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의무자 기준은 높고 최저생계비는 부족한데 국회에선 ‘낮잠’만 자나
기능 상실한 기초법, 올 정기국회서 개정될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부양의무자 기준폐지’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등을 담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시민단체들은 법 개정을 촉구하는 천막농성까지 벌이고 있어 올 정기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보건복지위 소속 한나라당 강명순, 공성진, 이애주, 이춘식 의원, 민주당 주승용, 박은수, 양승조, 이낙연, 전현희, 최영희 의원,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 미래희망연대 정하균 의원 등 12명은 참여연대가 보낸 공개질의서에 대한 답변에서 기초생활보장 법의 수급자 선정기준에서 부양의무자 기준폐지에 찬성했다. 이는 응답자 전원이 찬성한 것.
공성진, 이춘식, 이낙연, 곽정숙 의원은 “비수급 빈곤층 등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강명순 의원은 “원론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찬성하나 통합적인 개선대책이 필요하다”고 했고, 전현희 의원은 “100만명 비수급자 구제를 위해 찬성하나 예산문제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높고 최저생계비는 낮다는게 대체적인 여론이다.
보건복지위원은 법 개정에 긍정적인데
정하균 의원은 “원칙적으로 ‘부양의무제 기준삭제’에 찬성하지만, 막대한 예산소요 때문에 법안통과의 현실적 어려움이 예상되므로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최저생계비를 상대적 빈곤방식으로 결정’하는 것에 대해 11명의 의원이 찬성했다. 강명순 의원은 “중위소득 기준 등 국제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는 빈곤계측방식의 합리적 도출이 필요하다”고 했다. 곽정숙 의원은“도시가구 중 중위소득 대비 최저생계비 비율이 1999년 44%에서 2006년 36%로 낮아지는 등 국민소득 수준은 향상되는데 비해 최저생계비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며 “OECD국가가 국제비교 시 기준으로 삼고 있는 상대적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현희 의원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했고, 정하균 의원은“현행 절대적 개념인 최저생계비 결정방식은 3년마다 계측조사를 바탕으로 물가상승률 등을 통해 결정하지만 소득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실에서 실질적인 최저 생계비의 기능을 다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개정여부에 대해 응답 의원 12명 전원 찬성했다. 강명순 의원은 “전면적인 변화가 요구되므로 일부 개정 노력보다는 개혁방향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과정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고, 전현희 의원은 “서민생활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빠른 시일 내 처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곽정숙 의원은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광범위한 사각지대 및 낮은 보장성 때문에 사회안전망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다하지 못하여 빈곤층의 고통이 심화되고 있다”며 “정기국회 내에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하균 의원도 “정기국회 내 법안처리에 대해 찬성한다”고 밝혔다.
또한 의원들은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강명순 의원은“우리나라 비수급빈곤층 규모의 통계산출 작업을 해본 결과 광범위한 빈곤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었다”며 “18대 국회에서 기초보장제도의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춘식 의원은“탈수급 이후 혜택이 중지되었던 의료급여, 교육급여, 연금보험료 공제 등의 혜택을 일정기간 유지시켜줄 수 있는 적극적인 탈수급유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고, 전현희 의원은 “사각지대에 방치된 빈곤층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을 위해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개정안 9건… 상임위 상정조차 못해
박은수 의원은“최저생계비를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 중 공익대표 선정 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보고를 의무화하고, 차상위 및 차차상위 계층에 대한 법적기준을 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낙연 의원은 “지자체장은 수급 신청자에게 부양의무자가 있음을 이유로 급여신청 취소를 권유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러한 국회 보건복지위원들의 생각은 복지위 소속 의원 24명 중 절반이 부양의무자 기준폐지와 최저생계비의 현실화에 찬성하는 것이다. 물론 생각을 밝히지 않은 나머지 12명의 의원 가운데서도 법안이 상정되면 적극적으로 논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져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에 대한 진척된 의견이 모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기초법 개정발의 안건도 공성진 의원, 최영희 의원, 이 낙연 의원, 주승용 의원, 곽정숙 의원 등 아홉 건에 이른다. 하지만 11월 22일 열린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는 기초법의 근본적인 개선을 위한 법 개정안이 상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 관련 법안이 너무 많아 기초법만 특별히 신경쓸 수 없고, 현재 국회가 갈등국면이어서 법안 상정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의 관건은 의원들의 언행일치와 개정의지”라며“올 정기국회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가능성이 크므로 빈곤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및 최저생계비 현실화 등을 이뤄내야 한다”고 밝혔다.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의 결의도 뜨겁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민주노총, 빈곤사회연대, 참여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국민기초생활보장법개정을 위한 공동행동은 11월 9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데 이어 15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 결의대회, 조계사 천막농성 등을 가지며 상대빈곤선 도입, 부양의무자 기준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유엔도·시민사회단체도 법 개정 촉구
이들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해 최저생활을 지원받고 있는 사람이 160만명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410만명이 넘는 가난한 사람들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기초법의 높은 진입장벽인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낮은 최저생계비도 현실화할 것을 강조했다. 기초법제정 당시인 1999년 도시근로자가구 평균소득의 40% 수준이었던 최저생계비가 현재 30%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 따라서 상대빈곤선 도입을 통해 소득불평등을 개선하고, 실질적인 지원책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
2009년 11월 UN사회권위원회는 “한국의 빈곤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최후 사회안전망인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부양의무자 기준이나 재산기준의 개선을 검토 할 것”을 권고 한 바 있다.
기초법은 시행 10년이 지났다. 이제 안팎으로 기초법의 기능과 역할에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 정기국회에서 ‘모든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한다’는 기초법의 온전한 기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국회의원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 출처 복지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