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김동광의예술공간
 
 
 
카페 게시글
평면작품 소개 스크랩 현대미술 쉽게보기
호산 추천 0 조회 438 13.10.07 02:0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보테로 인터뷰

  

 

형태와 색으로 또 다른 세계를 열다, 페르난도 보테로

 

 

 

청년시절 한국을 떠나 일본, 독일, 미국으로 생활을 옮겨 미술사에 한 획은 그은 고 백남준 작가. 청년시절 콜롬비아를 떠나 스페인, 미국, 멕시코, 이태리로 옮겨 다니며 미술사에 흔적을 남긴 페르난도 보테로. 동갑내기 백남준과 보테로는 1, 2차 세계대전 사이에 태어났다. 가난하고 힘든 나라에서 끼를 펼치기엔, 고국이 그들을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잘난 당신들’이었다. 풍만한 형태감으로 고전 미술을 해석하며 세계 미술에 발을 적신 라틴아메리카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가 서울에 왔다. 한국 땅을 생전 처음 밟는다는 보테로를 국립현대미술관 웹진 아트뮤가 덕수궁 미술관에서 만났다. 

 

 

 

형태와 색으로 태어난 볼륨감


키 170cm에 몸무게 49kg. 영화배우 김혜수의 신체 정보다. 키 150cm에 몸무게 100kg 은 되어 보이는 여인들. 페르난도 보테로가 그리는 인물이다. 배우 김혜수의 사진을 보며 질투를 느낀 여성이라면, 이번 덕수궁 미술관 페르난도 보테로 전시에서 만나는 여인들은 아마 편안함을 넘어 동정심까지 들 것이다. 오등신의 신체, 떡 벌어진 어깨와 달덩이 같은 머리 사이에 목은 찾아보기 조차 힘들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우람하고 건장한 것은 마찬가지다. 가슴이 있고 머리가 길어 여자라 생각할 뿐이다. 무표정과 부동성, 무감동의 얼굴, 공허하게 응시하는 눈은 보테로가 그려내는 인물의 특징이다.

  

 

 

마르고 매끈한 사람들이 풍기는 세련미가 눈길을 끄는 이 시대에 뚱보가 웬말인가? 친근감이 들어 마음이 편해지긴 하지만 보테로는 왜 부풀려진 인물을 묘사하는가? 양감을 생략하고 뼈만 앙상하게 표현한 자코메티에 대한 역설적인 도전일까? 그의 부풀려진 형태, 무표정한 표정, 정지된 듯 서 있는 인물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걸까? 라는 의문이 떠오른다.


보테로는 20살 청년시절에 스페인과 이태리에 머물면서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에 매료된다.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르네상스 화가들이 그려놓고 만들어 놓은 풍만한 신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덕수궁 미술관에 출품된 라파엘로의 [젊은 여인의 초상], 얀 반 아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 비제 르브룅의 [마리 앙투아네트]의 고전 작품이 보테로만의 형식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를 스코트 버튼은 보테로몰프(Botero + morph = 보테로 + 유형)라 칭하며 보테로만의 양식으로 구분시킬 만큼 그의 작품세계를 굳혀갔던 것이다. 또한 보테로가 양감을 극대화 시킨 것은 빛과 그림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형태와 색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거장들의 형태와 색에서 나의 유형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단지 뚱보를 그린 것이 아닙니다.”

  

  

 

보테로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라틴 아메리카의 영향이다. 그의 작품세계 속엔 라틴 아메리카가 있지만 무엇이 라틴의 영향인지 꼭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다. “고갱의 세계라든가, 드가의 세계라든가, ...... 중요한 것은, 작가는 작품의 테마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라틴 아메리카가 나의 세계이고 실제로 그것을 테마로 잡았지만, 보여주고자 한 것은 다른 세계입니다. 라틴의 영향을 통해 실제가 아닌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페르난도 보테로는 추상화가다?

 

보테로는 추상화가다? 추상화라 함은 점, 선, 면 그리고 색을 통해 심상을 표현한 그림을 말한다. 즉 형태가 없는 그림을 추상화라고 미술에서는 정의한다. 그런데 형태의 볼륨감을 강조하며 라틴 사람들의 모습, 서커스, 자화상 등을 생산해내는 보테로가 추상화가라는 말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신이 본인의 작품을 후기추상구성주의(Post abstract figuration)라고 지칭했다. 후기추상구성주의라는 사조는 미술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을 추상화가라고 표현한 이유는 바로 “자유” 라는 단어에 있었다.

 

“2차원적인 그림(캔버스에 그리는 그림)에서 형태나 색이 자유로웠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후기추상주의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보테로는 인물을 표현하고 싶으면 주가 되는 인물을 그려 넣고 즉흥적으로 그 배경이 되는 또 다른 인물 또는 사물을 그려 넣는다. 색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색을 미리 계획해 놓지 않습니다. 그때그때 순간의 상상에 따라 색이 정해집니다.”

 

그렇다. 보테로는 한 부분에 색을 칠하면, 그 색을 통해서 다른 색으로 채워가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자동적으로 화면을 메워가게 만든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프로이기 때문에 아무 색이나 쓰지 않는다. 무반사적으로 어울리는 색을 떠올리는 것이다.


 

잭슨 폴록이 큰 붓을 잡고 자동기술적으로 큰 화면에 물감을 뿌려 나갔던 것처럼 보테로는 풍만한 형태와 밝은 색을 가지고 라틴의 삶과 자신의 모습을 즉흥적이면서도 무의식적으로 화면을 채워갔던 것이었다. 몬드리안은 직선으로 차가운 추상을, 잭슨 폴록은 물감을 뿌려가며 추상표현주의를, 그리고 보테로는 형태와 색의 즉흥성으로 추상구성주의를 완성했다. 보테로도 한때 뉴욕에 거주하면서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강렬한 터치의 그림을 그렸다. 그 영향 아래 그려진 그림이 바로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된 [모나리자 12세]다. 그의 [모나리자 12세]는 거친 필체로 추상표현주의가 휩쓸고 간 뉴욕에서 1950년대 후반에 제작된 작품이다. 그림을 보면 레오나르 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와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모나리자라고 명명한 이유가 궁금하다. 보테로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느 날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청소 담당자였던 마리아에게 이 그림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모나리자’를 닮았다고 했습니다. 그 분은 그림이라고는 모나리자 밖에 몰랐거든요.”

  

 

이 당시 모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때 모마 큐레이터였던 도로시가 보테로의 작업실을 방문해 [모나리자 12세]를 보자마자 저 그림이라고 외치며 구입한 동기를 말했다. 보테로를 유명하게 만들기 시작한 것은 [모나리자 12세]가 모마 콜렉션 리스트에 올려지고 나서부터가 아니라고 보테로는 말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기 시작한 계기는 1960~1970년대 사이에 5차례 전시를 했던 독일에서였다. 독일에서 전시하던 중 유명한 미술관으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은 후,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은 이태리, 프랑스, 미국에 작업실을 두고 계절 따라 옮겨 다니며 창작의 열정을 쏟고 있는 월드 스타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사람들이 친절하고, 성공적으로 전시를 치를 수 있어서 국립현대미술관에게 감사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전시 오픈이 끝나면 다시 이태리로 돌아가 가족들과 휴가를 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지중해 빛 눈부신 태양이 이글거리는 열정만큼 그의 작품세계에 큰 박수를 보낸다.

 

 

 

페르난도 보테로 약력

 

1932년 콜롬비아 메델린(Medellin) 生
1952년 스페인 아카데미아 산 페르난도에서 수학. 벨라스케스, 고야 작품 공부
1953년 이태리 아카데미아 산 마르코에서 수학. 지오토, 카스타뇨 작가 연구
1956년 결혼 후 멕시코로 이사
1957년 미국에서 첫 개인전 개최
1960년 뉴욕으로 이사
1961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모나리자 12세> 구입
1966년 독일 바덴바덴 주립미술관, 하노버 브루스버그갤러리에서 전시
1970~71년 독일 바덴바덴, 베를린, 뒤셀도르프, 함부르크, 빌레펠트 등 독일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
파리, 보고타, 뉴욕을 정기적으로 옮겨 다니며 생활. 조각 작업 시작
1973년 뉴욕을 떠나 파리에 정착
1977년 파리의 끌로드 베르나르 갤러리에서 처음으로 조각 작품 발표
1978년 다시 회화에 주력
1981년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회고전 개최
1984년 메데인의 안티오키아박물관에 조각 작품 기증,보고타 국립미술관에 회화 18점 기증
1996~97년 이스라엘과 칠레에서 전시
2004년 싱가폴 미술관에서 회고전 개최
2009년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 개최

 

 

 

  

 

 

Artinculture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