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시마는 부산과 불과 50㎞밖에 떨어지지 않은 섬이다. 그러나 일본 본토와는 150㎞나 떨어진 일본의 낙도다. 당시 4만을 헤아리던 섬사람들에게는 별 구경거리가 없었다. 이런 곳의 행렬에 구경꾼의 운집은 당연한 것도 같았다.
까마득한 옛날에는 이곳 사람들은 부산에서 양곡을 구해다 먹었다. 일제 때는 더러 부산에 와서 살기도 했다. 지금은 일본 본토에서 비행기가 날아오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급한 환자가 생기면 부산의 병원을 이용하는 것이 빠르고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곳 사람들이 부산에 호감을 갖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맑은 날 밤이면 건너다 보이는 부산의 은하수 같은 불빛이 선망의 도시 부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무료함을 달래주고 번영을 꿈꿀 수 있는 길은 부산과의 교류가 아니었겠는가.
그런 생각들이 모여 만들어 낸 것이 20여 년 전에 시작된 이 섬 최대의 축제 '아리랑 마쓰리'였다. 조선통신사 행렬은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다. 한국의 춤과 노래뿐 아니라 각종 문화가 함께 상륙하는 이 화려한 통신사 행사는 자연스럽게 역사문화가 관광자원이 된 성공 사례가 되었다.
이제 이 행사는 한·일 간에 널리 알려진 명물 축제다. 옛날 조선통신사가 평화와 문화를 복음처럼 전하며 지나갔던 일본의 고을고을은 요즘 다투듯이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하고 있다.
현재는 인구 3만5000명 정도로 줄어든 이곳을 작년에는 8만명의 한국 관광객이 찾았다. 이 가운데서 피크를 이룬 것은 역시 아리랑 축제 때이다. 어찌 이곳 사람들이 관광객을 함부로 다루겠는가.
목적이야 어떻든, 평화시대를 구가하며 문화 수출의 창구 역할을 해 온 한국에 대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던 이 작은 항구도시에서 이변이 생겼다.
부산 사람들은 쾌속정을 타고 3시간 동안만 갈매기 구경을 하면 상륙할 수 있는 이국 정취의 이즈하라항, 술값도 싸고 생선회도 좋기에 관광객과 낚시꾼이 꾸역꾸역 몰려드는 이 항구의 한쪽에 있는 레스토랑에 '한국인 출입 금지'가 나붙은 것이다.
이 레스토랑에서 얼마 전 한국인에 의한 폭행사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 사람을 상대로는 영업하지 않으니 한국 사람은 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벽보가 나붙은 게 제법 되었다고 한다.
나는 지난 3월 20일까지 문화조사를 비롯해서 이런저런 일 때문에 쓰시마를 54번이나 갔다 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반한적 경고문 같은 것은 옛날에는 본 적이 없다.
일망무제의 푸른 바다. 폐 속까지 깨끗하게 청소해주는 청정 공기, 좁은 길가에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쳐 있는 스기나무. 별다르게 요란한 관광시설이 없어도 현대화, 산업화에 찌든 우리에게 쓰시마는 자연 그 자체가 최고의 관광시설이 되어주고 있다.
거기에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조선통신사 역사까지 사실대로 재현하고 있는 이 항구를 찾아와서 싸움질을 하다니.
낚시꾼이라면 봉투 껍질을 바다에다 아무렇게나 버리지 않나, 심지어 용변을 보고 뒤처리를 하지 않아 파리떼가 웅웅거려도 관광객이라는 이유 때문에 현지 주민들은 잘 참아 줬다.
비록 한 곳에 불과하지만, 폭행사건에 성난 주민이 생업이 걸린 영업장에 한국고객의 출입을 금지시키다니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화가 났으면 돈 보태주려고 오는 한국 사람의 출입을 막겠는가. 어처구니없는 한국인 출입금지 경고문을 보면서 우리가 아직은 선진국이니, 세계인이니 하는 말을 쓰기는 이르다는 생각을 하니 씁쓰레한 감정을 다독일 수가 없었다. ▣ 4/1일자조선일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