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새 정부와 변화욕구 클린턴 행정부에 바란다
은호기 (자유기고가/ 샌디에고 거주 )
• 속느냐 대우 받느냐
할로윈 데이에 잇달아 대통령선거를 치루는 것이 자못 흥미롭다. 물론 우연히 확립된 관습이겠으나 시사하는 바를 한번쯤 생각해 볼만하다.
할로윈 데이가 어린이들 명절이라면, 분명 선거는 어른들의 잔치이다.
귀신놀이인 할로윈 데이는 어린애들이 귀신차림을 하고 집집을 돌면서, '속을래 아니면 대접 해줄래 (trick or treat) 하면서 사탕 나부랭이를 거두어 들인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의 정치는 속느냐 아니면 대우 받느냐의 줄다림이기도 하다.
노련한 정치가일수록 상황을 감쪽같이 조작, 인민대중을 자기 편할데로 몰고 가는가 하면, 똑똑한 인민일수록 거짓을 꿰뚫어 보고 자기 몫을 단단히 챙겨 대우 받고자 한다. 그리고 그 결판의 한 과정이 이른바 선거이다. 어린애들의 귀신놀이가 장나끼가 석인 귀여운 잔치라면, 어른들의 놀이인 선거는 그래서 긴장되고 때로는 살벌하기조차 하다.
풍성한 선거공약, 추잡한 인신공격, 매끄러운 연설, 현란한 제스추어. 귀신놀이는 저리가라 하는 판속에서 속느냐 아니면 대우 받느냐를 판가름하기가 그리 쉽지않다. 그러나 똑똑한 인민들은 결코 속지 않는다. 그리고 인민이 대우받는 것은 그 만큼 정치가 발전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 선거는 끝났다
예상했던대로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의 당선으로 선거는 끝이 났다.
작년 3월에 맨 처음으로 폴 쏭가스 전 상원의원이 민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서겠다고 선언하자 언론들은 도대체 쏭가스(Tsongas)를 '통가스'로 불러야 하느냐, '송가스'로 불러야 하느냐면서 다소 빈정대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락전쟁을 승리로 이끈 부시 대통령의 인기가 하늘까지 치솟아 (90%) 그의 재선은 의심할 바가 아니었기 때 문이다.
이락전쟁의 승리로 사기는 충천하였으나 막상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더구나 전쟁비용을 우방들에게, 심지어는 한국에까지 협박과 구걸로 분담시킨 처지이고 보면 그 결과가 너무 공허하였다.
경제불화의 출구로서 즐겨 써왔던 전쟁도 이제는 더 이상 효험을 창출하지 못하게 되었고, 깊어 가는 경제불화의 늪에서 급기야 인민은 '사기'보다는 '실익'을 요구하게 되었다.
민주당의 젊은 후보인 빌 클린턴은 경제 활성화 정책, 국민의료정책, 교육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 주로 외교정책 보다는 국내정책을 기반으로 하는 '변화'를 주장하고 호소하였다.
유전자의 귀가 많이 쏠렸다. 이에 비하여 현직의부시 대통령은 내정 실패는 솔직히 인정하지 않았을 뿐더러 새로운 정책제시도 없이 클린턴후보의 병역기피문제, 월남전 반대시위 문제등 인신공격만을 일삼아 왔다.
심지어는 국무성이 클린턴후보 영국유학시절의 뒷조사까지 벌리는 등 클린턴후보의 지도자로서의 험집을 찾아낼려고 발버둥쳤으나, 후보경선 초반부터 '바람끼'문제에 시달려 왔던 클린턴에겐 이락전쟁만큼이나 효험이 없었다.
국민들은 지도자의 자질문제 보다는 변화를 선택하였고, 동서대결을 기반으로 하는 냉전구조에 기초하면서 천저히 보수화의 길을 걸어왔던 12년간의 레이건시대는 막을 내렸다.
어쨋든, 한번 더 해 먹겠다고 기를 쓰던 현직 대통령을 인민이 싫다고 내보냈다. 얼마나 신나는 일이냐.
• 클린턴 등장의 뜻
이번 대통령 선거는 세계 냉전구조가 무너진후처음으로 치루어진 선거였다.
2차 대전후 세계를 동서로 양분, 미국과 소련의 힘의 대결이 세계를 압박하던 세계질서가 끝장나고 새로운 세계질서의 개편, 구축의 길목에서 미국의 역활과 중심을 어떻게 잡느냐의 문제와 직결되는 역사성을 가진다 하겠다.
또한 이번 선거는 부시로 대표되는 구세대와 클린턴으로 대표되는 신세대간의 대결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부시의 퇴진은 낡은 사고 구조의 퇴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2차대전의 참전 신화를 등에 없고 2차대전의 결과에서 비롯된 냉전구조를 바탕으로 하는 사고와 행동이 더 이상 힘을 발휘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빌 클린턴은 2차대전후에 출생한 이른바 전후세대에 속한다. 그는 남녀 평등의 사회구조 속에서 그리고 인권문제가 거세게 대두되는 상황속에서 교육받았으며, 전쟁을 비롯한 외교정책은 철저히 정부의 일' 로 치부해 왔던 구세대와는 달리, 월남전을 반대한 경험을 가진 새로운 세대이다.
빌 클린턴후보는 의례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만, 한국의 김대중씨를 "개인적으로 큰 희생을 당하면서도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과 평화를 위해 헌신해온",
", 케네디 대통령의 말을 빌려, , "용기있는 얼굴"이라고 평한 것을 보면, 확실히 레이건이나 부시와는 생각이 다를 것 같다.
빌 클린턴 대통령 당선자는 우선 젊다는 점에서 케네디 대통려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다른 점도 확연하다. 그는 케네디와는 달리 '촌놈'이고, 전후세대가 보편적으로 격고 있는 고통스런 가정에서 자라났다. 본래의 성이 클린턴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명문을 자랑하는 케네디와는 근본부터가 다르다. 케네디가 준비되고 약속되어 온 가정에서 자라 왔다면, 클린턴은 순전히 자기의 노력과 의지에 바탕을 두어 성장해온 셈이다. 그는 가난과 소외가 무엇인지를 겪어본 정치가이다.
따라서 세금 100불을 깎아주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는 부시와는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클린턴의 영국유학 경험은 세계를 보는 눈에 시각교정과 폭을 더했으리라 믿는다. 옥스포드 시절, 미국의 월남전 참전반대 시위를 주동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케네디 - 닉슨 대결 선거 (63.1%, 사상최고의 투표율) 이 점점 줄어 들기만 하던 투표율이 처음으로 55.0% 까지 상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현상은 젊은층의 선거참여에 기인 하고 있으며, 클린턴후보는 젊은층과 소수민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역경을 자기 힘으로 뚫고 일어선 사나이, 가히 전후 세대의 꿈과 희망이 될 만하다.
• 구조적 변화를 위한 새로운 생각과 장기적 안목
클린턴후보의 변화'공약은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 들의 욕구와 맞아 떨어졌다. 변화의 내용과 형식이 어떻게 전개되고 국민의 변화욕구와 일치할지는 두고 봐야 겠지만, 뭔가 변화되어야 겠다는 국민 의 욕구를 당장 구체화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이번 선거에는 젊은층의 변화욕구가 크게 작용하 였으며, 무엇보다도 무소속인 로스 페로후보가 미국선거사상 처음으로 19%라는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는 자체가 곧 강한 변화욕구의 단적인 표현이 라 할 수 있다.
물론 클린턴 행정부는 약속한데로 강력한 경제 활성화 정책으로 펼칠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10% 가까이에 육박하고 있는 실업율을 해결하기 위한 고용창출이 절실하며, 그리고 위축 되어온 희망과 용기에도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한 경제 활성화 정책이 경제분야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며, 또 그렇게 해서는 풀려지지 않는다.
국내 경제가 이토록 엉망이 된 것은 만성적인 무역적자, 천문학적인 재정적자, 그리고 해외잉여가치의 급속한 감소가 크게 작용하고 있으며, 생산력
의 저하는 노동의욕과 노동의 질에도 많이 기인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산업구조 나아가서는 이 나라의 사회구조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미국의 사회 구조가 크게 의존하고 있는 세계질서, 즉 냉전구조의 변화에 기인한다고도 할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소련을 비롯한 동구라파의 공산주의가 자체적 한계에 부디쳐 무너짐에 따라 기존의 세계냉전구조가 붕괴되고, 따라서 세계냉전구조에 전 적으로 의존해온 미국으로서는 당연히 겪어야 할 고통이기도 하다.
지금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좌파와 우파'등의 구분과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 당연한 결과로, 지금의 세계를 이러한 용어들로 규정하고 설명할 수가 없게 되었다. 새로운 생각과 개념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제까지의 세계는 적대적 관계를 기본으로 양분 되어왔다. 2차대전 전까지는 수탈과 착취를 기본관계로 하는 제국주의와 피압박국가로, 2차대전후에는 냉정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동서진영의 양분이 곧 그것이다. 이러한 적대적 이분논리가 전쟁과 분쟁을 끊이지 않게 하였으며, 이제는 이러한 논리를 과감하게 청산하여야 할 때이다.
따라서 새로운 세계질서 구조, 이에 걸맞는 사회구조 그리고 사회를 이끌어 가는 보수양당 제도에도 변화가 와야 한다. 당장의 단기적 변화의 초점이 고용 창출과 생산성제고에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전반적 인 구조변화가 실현되어야 할 터이다.
아무래도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사고, 즉 종래의 적대적 이분논리가 아닌 조화와 공생의 논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지혜와 방법을 동양의 철 학에서 얻을 수 있지 않을가.
1992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