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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 http://m.ildaro.com/a.html?uid=8073
# 아예 내 몸에 세금을 붙이지 그래
“그러게 피임 좀 하지!”
임신중절을 하거나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사연에는 꼭 이런 생각 없는 반응이 가장 많은 공감을 받는다. 그렇게 쉽게들 말하는 피임에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지, 의료보험 혜택이 이만큼 일반적인 나라에서 자궁을 가지고 성생활을 누리는 것에 따르는 비용만큼은 개인이 일방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려도 없이 말이다.
사람들은 ‘여성’이라는 몸에 세금을 붙이고 싶어 하는 것이 틀림없다. 남성용과 똑같은 제품에 ‘여성용’이라는 라벨만 붙여서 더 높은 가격을 받는 현상을 비판하는 ‘핑크 택스’(pink tax)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실상은 ‘핑크 택스’는 핑크색 면도기의 가격 정도에 한정되지 않는다. ‘여성’으로 인식되는 몸으로 살아가는 것은 라이프스타일 자체로 그렇지 않은 몸보다 많은 비용을 물게 된다. 그것도 꼭 금전적 비용에 한정되지 않는 많은 영역에서 말이다.
생리용품만 해도 그렇다. 나는 삽입형 생리대인 탐폰을 처음 사용해 봤을 때, 두 가지 의미에서 놀랐다. 생리를 하면서도 이렇게 편하고 쾌적할 수 있다는 점, 또 이렇게 편한 것을 학교나 가정에서 널리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위에 물어가며 탐폰 사용 경험에 대해 듣고, 부실하다는 국내 회사 제품 대신에 추천 후기를 꼼꼼히 읽어보고 유명한 해외 제품을 직구로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까지 모든 것이 내가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탐폰 이전에는 면 생리대를 쓴 적도 있다. 가격이 상당히 비싼데다가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가고 그때는 제작하는 업체도 많지 않아서, 주문을 해놓고 한 달 가까이 기다려 제품을 받았다. 제품의 질은 만족스러웠지만 바쁜 와중에 매일 저녁 화장실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빨래를 하면서 보내는 게 너무 힘들었다. 피가 빠지도록 물에 담가만 놓고 다 빨지 못한 생리대가 늘어만 가고, 제 때에 빨지 못해서 비싼 것을 버리게 되기도 했다. 결국 다시 일회용 생리대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유해한 생리대에 대한 기사에는 그렇게 쉽게들 “면 생리대를 쓰면 되잖아!”라고 말한다. 대신 빨래라도 해 줄 셈인가? 생리를 하는 사람은 그렇게 ‘혼자서도 잘해요’ 식으로 모든 번거로운 일을 스스로 감당해내길 요구 받는다.
이렇게 나 혼자 알아보고 고생해가며 돌봐 온 몸에 대해 갑자기 내 의사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는 때가 있는데, 내 자궁의 생산능력을 자궁 없는 사람들이나 공동체가 필요로 할 때이다.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낮은 출산율이나 여성들의 이기심 따위를 들먹이며, 나라를 위해서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임신의 지속 여부를 당사자 대신에 결정하는 권한을 놓지 않으려 하고, 이미 일어난 임신중단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독박 육아’, ‘독박 가사’ 뿐만이 아니라 ‘독박 피임’, ‘독박 생식능력 관리’, 심지어는 나 혼자 지켜야 하는 ‘독박 성적 도덕성’이라는 말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와 몸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몸이 가진 어떤 기능 때문에 생겨나는 비용, 수고, 결과나 책임도 분담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내 생각은 다시 나를 훈계했던 산부인과 의사에게로 돌아간다. 피임 실패로 혼자 사후피임약을 처방 받으러 와서, 보험 처리도 안 되는 3만원짜리 약을 먹고 하혈을 했던 나의 현실이 의미하는 여러 가지 책임에서 그는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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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얼마전에도 쭉빵어떤글에서 피임실패할거면 아예 섹스하지말라더라 진짜 웃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