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3: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 여기서 뿌리가 없다는 것은 결국 복음에 대한 그 개인의 인격적 확신이 결여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이에 대해 누가는 '잠깐 믿다가'라는 연결구를 덧붙임으로써(눅 8:13) 복음에 대한 즉각적 수용 뿐만 아니라 인격적 확신에 근거한 지속적인 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환난이나 핍박 - 환난을 뜻하는 말인 '들리프시스'는 '밀어대다, 몰려대다, 답답하게 하다'의 뜻인 '들리보'에서 나온 말로서, 삶의 여러 조건들을 통해서 억압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핍박을 뜻하는 말인 '디오그모스'는 도망가는 노예를 잡기 위해서 개를 보내 추격하게 한다고 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디오코'에서 나온 말로서, 본문에서는 종교상의 '박해'를 가리킨다.
결국 이 두 낱말은 한 개인의 생활 전반에 걸쳐 만날 수 있는 모든 고난과 거침돌을 의미한다. 넘어지는다 - 함정, 올가미, 덫 또는 죄를 짓게 하는 유혹을 뜻하는 '스칸달론'에서 나온 말로서, 여기서는 죄에 빠지다, 배반, 배교하다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또한 환난이나 핍박으로 인해서 생겨난 갈등으로 어리둥절하거나 휘청거리는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마 13: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 자신의 내부적인 문제와 갈등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위의 환경, 물질 등의 외부적 요소가 가져오는 유혹을 극복하지 못하고 주저하며 방황하는 사람의 상태를 의미한다. 즉 가시떨기 밭은 그 토양 자체는 비옥하나 밭 위가 손질되지 않아 유익한 곡식과 가시떨기가 함께 자라난, 즉 순수와 세속이 혼재된 자아의 분열된 심적 상태를 가리킨다.
그는 하나님과 세상의 재물을 겸하여 섬기려는 사람이며, 세상의 유혹에 귀기울이므로써 말씀이 그 마음 안에서 질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이를 한마디로 말해서 '세속에 물든 청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인격은 결단코 영적 성숙에 이르지 못한다.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 세상의 염려란 내세(來世)에 대한 관심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하는 현세 위주의 생각으로 영원한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가질만한 여유와 용기가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특별히 여기서 '염려'라는 뜻의 헬라어 '메림나' 는 '마음이 나뉘다, 분열되다'라는 뜻이다. 실로 감정과 생각과 판단이 세상을 향한 욕구로 혼탁해지고 나누어진 사람은 모든 일에 있어서 정함이 없다
그리고 재리의 유혹은 '재물의 즐거움'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이는 부요한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더 많은 재물을 얻고자하는 욕망에 빠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재리'란 '많다', '풍성하다'의 뜻에서 나온 '플루토스' 라는 말로서, '풍성한 재물' 혹은 '부요함'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재리의 유혹이란 재물 자체에 대한 필요 욕구라기 보다는 오히려 자기를 위하여
필요 이상의 재물을 쌓아두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오류에 빠짐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는 주께서 그 쓸 것을 미리 알고 채워주시므로 현재의 삶에서 겪게 되는 물질의 빈곤에 대해 염려하지 않고 마음에 평안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이 세상의 재물에 대한 '부'보다는 하나님께 부요함으로써 영원한 기쁨과 세상이 주는 거짓 기쁨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
말씀이 막혀 - 여기서 '막혀'에 해당하는 헬라어 '쉼프니게이' 는 '질식시키다', '숨막히게 하다'는 뜻이다. 이는 세상 욕심이 영혼의 양식과 청결한 공기 및 거룩한 햇빛을 날마다 공급받아야 하는 우리의 영적 숨통을 졸라 질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정녕 말씀의 성장을 위한 노력을 하기보다는
세상의 악한 세력들이 주는 환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 세상이 지닌 파괴적 영향력으로 인해 거룩한 신앙적 성품과 영적 생명력을 모두 잃게 될 것이다. 결실치 못하는 자 - 천국 복음을 수용한 자의 궁극적 목적은 한 인격에 내재한 복음의 넘치는 생명력으로 인해 풍성한 열매를 맺는데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록 열매 맺는 전단계.싹, 잎, 줄기 등가 아무리 탁월하다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마 13: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 - 이는 귀기울여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순종하는 겸손한 마음을 소유함으로써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는 성공적인 청중들의 상태를 일컫는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 - 철저한 자기 부인과 겸손한 수용의지를 통해 복음을 듣고, 수납하고,
그에 합당하게 생활함으로써 풍성한 영적 결실을 이루게 된 자를 가리킨다. 혹 백 배 ... 혹 삼십 배 - 소출 차이는 하나님의 은사의 다양성 및 천국 복음을 받아들인 각 개인의 기질과 능력의 차이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결실을 한 땅이라 해도 결실했다는 그 자체로서 '좋은 땅'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데 유의해야만 한다.
[마 13: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천국은 ... 사람과 같으니 - 여기서 ' ... 과 같다'는 말은 아람어의 관용적 표현인 'X의 경우는 Y의 경우와 같다'는 뜻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천국은 ... 한 사람의 상황(경우)과 같으니'라고 해석하는 것이 원문에 더 가깝다.
좋은 씨 -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나오는 한 종류의 좋은 씨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 반면 본문의 좋은 씨는 마지막 주님의 심판을 직면해야 하는 성도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제 밭에 뿌린 사람 -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라고 하는 설명에 따르면
본문의 구절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대하여 그의 소유권을 주장하시는 말씀이다. 주의 몸된 교회만이 그의 것이 아니라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다. 따라서 '제 밭'이라고 하는 말은 바로 창 1: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는 말과 의미상 동일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신 이후에 그 세상에 대해서 아무런 관여나 관심을 기울이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본문에서처럼 사람의 거듭난 탄생을 위하여 세상을 보호하시고 가꾸신다. 세계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버려진 쓸모없는 땅이 아니라 악이 만연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가꾸어지는 좋은 땅이다.
[마 13: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사람들이 잘 때에 - 여기서 '잘 때에'란 농부의 태만함을 꼬집는 말이 아니라 원수가 농부 모르게 슬그머니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암시하는 말이다. 사실 악한 어두움의 세력은 주로 사람들이 일하지 않고, 경계도 하지 않는 평화와 안식의 시간인 밤에 활동한다.
여기 농부의 원수도 농부가 휴식을 취한 밤에 몰래 들어와 악한 씨앗을 뿌리고 간 것이다. 한편 그 당시 로마에서는 보복하기 위해 상대방의 밭에 가라지와 같은 잡초들을 뿌리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가라지 - 독보리일종으로 '가짜 밀'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싹의 모습이 밀이나 보리와 아주 흡사하여 실제로 이삭이 패기까지는 얼른 식별하기 어렵고, 잘못해서 먹었을 경우 급한 설사와 구토 등의 여러 증상이 있으며, 심할 경우에는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예수의 설명에 의하면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로서 사람들을 의의 자리에서 넘어지게 하는 자이며, 또한 불법과 부정을 행하는 자들이다
그들의 특징은 (1) 위장성. 곡식과 가라지가 싹이 난 초기부터 결실을 거둘 때까지 사람들의 눈에 잘 분별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 끝이 올 때까지는 성도들과 잘 분간되지 않도록 위장되어 있다. (2) 잠복성. 이삭이 나오기까지 평상시에는 곡식과 마찬가지의 외형과 생장 과정을 보이는데 일단 이삭이 패면서부터 알곡과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즉 가라지들이 평소에는 잠복해 있다가 결정적 순간에 그 감춰진 마각을 드러내 놓고 알곡에게 해를 끼친다. (3) 해독성). 가라지는 알곡 뿐 아니라 인체에까지 큰 피해를 준다. 덧뿌리고 갔더니 - '위에'를 뜻하는 말인 '에피'와 '씨를 뿌리다'의 뜻인 '스페이로'의 합성어로서, 뿌린 시 위에 한 번 더 씨를 뿌리는 행위를 가리킨다.
레 19:19과 신 22:9에서는 다른 종류의 씨앗을 섞어 뿌리지 말라고 하는 규정이 있다. 이는 두 씨앗 중 어느 한 씨앗의 열매조차도 올바로 수확할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 조항인 동시에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과 비타협성을 상징하는 교훈적 율법으로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과 민족적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가나안의 이방신앙과 그들과의 혼혈 결혼을 철저히 배격하였다. 바로 그런 점에서 악한 씨앗, 곧 가라지의 씨앗을 곡식의 씨앗 사이에 덧뿌려 놓은 원수의 행위는 도덕적으로나 율법적으로 모두 부정한 것이었음이 명백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