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에 유럽 사람들은 어떻게 겨울을 견뎌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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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에 유럽 사람들은 어떻게 겨울을 견뎌냈을까?
우리 몸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들은 너무 많다.
오리털 점퍼, 보온 속옷, 중앙 난방, 휴대용 난방기, 그리고
가정용 단열재는 겨울 내내 우리를 따듯하게 해주는 것들이다.
영하의 기온으로 떨어지면, 우리는 따듯한 바닥에 앉아 담요를 덮고
텔레비전을 보며 핫 코코아를 마시면서 추위를 날려버릴 수 있다.
생각만 해도 포근하다.
하지만 온돌이 없는 유럽 중세 시대의 겨울을 사는 것이
어땠을지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구들장이나 단열재가 없는 석조나 목조 주택,
따뜻한 옷을 만들기에는 제한된 직물,
그리고 추위와 빗속에서 힘든 노동을 했다.
매우 불쾌하게 들릴 뿐만 아니라, 정말 위험하기도 하다!
이 갤러리에서 수백 년 전 유럽의 중세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혹독한 겨울날씨를 견뎌냈는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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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
중세 시대는 기원전 500년경부터 기원후 1500년경까지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암흑기를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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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톨로메오스 앙글리커스
13세기에, 바르톨로뮤라고 불리는 영국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승은
오늘날 "중세의 위키피디아"로 묘사되는
'사물의 속성에 관하여'라는 종류의 백과사전을 썼다.
그는 겨울에 대한 자신의 혐오감을 길게 묘사하며, "모든 것이 여름과 반대다.
그래서 여름의 혜택으로 살고 뛰쳐나온 모든 것들은
겨울의 혹독한 잔인함에 의해 희미해지고 죽는다."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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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죽음의 상징
중세 후기에, 겨울은 노화, 가난, 죽음의 상징이었다.
이것들은 모두 서유럽의 겨울 동안의 삶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사실들이었기 때문에 다소 현실적인 은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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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생활의 중단
중세에는 농업이 보통 사람들의
생계와 생계의 주된 원천이었지만,
가장 추운 시기에는 농업이 중단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겨울 내내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철처히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만약 그 해에 흉년이 들었다면 신만이 그들을 도와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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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위해 살다
봄은 다시 태어나고 새로워지는 시간이었고,
따뜻함, 편안함, 번영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수선화가 튀어나오고 어린 양들이 태어나는 것을 보는 것은
또 다른 혹독한 겨울을 견뎌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바르톨로뮤가 봄과 겨울을 가혹하게 비교한 것은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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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날씨 기록
당시의 기록된 설명과 얼어붙은 강의 중심부 깊이와 나무의 나이테의 분석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과거의 날씨에 대한 놀라운 양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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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온화한 시기
중세 후기(약 900년~1300년) 동안 서유럽은 좋은 날씨를 보였다.
그것은 "중세의 따뜻한 시기"로 알려져 있었다.
온화한 기온 덕분에 인구는 농작물을 재배하기에 적합한
새로운 비옥한 땅으로 퍼지고 확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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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워진 삶
이 기간 동안 겨울은 덜 혹독했고, 농업은 전에 없던 곳에서 번창했다.
예를 들어, 포도는 오늘날 재배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고도인 영국에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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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빙하기
상대적으로 따뜻했던 이 찬란한 시대는
14세기의 "작은 빙하기"가 닥치면서 더욱 파괴적이었다.
빙하기는 130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19세기까지 계속되었다.
폭풍이나 폭설과 같은 극단적인 기상 현상의 증가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기온이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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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인 폭설
1359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눈이 비정상적인 높이까지 내렸고,
그래서 지붕이 무너져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 눈을 거리로 내던졌고,
일부 마을은 봉쇄되어 주민들은 며칠 동안 집에 갇혔다"는 보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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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그렇다면, 이 어려운 시기에 평범한 사람들이
단순한 흙집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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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
겨울을 나기 위한 대부분의 준비는 몇 달 전에 시작되었다.
농업이 둔화되면서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식량이었다.
그들의 고기를 보관할 수 있도록 몇몇 농장 동물들을 도살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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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살찌우다
소와 돼지와 같은 이 동물들에게 추위가 시작되기 전인 11월에
많은 먹이를 주고 살을 찌울 것이다.
충분히 통통해진 가축들만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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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위한 고기 준비
돼지를 도살하는 것은 보통 12월에 행해지는 활동이었다.
이 복잡한 과정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손이 필요했다.
일단 돼지를 죽이고, 모든 부분을 분리해서 저장하면,
주요 고기 덩어리들은 오래 보존하기 위해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햄과 같이 소금에 절인 고기는 중세 식단의 주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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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위가 사용되다
심지어 피와 내장도 음식으로 바뀔 것이다.
영국에서 블랙 푸딩으로 알려진 블러드 소시지(순대와 비슷)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기 있는 별미이며
완전한 영국식 아침 식사에 필수적인 반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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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작물 씨뿌리기
가축 도살뿐 아니라 크리스마스 전 한 달도 겨울 작물 심기로 분주했다.
영국에서, 주요 작물은 밀이었지만, 몇몇은 보리를 뿌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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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위한 준비
그 씨앗들은 초겨울에 뿌려질 것이고, 추운 달들을 견디고 발아해,
봄이 올 때쯤이면 건강한 농작물로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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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를 늦추다
1월이 되면 이러한 농사 활동의 대부분이 완료되고, 일의 속도가 느려졌다.
이 시기는 1년 중 땅이 눈으로 덮여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기이기 때문에
불 옆에서 쉬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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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중심으로 삶이 돌아가다
불은 중세의 가정에서 주요한 열원이었다.
그들은 보통 거대한 벽난로를 가지고 있었고,
어떤 집들은 가능한 한 많은 공간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방의 중앙에 불 구덩이를 설치하기도 했다.
연기는 굴뚝과 비슷한 지붕의 구멍을 통해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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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화로
때때로 한 번의 불로는 집을 따뜻하게 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소형 휴대용 화로는 불에 탄 석탄으로 채워져 집 주변에 배치돼
보온성을 높였지만 안전에 큰 위험이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주택 화재는 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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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를 데우다
당시에는 고무 온수병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벽난로에서 벽돌이나 큰 돌을 가열한 다음 천으로 싸곤 했다.
그것들은 침대를 데우기 위해 침대 바닥에 조심스럽게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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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들과 함께 동면을 하다
가족들은 종종 한 침대에 옹기종기 모여 따뜻함을 나누곤 했다.
많은 경우에, 농장 동물들도 안으로 초대되었다!
가축들도 추운 곳에 있는 것보다 안에 있는 것이 더 안전했고,
이런 식으로 그들의 몸의 열기도 가족이 따뜻하게 지내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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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풍과 싸우다
중세의 집들은 농부들의 오두막이든 왕실의 성이든 간에 끔찍하게 웃풍이 셌다.
차가운 공기가 단열되지 않은 틈을 통해 빠져나가거나 심지어 창문을 열어놓기도 했다.
유리 창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창문이 있는 집들은
모르타르나 종이로 그것들을 덮고 겨울을 나기 위해 창문을 밀봉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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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옷
이러한 조건에서 구식 수면용 모자의 목적은 분명했다!
사람들은 실내에서 가장 따뜻한 옷으로 몸을 감싸고
가능한 한 불 가까이에 머물곤 했다.
그들은 털 코트, 스카프, 벙어리장갑,
그리고 모자를 쓰고 집 주변의 일상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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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가죽을 안감으로 쓰다
모피가 부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농민 계층이 쉽게 접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토끼나 양과 같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어떤 가죽으로든 겨울 옷에 안감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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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위한 준비
북유럽의 나라들처럼 많은 눈에 익숙했던 나라들은
겨울 동안 돌아다닐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스키를 운송과 사냥 모두에 사용했다. 이것은 그들이
겨울 동안 계속해서 음식을 조달할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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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혹한기에 취약했던 서유럽
그러나 서유럽에서는 "작은 빙하기"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눈이 그렇게 흔하지 않았고,
그들은 불행하게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평년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된 혹독한 겨울은 식량이 부족하게 만들고
먼 도시로 이동할 방법이 없어 지역 사회에 발이 묶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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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1389년 프랑스 남부의 로제르 지역에 전례 없는 폭설이 내렸다.
현지의 한 서기는 "1월, 2월, 3월에 로제르에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많은 농가를 파괴했고, 집들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추위로 죽었고, 어떤 사람들은 허기로 죽었는데,
눈이 평소보다 너무 오래 지속되어
사람들이 식량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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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겨울
이보다 더 원시적인 시대에는, 우리의 조상들은
자연을 중심으로 순환하는 삶의 방식을 추구했다.
그들은 겨울의 가장 추운 달 동안 겨울잠을 잤고,
따뜻한 날씨가 다시 돌아오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직 때때로 예측할 수 없었던 혹한기를 살아남았다면 말이다.
출처: (Medievalists.net) (Ancestry)
참조: What was the average diet like in medieval Eur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