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신앙고백서 15.#원죄 (2)
It is a corruption of all nature-- an inherited depravity which even infects small infants in their mother's womb, and the root which produces in man every sort of sin.
이는 인간의 모든 본성이 부패한 것입니다. 여자의 태 중에서 임신이 되는 때부터 부패함에 감염되는 것이며, 인간의 모든 종류의 죄를 양산하는 근원입니다.
여자의 몸에 임신된 태아는 본능적으로 자기의 생존과 생육을 위해 어미에게 입덧을 비롯한 여러 고통을 안겨준다. 출산시에는 어미에게 극도의 육체적 고통을 수시간 동안 일으키며 심지어는 어미의 생명을 꺼뜨리기도 한다. 때로는 출산 전에 어미의 뱃속에서, 출산 시에 어미의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생명을 잃기도 한다. 영혼창조설에 따른다면, 과연 여자가 잉태하는 어느 단계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영혼이 부여된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영혼은 온전히 선한 상태일텐데, 어느 잉태 단계에서 원죄에 감염되어 태아의 씨와 연합된다는 것인가. 아니면 원죄는 영혼이 아니라 오로지 육체에만 해당된다는 것인가. 구원받기로 선택되지 못한 버림받은 자들의 영혼도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신 것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구원받지 못하게 버리시려고 선한 영혼들을 그렇게 많이 창조하셨다는 것인가. 임신한 여자를 가장 이해해주지 않는 사람은 다름아닌 시어미다. 시어미는 자기도 수십년 전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겪었으면서도 도리어 자기 며느리에게는 너만 그렇게 임신한 것으로 유세 떠는것 아니고 자기도 그렇고 다른 여자들도 다 겪는 일이라면서 며느리의 임신과 출산의 고충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모순적인 것은, 같은 여자끼리 서로 위해줘도 모자라는 판에, 이러한 시어미의 며느리 구박은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시어미에게 구박받는 임신한 며느리도 나중에 시어미가 되면 똑같이 며느리를 구박하게 된다.
어미의 뱃속에서 나온 갓난아기에게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지성이 없기 때문에 오로지 동물적인 생존본능과 생체욕구에 따라 그것들이 조금이라도 만족되지 않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면서 끊임없이 어미를 보채며 힘들게 한다. 갓난아기를 키우는 어미는 분명 아기의 생육욕구를 채워주는 본성적이고 직접적이며 일차적인 능력과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귀찮아하고 꺼려하며 남편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점에서 동물의 어미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갓난아기를 벗어난 어린아이들이 가장 잘하는 것은 엄마 아빠에게 떼를 쓰고 반항하며 투정부리는 짓이다. 이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어서, 자기가 어떻게 악을 쓰고 떼를 쓰며 투정을 부려야 엄마 아빠가 들어주는지를 알고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동물의 어린 새끼들이 울부짖는 것에는 측은지심을 가지면서도, 정작 사람의 어린 아이들이 울부짖는 것에는 본성적인 거부감과 혐오감을 가지며 짜증을 내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여자들은 애완동물은 몇마리가 됐건 혼자 키워도 기쁨과 즐거움만을 가지는 반면에, 엄마로서 영유아 자녀를 혼자 맡아 양육하게 되면 도박에서나 쓰는 ‘독박’육아란 저주스러운 말을 서슴없이 쓴다. 여자가 둘째 자녀를 낳게 되면 첫째 자녀는 한없이 연약한 갓난아기인 동생을 향해 끝모를 질투를 하고 엄마 아빠가 없을 때에는 몰래 괴롭히기도 하며 이제는 벗어버려야 하는 갓난아기의 행위를 일부러 하기도 하면서 엄마 아빠를 힘들게 한다.
통상적으로 미성년자,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성인보다는 때묻지 않고 순수할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서는 고의보다는 실수나 불가피한 상황에 의한 것으로 참작하는 경향이 있어서 소위 촉법이란 제도로써 양형기준을 현저히 낮추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법제도의 취지와는 달리, 이를 악용해서 일부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청소년들의 범죄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또한 아이들의 생명 보호를 위해서 학교 주변 도로에서의 차량 사고에 대한 책임을 강화한 민식이 법이 제정되자마자 적지 않은 초등학생들이 일부러 지나가는 차량에 몸을 던져 사고를 유발하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 현실이다. 어린이의 인권을 매우 높고 귀하게 여기는 미국에서는 여섯살짜리 아이가 자기 유치원 반 교사에게 육두문자 쌍욕을 하기도 하고, 자기 잘못으로 부모가 매를 들려고 하면 바로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문화가 되어버렸다. 이로 미루어볼때, 선지자 엘리사가 자신을 향해 대머리라고 놀리면서 쫓아온 이스라엘 왕국의 벧엘 마을 아이들을 저주해서 숲에서 나온 암콤 두 마리에 의해 아이들 중 42명이 찢겨죽게 한 것은 엘리사가 잔학한 냉혈한인 것이 아니라 그만큼 그 지역은 어린 아이들 조차도 단번에 죽임을 당해도 될만큼 죄악이 관영하고 패역부도 했었다는 것과,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결코 면죄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자들은 아무리 자신의 능력이 출중하고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해도 남자와는 달리 자기보다 조건이 떨어지는 남자와는 결혼하려 하지 않는다. 키와 체격에서 어지간한 남자들보다 우월한 여자운동선수들도 자기보다 작고 왜소한 남자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반면에, 자기보다 키가 크고 듬직한 체격의 남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야근이나 당직이나 육체노동이나 현장직 같은 힘들고 고된 업무는 으레 남자들이 전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맡으려 하지 않는다. 어머니를 여읠 때와는 달리 아버지를 여의게 될 때에는 슬픔보다는 생계에 대한 막막함을 더 크게 느끼곤 한다. 자식을 낳게 되면 딸도 물론 사랑스럽고 좋지만서도 무의식중에 그래도 아들 하나 정도는 있어야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자들은 10대 초반에 시작된 초경부터 50대 정도에 찾아오는 폐경까지 3,40여년 동안 거의 매달 며칠씩 생리통에 시달리면서도 학업에서나 업무에서나 남자들과 비등하거나 앞지르는 성과를 내는데, 이는 달리 말하면 만약 여자들에게 생리의 고통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만큼 하와처럼 남편을 비롯한 남자를 무시하고 하대하였을 것이라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혼을 앞둔 여자들끼리의 모임에서 남자에게 프로포즈는 받았는지, 결혼예물은 무엇인지, 신혼 집은 얼마에 몇 평인지, 남자의 직업은 무엇이고 재력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가지고 서로 비교하고 급을 매긴다는 것은 이미 예능 소재로도 나올만큼 널리 알려졌다. 결혼한 여자들끼리의 모임에서 서로가 입은 옷, 가방, 지갑, 장신구, 구두 등을 가지고 가격이 얼만지 진품인지 아닌지 등등으로 담화를 나누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요즘 잘나가는 드라마의 여자 악역 두 명은 아예 대놓고 미인계로써 재벌집 남자와 결혼해서 부유한 마나님으로 사는 것이 삶의 목표이다. 어떤 조직이건간에 남자들간의 대립과 갈등보다는 여자들간의 그것이 훨씬 더 교묘하고 악의적이라는 것은 간호사들간의 태움문화만을 봐도 명확하다. 온라인 영상 플랫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여성들이 하나 같이 노출증이 의심될 정도로 나체 수준의 게시물을 올리고 있다는 것은 다분히 남자 이용자들을 의식한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헬스장에서 노출이 심한 운동복을 입고 운동하는 여자들도 이미 예능에서 패러디 된 지 오래다. 여자들은 자기들의 허영을 만족시켜줄만한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운 것을 가지기 위해서 스스럼없이 몸을 드러내어 남자들의 음욕을 불러일으킨다.
남자는 태어나서부터 죽을때까지 한순간도 음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음욕덩어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지고 나서 가장 먼저 서로의 벗은 몸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낀데다가, 아담은 창조주이신 그리스도보다 그리스도께서 짝지어주신 하와를 더욱 사랑하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여자를 향한 음욕을 원죄의 징벌로서 받게 되었고, 아담의 후예들인 남자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태생적으로 음욕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정신지체를 앓고 있으나 천재성을 가진 변호사 이야기를 다룬 어떤 드라마로 인해서 한 때 온라인에서는 중증 정신지체자와 그 가족들의 고충과 실상에 대한 이야기도 퍼지게 되었다. 정신지체자가 남자인 경우에는, 사고수준은 영유아기에 머물러 있는데 몸은 점점 자라게 되어 2차 성징이 오게 되면 성호르몬의 분비로 인해 발생되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서 심지어 엄마나 누나나 여동생도 알아보지 못하고 성행위를 하려고 달려든다고 한다. 지성적으로는 아무런 판단도 하지 못하고 가족들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면서도 어떻게 엄마나 누나나 여동생이 여자라는 것만큼은 알 수 있느냐 하는 궁금증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오로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후에 서로의 벗은 몸을 보고 부끄러워 했다는 것에서 유일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즉, 중증 정신지체 남성의 무분별한 성충동이야말로 원죄로 인한 타락과 부패에 대한 확실한 증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정신지체 남성을 화학적 거세하는 것이 최선이다. 엄마 젖을 떼는 시기가 된 어린 남자아이들이 여전히 엄마 품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 심리의 깊은 내면에는 엄마를 통해서 성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려는데에 있다. 이 시기의 남자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여자의 벗은 몸을 보면 아담처럼 부끄러워하고 행여나 자기들의 엄마가 신체를 노출하게 되면 얼른 가리라고 말한다. 남자의 음욕은 정신과 의식이 깨어있을 때 뿐만 아니라 잠자는 동안 무의식의 상태에서 꿈으로도 발생하는데 이로 인해 몽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율법에서 남자의 몽정도 죄로 규정하시고 그에 따른 정결례도 명령하셨는데, 이는 무의식 중에 품은 음욕이 원죄에 기반한다는 것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자기의 음욕을 채우기 위해서 어떻게든 여자의 허영을 채워주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신사적이라고 하는, 여자에게 친절하고 배려하며 헌신하는 남자들의 심리 기저에는 음욕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하필이면 성기의 귀두를 덮고 있는 피부를 잘라내는 할례를 명령하신 것은, 주님께서 음욕이 상징하는 백성들의 원죄를 끊어버리셨다는 것과, 주님의 백성 중 남자성도들은 특별히 원죄를 상징하는 음욕에 빠져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내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세례는 구약의 할례를 확장한 것으로서 비록 할례와 같은 육체의 극심한 고통은 없다 하더라도 영으로는 죄악의 피부를 잘라냄으로써 마치 할례와 같은 극심한 내적 고통을 수반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에서 여자에 의해 자행되는 원죄의 영향으로는 목사안수를 받는 것,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 남편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목사에게 성경의 궁금한 내용을 물어보는 것, 남편을 뒤로하고 자기가 가정예배를 주관하는 것, 목사의 아내가 목사인 남편의 설교를 판단하고 지적하는 것, 어떤 사안에 대해 지나치게 목소리를 크게 높이는 것 등이 있다. 남자에 의해 자행되는 원죄의 영향으로는 여자 교인을 상대로 성희롱이나 성추행이나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 여자 교인과의 무분별하고 부적절한 성관계를 가지는 것 등이다. 그래서 사도들은,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고 남자들보다 나서지 말 것과 남자들은 발람과 이세벨의 가르침을 거부할 것을 가르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