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하리시의 확고한 종교관과 이에 따른 엄격한 일정을 무조건 따랐다. 뭘 먹을지, 뭘 입을지, 어디에 살지, 뭘 믿을지, 뭘 말할지, 뭘 읽고 뭘 읽지 말아야 할지, 어떤 활동이 좋을지, 심지어 사는 집의 구조까지 그의 숨통 막히는 지시를 모두 따라야 했다. 그의 광신적인 면모가 더 두드러지면서 추종자들도 더 배타적인, 더 파벌적인 성향을 띠기 시작했다. 그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은 ”프로그램에 속하는 이”였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프로그램에서 제외된 이”, 즉 추방된 인물로 낙인되어 커뮤니티로부터 소외당했다. 그런 사람에게는 지오데식 돔 입장은 물론 TM 수업도 금지됐다.
우리는 페어(Fair)필드에서 사는 게 아니라 피어(Fear)필드에서 살고 있었다. 조직을 이끄는 우리의 지도자들이 바로 공포 대상이었다. TM만이 깨우침의 유일한 길이고 마하리시만이 진정한 영적 스승이라고 믿는 우리에게는 TM이라는 천당에서 추방되는 게 가장 큰 공포였기 때문이다. 영적 ‘초월(超越)’을 달성할 기회가 사라진다며 우리는 방황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우리의 값어치를 증명해야 했다.
억압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더 심해졌다. TM 출간물이 아닌 요가, 명상, 뉴에이지, 다른 인도 출신 구루 등이 쓴 자기조력 도서를 포함한 모든 ‘부정적인’ 도서가 MIU 도서관에서 사라졌다. 다른 영적 스승을 만나는 것, TM이 승인하지 않은 다른 수업을 듣는 것, 하물며 인도로 여행을 가는 것도 금지됐다.
MIU와 MSAE(Maharishi School for the Age of Enlightenment) 강사들은 창의적인 생각을 가진 학생을 나무랐다. ‘부정적’ 이미지(예를 들어 괴물)를 그리거나 ’부정적인” 이야기를 쓰는 학생도 질책 대상이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도모하는” 행위는 ”프로그램에서 제외”되는 지름길이었다. 알코올, 마약 등 중독자들을 위한 상담 서비스는커녕 중독자 치유 모임도 제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명상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 거라는
비난만 받았다.
나는 내가 독재적이고 억압적인 조직에서 공포 때문에 20년 넘게 살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6년 집에서 가진 소규모 기도 모임을 시작으로 자유를 향한 작은 발걸음을 디뎠다.
그런데 TM 간첩들은 내 집 근처에 주차된 자동차 번호판들을 기록한 뒤 그 주인들의 금색 돔 배지를 빼앗음과 동시에 그 사람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거의 모든 페어필드 주민들이 나를 피했다. ‘기피할 인물’로 낙인된 나는 집을 팔고 페어필드를 떠날 때가 됐다는 걸 깨달았다.
나와 마하리시, 나와 수많은 친구를 이어주는 선을 끊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페어필드를 1989년에 떠나기로 한 것은 정말로 잘한 결정이었다. 나에 대한 더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 나를 돌볼
능력도 갖추게 됐다. 나는 한 번도 되돌아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