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정승을 욕보이다(權相示辱)
어느 날 안(安)정승이 길가는 스님을 불렀다.
“스님, 여쭐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옵니까?”
“나는 안(安)정승인데, 이웃의 권(權)정승이 자꾸만 농담으로 계집이 갓을 쓴 성(安)이라 놀리면서 나를 욕보이는데, 이 權정승을 어떻게 욕을 보일 방책이 없겠는지요?”
권(權)정승에게는 남의 성씨를 트집 잡아 놀리며 욕보이는 나쁜 습관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날을 정해 권(權)정승을 댁으로 청해 주시지요. 그럼, 소승이 그때 나으리댁 앞을 지나갈 테니까, 소승을 불러 주시면 알아서 조처하겠습니다.”
안(安)정승은 스님에게 이 같은 약속을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약속한 그 날 스님이 안(安)정승 집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대사.”
안(安)정승이 급히 스님을 불렀다.
“예.”
“이리 오시오. 우리 술이나 한 잔 합시다.”
스님이 안(安)정승의 사랑방에 들어가서 술을 한잔했다. 한참 있다가 동석한 권(權)정승이 스님에게 물었다.
“대사, 성씨가 어떻게 되오?”
“예, 소승은 성이 복잡합니다. 어머니가 소승을 성태(成胎)할 적에 네 사내와 관계를 하였기에 소승의 성을 알기가 곤란하였던지라, 네 사내의 성인 이씨, 노씨, 엄 씨, 최 씨를 모두 끌어들여 소승의 성을 만들었다. 하옵니다.”
“그래, 어떻게 됐소?”
“말씀드리기 심히 부끄럽습니다. 이(李)씨에게서는 나무 목(木)자를 하나 따오고, 노(蘆)씨에게서는 풀 초(艸)자를 하나 따오고, 관계를 두 차례 가졌던 엄(嚴)씨에게서는 입 구(口)자 두 개를 따오고, 최(崔)씨에게서는 새 추자를 하나 따와 합쳐서 권(權)씨 성을 만들었다. 하옵니다.”
자신의 성씨를 욕보이는 스님의 이야기를 들은 권(權)정승은 분기가 탱천하여,
“에이, 천하 불상놈 같으니라고.”
하며 스님을 욕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오래간만에 권(權)정승을 욕보인 안(安)정승은 속이 시원하고 후련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