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소나기?
여름 등을 떠밉니다.
텃밭 수세미 찍으러 갔다가 새로 피는 꽃~ 바질 꽃,
바질 잎 따먹기를 잊었더니 꽃대 올라와 꽃을 피웁니다.
이웃하여 부추 꽃도 맺혔습니다.
장독대 오르는 계단 끝 모퉁이에는 언제부턴가 부추가 자랍니다.
지난 주부터 꽃이 만발,
사진에 잘 담기질 않아 고심하다, 한 컷 올려봅니다.
음, 지나가는 비였네요~
독서 모임을 두 군데 참여하다 보니, 예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는 행운이 찾아오네요.
파커 파머를 오랜만에 다시 만납니다.
작년 말 <역설>로 재번역된, 1980년 파머의 첫 책,
제가 가지고 있는 첫 번역판 제목은 <가르침>
모순과 역설, 그리고 공동체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역설 이야기를 먼저 다루지요.
‘하나님께서 사랑이 많으시고 전지하시고 전능하시다면, 왜 우주에는 악이 존재하는가?’
책에서 ‘우주적 모순’이라 표현한, 신정론의 질문~
다음 문장이 “쿵!”
‘모순을 살아내다!’
“성령의 하나됨은 우리의 깨어짐과 모순된다.
성령과 자아의 긴장…
그러나 세 번째 길, 이쪽 극단이나 저쪽 극단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을 넘어서는 길이 있다.
그 길을 ‘모순을 살아내는 것’이라 부르자.
우리는 긴장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그 긴장이 우리 삶의 중심에 거하도록 허용한다.
우리는 왜 그렇게 하고자 하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영적인 삶의 위대한 선물 중 하나, 즉 모순이 역설로 탈바꿈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긴장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이 이를 수 있는 극단들을 충분히 고통스럽게 인식하며 모순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역설 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될 것이며, 그 역설의 중심에서 초월성과 새로운 삶을 찾을 것이다.”
- <가르침> 55-56, 58쪽
예수께서는 비유뿐 아니라 역설에도 뛰어났습니다.
요 12:25)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그리고 모순을 살아냅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반대와 모순, 긴장과 갈등에 의해 찢겨지는 것!
멀리 돌고 돌아왔네요.
샬롬~
2024. 8.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