지속적인 실천이라는 점에서 부족함이 많다고 할 수 있겠다.
오래 전에 다른 지면을 통해서 정리한 글이지만 노란 테이블의 의미를 되새겨보면 이러한 가치들이 더욱 새록새록 중요하게 떠오른다. 2000년 당시의 전국 중고등학생 원탁토론광장에서부터 최근 518재단에서 진행한 전국 고등학생 토론대회에 이르기까지 그 동안 수많은 원탁 토론을 교육하고 또 대회도 운영하며 판정을 해보았다. 대개의 토론 대회는, 특히 찬반대립의 디베이트 토론 대회는 전문성과 논리성에 초점을 맞춘다. 거기에 조금 더하면 창조성을 눈여겨 볼 수도 있다. 물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공대하는 인성은 어디나 기본이고. 하지만 공동체성과 실천성을 평가 기준으로 삼을 수는 있어도 그걸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대회는 보지 못했다. 인간의 삶의 실천을 과연 누가 재단한단 말인가.
공동체성과 실천성은 사실 본인 자신이 자신의 삶의 가치와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옳을 터이다. 나는 그 길을 처음으로 열어준 원탁 토론이 바로 노란테이블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의 공동체 정신을 살리고 나아가 자기 삶의 실천을 나누는 토론. 노란 테이블이야말로 진정한 토론 문화와 토론 운동의 샘물이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노란테이블에 붙은 부제, <한국을 바꾸는 천 개의 행동>은 매우 가슴에 와 닿는 구호이며 천 개가 아니라 만 개, 십만 개 혹은 무한의 영역으로 확산해 나갈만한 가치가 충분한 운동이라 생각한다.
노란테이블 연수를 마치고 세월호 유족들이 두 달 가까이 릴레이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광화문 광장을 찾아갔다. 기울어가는 세월호 모형. 그리고 물 속에 가라앉는 배처럼 점점 바닥으로 가라앉는 대한민국. 선장은 누구이고 선원들은, 또 배를 탄 사람들은 과연 누구이고 지금 어디서 어떤 행동들을 해야 하는가.
흐려가는 불빛 속에 다시, ‘가만히 있으라’는 누군가의 명령이 유령의 목소리처럼 들려온다.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과연 가만히 있어온 세상 속에서 역사는 어떻게 움직여왔는가.
백성의 배고픔을 모르는 왕족과 양반 사대부들. 일제의 식민지배와 친일파의 득세. 친일의 후예 이승만과 끔직한 반공이데올기. 다시 친일파 박정희와 유신독재의 악령. 전두환 노태우의 시민 학살. 90년대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문민의 권력을 회복했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를 지나면서도 아직 제대로 된 국민 노릇, 참여하는 시민의식을 기르거나 가르치지 못했다. 세상은 여전히 국민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회유와 겁박을 일삼고 있지 않은가.
‘거짓된 다수결’과 ‘허위의 의회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인 양 탈을 쓰고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오늘 우리가 만들어가야할 민주주의의 현장은, 참모습은 과연 무엇인가?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잘 모르겠다. 과거를 성찰하고 현재를 고민하며 새로운 내일을 꿈꾸는 이들의 마음 속에서 희미하게 존재하지 않을지 기원할 뿐. 건강한 공론의 장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역사적 사명과 시민적 정의의 희망 앞에서, 노란테이블은 계속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죽음 앞에 바치는 나희덕의 시 한 편을 소개하며 줄인다.
난파된 교실
나희덕
아이들은 수학여행중이었다
교실에서처럼 선실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그 말에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앉아 있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조립을 기다리는 나사들처럼 부품들처럼
주황색 구명복을 서로 입혀주며 기다렸다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공장의 유니폼이라는 것도 모르고
물로 된 감옥에서 입게 될 수의라는 것도 모르고
아이들은 끝까지 어른들의 말을 기다렸다
움직여라, 움직여라, 움직여라,
누군가 이 말이라도 해 주었더라면
몇 개의 문과 창문만 열어 주었더라면
그 교실이 거대한 무덤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수학여행중이었다
파도에 둥둥 떠다니는 이름표와 가방들,
산산조각 난 교실의 부유물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지만
배를 지키려는 자들에게는 한낱 무명의 목숨에 불과했다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순간까지도
몇 만 원짜리 승객이나 짐짝에 불과했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사랑하는 부모가 있었지만
싸늘한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햇빛도 닿지 않는 저 깊은 바닥에 잠겨 있으면서도
끝까지 손을 풀지 않았던 아이들,
구명복의 끈을 잡고 죽음의 공포를 견뎠던 아이들,
아이들은 수학여행중이었다
죽음을 배우기 위해 떠난 길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교실에 갇힌 아이들이 있다
책상 밑에 의자 밑에 끼어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리와
유리창을 탕,탕, 두드리는 손들,
그 유리창을 깰 도끼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