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7번째 편지 -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를 추모하며
현대 건축의 거장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12월 5일, 향년 9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름은 낯설더라도 그의 작품 하나쯤은 분명 보셨을 것입니다. 바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입니다.
1997년 스페인 북부의 쇠락한 철강도시 빌바오에 지은 건축물입니다. 게리는 철강도시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당초 건축재료로 스테인리스 스틸을 고려했으나, 당시 러시아의 경제 상황으로 티타늄 가격이 폭락한 것을 기회로 삼아 33,000개의 티타늄 패널을 외장재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거대한 금속 꽃은 개관 첫 해에만 130만 명의 관람객을 불러 모으며 투자금을 회수했습니다. 하나의 탁월한 건축물이 도시 전체의 경제와 문화를 되살릴 수 있다는 뜻에서, 사람들은 이 현상을 가리켜 ‘빌바오 효과(The Bilbao Effect)’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습니다.
제가 프랭크 게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7년 겨울, 아부다비에서였습니다. 당시 사법연수원 부원장이었던 저는 연수생들의 중동 연수 프로그램을 개척하기 위해 두바이·아부다비·카타르를 방문 중이었고, 잠시 들른 에미레이트 팰리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사디야트 섬에 지어질 건축물들의 모형을 마주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프랭크 게리를 비롯해 자하 하디드, 안도 타다오, 장 누벨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인 장관을 처음 목격했습니다. 저마다의 독창성을 뽐내는 그 모형들 앞에서 저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건축 행정가나 기업인들을 만날 때마다 그때의 전율을 전하며, "우리에게도 이런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열정적으로 말하곤 했습니다.
그 뒤 프랭크 게리에 대해 조금 더 공부를 해보니, 이미 1989년에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었습니다. 이 상은 1979년, 미국 Hyatt 호텔 체인 창업주인 제이 A. 프리츠커(Jay A. Pritzker) 부부에 의해 제정된 상입니다.
이번에 1979년부터 2025년 까지 수상자 명단을 보면서 반가운 이름들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1989년의 프랭크 게리, 1995년 안도 타다오, 1998년 렌조 피아노, 1999년 노먼 포스터, 2004년 자하 하디드, 2008년 장 누벨 등 시대를 풍미한 건축가들이 줄을 잇습니다.
프랭크 게리의 대표적인 작품을 시대순으로 보겠습니다.
OLYMPIC FISH PAVILION, 바르셀로나(1992)
Weisman Art Museum, 미네소타(1993)
Dancing House, 프라하(1996)
Museum of Pop Culture, 시애틀(2000)
Walt Disney Concert Hall, LA(2003)
Richard B. Fisher Center, 뉴욕(2003)
Marques de Riscal Hotel, 리오하(2006)
Cleveland Clinic Lou Ruvo Center for Brain Health, 라스베가스(2009)
프랭크 게리는 왜 이렇게 집을 짓는 것일까요.
그는 평생 스스로에게 “건축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늘 같은 답을 내렸습니다. 규칙도, 기능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감정’이었습니다. 그는 건축을 인간의 감정, 혼돈, 불안, 그리고 기쁨이 공간의 형태로 발현된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건물들은 늘 예측할 수 없고, 그렇기에 더 살아 있는 듯 느껴집니다.
그는 완전무결함보다 불완전함의 조화를 사랑했습니다. 삶이 직선으로 흐르지 않듯 그의 건축에서도 직선은 드물었습니다. 그 대신 그는 흐름과 떨림, 그리고 변화를 사랑했습니다. 건물의 벽은 깨지고 금속은 구부러지며 다각도로 쏟아지는 빛은 표면마다 서로 다른 표정을 만들어 냈습니다.
게리에게 건축은 외형을 꾸미는 기술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그에게 형태는 곧 감정이었고, 감정은 곧 존재의 흔적이었습니다. 사람이 슬픔을 느끼면 어깨가 구부러지고, 기쁨을 느끼면 눈빛이 번쩍이듯, 게리는 그 미묘한 감정의 떨림을 건축의 곡선 속에 심고자 했습니다.
그의 가장 오래된 습관 가운데 하나는 ‘종이를 구기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에게 구겨진 종이는 불완전함의 상징이자 동시에 창조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는 인생도 그렇다고 믿었습니다. 완벽하지 않기에 더 흥미롭고, 구겨졌기에 오히려 아름답다는 생각이었지요.
2014년 스페인 오비에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당신의 건축은 그저 보여주기 식이 아니냐"고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격정적으로 토로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지어진 것들의 98%는 순전한 쓰레기입니다. 디자인 감각도, 인간에 대한 존중도 없는, 그저 건물일 뿐인 것들이죠. 아주 가끔 소수의 사람들만이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니 우리를 좀 내버려 두시오."
게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왜 사람들은 건축가를 고용해 놓고, 뭘 어떻게 하라고 다 지시하려 드는지 모르겠어요.” 겉보기에는 툴툴거림이지만, 그 밑에는 이런 메시지가 깔려 있습니다. “당신이 ‘내 건축’을 보고 나를 고용했다면, 최소한 내가 실험은 해볼 수 있게 놔달라.”
그의 건물들은 멀리서 보면 건물이라기보다 거대한 <조각>처럼 보입니다. 전통적인 상자 형태의 건물을 과감히 찢어 재조합하는, ‘해체주의(deconstructivism)’의 대표 건축가였습니다.
2019년 그는 한국에 첫 작품을 남겼습니다. 루이비통 메종 서울입니다.
이 건물을 설계하며 수원화성의 견고한 성곽과 동래학춤의 우아한 춤사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흰 도포 자락이 너울거리며 학을 형상화하는 그 춤사위, 그 선과 찰나의 움직임을 게리는 유리의 곡선으로 번역해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의 건물들 앞에 서면 이유를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게리가 말한, “건축가의 열정이 보는 이에게 전달되는 순간”일 것입니다.
게리가 건축 인생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 아니었을까요?
"결국 내가 하는 일은 이겁니다. 주어진 프로그램과 예산, 중력과 법규라는 제약 속에서 딱 10~15%쯤 주어진 <자유>를 끝까지 밀어붙여 아직 세상에 없는, 그러나 그 장소와 사람에게 꼭 맞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 그게 내가 이렇게 건축하는 이유입니다."
1989년 프리츠커 상 심사위원들은 프랭크 게리를 두고 “건축을 시(詩)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돌아보면, 그의 삶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자유’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프랭크 게리를 추모하며, 조용히 제게도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오늘 나는 내 일에서, 그리고 내 삶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사고하고 있는가."
<조근호의 월요편지에서>
첫댓글 유명한 건축가 의 작품 잘보았습니다.
새로운 감정을 받은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