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가 어때서 78회
하늘이 물구나무 서 발을 담그고 싶을 정도로 맑고 푸르다. 이 많은 사람들 속
에서 그런 짓 하면 반응은 둘 중 하나다. 돈을 던져 주거나 정신 병원에 신고가
들어 가거나...
바람은 차겁고 노란 은행 잎들이 보도 블럭을 타고 흐른다. 쉽게 말해 가을이라
는 거다. 11월도 중순을 가리키고 있다. 오늘이 누나 생일이다. 논문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 지금 종로 어느 외국어 학원 앞에 서 있다. 누나 생일이라는 핑계로 연구실
일들 내 팽개치고 나왔지만 그렇게 여유롭지가 못하다. 내일은 주말임에도 불구
하고 다시 학교로 내려가 봐야 된다.
왜 안오는겨?
오늘 누나 만나 갈 곳이 있다. 하하!
누나 기다리면서 그 동안 일들을 회상해 보았다. 그 참, 나 누나하고 결혼하기
로 합의 봤다. 양가 부모님 허락 다 받아 냈고 두달 후에 식 올린다. 내 생각보
다 장장 오년이나 일찍 결혼하는 거다. 내 나이 그 때 25살, 뭐 그리 어린 나이
는 아니지만 이 애띤 얼굴, 학생이라는 신분, 내 철 없는 행동들, 우리 부모님이
나 누나 부모님이 생각하시기에 좀 어이가 없을 것도 같다. 나도 다시 생각해 보
니 좀 아깝다.
돌리도 내 청춘! 그래도 한마디로 꿈 같은 일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다.
우리 부모님들, 푸후, 괜히 넘겨 짚고 서두르시다 쪽만 팔으셨다. 양가 부모님
이 만났던 8월의 어느 날, 장인 어른 될 분이 뭔 소리냐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
께 구박을 주셨다. 나 우리 부모님께 그 날 맞아 죽을 뻔 했다. 하지만 존경하
는 우리 아버지 말씀이 일을 저지르고 쪽을 팔겠다 싶을 땐 당황하지 말고 더 힘
껏 밀어 부쳐야 쪽을 덜 판다고 하셨다. 우리 부모님이 누나 부모님 학교 선배였
다. 물론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이점이 작용했다. 우리 아버
지, 가족 일에 대해서는 작은 일도 그냥 넘어 가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내 누누
히 말했었다. 우리 아버지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고 홀홀 단신 장인 어른 약국
을 찾아 가셨다. 다녀 오시고선 나를 불러 별로 근엄하시지 못한 모습으로 말씀
하셨다.
"너 꼭 걔한테 장가 가. 내 년에 가. 아니다 올 해 갈래?"
"아버지, 결혼이 장난입니까?"
"그 놈하고 합의 봤어."
"그 놈이라니요?"
"니 장인 될 사람 말이다."
"사돈 될 분인데..."
"은정이가 어제 전화가 왔더라."
"네? 어디 있대요?"
"들어간다는 조건으로 합의 봤다."
"에?"
아버지가 합의를 받아 온 것에는 누나의 가출 사건이 컸다. 누나가 우리 부모님
의 오해로 아버님에게꾸중을 제법 들었었나보다. 울 아버지가 약국을 찾아 간
그 전 주에 누나가 일주일 동안 연락도 없이 가출을 했었다. 나와도 연락이 끊겼
고 아무도 누나가 어딨는지 몰랐다. 단지 승헌이가 내 방에서 몇 일 자고 간 적
은 있다.
"니 방 가서 자."
"내 방에 누구 있어."
"누군데?"
"몰라도 돼."
"걔랑 같이 자 임마."
"그래도 되냐?"
"그걸 왜 나한테 묻냐?"
"여자야."
"사자머리 왔냐?"
"아니. 입 간지러워 죽겠네."
알고 봤더니 누나는 승헌이 자취방 신세를 졌었다. 누나 가출한 사일 째 되던
날 누나 아버님이 누나 찾으러 왔다가 내 방에서 주무시고 간 일이 있다. 내가
누나를 숨기고 있다고 믿은 아버님이 밤 새도록 내 옆에서 감시를 섰었다.
"니가 숨겼지?"
"저 진짜 몰라요."
"기다리면 반대 안한다고 했잖아."
내 누나에게 다 들었어요.
"저도 일찍 갈 생각 없어요. 누나가 서둔다니까요."
"책임을 전가하지 마 임마."
당구 몇 번 같이 쳤다고 제가 참 만만했던가 봅니다. 그 날 밤, 그러니까 누나
를 바로 옆 방에 두고 아무것도 모른 채 나 아버님과 동침했었다.
졸업 논문 때문에 한 창 바쁜 시간에 누나는 무엇 때문에 가출을 했을까. 바로
아버님이 배신을 때리셨던 것 때문이었다. 아버님이 누나에게 이랬다는군요.
(시간을 갖고 잘 생각해 보자. 분명 생각이 달라질거야. 너 당장 내년만 되도
딴 사람 생각 날거야. 지금은 걔랑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고 학생이니까 걔 밖
에 안 보일지 모르지만, 사람이라는 거 안보면 잊어지는거다. 너 사회생활하고
또 다른 남자들 만나고 하면 어디 그런 애하고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겠니. 그래,
할아버지 있는 데로 유학 보내줄까? 너 시집가면 이런 생활 끝이다? 공부다 뭐
다 다 포기하고 삶에 찌들리게 돼. 왜 일찍 시집가 고생하려고 하니? 그 집 봐
라. 시부모 될 사람도 그렇고 시누이 될 애도 그렇고 맘에 드는 애 있던? 인생
은 즐겨야지. 졸업하면 외국 보내 줄게. 너 취직 안해도 약사 월급 그대로 주고
용돈도 지금처럼 계속 줄게.)
그 말 듣고 누나가 더욱 더 결심을 굳혔다고 했다. 진짜 날 잊어 버릴 수도 있
다. 정말 그렇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누나의 결심을 더 확고하게 만든 계
기가 되었다. 푸하하!
그건 그렇고 아버님 그 안 보는데서 말이 좀 심하십니다. 누나 잠버릇이 누굴
닮았나 했더니 아버님을 닮았더군요. 밤에는 좀 쌀쌀했는데 이불 다 걷어서 똘
똘 말아 혼자 안고 주무신 아버님 때문에 여름감기 들 뻔 했었다.
우리 아버지는 누나 전화 받고 아버님을 찾아 갔었고 누나 집에 돌아 온다는 구
실로 그냥 보내 버리자고 합의를 보셨다.
그 뒤로 누나는 학업에 충실하는 척 했다. 부모님께 미안했던지 주말이면 항상
집에서 부모님과 보냈다. 나도 멀리하고 아버님 약국 일을 도우며 서운한 감정들
을 풀어 갔다. 누나는 아버님 어머님을 위로하며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했다.
나 소외 받았다. 하지만 뭐 같이 살 사람인데...
싸우며 정든다고 나 누나 아버님과 친해졌고 우리 부모님과 누나 부모님도 그
런대로 친하게 지내신다. 그들의 과거에는 같은 공간을 누렸던 추억이 있었다.
그런 추억을 꺼집어 내시는 것이 즐거우신가 보다. 간혹 가족끼리 만날 때면 우
리 부모님, 누나 부모님 서로서로 이제는 찾을 수 없는 젊은 시절 대학 얘기를
하며 추억을 잡으신다.
우리 집에 한 동안 수희가 왕따 당한 적이 있다. 고 것이 믿는 것도 없으면서
은정이 누나를 가족으로 받아 들이는 걸 반대했었다.
"난 그 언니 싫어요. 오빠가 뭐가 못나 이런 수모를 당해요."
수희 그 말 할때마다 바보취급 당했었다. 나도 덩달아 걔 바보 취급 하다가 어
머니께 아이고 이 철없는 놈아,라는 소릴 자주 들었다. 하여튼 수희 고 것이 누
나 못살게 굴면 호적에서 파 버릴 거다. 그리고 걔 누나에게 쨉도 안 될것 같
다.
그렇게 삼개월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결혼 날짜가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불과
보름전이다. 그 전까지는 두 집안이 가까워 지는 시기였다고 보면 된다.
"왜 이리 늦었어?"
"많이 기다렸니?"
"응."
"오늘 나 생일인 거 알지?"
"응."
"그럼 용서 되겠네."
"집에서 오는거야?"
"응."
오늘 갈 데가 많다.
처음으로 간 곳은 내 여권 신청하러 갔다. 그리고 다음에 간 곳은 어느 여행사
였다.
"너 갈 수 있는거지?"
"학장님 도장만 받으면 돼. 그냥 해 준대. 교수님께도 말해 놨어."
"군대 안 갔다오니까 걸리는 게 많다 그지?"
"대신 가 줄려우?"
"너 고무신 거꾸로 신을려구?"
내가 고무신 신은 거 봤냐? 어디서 줏어 들은 건 있어 가지고.
누나하고 나 베낭 여핼 갈 거다. 그 할슈타르 호순가 뭔가 그 거 같이 보기 위
해 신혼 여행을 오스트리아로 가기로 마음 먹었었다. 그리고 며칠은 누나 외갓댁
에 머물면서 독일도 구경할 참이었다. 그랬다가 괜히 지하철서 베낭 짊어진 어
떤 놈을 보고서 누나가 생각 없이 꺼낸 말이 베낭 여행이었다. 그려, 나 신혼 여
행 베낭 여행으로 대신 할 거다. 신혼 여행인데 유스 호스텔 같은데 자기 싫어
서 숙박이라도 제대로 정해 놓고 떠나고 싶어 호텔 팩키지를 선택했다. 사실은
내 영어 실력이 딸려서 전적으로 누나에게 의지해야 하는 게 싫어서 내 호텔 팩
키지를 고집했다. 누나는 단 둘이 정처 없이 떠나자고 했는데 나 국제 미아 되기
는 싫었다. 둘이서만 가면 삐칠 일 생겨도 맘 놓고 삐치지 못한다. 확 성질에 삐
쳤다가 여기가 어딘겨? 나 길 잃으면 그 걸로 그 곳에 뼈를 묻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단 둘이 가고 싶었지만 여행사에 의탁하기로 마음 먹었다. 호텔
팩키지로 단체 베낭 여행을 가면 혹시 중간에 삐칠 일 생기면 그냥 삐져 버리면
된다. 다 앞 날을 내다 본 나의 선견지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하하!
"꼭 여행사에 의지해야 되나? 나 회화 실력 못 믿어?"
"단 둘이도 좋지만 사람들에 섞여서 우리 사이 자랑도 하고 또 사람들도 사귀
고 하면 좋잖아요. 그리고 어짜피 숙박만 같이 하는 거고 우리 둘이서만 돌아 다
닐건데."
내 속마음 그대로 말했다간 무시 당할 것 같아서요.
"비싸잖아."
"신혼여행인데 호텔에서 자야지. 싫으면 내 돈 육십만원 내 놔 씨."
"니 돈 내 돈이 어딨냐? 아버님이 얼마 주셨어?"
"600만원."
"그럼 여행 경비는 그 안에서 다 해결하자."
"여행사에 내는 게 오백만원데? 그럼 100만원 가지고 둘이서 한 달을 버텨?"
"네가 준 60만원 있잖아."
"누나는 안 보태냐?"
"나도 너 만큼은 부담할게."
"부조금 많이 들어 올 것잖아."
"너 학생이다? 등록금은 뭘로 할래?"
"그 돈은 울 아버지가 주지."
"그렇게 하기 싫어. 결혼하면 한 가정을 꾸리는건데. 너 이제 가장이야, 가장."
"나는 일찍 결혼하잔 말 안했다?"
"그럼 물릴까?"
"씨. 한 꼬마가 있어."
"갑자기 무슨 말이야?"
"들어 봐. 꼬마는 그냥 있었는데 누나가 사탕을 줬다가 도로 뺏었어. 꼬마가 울
겠냐 안 울겠냐?"
"허, 비유를 그딴 식으로 하지? 내가 결혼하자고 했던 게 사탕 준 꼴 밖에는 안
되었구나. 그래 알았어 박철수."
"헤헤, 물리면 내가 죽고 싶을거란 그 말이지."
여행사 안에서 별 이야기를 다한다 진짜. 여행 상품을 알아 보면서 둘이 앉아
여행과는 별 상관없는 말로 새고 있다.
"하여튼 결혼하면 우리끼리 사는거야? 부모님 의지 않고."
"약사하면 봉급 많이 받아요?"
"그 돈은 적금 들거야."
"어휴, 부잣집 외동 따님께서 적금을 들어? 그럼 생활비는?"
"결혼할 때 뜯어 낼만큼 뜯어 내야지."
"뭐 이딴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냐? 좀 야무진 여자라고 생각이 들었다가 그냥
확 깨 버리네."
"아버님이 아파트 사주신 댔지?"
"응."
"돈으로 달라고 해."
"에?"
"너 어짜피 일년은 율전 있을거잖아."
"그렇지."
"집 얻는 건 너 졸업하고 직장 얻을 때까지 미루자. 그 돈 은행에 넣어두면 이
자로 생활비는 나올거야. 그리고 우리 집에서도 모른 척하진 않을거야."
"그게 독립하는거냐? 누나는 어디서 살게?"
"나? 왔다갔다 하는거지. 너네 집에도 있다가 우리 집도 갔다가 또 율전도 내려
가고 하는거지 뭐."
"여우야, 여우야."
"하여튼 결혼하면 똑바로 살아야 돼?"
"나 지금도 똑바로 살고 있어요."
"앞 날을 생각하며 살자고. 우리 사이에 태어날 아이도 생각해야지."
아이? 아이를 낳으려면... 푸하하! 흐흐...
"애는 날 생각인가보네?"
"그럼 낳아야지."
"설마 나 졸업하기 전에..."
뭘 또 손가락으로 세냐.
"잘하면 너 졸업하기 전에 낳겠다. 울 엄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형제가 귀한
집안이라 애는 꼭 낳고 싶어. 우리 힘 닿는데까지 낳자?"
저거 현대 여성 맞냐? 하나나 그래 넉넉잡고 둘이면 됐지.
인생은 책임지고 사는 것? 모르겠다.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들을 떠 맡으며 사
는 건지도 모른다. 내 인생을 가꾸기 위해서...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 그 것
은 처음부터 부모로서 책임지고 희생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 어쩌면 막막하게
즐기기 위한 것에서 출발하는 건지도 모른다. 전적으로 주기만 할 수 있는 사랑
을 스스로 만들어 그런 참사랑으로 희생이라는 것을 배워가는 건지도 모른다. 지
금 누나와 내가 하는 말을 보면 후후, 철이 없어 그런지 몰라도 우리는 아무것
도 모른채 우릴 위해서 애를 낳으려고 하고 있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여. 스스
로 원해서 낳은 자식, 자식에게 권리를 요구하지 말자. 푸하하, 아직 장가도 안
간 놈이 이런 오만한 말을 하다니.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내 현재 처지
가 좋다. 옆에 있는 여자가 곧 내 마누라가 된다. 그리고 누나와 나도 부모가
될 것이다. 푸하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나 부모님, 이런 날까지 낳아주시고 길러 주셔서 우리
가 만날 수 있게 해 주신 거 너무 감사합니다. 다 갚지는 못하겠지만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자식 낳으면 또 잘 기를게요. 하하. 뷰티풀 월드다.
예식장은 처가? 하여튼 누나 쪽에서 이미 준비를 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아
뭐시기 호텔에서 하기로 했다. 호텔? 잠만 자는데가 아닌가벼. 결혼식 날짜는 일
천구백구십팔년, 에이쒸 욕들어 갔다. 일월십일 오후 두십니다. 그래서 여행 출
발 날짜는 일월 십이일짜로 정했고 29일짜리 팩키지로 했다. 독일까지 일행들 따
라 다니다가 중간에서 한 일주일 일행과 헤어져 둘이서 누나 외할아버지 댁과 오
스트리아 할슈타르 지방으로 빠졌다가 이탈리아에서 다시 합류하기로 결정을 봤
다.
돌아다니다 보니까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팠다. 근처 경양식 점을 찾았다. 나
아까부터 들고 있던 게 있다. 누나 생일인데 그냥 지나칠수가 있었야지. 생일 선
물을 저녁 다 먹고 후식 나올 시점에서 누나에게 건넸다.
"이건?"
"생일이잖아."
"호호, 그래서 선물 준비한거야?"
"그럼."
"고마워. 뭐야?"
"집에 가서 뜯어 봐요."
"싫어 여기서 뜯어 볼래."
"여기서 뜯어 보면 안돼."
안돼는데. 누나는 그 자리서 뜯어 버렸다. 그리고 웨이터 참 시간 잘 맞춰 커피
를 쥬스를 가져 왔다. 누나가 선물을 개봉할 바로 그 때에. 누나는 웨이터에게
멋쩍은 웃음을 웃었고 웨이터 새끼 이상한 표정 짓고 돌아 갔다.
"그러게 여기서 뜯어 보지 말랬잖아."
"뭐 어때."
"섹쉬하지?"
"후후, 그래 많이 섹쉬하다. 니가 가서 산거야?"
"응."
"대단한 용기네."
"뭐 사모님 드릴거에요, 그러길래 그렇다 했지."
"여행가서 이거 입고 잘까?"
"그래도 되지."
"야, 이거 다 비치겠다."
"여행가면 같이 자는 거 맞지?"
"따로 자고 싶어?"
그러면 섧지. 옆에 사람 보겠다, 이제 그만 집어 넣어라. 나 누나에게 그 뭐
냐, 실크로 된 레이스도 곱고 속도 많이 비치는 한 뼘이 뭐야, 무릎보다는 배꼽
에 더 가까울 정도로 짧은 원피스 야한 잠옷을 선물했다. 곧 결혼할 사인데 이
런 거 충분히 선물할 수 있다.
저거 입고 같이 잔다? 흐흐흐. 그 날만 와라 아자! 허니문 베이비 만드는 거 나
도 할 수 있다.
연하가 어때서 79회
뭐 어떻게 해서 철수와 결혼하기로 했어요. 한 번 마음이 갔는데 어떻게 그 걸
물릴 수가 있겠어요.
연구실 생활이 조금 여유를 찾자 철수와 다시 예전으로 돌아 간 느낌입니다. 결
혼을 약속한 사이가 됐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아직은 말이지요. 철수가 간
혹 둘 만 있을 때 가슴을 쿡쿡 찌르는 버릇이 생겼기는 하지만 여전히 소년 같
은 모습을 잃지 않고 있어요. 아니다 더 애같아 지더군요.
철수가 제 생일이라고 좀 야하다 싶은 잠옷을 선물했어요. 응큼한 자식. 내 낭
군 될 사람은 잠옷 선물을 참 많이 하는군요. 나 사실은 철수 만나기 전에 이런
잠 옷 잘 입고 잤어요. 집 안에선 이런 잠옷 차림으로 돌아다니기도 했는데요.
우리 철수 별로 응큼하지 않아요. 근데 가슴은 왜 찌르지? 후후, 철수는 여전히
처음 선물한 잠옷처럼 풋풋한 모습입니다.
내게 독일 마르크화가 제법 있었어요. 독일에 있을 때 모았던 돈인데 환전하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었지요. 그 걸 신혼 여행비로 쓰게 될 줄은 몰랐네요. 유럽
에선 달러보다 오히려 마르크화가 더 많이 쓰이지요. 제가 가지고 있는 돈만으로
도 여행 경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철수가 준 돈 60만원은 제 쌈짓돈으로 해
야 겠군요. 나중에 그 돈으로 철수 옷이나 한 벌 맞춰 줘야 겠군요. 바보같은 철
수는 환전하러 가야되는지도 모르네요. 우리 신혼 여행 베낭 여행으로 대신 할
거에요. 언제 둘이 베낭 여행 한 번 가보겠어요.
석사 논문 준비로 바빴고 또 한 동안 여행 준비로 바빴어요. 결혼식 준비도 해
야 되는데 식장이 마련되고도 한 동안은 신경을 못 썼습니다. 주말에 어머님들끼
리 따로 뭘 준비하시는 것 같기는 했지만 난 아직 결혼식에 대해 제대로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하면 하는거지 뭐.
그냥 철수랑 만나서 놀고, 주말이면 아버님 한의원 찾아가 약 냄새 맡으며 시
간 보내고, 또 울 아빠와도 자주 같이 했습니다.
후후, 울 아빠 처음엔 반대를 좀 하셨지만 철수와 마음이 맞나 봐요. 자주 연락
하시더군요. 아예 철수에게 핸드폰을 하나 사주었어요. 아버지들은 처음엔 안그
러다가도 나중엔 아들을 찾게 된다는군요. 철수는 철이 없어 그런지 어색하지 않
게 아빠와 어울렸어요. 울 아빠 별로 격을 차리는 고리타분한 사람은 아니거든
요. 셋이서 당구 치러 간 적도 많았는데 장인, 사위가 아니라 선,후배 같은 모습
이더군요.
"에이, 안 맞았다니까요."
"흔들렸어 임마."
"400이 그런 걸 속여요? 아버님 체통을 지키시옵소서."
"짜식이 흔들렸다니까."
"에이 그대로잖아요. 쩝, 간혹 착각하는 경우가 있지요. 제 보약 한 제 다시 갖
다 드릴게요. 제 칠 차롑니다."
철수는 아빠의 고집에 의연해 했어요.
"삑!"
"푸후! 야, 가서 박아. 바로 벌 받잖아."
아빠는 저는 신경도 안쓰나 봐요. 철수 약올리다 나도 같이 끼여 있다는 걸 인
식못하시고 절 건너 뛰려고 했어요.
"아빠, 이제 제가 쳐야 되는데요."
"그러냐? 저 자식 때문에 헛갈렸잖아."
"왜 저만 갖구 그래요."
철수는 뽀로통 해지긴 했지만 즐거운 표정을 잃진 않았습니다. 철수가 고맙네
요.
"오늘 바쁘냐?"
"아니요. 논문 작업도 거의 끝났고 한가해요. 왜요?"
"시간나면 철수 옷 몇 벌 맞춰 줘라. 아직 학생이지만 그래도 정장 입어야 될
일이 있을 거 아냐."
후후, 아빠가 제게 금일봉을 주셨어요. 철수를 위한 것이었지만 내가 받는 것처
럼 기분이 좋더군요.
그럼 철수가 준 돈은? 아버님 옷 맞춰 드려야 겠네요.
"고마워요 아빠."
"너무 끌고 다니지는 마. 일찍 마치게 되면 집으로 데리고 와."
"그럴게요."
철수는 여전히 율전 그 허전한 자취방에서 지내고 있죠. 요즘 시험 기간이라
좀 바쁠거에요.
별로 안 바쁜가 보군요. 율전에는 거의 10시가 다 되어 도착했어요. 연구실로
바로 가려다 철수 자췻방을 찾았죠. 학교 가고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열쇠
도 있고 방청소나 해줄까 해서 찾았더니, 두 놈이서 좁은 침대 위에 엉켜 잠들
어 있더군요. 같이 자는 놈이 낯은 익은데 아직 잘 알지 못하는 녀석이네요. 날
씨가 제법 쌀쌀한데도 불구하고 두 녀석 다 옷차림이 많이 경망스러웠어요. 이불
이나 제대로 덮고 자지. 철수만 있다면 가서 깨우던지 덮어 주던지 할텐데 친구
가 같이 있어서 들어서기가 껄끄러웠어요. 반바진지 사각 팬틴지... 남편 될 사
람 친군데 후배라고 엉덩이 걷어 찰수도 없고... 승헌이에게 가 봐야 겠군요. 가
서 있으면 차 한잔 얻어 마시고 대신 깨워 달라고 해야 겠어요.
문을 열어 주는 승헌이의 모습도 잠에 취한 상태더군요.
"너 시험 기간 아니니?"
"어제 밤샘 쳤어요. 시험 하나 남았어요. 오늘 오후에."
"허, 이럴 걸 왜 밤을 새? 차라리 일찍 일어나 도서관 가지."
"그렇네요. 아줌마가 여긴 왜 왔어요?"
"야!"
"철수가 누나더러 아줌마라고 부르래요."
"뭐야? 그건 그렇고 차 한잔 얻어 마실 수 있어?"
승헌이는 문을 닫고 복도로 나왔어요.
"철수 없어요?"
"친구랑 자던데?"
"내 방에도 두 놈 있어요."
"방에서 밤 샌거야?"
"네."
"철수하고 그 녀석도?"
"걔들은 원생인데요."
"그럼 걔들은 밤 새 자고 여태 안 일어난거야?"
"그건 아니에요. 쟤들 아주 질 나쁜 놈들이에요."
"응?"
"저네 둘이는 어제 시험 끝났대요. 오늘 오후에 있을 시험 쟤들이 조교로 들어
오거든요."
"근데?"
"어제 맥주를 한 다스나 사가지고 와 둘이서만 쫑 파티했어요. 우리가 바로 옆
방에서 공부 하는 줄 알면서 엄청 떠들고 놀았단 말입니다. 야단 좀 쳐요. 그것
만 했으면 말도 안 해. 술 먹고 심심하면 내 방 와서는 술 냄새 풍기며 공부 잘
돼냐? 열심히 혀. 시비 졸라 걸었어요. 공부도 안되는데 철수 때문에 돌아가시
는 줄 알았다니까요. 총각들 열심히 혀. 그 새끼 인간도 아니야. 나중엔 아예
내 방으로 자리를 옮겨서 술 마셨어요. 뭐 너들은 공부해? 그 새벽에 한 시간도
넘게 건배하고 노래 부르고 별 지랄 다 하고 갔어요. 나가라고 화 내면, 조교라
는 직위를 내세워 우리를 갈구었죠. 철수 그 새끼 질도 나쁠 뿐더러 아주 악랄
한 놈이에요."
푸후, 미안하다 승헌아. 일방적으로 니가 참아라. 어쩌겠니 내 낭군될 사람인
데... 철수 더 이상 욕하면 화낸다?
"내가 대신 사과할게. 철수 좀 깨워줄래?"
"그 녀석 꼴도 보기 싫지만... 누나 봐서 참는 거에요."
"흠. 고마워."
"쯔쯧. 누나 앞날이 깜깜해요."
"왜?"
녀석이 문을 열다 말고 날 보며 혀를 찼어요. 왜 그러지? 걱정마 우리 잘 살게.
"우리 결혼식 피로연 때 누나에게 복수하기로 했어요. 미안해요. 부부는 일심동
체라서 말이죠."
"무슨 말이야?"
"우리 시험 끝나고 뱀 잡으러 갈거에요. 없으면 사지 뭐. 지금부터 뱀 술 담궈
가지고... 푸하하, 우리가 담그는 뱀술, 그거 제대로 되겠어요. 푸욱 썩지. 누
나 그거 마셔야 돼요? 우리 원망마요. 남편 잘 못 둔 기구한 팔자려니 해요."
이게 무슨 말 하는거야. 피로연? 맞다, 곧 결혼식이구나. 이제 한 달 조금 더
남은 것 뿐이다. 철수 저 자식 그런데 아직도 쳐자고 있단 말이야. 승헌이가 문
을 열자 마자 바로 달려가 철수 엉덩이를 걷어 찼습니다. 승헌이는 친구를 깨웠
죠. 철수는 일어나 멀뚱하게 나를 쳐다보고 옆에 녀석은 나를 보자 이상한 포즈
를 취하더군요.
"어머! 누구세요?"
이불을 가슴에 보듬고 친구녀석은 아주 부끄럽다는 표시를 했어요. 여자처럼
요. 주위에 제대로 된 녀석이 하나도 없네요.
"그러는 댁은 누구세요?"
낯은 익지만...
"아, 은정이 언니구나. 아이 부끄러버라."
녀석은 이불을 보듬고 있던 두 손을 볼로 갖다 되며 귀여운 척 합니다. 욱! 내
모습을 보고 철수가 그 녀석을 빼꼼히 돌아다 보더군요. 그리고서는 뭐가 불만이
었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그 녀석을 침대 밖으로 걷어 차 버렸어요.
"에구구!"
"야! 신동엽. 대마초 피지 말랬지?"
"내가 언제 대마초 폈다고 그래!"
"느끼한 짓 하지마 새꺄. 형수될 사람인데 눈 뜨자마자 장난이냐?"
참 경망스럽네요 둘 다. 한 녀석은 침대에서 떨어 져 뭐 반바진데 아주 부끄럽
다는 듯 이불 돌돌 말아 느끼한 짓을 하고 있고 다른 한 녀석은 아무리 같이 살
녀석이지만 숙녀 앞에서 속 옷차림 비슷하게 앉아 뱃 살을 벅벅 긁지를 않나. 이
런 놈들을 내 남은 인생의 등장인물로 설정해야 하는 내 신세가 참 처량하다고
느껴지네요. 확 결혼이고 뭐고 없었던 걸로 해 버릴까? 뱀 술? 으으.
"야, 박철수. 시험 끝났다며?"
"응. 아침부터 왠일이야?"
"그냥 들려 봤어."
"밥 사줄거야?"
"그럴게. 네가 동엽이니?"
"그런데...(철수와 날 번갈아 쳐다보고 나서는) 요."
이것 봐라. 철수가 반말한다고 이 녀석도 은근슬쩍 말을 놓으려고 하네요. 정보
공학과에 어...내가 아는 사람이 있나? 없군요. 그래도 동아리 방 가면 저녀석
교육 시킬 만한 사람은 있겠죠. 너 찍혔어.
"은정씨, 옷 갈아 입게 좀 나가 있어. 승헌인 공부 열심히 했냐?"
승헌이는 아무말 없이 맛이 간 듯한 눈망울로 서 있다가 삐친 척 고개를 홱 돌
리고 아무말 없이 나가 버렸어요. 잘 논다. 은정씨? 친구들 앞이라고 태도가 영
불순하네요.
승헌이는 그래도 참 착했어요. 홀로 복도에 기다리고 있는데 승헌이가 차를 끓
여다 주더군요.
"고마워."
"뭘요. 누나가 가여워서 그러지. 누나 뱀 술?"
"진짜 줄거니?"
"당연하쥐."
그럴 수 있을까?
차 한잔을 들고 늦가을 바람을 맞으며 복도 바깥을 바라 보고 서 있었습니다.
바깥 모습, 조금씩 율전의 모습도 변했군요. 변화를 느끼지 못하다가 오늘 같이
어느 순간 뒤 돌아 보면 많이 변해 있는 게 인생의 모습이겠죠. 율전의 모습이
내가 입학하던 때와는 많이 변했네요. 옥수수 밭의 면적도 많이 줄었어요. 옥수
수는 이미 수확되어 나갔지만 시들어 가는 줄기들은 그대로 밭 가장자리를 장식
하고 있습니다. 철수도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내 가슴에 심으며 이제
는 지우지 못할 내 님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옆에 놈들? 누나가 재밌게 대해
주마.
"헤헤. 저 신동엽입니다. 제가 철수에게 많은 걸 가르쳤습니다."
"그래.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낯이 익네. 말 놔도 되지?"
"그럼요. 들어 가 보세요. 그럼 전 이만. 야! 문 열어 임마."
동엽인가 하는 애는 저 때문에 바로 쫓겨 나왔더군요. 참 낯이 두꺼운 애에요.
어제 그런 짓 했다면서 바로 승헌이 방 문을 걷어차며 노크하더군요. 들어가기
전 구박을 참 많이 받더니만 그래도 결국은 자던 잠 마저 자러 승헌이 방에 들
어 가 버리더군요. 경계해야 할 인물입니다. 적어놔야지 신동엽.
이제 철수와 단 둘이 됐군요.
"누나야."
혼자 있다고 바로 돌아 오네요.
"왜 계속 은정씨라고 부르지?"
"아, 눈치 챘어요?"
"시험 끝났으면 연락하지."
"밤 열시에 끝났어."
"그럼 나 기다리라고 하지."
"오늘 시험 감독해야 돼."
"후후, 넌 감독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어제 복수를 좀 했지."
"승헌이 방 가서 술 마신거?"
"알고 있네? 동엽이랑 나 조교 생활하면서 얼마나 구박 받았는줄 모르지? 옆 방
에 있는 새끼들. 아주 극악무도한 놈들이야. 내가 저들 심부름 꾼이야 뭐야."
"됐어 그만해."
"나 연구실에서 막내라 서럽고 복학생들 놀림에 서러웠어요. 나 한 번 안아 주
면 안될까?"
"너 곧 결혼 할 애 맞아? 어떻게 더 어려지는 것 같니?"
"쩝. 둘만 있을 땐 어려져도 돼."
"치, 둘만 있을 때만이라도 좀 어른스러워 져라."
"누나 가슴에 한 번 안겨 보면 안될까?"
"가슴 찌르면 알아서 해?"
치이, 이런 모습이 사랑스럽긴 한데, 같이 살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고쳐 주
고 싶기도 해요. 침대에 나란히 앉았더니 바로 안겨 오네요. 어린애 취급 말라더
니 스스로 어린애처럼 굴어요.
"누나야?"
"왜?"
"우리 진짜 결혼할 사이 맞지?"
"응."
"은정씨."
안겨서 별 짓 다하는군요. 내가 안겨야 되는데...
"왜요 철수씨."
"가슴 한 번 만져 보면 안될까?"
이게 진짜.
연하가 어때서 80회
깃털을 뿌린 파아란 하늘 속에 짜잔 하고 무지가 그려지고 파이프 오르간의 장대
한 G화음이 울려 퍼지면 수백마리의 비둘기가 하늘로 솟구친다. 꽃잎들이 흩날리
고 턱시도를 입은 졸라 멋있는 놈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오면 그때부터 수십명의
합창단이 일제히 노래를 부른다.
잘살아 보세.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세... 왜 이게 나오는 거여.
졸라 멋있는 나를 어이 없이 바라보는 하얀 웨딩 드레스의 그녀.
"야, 일어 나!"
뭐여?
"누구세요?"
"아직도 자니?"
춥다. 문이나 좀 똑바로 닫고 오지.
"누나가 어떻게 여길..."
"나 걱정된다?"
"이렇게 맘대로 내 방 들어 와도 되는겨?"
"오늘 바쁘단 말이야. 여태 자고 있었어?"
여기 내 방이다. 율전 아니고 분명 서울 우리 집 내 방이다. 지금 시각 이제 아
홉시 십분. 근데 저 여자가 왜 내 눈에 들어오고 있나? 참 예쁘다. 오늘 어디 가
나 보다. 세련된 도시풍의 쓰리피스 치마 정장을 입고 내 앞에 다소 곳이 앉아
내 볼을 잡아 끈다.
"아, 아. 아침부터 왠일이야?"
"오늘 무슨 날일 줄이나 아니?"
"알지. 토요일."
결혼이라는 거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처음 하는 결혼 내가 뭘 알겠는
가? 산다는 것은 어짜피 배워 가며 사는 것. 둘이서 머리 맞대고 배워가며 오손
도손 살면 된다.
결혼식 대충 하면 안되나? 내가 뭘 안다고 말이야. 여자가 말이야, 아침부터 남
자 집에 와 노크도 없이 방에 떡 들어 와 단잠을 깨우는 이런 경우가 어디 있냐
말이다. 아이, 부끄러버라.
"나가요."
"왜?"
"옷 갈아 입어야지."
"세수는 안 하니?"
"해야지."
"이불 개어 놓고 방 청소 좀 하고 있을 테니 빨리 씻고 와."
"그걸 왜 누나가 해?"
"잘 보여야 될 거 아냐."
"그럼 깨끗이 치워 놔요."
하품을 하면서 거실로 나왔더니 거실에 두 모녀께서 날 빤히 쳐다 보며 앉아 있
다. 우리 집은 아침에 모닝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색다른 분위기다.
"엄마, 오빠 잡혀 살 것 같지?"
"당연히."
"아빠처럼 살아야 되는데..."
"니네 아빠도 잡혀 살아."
내가 동물원 원숭이냐, 뭘 그리 쳐다 보세요.
"엄마, 저 모습이 곧 장가 갈 사람으로 보여?"
"내 자식이지만 솔직히 불안하다."
"어머님, 이거 드세요."
머리까지 감고 욕실을 나왔더니 세 여자가 거실에 앉아 있다. 우리 집은 아침
에 저렇게 다과를 즐기지 않는다. 누나가 열심히 과일을 깎고 있고 두 모녀는 나
를 보다 누나에게 애처로운 눈 빛을 보이고 있다.
방에 들어 왔더니 음, 그런대로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 아직 장가 안갔
는데...
밥은 나혼자 먹었다. 다들 식사를 마쳤나 보다. 멋있는 연카키색 스웨터에 새
미 면바지를 입고 목도리를 했다. 거울을 보며 장장 십분간 머리를 매만지고 패
딩 조끼를 걸쳤다. 믿음직 스럽고 멋있다.
가뿐하게 방문을 열고 나갔다.
"쯔쯧!"
우리 엄마가 혀를 차셨다.
"다녀 오겠습니다."
"은정이 말 잘들어 임마."
으이쒸, 장가는 내가 가고 누나는 시집 오는건데... 약방에 내려가 아버지께도
인사를 드리고 누나 차에 탔다.
"꼭 오전에 가야 돼?"
"먼저 가 입어 봐야지. 정희도 오후엔 남편과 어디 간대."
"정희 누나가 온대요?"
"응."
"아줌마가 왜 온대요?"
"너 나 결혼해도 놀릴거야?"
"당연하쥐."
오늘 12월 6일. 내 결혼식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 옷 입어 보러 간다. 예쁘고
멋있는 옷.
아무리 나는 그냥 캐주얼이고 누나는 정장 차림이었다지만, 그래서 내가 좀 어
려 보였다지만. 에이, 웨딩 드레스 고르는 데 동생 데리고 가는 것 봤냐 씨. 이
웨딩샾 내 결혼하고 난 뒤 팍 망해 버려라씨. 날 빤히 옆에 세워 두고 남편 될
분은 안 오냐구?
"니가 자꾸 누나라 부르니까 그렇잖아."
"입에 익은 걸 어떡하냐. 그리고 이름 부르면 많이 컸다, 그러면서 씹퉁 됐잖
아."
"씹퉁? 너 말투 좀 고쳐. 이제 어른이야."
"저 여자 기분 나쁘네."
"나두."
결혼 예복 참 많았다. 카달록을 보니까 예쁜 여자도 참 많았다.
"철수야, 이거 어때?"
"괜찮네."
"이건?"
"그것도 괜찮네."
"야?"
"왜."
"니 신부 될 사람 입을 옷이다. 신경 좀 써."
"카달로그만 보고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
"직접 입어 봐요."
"그럴거야. 우리 신랑 건 어떤걸로 할까?"
"나야 뭐 아무거나 입어도 다 잘 어울리지."
"후후, 다리도 짧은 게."
"뭐어? 나이도 많은 게."
"이게."
"뭐? 예비 아줌마야."
카달로그에 있는 모델들이 참 예쁘다. 웨딩드레스 탓일까?
"이건 어때?"
"레이스가 너무 많다."
직접 옷을 보며 골라 보았다. 비슷비슷 한게 다 그거 같은데. 또 살펴보니 많
이 달랐다.
"은정씨, 이런 건 어때?"
"이건 너무 밋밋하잖아."
한 번도 입어 보지 못하고 시간 만 갔다.
"이건?"
"이렇게 레이스 없는 게 좋아?"
"백합 꽃 같지 않아? 금강 초롱 엎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이 걸로 입어 봐?"
"입어 봐요."
누나는 탈의실로 들어 가더니 나올 생각을 안했다.
누나가 탈의실에 가 있는 동안 정희 누나가 두리번 거리더니 웨딩 샾 안으로 들
어 왔다. 날 보더니 반갑게 웃는다. 당연히 아줌마는 총각에게 꿀리는 게 있다.
하하.
"철수야."
"어, 아줌마 왔네. 오랜 만이야.""
"너 혼자 있어?"
"누나는 옷 입으러 갔어요."
"그러니? 후후, 너 진짜 장가 가는 거야?"
"나도 좀 긴가 민가 해."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 혹시나 했는데 진짜 이런 일이..."
"그럴수도 있지 뭐. 하하! 누나는 잘 살고 있어요?"
"응."
"애는 안 낳아요?"
"조금 있다 가질려구."
"우리는 허니문 베이비 만들건디."
"치이. 벌써 그런 생각까지 했어?"
"응."
"하여튼 축하 해 박철수."
"말로만 그러지 말고 선물은 없어요?"
"오늘 내가 점심 살게."
"그러쇼."
에이쒸 우쒸, 왜 저리 예쁜겨. 누나가 수줍은 듯 하얀 천사의 모습으로 내 눈
안에 들어 왔다. 살포시 웃으며 속눈섭을 보이며 눈망울을 살포시 내리고 자기
를 봐 달라는 표정. 저 사람이 진짜 내 신부가 되어 내 옆에 설 사람인가? 땡 잡
았다.
"괜찮니?"
"가슴 쪽 노출이 조금 있네. 가위뼈가 보인다는 게..."
이 여자가 진짜. 아줌마가 뭘 안다고 그래. 예쁘기만 한데. 나는 침묵으로 감상
만 했다. 카달로그 한 쪽으로 던져 버렸다. 앞에 말 취소다. 카달로그에 예쁜 여
자들 하나도 없다. 울 마누라 될 사람 앞에선 명함도 못 내밀 것들이 어디 모델
이라고 말이야.
"철수야 침 닦아라."
"누나야?"
입을 실 닦고 정희 누나를 게슴치레 쳐다 보았다.
"왜."
"내가 누나 결혼예복 입은 것도 봤잖아."
"그래서?"
"누나는 쨉도 안된다."
"니 신부될 사람이니까 그렇지. 나도 예뻤어."
"누나가 예전에 한 말 있잖아."
"뭘?"
"은정이가 더 예쁘다구 직접 말했잖아."
"치."
"다시 수정한다."
"응?"
"앞으론 비교가 안되는 대상하곤 비교하지마."
"너무하네 너?"
"헤헤, 울 은정씨 너무 예쁘다. 하하."
사브작, 고운 옷소리를 내며 누나가 내 앞으로 다가 왔다. 자태가 차마 고와
라. 누나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차마 고와서 차라리 곱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이 들 정도로 누나가 아름다웠다. 푸헤헤, 저 사람이 내 마누라 될 사람이다. 뷰
티풀 월드다!
"어때?"
"다, 다른 것도 한 번 입어 봐요."
"그럴게. 예쁘지?"
"그런대로."
다른 예복 두 벌을 더 입어 봤다. 입고 나올 때마다 나는 입을 벌렸고 침을 흘
렸다. 정희 누나가 아예 손수건을 꺼내 내 턱 밑에 받치고 있었다. 오늘 만큼은
침흘리는 게 쪽팔리지 않다.
"어떤게 제일 나아?"
"다 천사 같은데, 처음 천사가 제일 낫다."
"후후, 어떻게 제법 예쁜 말 한다?"
"예쁘니까."
"아까는 그런대로라며?"
"경이로우면 표현을 까먹는거야."
"치, 그래 고마워."
"뭘, 내 신부 내가 예쁘다는데."
처음 것으로 하기로 했다.
내가 그렇게 좋은 말 해 주었는데...
"다리가 짧아 보이지?"
"그렇네."
"안되겠다. 다른 거 입어 보자."
아줌마하고 예비 아줌마하고 날 갖고 놀았다. 벌써 몇 번째여. 내가 보기엔 다
잘어울려 보이고 멋있거만. 나도 턱시도 입어 봤다. 상당히 멋있었다. 어려보이
지도 않았고 둔해 보이지도 않았다. 다리도 절대 짧아 보이지 않았다. 나도 반올
림하면 180이여.
"조금 퉁퉁해 보이지?"
"얘는 하얀색은 안되겠다."
"좀 그렇네."
"얘 생각보다 짜리몽탕하네."
"작은 키는 아닌데. 허리가 꽤 굵어 보이긴 해."
"배 나온 거 아냐?"
"그건 아니야. 근데 왜 작아 보일까?"
"그래, 은정이 니가 더 커보이겠다."
나는 거울 보며 만족하고 있는데 나이 많은 여자 둘이가 못마땅한 듯 날 모욕했
다.
은정이 누나가 그러는 것은 어짜피 지 남편 될 사람에게 하는 거니까 하늘에
침 뱉기지만 딴 남자랑 사는 아줌마가 내게 저런 말 하는 건 참기가 어렵다.
"이씨. 정희씨는 가. 지 남편도 별로더만..."
"너어?"
"후후, 솔직히 네 남편 보단 철수가 낫다."
그럼 당연하지. 배 나왔지. 다리 짧지. 꿔다 놓은 보릿자루도 아니고... 그러니
까 누나 정도도 아까워 보였지.
다른 걸로 갈아 입고 나왔다. 연주가 같다. 또 두 여자가 달라 붙어 험담하기
시작했다. 거울 속에 멋있는 남자 하나가 두 여자들 때문에 기가 죽어가고 있다.
"아가씨, 기단이 왜 이리 다 길어요?"
누나가 내 입고 있는 옷의 바지 밑을 만지작 거리다 점원 아가씨께 물었다.
"키 커 보이잖아요. 키 높이 구두신으면 맞을 걸요."
"얘는 그런대로 키가 큰 편인데..."
"요즘 신부들 다 휠 신고 들어 가잖아요. 남자들도 굽 높은 구두나 키높이 신
신어요. 180 되는 사람도 키 높이 구두 신는데요 뭘."
"그래요? 얘 이걸로 할래? 이게 개중에 제일 낫다."
이게 진짜.
"아가씨."
내가 물은 말이다.
"네?"
"남편 될 사람한테 얘라고 해도 되나요?"
"네? 호호, 요즘은 친구처럼 보이는 커플이 제법 많잖아요. 동갑내기들이 많아
요. 호호."
동갑내기 말해 놓고 왜 웃어 씨.
"이게 애취급 하는거지 친구 취급하는 걸로 보여요?"
"호호. 싫게 보이지는 않아요."
"어른들이 보면 안 그렇겠죠?"
"그건 그렇네요."
"은정씨. 누나도 말버릇 고쳐요."
"호호. 그래도 계속 누나라고 하네요?"
점원의 말을 듣고 누나가 어이가 없다는 듯 올려다 본다. 이 걸로 하죠. 불만이
냐?
그렇다. 나부터 말투를 고쳐야 겠다. 처음부터 연인사이였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나 너무 저 여자를 누나로 깍듯이 모시고 살았나 보다.
"야, 박철수 멋있다."
누나가 내 어깨를 툭툭 쳐주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칭찬 안해줘도
되니까 아까 씹지나 말지.
나는 빌리는 걸로 하고 누나는 샀다.
"이주 뒤에 오면 되죠?"
"네."
"그 다음 날 야외촬영할 거니까 꼭 그 날 부탁해요."
"염려 마세요."
점심 먹고 나서도 할 일이 많다. 우리 아버지가 독립 하랬다. 돈으로 달래니까
그렇게는 못하시겠다고 하셨다. 22평 아파트 하나를 장인어른께서 장만 해주셨
다. 그래도 아버지는 돈을 못 주시겠다 했다. 무슨 배짱이신지 모르겠다.
오늘 오후에 가구점에도 들려야 하고 용산 전자상가도 가야된다. 밥 빨리 먹어
야 된다.
아까 누나 웨딩 드레스 입은 걸 보고 머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 결
혼 예복 입은 모습을 보고 나도 이제 가볍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무언
가 책임감 같은 걸 느꼈다. 그 아름 다웠던 누나의 모습을 계속 아름답게 유지시
킬 수 있게 하려면 나도 삶을 더 책임지고 살아야 된다.
아줌마 됐다고 씨.
"정희 누나가 산다고 했어. 누나가 왜 내나."
앞으로 삶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살 것이다.
연하가 어때서 81회
피곤 했겠지요. 이리 저리 불려 다니고 보금 자리 꾸며야 했고 그리고 날 위해
또 뛰어 다녀야 했으니까요. 고맙네요.
조용한 기분으로 성탄절을 보냈습니다. 한 창 바빴기 때문에 그 날은 그냥 철수
와 단 둘이 조용히 있고 싶었습니다. 성탄절 기쁜 마음으로 사람들 많은 대학로
로 갔다가 둘 만 있고 싶어 율전으로 내려 갔었습니다. 새로 난 4호선의 지하철
보다는 다소 멀지만 겨울 풍경을 찻 장으로 감상할 수 있는 국철을 타기 위해 신
도림까지 갔었습니다. 전철 속에도 추억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
를 지켜주려 했던 그의 배려가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지금 졸음에 겨운 듯
한 쪽으로 고개를 기우리고 눈을 감고 있습니다. 휴일이라 전철안의 사람들이 적
었습니다. 그는 내 곁에 앉아 졸음을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저녁 빛이 물들고 사람들의 불 빛이 찻장 속에 그려 집니다. 기차의 바퀴소리
가 또한 정겹네요. 나는 율전으로 가는 동안 내 곁에서 졸고 있는 철수의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오래 전 일도 아니지만 그의 방에서 그와 마주 앉아 차 잔속에 이야기를 담던
것이 벌써 추억과 그리움이 되어 있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기 때문일까요.
곁에 있어도 그리움이 되는데 잊혀지다 떠오를 땐 그 느낌이 어땠을까요. 슬펐겠
지요.
"집에 안 갈거야?"
"우리 그냥 여기서 자자."
"이 여자가... 저 번처럼 그럴려구?"
"아니."
"헤헤, 그럼?"
"넌 바닥에서 난 침대에서."
"같이 자는게 아니구?"
"아직 결혼 전이다?"
"그래요? 그럼 집에 갑시다."
이거 못 믿을 녀석이네. 얼굴에 실망스럽다는 게 역력하네요.
"너 내일 학교 나가야 되지 않니?"
"나 장가 갈 때까지 연구실 땡이야."
"응? 너 장가 가니?"
내가 못마땅하냐? 눈초리가 뭐 그래.
"부조금이나 준비해요."
"얼마나? 신부될 사람 예뻐?"
"누나 보단 예쁘지."
"그럼 엄청 예쁘겠다. 혹시 천사 아니니?"
"아니, 봐줄만은 해."
"어쭈? 결혼식이 언젠대?"
"허허! 유치하게 놀고 싶냐?"
"응. 재밌는데."
"진지하게 묻겠는데..."
"물어 봐."
"결혼하면 나 뭐라고 부를거야?"
"철수."
"우쒸. 지아비가 무슨 친구냐."
"그럼 자기?"
"그건 좀 낯간지럽구."
"그럼 뭐?"
"서방님."
"하여튼 남자들이란... 넌 뭐라 부를건데?"
"많지. 누나, 은정씨, 여보야, 그리고..."
"그리고?"
"마누라."
그래 니 맘대로 하세요. 애 하나 키우는 걸로 하죠 뭐.
집에 가기 싫었습니다. 왠지 집에 가면 허전할 것 같았거든요. 철수와의 잠시
간 헤어짐이 허전한 것이 아니라 이제 떠나야 할 가족의 품이 허전하게 느껴질
것 같았습니다. 철수와 같이 있다면 집에서 뭐라 하지 않겠지요. 이제 결혼식 날
짜 보름 남았습니다. 오늘은 그 걸 잊고 예전의 한 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서방님? 오늘은 늦었으니 여기서 자고 갑시다."
"유혹하는 겁니까?"
"아니옵니다. 서방님은 땅바닥에서 주무세요."
"싫은데?"
"많이 컸다?"
"그래 보름만 참는다."
"후후. 뭘 참는데?"
뉘앙스가 아까부터 좀 그렇네요. 흑흑, 나도 곧 아줌마네요. 하지만 결혼에 대
한 회의는 아직 느끼지 못했습니다 철도 없었고 바빴기 때문에 그런 생각들 가
질 여유가 없었어요. 바쁘지 않았다면 많은 상념 속에 쌓일 뻔 했겠어요. 급하
게 일을 꾸미지 않았다면 회의를 느꼈을 수도 있었겠네요. 사랑한다면 오히려 정
신없이 후딱 헤치우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뭐해?"
"이불 깔잖아."
후후, 어떻게 변할 지 확신은 서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내 말을 잘 듣는군요.
그 날 밤 철수 방에서 만화책을 보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기분으로 인형 하
나 던져 주었습니다.
다음 날 오전에 서울로 올라 왔습니다. 내려 갈 땐 이런 느낌 들지 않았는데 연
속으로 이러니까 기분이 별로네요.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지요. 지하철 안, 좋아
하는 사람 곁에 두고 어떻게 잠을 잔답니까. 철수는 또 잠이 들었습니다. 이제
곧 같이 산다 이거지? 내 어깨까지 빌리고 태연하게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래,
오늘은 참지만 다음에도 이러면 내 가만히 안 있을거다.
4호선 안이었습니다.
아, 저런 걸 지아비라고 모시고, 아니다 참, 데리고 살아야 되다니... 철수는
전철 문 밖에서 두리번 거리다 불쌍한 표정으로 나를 떠나 보냅니다. 이별이 슬
픈 듯, 아쉬운 눈망울로 천천히 멀어지는 나를 보며 울상을 짓고 있습니다.
"너 바보지?"
"그렇다고 암 말 않고 보고만 있었냐."
"급작스레 뛰어 가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하하."
"웃지 마. 바보 같애."
"하하, 4호선이라 헛갈렸지."
"걱정된다 진짜. 도대체 무슨 생각한거야?"
"꿈 꿨지."
"내가 곁에 있는 거 생각 못했어?"
"내가 누나 꿈 꿨거든."
"응?"
"아쉬웠던 적이 있었지."
"뭐가?"
"나하고 전철 같이 타고 오다 누나가 어떤 놈 따라 몰래 내려 버리잖아."
"뭐야 너."
"아직 불안한 존잰가?"
"그럼, 나한테 잘해라."
"그러지. 근데 그 새끼가 왜 또 나타났지?"
"누구?"
"승주 그 새끼가 왜 내 꿈에 나타 났을까? 기분 나쁘네."
"에구, 이런 놈을 믿고 살아야 되는 내 팔자가..."
"누가 일찍 하재요?"
"이게? 물릴까 보다 씨."
"물려 봐."
"어?"
"농담으로도 그런 말은 하지 맙시다. 물린다는 말보단 잘 살아야지, 이런 말이
좋잖아."
"니가 먼저 그랬잖아."
"나는 한다는 것에는 토를 달지 않았어."
"나도 뭐."
바보같은 짓 해놓고 짐짓 심각한 표정이네요. 이제 물릴 수 없으니까 물린다는
농담을 할 수 있는거야.
철수는 내 어깨에 기대어 잘 자다 전철이 역에 정차하니까 눈을 떴습니다. 그리
고 갑자기 일어 나 문이 닫히기 전에 나가 버리더군요. 나는 놀랬습니다. 쟤가
왜 저러나 하고 궁금해 했어요. 나는 그런 철수 따라 내리려 일어 섰고 철수는
나를 보고 다시 타려 했지만 전철은 그냥 모른 척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문을
사이에 두고 철수와 난 마주보며 아쉬운 작별을 했었어요. 나 괜히 다음 역에 내
려야 했습니다. 철수는 잠결에, 국철에 익숙했던 탓이었겠죠, 철수는 아마도 역
이 지하였기 때문에 신도림을 지났다고 판단했나 봅니다. 앞 뒤 생각없이 그냥
내려 버렸습니다. 내가 곁에 있는지도 생각 못할 만큼 꿈에 취해있었어요. 내 꿈
이라 참는다. 안산선이 뚤렸지만 철수는 옛 추억이 있던 국철의 바깥 풍경을 기
억하고 있었나 봅니다. 바보 같은 놈.
"너 때문에 자리 뺏겼잖아."
"한치 앞도 알수 없는게 인생이야. 알겠어요?"
무슨 말 하는거야.
철수는 이틀 뒤 다시 학교로 내려 갔었어요. 함들고 올 놈들 섭외하러 간다고
학교로 내려 갔습니다.
"내가 바보 같은 놈들로 잘 섭외 할게."
"섭외 안해도 다 그런 놈들 뿐이잖아."
"어허! 어디 지아비 친구 분들을?"
"그래 봤자 내 후배잖아."
"그럼 고등학교 친구들로 한다?"
"니 맘대로 해."
"하여튼 말 잘 듣는 놈들로 할게."
"후후. 나도 오후에 한 번 가볼까?"
"안 바빠요?"
"몰라."
"그럼 시간 되면 내려 와요."
섭외는 무슨... 함은 키가 큰 승헌이가 질 것 같고 꼬장 부리는 역할은 아마도
낯이 두꺼운 동엽인가 걔가 하겠지요. 눈에 훤하다 짜식아.
오전에 어머님 따라 주단 보러 갔다 온 뒤론 조금 한가합니다. 피곤한 탓에 내
방에 누워 율전 내려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때마침 배선배에게서 연락이 왔
어요.
"논문 제출했다고 보기가 꽤 힘드네."
"저 바쁘잖아요."
"준비는 잘 되어가?"
"네."
"후회 안 해?"
"아니요."
"잘 살아."
"후후, 그럴게요."
"왜 웃어?"
"선배 말투가 꼭..."
"좋아하는 마음 있었어."
"후후, 그래요 그 말투에요."
"에구, 난 언제 노총각 신세 면해 보나?"
"학교에요?"
"아니, 이제 가 볼려구."
"그래요? 그럼 저 좀 데리고 가요."
"학교 오게?"
"학교는 못 들어 갈거에요."
"철수가 율전 있나 보네."
"네."
"알았어. 그 쪽 들렸다 가지 뭐."
"고마워요."
해 질 녘에 철수 방에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철수 방에는 철수를 포함 네 명
이 모여 있더군요. 두 녀석은 이름까지 아는 녀석이고 한 녀석은 좀 낯선 놈이었
어요.
함 배달 준비로 모였다는 녀석들은 소주 댓병 있죠? 그 걸 중앙에 놓고 옥신 각
신 하고 있더군요. 비암! 소주 병 안에는 비암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것 들이 진
짜.
저 번에 승헌이에게 들은 적이 있지요. 공돌이 녀석들 진짜... 나한테 먹인다
고 해 놓고선 저들끼리 먹고 얼굴이 빨개져 있었어요.
철수에게 두 번 감격했어요. 한 번은 그 뱀소주를 철수가 날 위해 친구들의 구
박에도 불구하고 들고 튀었다는 거죠. 어디다 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삼분의 이도
더 남은 그 뱀소주를 나에게 마시게 할 수는 없다며 분개하고선 갖다 버렸습니
다. 비암은 어디서 구했을까?
두번 째는 내가 좀 많이 감격 했어요.
저녁 8시경에 율전을 출발했습니다. 마침 배선배가 퇴근을 할 시간이라 배선배
신세를 좀 졌죠. 철수는 아직도 배선배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더군요. 쫌생이 녀
석이죠.
우리 사고 났었어요. 성남 부근이었나봐요.
차 안에서 배선배는 말이 많았어요. 난 배선배 바로 뒤에 앉았고 철수는 내 옆
에서 아까 먹은 술 탓인지 빨간 얼굴로 헤롱되고 있었죠. 난 철수 신경쓰랴 배선
배 말에 답하랴... 배 선배는 쉴세 없이 저와 철수에게 말을 걸더군요. 뭔가 재
밌다는 듯 배 선배는 우리 사이의 일들을 묻고 자기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깜
깜한 밤, 그렇게 배선배는 국도를 운전 해 오다 마주 오던 트럭의 헤드 라이트
에 놀라 차선을 벗어나는 우를 범했습니다. 불 빛에 놀라 헨들을 꺽지 못했죠.
다행히 천천한 속도 였고 주위에 장애물이 없어 큰 사고는 일어 나지 않았습니
다. 배선배가 몰던 차가 국도를 벗어나 비탈길을 불안하게 걸쳐서 달리더니 그대
로 논 두렁에 처 박혔습니다. 배선배가 베스트 드라이버였는지 아무도 다치지도
않았고 차도 그렇게 망가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차는 볼쌍스럽게 앞부분이 그대
로 논 두럼에 처박혀 뒷 꽁지를 들어 버렸습니다.
철수는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지만 전 하지 않고 있었거든요.
차가 한동안 흔들렸고 논두렁에 처박히면서 몸이 앞으로 기울어 졌지만 전 배선
배 쪽으로 밀려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짧은 찰라 철수는 날 꼭 껴안고 있었습니
다.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면 난 아마도 타박상 정도 상처를 입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죠. 철수의 마음이 중요했습니다. 어떻게 그 순간
날 껴안을 생각을 다 했을까? 철수는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내 허리와 내 한팔을
붙들어 날 보호하려 했었습니다. 그리고 난 철수 덕택에 몸이 앞으로 쏠려 가지
않았습니다.
견인차가 올 동안 철수와 난 배선배를 홀로 두고 택시를 잡아 탔죠. 미안해요.
아니다 배선배 때문에 처녀 귀신 될 뻔 했잖아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
"그 새끼 일부러 그랬을꺼야."
"응?"
"차가 앞으로 처 박히면 누나가 밀려 잘하면 자기에게로 후딱 디비져 떨어질 수
도 있을거다. 그런 꼴은 내 못 보지. 그런 식으로 한 번 안아 보려구? 그렇게는
안되지, 암! 내가 그 놈 수를 미리 읽었다고나 할까. 하하!"
에구, 그냥 나 보호하려는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일었다고 말하면 오죽이나 좋
을까. 그 생각 진짜 너 답다.
장가 가기 전에는 다시 내려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서울서 봐도 되는데 동엽
이가 거기 있다는 이유로 승헌이를 비롯 얼마 전에 제대한 공돌이자 아직 군발
이 티가 무성한 현구란 놈이랑 율전으로 가는 전철을 타게 되었다. 전철 안 셋
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이 새끼들이 날 아저씨라고 놀렸다. 부러우
면 부럽다고 하지. 아직 제대로 된 애인하나 없는 것들이...
"나 있어 임마."
"나도."
"승헌인 사자 머리 사귀고 있는 걸 알지만 넌 의외다?"
"사자 머리 아니라니까. 걔 머리 풀었어."
"한 번 사자머린 영원히 사자 머리다. 현구 너 군대 가기 전 솔로였잖아. 제대
한지도 얼마 안되었구..."
"송우 다방 백양이라고 있어. 제대했지만 편지 주고 받기로 했다."
"바보 같은 새끼. 같은 공돌이지만 너무한다 새꺄."
말 잘했다 승헌아.
"걔 예뻐 임마. 걔 때문에 내 말년이 편했어."
"걔가 너 기억할 줄 아냐? 걔들은 민간인 상대 안해. 오르지 못할 나무는 포기
해. 편지는 무슨... 에구 한심한 놈아."
승헌이는 그 말과 함께 현구의 등을 도닥거려 주었다. 현구는 진짜?라고 묻는
표정으로 불쌍하다. 이런 것들이 내 친구라니...
점심 시간이 지나고 동엽이가 내 방을 찾았다. 저 새끼 같은 원생으로서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진짜 의문이 드는 놈이다.
"그 뭐냐?"
"승헌이가 만들어 오랬어."
"뭔대?"
"피로연 때 쓸거야."
"응?"
"뱀 술. 뱀 잡으러 한 동안 다녔지. 겨울잠 자나? 안 보이길래, 이건 사서 넣은
거야."
미친놈, 모형 장난감 뱀을 소주병에다 담궈 놓으면 그게 뱀술이냐. 이것들이 진
짜. 내가 생각해도 이 것들 곧 25살 될 놈들 맞는지 의심이 든다. 처음엔 진짠
지 알고 몸 보신 할겸 마셨더니 그냥 소주였다. 비암? 젓가락으로 억지로 꺼내
봤더니 플라스틱 모형 뱀이었다.
"에이 몹쓸 새끼야. 너 또 대마초 폈지?"
"그 대마초 얘기 자꾸 하는데, 하나 사줘 봐라."
"이게 제 정신에 할 짓이냐?"
"뱀이 없는 걸 어떡 하냐 임마."
소주 한 잔씩 마셔가며 함 짊어질 사람은 승헌이, 흥정 할 사람은 동엽이, 그리
고 현구는 군발이 특유의 버티기 정신으로 어떤 유혹에도 참고 견디며 자기들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을 때 배째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대충 해라. 너무 뻐팅기면 나 너네 편들어 주지 못한다?"
"야, 학생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돈 버냐. 안 그냐 승헌아?"
"응. 이번에 성공하면 최신형 컴퓨터로 바꿔 볼까?"
"나는 복학 등록금을 마련해야지."
"나는 그 돈으로 철수 여행가는데 따라 갈까?"
이것들이 미쳤나.
연하가 어때서 82회
해가 바뀌었다. 새로운 한 해가 밝았다. 딩, 딩. 텔레비전에서 타종식 장면을
보여준다. 옛 기억이 떠 올라 웃어 보았다.
수희가 나를 보며 안됐다는 미소를 보여준다. 내가 측은하게 보인다며 라면을
끓여 주었다.
"고맙다."
"아디오스!"
"무슨 말이냐?"
"이제 총각 오빠는 어디서 보지? 화려했던 오빠의 청춘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
겠지?"
"나 화려하지 않았어. 불쌍했지."
"쯔쯧, 좋니? 일찍 아저씨 되는게 좋아?"
"응."
"우리 오빠지만..."
"뭐?"
"아니다. 나는 이만 잘테니까 오빠가 설거지 해. 오빠가 오늘은 우울해 할 줄
알았어. 의미있는 한 해가 가버렸는데... 저렇게 좋을까? 에구."
수희는 등을 보인 채 섰다가 고개를 흔들고 혼잣말을 하면서 내 방을 떠났다.
내 방에 혼자 앉아 라면을 먹었다. 밖은 어둠이지만 미래는 밝다. 하하. 내 년
에는 수희가 아닌 다른 여자가 라면을 끓여 줄 것이다. 설거지? 나 안하지. 내
가 왜 해.
반갑다. 1998.
어머니 멋 있습니까?
"가서 잘 해. 경망스럽게 굴지 말고, 어른들 말씀 잘 듣고 소란 피우지 마."
어머니는 아들의 옷 매무새를 봐 주며 걱정이시다. 뭐가 걱정일까?
"애들이 곧 올거에요."
"내 걔들에게는 따로 잘 말하마."
"그러세요. 경험이 없어서 뭘 모를거에요."
"너는 경험 있냐?"
"제가 제일 먼저 가는데 있을리 없죠."
"자랑이다 임마."
"그럼요. 저 태어나 처음으로 일등 하는 거 같애요."
"좋겠다. 좋겠다 짜식아."
"아니, 어머니. 그건 아버지 말투신데..."
"하여튼 가서 잘해."
"그러겠습니다. 그럼 소자 이만."
가자 함 받으러!
아버지께 들렸더니 금일봉을 주셨다. 오늘은 대충하고 내일이나 모레 시간 내
어 친구들 섭하지 않게 하라는 말씀이다. 걔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면
깜짝 놀라실텐데...
오후는 누나 집에서 다과상을 앞에 놓고 장인 어른의 말씀을 들으며 꿇어 앉아
있었다. 딸 데려가는 죄인? 그 것 때문에 꿇어 앉은 것이 아니다. 아버님이 어른
에게 술잔을 받을 때는 꿇어앉아 받아야 된다 하셨다. 한의사인 우리 아버지는
양주를 무척이나 좋아하시는데 양약을 취급하는 아버님은 약주로 집에서 담그는
고유 국산주를 좋아하셨다. 도자기 술 잔에 도자기 주전자에서 흘러 나오는 고
운 노란 빛의 국화주. 딱 한 잔만 마셨다. 한 잔 더 주셔도 되는데...
누나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가 말이야. 결혼이 장난이야 뭐야.
함 받는 날 신부 될 사람이 어딜 싸돌아 다니는 거냔 말이다. 아버님 인생 덕담
을 들으며 두 시간을 보냈다.
누나 집에는 남자가 아버님 뿐이었다. 처형 될 사람도 없었고 처남도 없었다.
내 친구들 뻐띵기면 무슨 수로 데려 올까?
밖이 어둠으로 내려 앉을 무렵 전화가 왔다. 동엽이다.
"야, 출발한다?"
"조심해서 들고 와."
"알았다. 봉투 많이 준비했냐?"
"나는 잘 모르지. 대충 해라, 내 맛있는 거 사줄게."
"대충은 임마."
"세 명 가지고 되겠냐?"
"충분하다. 우리는 배 짼다는 각오이기 때문에 괜찮다."
"그 여자 친구들 무서워. 진짜 배 짼다 말이다."
"열사가 되는 한이 있어도 우리는 요구사항을 관철 시킬테다."
"될까?"
누나는 친구들과 함께 저녁 먹을 시간에 집에 왔다. 다들 여자다. 혹시나 승
주, 아니면 배군을 데려 올 것도 같았는데 순전히 여자들 뿐이다. 미인계를 쓰려
나? 정희 누나도 지 남편은 어디 갔는지 혼자 왔다.
"오랜 만이야. 기집애 연락 좀 하고 살지."
"호호."
"안녕하세요. 지수와 친하다 들었어요."
"네."
모르는 사람도 데려 왔나 보네. 지수씨와 정희 아줌마는 누나 때문에 알게 된
사이니 서로 모르는 친구가 있을 수도 있다. 여자들 틈에서 나는 별말 못하고
저 들 노는 거 구경만 했다. 호호, 여자들 여섯이 모이니까 진짜 말 많고 별 것
도 아닌것에 많이 웃는다.
"저 송혜정이에요. 나 잘 모르겠죠."
"네? 네."
아까 정희 누나와 인사한 여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어떻게 아남.
"한 번 놀러 오지 그랬어요."
"네?"
"호호."
"혜정씨만 믿을게요."
키가 좀 크고 예쁘장한 그 여자에게 누나가 야릇한 미소로서 한 마디 하자 그
여자도 야릇한 눈 빛으로 고개를 끄덕거려 준다. 둘이 친구는 아닌가 보다. 저
누나는 지수씨와 친한 사이일 뿐인가 보다. 나랑 별 상관없는 여자가 내게 친한
척 한다는 건 내가 멋있기 때문이지. 하하. 그럼, 정장 빼 입고 왔는데...
아버님은 자리를 피해 약국으로 다시 가셨고 누나는 주방으로 왔다 갔다 하며
바빴다. 거실에는 아녀자들의 웃음과 소곤거림? 아니 졸라 떠드는 거에 가까운
재잘거림이 있었다. 나? 남자는 나 하나 뿐이었다. 거실 한 구석에 앉아 그녀들
의 대화에 안주가 되다가 눈치 봐서 실 누나 방으로 들어 가 버렸다. 침대에 누
워 천정을 보며 눈만 껌뻑 거렸다. 향기가 좋다. 내 침대 이불과는 차원이 틀리
다. 자주 들어 와 봤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지만 이 방은 왠지 내게 잦은 가슴 떨
림을 준다.
방에 있는데 누가 들어왔다. 내 마누라 될 사람이다.
"너 여기 있었니?"
"응."
"여자 침대에 그렇게 맘대로 누워도 되는거야?"
"자기는 안그랬나."
"거실에 가 있어."
"싫어. 여자들 모아 놓으니까 참 말이 많네."
"후후, 치. 남자들은 안 그렇니?"
"꽤 바쁜 척 하네?"
"너네 친구들하고 내 친구들 입이 몇이냐."
"누나 요리 잘 해? 자취할 때 보니 영 아닌거 같던데?"
"특별히 맛있는 거 안해 먹었잖아. 나중에 맛있는 거 많이 해 줄테니 감탄하지
나 마라."
"뭐 잘하는 데?"
"노코멘트."
장가가서도 내가 밥해 먹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너네 친구들 바보 맞지?"
"좀 그런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금방 전화 왔어. 근처 까진 왔는데 집을 못 찾겠대."
"그 녀석들 참. 내가 나갈까?"
"너랑 나는 집에 있어야지. 정희가 데리러 갔어."
"푸우!"
"너 거실에 가 있어."
"왜?"
"나 옷갈아 입어야 돼."
"갈아 입어."
"안나가?"
"이불 뒤집어 쓰고 있을게."
"서방님? 나가 주세요."
거실에 앉아 또 여자들의 안주거리가 됐다. 설버라.
잠시 후 정희 누나가 히죽 웃으며 돌아 왔다.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함성!
"함 사시오!"
자식들, 내 덕인줄 알아라. 그 나이에 그런 거 해 보겠냐. 친구 잘 만났는 줄
알아야 할텐데...
"왔다!"
여자들 일제히 일어 나더니 우르르 나간다. 정희 누나가 어머님께 봉투 몇 개
를 받더니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 녀석들 어디쯤 왔을까? 현관 쪽으로 나가 보
았다. 보이지 않는다.
한 복 입는건가? 내 마누라 될 사람은 단아한 한복으로 갈아 입고 거실로 나와
다소곳이 자리에 앉는다. 가슴 옷고름을 매만지며 청아한 미소를 머금고 나에게
손짓 한다. 현관에 서 있다 그 모습을 보았다. 헤, 그려 내 그대 옆으로 가 앉
아 주리라.
누나 옆에 앉아 녀석들을 기다렸다. 어머님은 나오셨다 웃으며 다시 주방으로
가셨고 아줌마는 현관에서 기웃거렸다.
많이 뻐팅기면 안되는데...
오분 만에 승헌이가 들어 와 나를 보며 머쩍게 웃는다.
"야, 너 어떻게 된거야?"
"응? 하하! 나이 많은 여자들 진짜 너무한다."
"승헌씨, 이리 와 앉아요."
에구, 완전 어린애 취급하면서 존칭은...
"함은?"
"현구가."
"넌 왜 들어 왔어?"
"누나, 우리 막내 누나 알아요?"
"나는 잘 몰라요. 그냥 우연히..."
"지수 누나와는 친해요?"
"고등학생일 때 단짝이었어요."
"그래요? 근데 왜 존댓말로..."
"내 모습이 양반댁 규수같지 않아요? 어떻게 후배라고 막 할 수 있겠어요."
푸헤! 누나 말하는게 웃기다. 그리고 세상 참 좁네.
"야! 아무리 누나를 만났다고 바로 들어 와?"
"나 많이 시달린다고 했지? 막내 누나가 젤 무서워."
"에구 한심한 놈아."
"이런 경우가 어딨냐? 함들고 온 사람 귀를 잡고 빨리 안 들어 와? 이러는 경우
가 어딨냐고!"
"나도 좀 황당하다. 다른 놈들은 잘 뻐팅기고 있냐?"
그 말과 동시에 밖이 북적거리더니 두 놈이 여자들 틈에 둘러 쌓여 현관문 앞
에 떡 들어섰다. 이상한 모습을 보았다. 동엽이는 현관문을 잡고 안 들어 오려
고 애를 쓰고 있고 함을 맨 현구가 그를 안으로 잡아 당기고 있었다.
"나는 못 가. 배신자들!"
"이쯤 하자 동엽아!"
"십분을 못 버티냐?"
정희 누나가 그 모습과 같이 들어 온다. 정희 누나는 나갈 때 들고 있던 봉투
를, 그러니까 몇 개 빠진 것 같지도 않다. 그대로 들고 나를 보며 웃는다. 내 친
구들 완전 초보였다. 하긴 아저씨가 한 명도 없으니 여자들에게 약할 수 밖에.
공돌이의 한계다.
등록금? 컴퓨터? 바보 같은 놈들, 그들은 참으로 쉽게 안으로 인도 되어졌다.
"현구 넌 왜 그래?"
"누나들이 다 예쁘잖아. 헤. 그리고 동아리 선배도 있더라. 내 어떻게 힘을 쓰
리."
동엽인 아직도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다.
"넌 그래도 꿋꿋했네?"
"승헌이와 현구에게 나 진짜 실망했다."
"너도 약대생 소개 시켜준다니까 솔깃 했잖아."
"나는 그래도 버텼다."
무슨 소리 하는거야. 도대체 함 들고 들어 오면서 무슨 흥정을 한 거야.
(약 오분전 은정이 집 앞.
정희와 은정이 연구실 후배 한 명은 동엽이와 쪼그려 앉아 흥정을 벌이고 있고
함을 맨 현구는 누나들에게 둘러 쌓여 헤헤 거리고 있다.
"너 이제 제대 했니?"
"그럼요. 누나는 졸업했죠?"
"응, 동아리 방에서 보다 여기서 보니까 신기하다."
"몇 년 만이야?"
"일 년 넘었다 그지?"
"하하, 안녕하세요. 정보공 93 안현구입니다."
현구는 누나들에게 둘러 쌓여 이리 저리 인사를 하고 있다. 쑥쓰러운 듯 머리
를 긁적이면서...
"여기 우리 학교 아닌 누나들도 있으니까 잘 보여."
"하하. 그러지요. 잘 부탁합니다."
"남주 동아리 후배야? 잘하면 은정이처럼..."
"무슨 소리야. 현구 너 그냥 들어 갈거지?"
"그럼요. 참, 누나 많이 예뻐졌네요."
"호호, 다음에 내가 저녁 한 번 살게."
한 편 그들과 조금 떨어져 쪼그리고 앉은 동엽이는
"95학번에 이 소라라고 알아요?"
"응, 나하고 친한 후배야."
"그래요? 걔 소개 시켜 줄 수 있어요?"
"걔가 점찍어 둔 애야?"
"네."
"혹시 짝사랑?"
"그건 알 거 없구요."
"걔가 누군데?"(정희)
"예쁘고 키 큰 애 있어요."
"걔 소개 시켜 줄 수 있냐구요?"
"근데 걔는 애인이 있는 걸로 아는데?"
"에?"
"다른 애 소개시켜 주면 안돼?"
"나 못들어 가!"
)
아무리 연하 남편이지만 분위기가 영 이상하다. 좁은 학교 탓일까? 학교 내 약
대 여학생들이 공대생의 관심을 많이 받았기 때문일까?
두 명을 제외하곤 모두들 내 친구들에게 반말이었다. 내 친구들은 꼬박 존댓말
이고... 이런 경우가 어딨냐. 뒤바꼈다. 시중도 내 친구들이 하고 있다.
음식상을 앞에 두고 내 친구들이랑 누나 친구들이랑 모여 앉아 재밌는 시간들
을 주고 받았다.
"네 친구는 벌써 이런데..."
"누나 걱정이나 해. 여기서 누나가 제일 딸린다."
"이 새끼가."
"욱!"
승헌이 막내 누나 진짜 무서웠다. 승헌이를 사정 없이 패 버렸다. 쯔쯧, 나이
많은 여자 조심하라더니 좀 이해가 간다. 은정씨는 부드러워, 걱정 마. 아니다,
예전 누나가 날 저런식으로 때린 적이 있다. 애인 했다가 그만하자 했을 때. 헤
헤, 그거야 뭐.
"누나도 나 때릴거야?"
"왜 때리니. 오손도손 잘 살아야지."
"그렇지. 하하."
처음엔 마주 앉아 있다가 어느새 섞여 버렸다.
"걔 진짜 애인 있대요?"
"응."
"안되는데..."
"내 다른 애 소개시켜 줄게."
"누나는 92에요?"
"응. 은정이 언니와 같은 연구실에 있어."
"간혹 놀러가도 될까요?"
"놀러 와. 밥 사줄까?"
"하하, 내가 철수같진 않죠. 밥은 제가 살테니까 누나는 간혹 영화를 보여 주던
지 차를 사주던지... 하하."
"그럴까? 근데 어쩌니 나 애인 있거든."
"우쒸!"
동엽이 녀석은 아무래도 노총각으로 늙을 것 같다. 예전 누나 꼬시는 법이라고
가르쳐 줄 때부터 조짐이 보이더니...
"누나는 졸업했죠?."
"응. 넌 올해 복학 할거니?"
"네. 누나 있을 때가 참 좋았는데."
"연락처 알려 줄테니까 연락 해."
"그러죠. 누나도 곧 시집 가겠네?"
"아직은. 나도 연하나 한 번 사귀어 볼까?"
"충성! 안 현 구"
"조용히 해 임마!"(동엽)
연하가 어때서 83회
하루 하루가 지나갔다. 철수와 은정인 결혼식 준비와 여행 준비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 바쁘세요?"
"어째 장가갈 놈은 넌데 내가 이렇게 바쁘냐?"
"원래 그런거에요."
"뭐야 이놈아."
"아버지는 한 번 해 보셨고 저는 처음이잖습니까.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일을 맡
아야죠."
"허허, 결혼식이 낼 모렌데 넌 어찌 그리 태평하냐?"
"모르니까요. 제가 할 일은 청첩장 돌리는 거 하고 결혼식날 출석만 잘하면 되
는 거 아니겠습니까."
"쯔쯧."
"당일에는 제 친구들이 또 도와줄거잖아요.
"참, 부조금 받을 놈들에겐 단단히 이야기 해 놓았냐?"
"그럼요. 공돌이들이 그런 단순한 일은 잘 해요."
"그래. 저쪽은 누가 한다던?"
"형제가 귀해서 아마 아버님 약국 약사들이 도울 거 같아요."
"흠, 너 걔한테 잘해라. 이런 너하고 살겠다는 용기가 가상하지 않니? 그리고
아닌 것 같아도 널 아주 대단케 생각해서야. 기대 꺾이지 않도록 잘 해."
"위하며 잘 살겠습니다."
"혼자 커서 어떤 때는 가여워 보이기도 해."
"감사합니다. 아버지."
"뭘?"
"누나 생각해 주시는게요."
"어구 이 놈아. 걔도 이제 한 식구야. 그리고 누나라고 그러지 마. 언제까지 그
럴래?"
"고치겠습니다."
"장가가면 달라져야 된다. 니 스스로 살 수 있어야 돼."
"네."
철수는 서류 같은 걸 펼쳐 놓고 뭘 적고 계시던 아버지 옆에 앉아 한 쪽으로 치
워논 약재를 매만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철수의 얼굴은 계속 헤헤, 거리고 있
었고 아버지는 아들이 아직은 불안해 보이는지 쯔쯧,거리고 계셨다.
결혼식 이틀 전 여행사의 예비소집이 있었다. 예비소집에 나온 사람들은 곧 여
행을 떠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얼굴이 모두 밝다.
여행 일정에 대한 공지와 출발 당일 모이는 장소를 통고 받은 사람들은 설렘으
로 가득찬 얼굴로 돌아 갈 준비를 했다.
"박철수씨, 홍은정씨는 잠깐 남았다 가세요."
안내원 한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
"당신 잘못한 거 있어요?"
"아니. 근데 왠 당신?"
둘은 모였던 일행들과 떨어져 안내원을 따라 갔다. 안내원은 서류를 살피면서
철수와 은정일 꼬아 보았다.
"같은 방으로 해 달라셨죠?"
철수는 헤헤, 웃고 은정인 고개를 끄덕거렸다.
"좌석도?"
"당연하죠."
철수가 헤헤 거리며 답을 했다.
"두 분 어떻게 되시는..."
"우리 떨어지면 안돼요. 죽을 때까지 붙어 살아야 되는데요."
은정이는 살포시 미소지으며 답을 하고 있는 철수를 쳐다 본다. 안내원은 다시
물었다.
"남 녀가 같은 방을 쓴다는 게... 일행들 시선이 곱지 않을텐데요."
"그런거 상관 없어요. 님도 오실래요?"
"네?"
"모레 우리 결혼식이거든요. 부조금 안 받을테니까 와요."
"두 분 그럼."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며 살아야 할 사이요."
"신혼 여행이세요?"
"그렇죠. 하니문 베이비 만들어야 되거든요? 같은 방을 꼭..."
철수는 신나게 답을 하다가 은정이의 제재를 받았다. 철수가 어디를 꼬집혔는
지 대답 중간에 말을 끊고 얼굴을 찌푸렸다. 은정이가 약간 무안하게 웃으며 안
내원을 바라 보았다.
"호호. 같은 방으로 잡아 주실 수 있죠?"
"그럴게요. 두 분 진짜?"
"마누..."
철수는 답을 하려다 은정이 눈치를 살피고 머뭇거렸다. 히죽 웃고 있는 그의 입
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염려가 되었는지 은정이가 답을 했다.
"맞아요. 우리 신혼 여행 가는 거에요."
"아앙, 하하, 좋아 보이네요. 티씨더러 특별히 신경 쓰라고 해야 겠어요."
"티씨가 남자여 여자여?"
철수는 또 꼬집혔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온 터라 철수는 머리 속에 많은 상상을 했다. 은정
이의 차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그의 머리 속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비행기
뜰 때 느낌이 어떨까? 처음 갈 곳이 영국인데 영국 여왕은 예쁜 딸이 몇이나 있
을까? 길 거리에서 뽀뽀해도 쯔쯧, 소리 안들을까? 해변을 나가보면 젖가슴을 자
랑하고 돌아 다니는 여자들이 실제로 존재할까? 그리고... 기타 등등.
"예비 마누라."
"한 가지로만 불러."
"우리가 처음 갈 곳이 런던이랬잖아."
"응."
"영국 놈들은 미국 놈들이랑 거의 같지?"
"뭐 비슷하겠지."
"우리 길 거리에서 뽀뽀 한 번 해 보자."
"으이그, 우리 서방님 언제 철들래?"
"해보자니까 씨."
"기회되면."
"헤헤. 기회야 만들면 되지 뭐. 그리고 곧아줌마?"
"야, 호칭 통일시켜."
"연습하는거야."
"무슨 연습?"
"누나 소리 안하기."
"치. 자연스럽게 바뀔거야."
"둘이 있을 땐 모르지만 어른들 앞에선 바로 바껴야 돼."
"지금 둘만 있어."
"연습하는 거라니까."
"그래, 서방님 맘대로 하세요."
"홍여사."
"이게 진짜."
"어허, 서방님보고 이거라니."
결혼식 전 날, 참으로 바쁜 날이었지만 바쁜 것은 양가 부모님들이었고 철수와
은정인 오히려 다른 날보다 한가했다.
결혼식 전 날 오후에 둘은 자신들이 결혼식을 올린 호텔의 커피숖에서 커피잔
을 기울리는 여유를 갖고 있었다.
"야, 호텔이 상당히 고급스럽네. 돈 많이 줬겠다."
"벌써 그런거 신경쓰니?"
은정인 호텔을 둘러 보는 철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런 건물 지을려면 얼마나 필요할까?"
"졌다."
"새댁은 결혼하고 나면 일 년동안은 나 먹여 살려야 되는데 앞으로 계획은?"
"잘살테니까 걱정 마."
"삶이 그리 만만한 줄 알아요? 나 일년 동안은 소위 밥만 축내는 놈이야. 누나
가 번 돈으로 생활해야 되는데 나 구박하지 않고 잘 살 자신 있어요?"
"구박안할테니까 공부나 열심히 해."
"그리고 올 한해 동안은 학생이니까 내 생활에 너무 간섭 말아요."
"뭘 간섭 말라는 거야?"
"혹시나 미팅 건수 들어 오면 나 나갑니다. 그리고 당구장 가는 것도 시비 걸
지 마요."
"그럼 나도 뭐. 예전에 찼던 남자들 만나고 돌아 다니고 학생 때처럼 배선배랑
드라이버도 가고..."
"쓰... 그건 안돼지. 누나는 나 신경 쓰야지."
"그런 법이 어딨냐?"
"나는 학생일 때 결혼 할 생각이 없었어. 그러니까 누나가 많은 부분 책임을 져
야 돼."
"치, 물린다?"
"이씨."
"미안, 그런 말은 하지 말랬지 참."
"해도 돼. 물릴 수 있으면 물려 봐. 내일이 결혼식인데 니가 무슨 수로 물릴
래?"
"너? 또 니가라고 했어."
"내가 결혼하고 나면 누나더러 존댓말 쓰라고 할 참이었어. 그건 내가 양보한
다. 하지만 이제부터 내게서 예전처럼 깍뜻한 존칭은 기대하지 마."
"허! 너도 별수 없구나."
"그래도 더 위하고 살테니까 걱정마요. 참, 학기 중엔 나 보러 자주 내려 와
요. 서울 갈 때 데리러도 와야 돼."
"알았어."
"그리고 보니 우리 주말 부부 되겠네."
"걱정마. 자주 내려 갈테니까."
"헤헤. 잘 삽시다."
"잘 살아야지. 근데 좀 걱정된다."
"걱정 거리는 나눕시다. 하하."
"내일 잘 해?"
"당연하지."
철수와 은정이는 저녁을 먹고 일찍 헤어졌다. 각자 자기 방에 누워 설렘과 두근
거림을 안고 잠을 청했다.
"여보세요? 나."
"누나도 잠 안와요?"
"응. 많이 긴장 돼."
"누구나 처음엔 다 그래."
"치, 꼭 해 본 것처럼 얘기한다?"
"다 이런 말 하더만. 내일 아침에 뭐 할거요?"
"미용실 가야지."
"내일 많이 예쁘겠네?"
"평상시는 안 예뻤니?"
"겸손할 줄도 좀 알아라."
"내일 드디어..."
"피로연 끝마치면 우린 바로... 헤헤."
"음흉하긴."
"마누라하고 같이 잔다는 생각이 음흉한 것이면 아휴 세상엔 전부 음흉한 놈들
뿐이네."
"그런 걸 티를 내니?"
"그럼. 내일 결혼식이야 대충 해도 돼. 난 첫날 밤이 중요하단 말이야."
"제대로나 할 수 있을까?"
"이 여자가 씨."
"기분이 좀 묘하다."
"나는 기분이 야한데."
"좀 진지하게 받아 들여."
"이런 기분일 때 진지해지면 더 가라앉아. 가볍게 웃어요. 웃어봐요."
"히..."
"좀 산뜻하게 웃어라. 살포시 미소짓듯..."
"보이니?"
"느낌이라는게 있잖아요. 여자가 무드가 없냐."
"..."
"미소 지었어요?"
"응."
"편안히 자고 내일 봅시다. 사랑해요."
"그래, 나도."
"하늘 땅 별 땅 만큼 사랑하니까 푹 자요."
"나도 하늘 땅 별 땅 만큼 사랑해."
"27살 먹은 여자가 참 유치하네요."
"씨."
"이제 그만 자요."
"응. 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