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강
• 우리말 표기법의 역사
한글이 없던 때에도 우리말을 적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중국의 한자를 들여와 우리말을 표기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마련했다. 여기에서는 예전에 한자를 빌려서 우리말을 적던 방식인 차자 표기법, 즉 '이두, 구결, 향찰'에 대하여 공부한다. 그리고 한글이 창제된 직후의 중세국어 표기법의 원리에 대해 살펴보고, 그로부터 근대국어에 이르기까지 표기법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도 함께 학습하도록 한다.
1.1. 한글 창제 이전의 표기법
한글 창제되기 전, 우리 조상들은 한자로 문자 생활을 하였다. 21세기 현대를 사는 우리는 한글이란 문자를 전면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예전 시기에 중국의 한자는 동아시아의 유일한 문자였다. 우리 조상들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중국과의 접촉을 통하여 한자를 받아들였고 우리말을 적는 데 이 문자를 사용해 왔다.
우리말을 한자로 기록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우리말을 중국어로 번역해서 한문(漢文)으로 적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말 그대로를 한자(漢字)를 빌려 적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인 우리말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한문으로 적는 방법은 상당한 학습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한문, 즉 고전 중국어의 문법에 통달하지 않고서는 쉽게 적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우리말을 하지만 글로는 중국어 문어)인 한문으로 적는, 이러한 기형적인 이중 언어생활은 한글이 창제된 훨씬 이후인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이를 20세기 초엽의 학자들은 '언문이치(言文二致)'[언문일치(一致)가 아닌]라고도 했다.
두 번째 방법은 한자의 '뜻'과 '소리'를 빌려서 우리말을 적는 것이다. 이러한 표기 방식을 한자 차용 표기법借用法)' 또는 줄여서 '차자표기법(記)'이라고 한다. 이 차자 표기법의 원리는 간단히 말해서 다음과 같다.
'天'이란 한자를 우리는 '하늘 천'자라고 한다. 여기서 '하늘'은 뜻(=훈(訓)=석(釋)= 의미)이고, '천'은 소리, 음(音)이다. 우리말 '돌쇠'라는 사람 이름을 한자로 '石金'이라고 적었다면, 여기서 '石'과 '金'은 모두 한자의 '뜻'을 빌려서 적은 것이다. '돌이'라는 이름을 '石伊'와 같이 적었다면, '石'은 뜻을, '伊'는 음을 빌려 적은 셈이 된다. 처음에는 인명(人名). 지명(地名), 관직명(名) 등 고유명사를 이런 방식으로 적다가, 좀더 발전하여 문장 단위까지도 적을 수 있는 방법이 생겨났다.
차자 표기 방식으로 알려진 것이 여럿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이두, 구결, 향찰'이다. 이들은 모두가 다 문장 단위를 표기할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씩 간략히 설명하기로 한다.
이두(吏頭)는 한문을 우리말 어순에 따라 적는 방식이다.
(1)壬申年六月十六日二人并誓記 天前誓今自三年以後 忠道執持 過失 无誓 若此事失 天大罪得誓·· (임신서기석)
(2)本國乙 背叛爲遣彼國乙 潛通謀叛爲行臥乎事 (대명률직해)
*임신서기석(壬申石): 임신년(552년 또는 612년으로 추정)에 맹세한 기록을 새긴 돌.*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조선 초기(1395년)에 명나라 법률을 이두로 번역한 책.
(1)은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임신년 6월 16일에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하여 기록한다. 하늘 앞에 맹세한다. 이제부터 3년 이후에 충도를 집지하고 과실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약 이 일을 잃으면 하늘에 큰 죄를 얻을 것이라고 맹세한다. 얼핏 보면 한문 같지만 어순이 다르다. '天前誓, 今自' 등과 같이 우리말 어순에 따라 한자를 나열한 것이다. 한문이라면 '天前誓, 自今' 등으로 되었을 것이다. 이런 방식은, 영어의 예를 든다면 "I you love."와 같은 방식이라 할 것이다.
(2)는 "본국을 배반하고 다른 나라를 몰래 상통하여 모반을 꾀하는 일"이란 뜻이다. 우리말 어순에 따라 한자어를 배열하고, 문맥을 분명히 하기 위해 우리말 문법 요소도 덧붙였다. 여기서 '乙, 遣'은 한자의 음을 빌린 것[음차(音借)]이고, '爲, 行, 臥, 乎' 등은 한자의 뜻을 빌린 것[훈차(訓借)]이다. 앞에서 본 "I you love."가 "I-ga you-reul love-handa."와 같은 방식으로 발전한 것이라 할 수있다.
신라시대 이전으로 소급되는 '이두'는 고려, 조선을 거쳐 '한글'이 창제된 이후에도 관청의 행정문서, 민간의 계약문서 등에 줄곧 사용되었다. '이두'라는 명칭은 관청의 아전 [서리(胥吏)] 계층에서 이 표기법을 많이 사용한 데서 기인한 것이다.
구결이란 말은 우리말 고유어 '입겾'(입겿)의 한자 차용 표기이다. '입'이란 말은, 현대국어 '읊═'에 해당하는 중세국어가 '잎═('입'으로 표기)'인데, 여기에 사물의 기본적인 바탕에 따르는 부차적인 성질을 뜻하는 '겿'이 붙은 말이다. 흔히 '토(吐)'라고 하는 것이다. 곧 한문을 읽을 때, 문법적 관계를 표시하기 위해 삽입하는 요소들을 가리킨다.
(3)天地之間萬物之衆 唯人伊 最貴為尼所貴乎人者隱以其有五倫也 羅(동몽선습)
(4)天地之間 萬物之衆r唯人人 最貴∨Ł 所貴乎人者1 以其有五倫也ᄾ
예전 시대의 어린이 학습서인 『동몽선습(童蒙先習)』에 구결을 단 예이다. 한문을 읽을 때 앞뒤 어구가 서로 어떠한 문법적 관계를 가지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한문 원문 사이에 우리말 문법 요소를 끼워 넣은 것이다. '涯, 伊,爲尼, 隱, 羅자는 우리말 요소 '애, -이, ㅎ니, -은, -라'를 한자를 빌려서 표기한 것이다. 흔히 (4)와 같이 약체자體)가 사용되기도 한다. 구결이 달려 있는 한문을 구결문이라고 하는데, 이 구결문에서 구결을 빼면 원래의 한문이 된다. 한문 원문에 전혀 변형을 가하지 않고 오직 해독의 편의를 위해서만 구결을 다는 것이다. 앞에서 본 '이'의 경우는 우리말 문법 요소를 빼더라도 원래의 한문문장으로 복원되지 않는다. 이것이 '이두'와 '구결'의 다른 점이기도 하다.
근자에는 이렇게 음으로만 읽지 않고 그 구결을 따라 읽으면 한문이 우리말로 번역되는 구결 자료도 발견되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향찰(鄕)은 '향가'의 표기에 사용된 차자 표기법이다. 한자를 빌려서 우리말을 적는 방법 가운데 가장 완결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5)東京明期月良 夜入伊遊行如可(처용가)
신라 향가 처용가(歌)」의 첫 구절이다. 이 노래에 대하여 해독 방법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밝은 달에 밤들이(밤새도록) 노니다가" 정도의 의미이다. '향찰' 표기의 기본 원리는 우리말에서 실질적 의미를 가진 부분(어간)은 한자의 뜻을 빌리고[훈독(訓讀), 훈차(訓)], 문법적 요소는 한자의 음을 빌려서 [음독(讀), 음차(借)]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말을 표기해 보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중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만든 한자로 우리말을 온전하게 표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말에 적합한 문자를 새로 만드는 일이었다.
1.2. 한글 표기법의 변천
'한글'은 세종 25년(1443)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훈민정음 곧 한글의 창제는 우리말의 전면적 문자화라는 오랜 민족적 소망을 달성한 것이었다. 이제 그동안의 한자 차용 표기와는 달리 우리말을 만족스럽게 적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초성 17자, 중성 11자, 도합 28자의 음소문자로 만들어진 '한글'은 그 이후 우리말이 변화함에 따라 몇몇 글자가 사용되지 않게 되었지만, 기본적인 문자 체계와, 초·중·종성을 합자(合)하여 음절 단위로 표기하는 기본 원칙은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글 창제 이후 한글로 우리말을 표기하는 규칙, 즉 정서법[철자법, 맞춤법]은 오늘날과 상당히 달랐다. 한글로 우리말을 적을 때, 실제 발음나는 대로 적을 것인가, 아니면 실제 발음과는 조금 달라지더라도 형태를 고정하여 적을 것인가 하는 것이 그 차이점의 핵심이다. 실제 발음을 충실히 표기하는 방식을 '음소적(的) 표기법'이라 하고, 각 형태소의 기본형을 고정시켜 표기하는 방식을 '형태음소적 표기법'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음소적 표기법은 '표음주的)각각 바탕으로 한 것이 '를 의(義)', 형태음소적 표기법은 '표의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한글 창제된 15세기의 한글 표기법의 가장 주된 원리는 한마디로 '음소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실제 음소를 한글로 충실히 표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값[]' 조사가 붙은 형태를 오늘날은 '값이, 값을, 값도'와 같이 적지만, 당시에는
첫댓글 오늘부터 시간되는대로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자료를 올려놓겠습니다.
이미지와 문자를 같이 올려놓으니 공부하시는 분들 편한 방식으로 활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