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체도 없는 바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너는 아느냐
인생이란 또한 어떤지
바람처럼 왔다 바람같이 가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 만유인력이
지남철에도 붙지 않는 사람과 만물을
지구에 발을 딛고 살도록 붙잡았지만
너의 의지대로 자유(自由)롭게 다닐 수 있게 했다
고기는 액체 속을 떠다니면서
만유인력에 보다 자유롭게 노닐며
새는 발목으로 만유인력을 박차고 올라
날개 짓하며 허공을 날아다니기도 하며
짐승은 네발로 땅 위를 힘껏 달려 보기도 하고
무거운 뇌를 가진 인간은 두발로 땅을 걷는다
나무는 뿌리로 땅을 깊게 얽어 맨 만큼
하늘을 향해 한 기둥을 솟구쳐 만유인력을 꿰뚫는다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세계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꽤 많이 존재한다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는 지구가 평평하지만
현실의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지구가 자전하면서 내는 엄청난 큰 소리가 있지만
우리의 귀는 너무 큰 소리라서 들을 수 없다
그리고 네가 디디고 있는 땅속에는
혈관을 흐르고 있는 피처럼
많은 물들이 수맥을 따라서 흐르고 있지만
흙으로 덮여 있어 그 기운을 감지할 수 없다
이러한 것들은 도의 작용(作用)으로서
도는 너무 커서 볼 수 없고
너무 큰 소리라서 들을 수 없고
잡을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 붙잡히지 않는다
또한 작고 가늘며 미세(微細)한 것이라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으며 잡을 수 없는 것이다
‘하늘의 형상은 형체가 없어 눈에 보이지 않고
너무 큰 소리인지라 귀에 들리지 않으며
도는 은미(隱微)하여 이름이 없는 것이다(41)’
따라서 노자께서는 도(道)에 대하여
‘보려고 하지만 보이지 않으니 이라 하고
들으려 하나 들리지 않으니 희라 하며
붙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미라 한다(14)’고 하셨다
말로 표현할 수 잇는 도가 아닌 것(非道可道)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므로
무엇으로 부르자니 도라고나 할까(25)’
그리고 이 ‘도(道)가 혼돈상태에 있다가
그 가운데 이루어진 것인 하나를 낳고
이 하나가 나누어져 하늘과 땅 둘을 낳았다(25, 42)’
하늘과 땅이 그 사이를 장구(長久)한 시간동안
‘공허(空虛)하게 함이 궁극에 이르고
정적(靜寂)을 독실(篤實)히 지키며(16)’
깊고 먼 시간이 흐른 후에
수중(水中)의 생물과 지상(地上)에 동·식물 등
‘만물이 두루 일어나 생동하는(16)’ 기운이 충만하였다
그때는 인간과 그들의 생각이 만들어 낸 하느님도
이 지구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기나긴 세월이 또 흘렀다
인간은 생각하는 힘에 의하여
우주와 만물에 두루 퍼져 있는
그들을 생동하게 하는 기운을
하늘의 은혜로 알아 공경하면서 제사 지내기를
지역에 따라 자신들의 문화와 관습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주재(主宰)하는 신(神)에 대해
상제(上帝)라 부처 또는 여호와 등
무수한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인간의 생각이 만들어 낸 신이 존재하기 전에도
‘짝도 없이 홀로 있어
영원히 변치 않는 존재(25)’로서
눈으로 볼 수도 귀로들을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것인
그것에 대해 노자께서
‘이 세 가지는 말로 구명할 수 없다
그래서 통틀어서 하나라고 한다(14)’고 하셨다
여기서 하나라고 하는 것은 도(道)를 가리킨 것인데
이 하나를 지키면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너와 나의 구별도 없으니 나를 잊은 경지가 될 것이고
자기(自己)를 고집하는 집착(執着)에서 벗어나면
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널리 포용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이 하나를 껴안아서
하늘 아래 모범이 된다(22)’
태양은 자신을 향하여 팔을 벌리는
사물에게 항상 빛을 내려보내고 있다
낮에는 모든 사물에게 밝음을 주고
지구가 자전하여 태양에게 등을 돌릴 때면
하늘과 땅을 밤은 어두운 색깔로 덮는다
그러나 낮에도 어둠은 자신의 그림자를 남겨두고
밤에 밝음은 거울 빛 달을 걸어둔다
원래 하늘과 땅이 나뉘어지기 전에는
밝음과 어둠은 혼돈(混沌)이라는 새장에
카나리아 새처럼 암수가 함께 있던 것이
세상에 나타나 단지 반대편에 서 있을 뿐
밝음은 생명을 풍성하게 하고
어둠은 만물에게 안식을 가져다주는 것이니
노자께서는 하늘의 도(道)는 ‘위라고 밝지도 않고
아래라 하여 어둡지도 않다(14)’고 하셨다
또한 우리가 낮 동안 밝음이라 부르던 장소가
밤이 되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듯이
낮은 어둠더러 숨어라하고
밤은 밝음더러 숨어라하며
낮과 밤이 ‘긴 노끈처럼 끊임없이 길게 이어져(14)’
순환하는 것이니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어두운 곳에서 밝음을 발견하고
밝음 가운데서도 어둠을 볼 수 있다면
밝음과 어둠이 함께 어우러진
도가 하나임을 알리라
이 도에 대해 노자께서는 일찍이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25)’고 하신 것으로
‘이름 붙일 수 없는 것(14)’이니
‘항상 없는 것으로 있는(1)’
도는 없는 것에서 나왔으므로(道生於無)
결국은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돌아간다(14)’
태양은 자신을 향하여 팔을 벌리는
사물에게 항상 빛을 내려보내고 있다
낮에는 모든 사물에게 밝음을 주고
지구가 자전하여 태양에게 등을 돌릴 때면
하늘과 땅을 밤은 어두운 색깔로 덮는다
그러나 낮에도 어둠은 자신의 그림자를 남겨두고
밤에 밝음은 거울 빛 달을 걸어둔다
원래 하늘과 땅이 나뉘어지기 전에는
밝음과 어둠은 혼돈(混沌)이라는 새장에
카나리아 새처럼 암수가 함께 있던 것이
세상에 나타나 단지 반대편에 서 있을 뿐
밝음은 생명을 풍성하게 하고
어둠은 만물에게 안식을 가져다주는 것이니
노자께서는 하늘의 도(道)는 ‘위라고 밝지도 않고
아래라 하여 어둡지도 않다(14)’고 하셨다
또한 우리가 낮 동안 밝음이라 부르던 장소가
밤이 되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듯이
낮은 어둠더러 숨어라하고
밤은 밝음더러 숨어라하며
낮과 밤이 ‘긴 노끈처럼 끊임없이 길게 이어져(14)’
순환하는 것이니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어두운 곳에서 밝음을 발견하고
밝음 가운데서도 어둠을 볼 수 있다면
밝음과 어둠이 함께 어우러진
도가 하나임을 알리라
이 도에 대해 노자께서는 일찍이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25)’고 하신 것으로
‘이름 붙일 수 없는 것(14)’이니
‘항상 없는 것으로 있는(1)’
도는 없는 것에서 나왔으므로(道生於無)
결국은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돌아간다(14)’
‘항상 없는 것으로 있는 도(1)’는
없다고 말하자니 바람과 공기같이 있고
있다고 하려니 ‘눈에 보이지도 귀로들을 수도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것(14)’이다
보이는 세계의 관점에서는
개미가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없고
겨우 발바닥 정도로 인식(認識)될 뿐이듯이
사람 또한 도(道)를 볼 수 없으므로
우선 눈을 들어 볼 수 있는 인식의 범위 내에서
깊고 먼 하늘을 주재하는 신(神)인
상제(上帝)나 하느님 등으로 표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인(聖人) 노자께서 감지한 이러한 세계가
어느 날 하늘에서 비밀스럽게 내려왔을 때
생전(生前)에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것으로
‘나는 그것의 이름을 모르겠고(25)’
조상으로부터 전해들은 상제도 아니며
그러한 ‘상제보다 먼저 있은 것(4)’으로서
‘그것은 모양 없는 모양이고
사물이 없는 형상이라 하며
이것을 일러 황홀하여(14)’어리둥절하다고 하셨다
인생이 무엇인가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인생은 동그라미라고 대답한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런데 사람은 자기 인생의 동그라미가
얼마만한 크기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생명주기(生命週期)를 동전으로 표현하면
50원 짜리 인지 100원 짜리 인지 500원 짜리 인지를
그와 마찬가지로 도(道)는
‘지금부터 태고의 옛날까지
그 이름은 사라지지 않는 것(21)’이나
개미의 눈으로는 사람을
머리에서 발끝가지를 볼 수 없듯이
‘앞으로 가서 보나 머리를 볼 수 없고
뒤를 따라가 봐도 꼬리가 보이지 않는다(14)’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사라지지 않는 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래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노자께서는 현상에 펼쳐진 도의 이치를 깨달아
‘지금 있는 것을 다스리면
능히 태고의 비롯됨을 알 수 있는 바
이것으로 도를 알 수 있는 실마리로 삼을 수 있다(14)’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