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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大秦)과 진(秦), 그리고 진한(秦韓) [1편]
2020년 05월 09일
○ 대진(大秦)을 가리켜 오늘날의 “로마(Rome)”라고 설명(說明)한다. 이게 맞는 말일까? 옛 조선왕조(朝鮮王朝)의 한 일원(一員)이었던 ‘신라(新羅)의 선대(先代)나라였다’는 ‘진한(秦韓)’과는 관련(關聯)이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또 삼국지(三國志) ‘위략(魏略) 서융(西戎)’편에 말하는, 안식(安息)의 속국(屬國)이었고, 대진(大秦)과 접(接)해 있었다는 “사라국(斯羅國)”과 신라(新羅)의 전신(前身)이었다는 “사라국(斯羅國)”과는 연관(聯關)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魏略西戎傳曰:斯羅國屬安息,與大秦接也.】
「“안식(安息)이니 파사(波斯)”니 하는 옛 나라들은, 오늘날의 “페르시아 만(Persian Gulf)” 북(北)쪽에 있던 나라들」이라고 설명(說明)한다. 그렇다면 로마(Rome)가 “대진(大秦)”이란 설명(說明)은 오류(誤謬)다. 동(東)로마(Rome)제국(帝國)인 ‘이스탄불(Istanbul)=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을 지칭(指稱)한다고 보아진다.
◆ 실크로드 (지도 출처 : 나무위키)
로마(Rome)제국(帝國) : 《설화에 의하면 테베레 강에 두 아이(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버려졌는데 이들은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다. 두 형제는 다툼으로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이고 로물루스는 세력을 넓혀 약 3000여 명의 주민으로 로마(Roma)라는 작은 도시국가를 건설한다.[네이버 지식백과] 로마제국 [Roman Empire] (두산백과)》에 의하면 :
➨ 로마(Rome)제국(帝國)의 설화(說話)를 보면 : 〈돌궐(突厥) 신화(神話)와 같고, 단군신화(檀君神話)와 같다. 이러한 짜깁기는 곧 로마제국(Rome, 帝國)의 역사(歷史)란, 후세(後世)인들의 가필(加筆)로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것을 입증(立證)하는 것이다.
(1) 중국어(中國語) 위키백과 / ‘古羅馬’편을 보면 :
《羅馬,古名大秦,又名犁鞬,又名拂菻,中略.國內有松柏諸木百草.人俗力田作,多種樹蠶桑. : 라마(羅馬), 고명(古名)이 대진(大秦)인데, 또 리건(犂鞬)이며, 또 불름(拂菻)이라고도 한다. 중략(中略). 그 나라에는 소나무(松), 측백(柏)등 여러 나무와 여러 풀이 있으며, 사람들은 예부터 밭 갈기에 힘쓰고, 많은 종류의 수목과 잠상(蠶桑)이 있다. 其一西方天下,人民皆長大平正,有類中國,故古謂之大秦. : 그 땅은 서방(西方)의 천하(天下)이고, 인민(人民)은 장대하며, 평정한데, 중국(中國)과 비견됨이 있어, 예부터 대진(大秦)이라고 하였다.》其薨後數世,國二分,時盟時戰,西帝國終亡於蠻狄之手,永恒之城羅馬數遭兵革,財物盡去.東帝國仗其城堅,且屢有明君,得延祚千年. : 그가 죽고 나서 수세(數世)뒤에, 나라가 둘로 나누어져, 때로는 모이고, 때로는 싸웠다. 서(西)제국(帝國)이 만적(蠻狄)의 손에 종말(終末)을 맞았다. 끝없이 오래 이어온 성(城) ‘라마(羅馬)’는 여러 병혁(兵革)을 만나고, 재물(財物)이 다하고 떠나갔다. 동(東)제국(帝國)은, 그 성(城)의 견고(堅固)함에 의지하였고, 또 여러 명군(明君)이 있어, 천년(千年)의 복을 이끌어 얻었다.》고 하였다. 또
(2)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비잔티움 제국 :
《교역은 제국의 경제 기반이었다. 섬유는 최요한 수출품이었을 텐데 특히 “비단”은 이집트에 수출됐고 불가리아나 서방에서도 유통되었다.》라고 하였다.
○ 위에서 인용(引用)한 “위키백과” (1)+(2) 를 보면 : 모두 양잠(養蠶)에 대한 기록(記錄)이 있다. 《누에(蠶)를 칠 수 있는 많은 종류의 뽕나무가 있다. 또는 ‘많은 수목(樹木)있고, 뽕나무를 길러 양잠(養蠶)을 한다.’ : 多 種 樹 蠶 桑》고 하였고, 또 한글판에서도,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특히 “비단”은 이집트에 수출됐고, 불가리아나 서방(西方)에서도 유통되었다.》라고 하였다.
비잔틴제국(Byzantine帝國)【동(東) 로마제국(Rome帝國)】에서도 양잠(養蠶)이 성행(盛行)되고 있었고, 인접(隣接)나라에 까지 수출되고 있었다고 하니, 당시(當時)에 양잠산업(養蠶産業)은 매우 발달했었다고 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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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Rome)제국(帝國)”【비잔틴제국(Byzantine帝國) 포함(包含)】은, 당시(當時) 양잠산업(養蠶産業)이 발달(發達)했었다고 보아지는데, 여기서 의문(疑問)은, 그렇다면 “비단길(Silk Road)이란 무엇이냐?” 하는 의구심(疑懼心)이다. 이러한 설명(說明)대로라면, 비단길(Silk Road)이란 말은, 사기(詐欺)요, 역사조작(歷史造作)이다.
왜냐하면, 비단길(Silk Road)이라고 이름 붙여진 까닭은? 바로 이 길을 통(通)해 중국(中國)의 많은 비단(緋緞)이 ‘서융(西戎)=서이(西夷)’ 즉(卽) 로마(Rome) 땅으로 들어와 로마(Rome)인들이 그 비단(緋緞)으로 온 몸을 감고 다녔다는 것으로부터 출발(出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로마(Rome)제국(帝國)”은, 지들 땅에서 많은 양잠산업(養蠶産業)이 발달(發達)했고, 이를 다른 나라(他國)들과 교역(交易)했다면, 그 먼 “2만5천리”를 넘나들며, 죽음의 사막지대(沙漠地帶)에서 생사(生死)를 넘나드는 교역(交易)은, 불필요(不必要)했었다는 거다. 도대체 “대진(大秦)”의 정체(正體)는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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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잠(養蠶)에 대한 이해(理解) 1
(3) 뽕나무【한자어로는 상(桑)이라고 하며, 학명은 Morus alba L. 이다】 / 세상을 바꾼 나무 / 중국의 명품 비단과 동서 교류 : “뽕나무와 실크로드” <인용(引用)>
중국에서 만든 비단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명품이었다. 그래서 비단은 일찍부터 수출되었는데, 진(秦)나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비단의 수출 지역과 우수성은 로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국에 가 본 적도 없고, 중국인을 본 적도 없는 로마인들은 비단으로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중국인을 비단 만드는 사람을 의미하는 ‘세레스(Seres)’, 중국은 비단을 만드는 나라를 의미하는 ‘세리카(Serica)’라 불렀다.
중국의 비단이 로마까지 간 길을 흔히 ‘비단길’이라 부른다. 비단길은 동서 교류의 고속도로였던 셈이다. 비단길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난트 폰 리히트호펜’였다. 카를스루에서 태어난 ‘리히트호펜’은 1860~1872년 동안 극동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스리랑카, 타이완, 필리핀, 일본 등지를 방문했다. 그리고 1868~1872년 동안 중국과 티베트의 지질을 조사했다. 중략(中略).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지만, 중략(中略). 로마까지 도착한 비단은 과연 누가 소비했을까? 비단은 지금도 높은 가격에 팔리지만, 고대사회에서는 지금보다 한층 높은 가격에 팔렸다. 그래서 주요 소비자는 지배층일 수밖에 없었다. 로마에서는 황제를 비롯한 귀족들이 비단의 주요 소비자였다. 중략(中略). 그래서 로마에 도착한 비단은 아마와 면을 섞어 재탄생하면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투니카, 즉 로마 시대의 속두루마기는 중국산 비단으로 만든 상징적인 옷이다. ‘칼리굴라’는 비단옷을 입은 최초의 황제였다. 황제가 비단 옷을 입으면 신하들도 입을 수밖에 없다. 이제 비단은 옷뿐 아니라 실내장식에서도 무늬 있는 비단인 능라(綾羅)가 널리 유행했다. 특히 자수 비단은 로마 귀족들이 아주 선호했다. 그 중에서도 금실 자수를 좋아했다. 중략(中略).
로마의 귀족층은 중국산 비단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사교를 즐겼다. 흔히 역사학자들은 로마의 쇠퇴에 귀족층의 사치를 거론한다. 그런데 로마 귀족층의 사치품 중 중국산 비단은 앞줄에 위치한다. 중국산 비단으로 만든 옷의 유행은 그만큼 귀족층의 수입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中略). 결국 중국의 비단은 로마 상류층의 생활습관을 바꾸어 놓았을 뿐 아니라, 로마사의 평가에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중국에서 비단은 단순히 옷감이 아니라 화폐이기도 했다. 뽕나무의 잎을 먹고 자란 누에가 ‘창조한’ 비단은 단순히 옷감이 아니다. 중국에서 비단은 화폐이기도 했다. 그래서 중세시대에는 국가에서 토지를 나누어 주는 균전제(均田制)를 실시하면서 뽕나무를 강제로 심도록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처럼 뽕나무를 중시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박혁거세는 누에치기를 권장했다. 조선시대의 법전인 ‘경제육전(經濟六典)’에 따르면 큰 집에는 뽕나무 300그루, 중간쯤의 집에는 뽕나무 200그루, 제일 작은 집에는 뽕나무 100그루를 심도록 했다. 만약 규정대로 심지 않으면 그 지역의 수령을 파면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중국의 명품 비단과 동서 교류 (세상을 바꾼 나무, 2011. 6. 30. 강판권) -인용(引用)/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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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인용(引用)한 (3)의 글을 보면 : 〈당시(當時)의 “로마(Rome帝國)”나 “동로마제국(東Rome帝國)”에서는 양잠산업(養蠶産業)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중국(中國)에서 들여온 비단(緋緞)을 재(再) 가공(加工)하여, 가볍게 만들어 입는 것을 선호(選好)했다고 한다.
어쨌든, 〈당시(當時)의 “로마(Rome帝國)”나 “동로마제국(東Rome帝國)”에서는 양잠산업(養蠶産業)은 전무(全無)했다.〉는 것인데… …“고전(古典) 원전(原典)”에서는 “잠상(蠶桑) 곧 누에와 뽕나무가 많았다”고 기록(記錄)하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설명(說明)할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누에(蠶)와 뽕나무(桑)가 많았다〉는 것은 곧 “양잠산업(養蠶産業)이 크게 번성(繁盛)했다.”는 말과 같다.
‘위키백과’ 등에서 말하는 ‘잠상(蠶桑)’에 대한 이야기는, 옛 기록(記錄)을 참고(參考)한 것일 게다. 도대체 무엇이 올바른 설명(說明)일까? 위의 원전(原典)이야기대로라면, “중국(中國)의 비단(緋緞)은 로마(Rome)로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독일(獨逸)의 지리학자(地理學者) ‘페르난트 폰 리히트호펜’은, “비단길(Silk Road)”이란 말로 총칭(總稱)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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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잠(養蠶)에 대한 이해(理解) 2
○ 뽕나무(桑) : 원산지는 온대·아열대 지방이며 세계에 30여 종이 있다고 한다.
누에(蠶)는 : 한자어로는 잠(蠶)·천충(天蟲)·마두랑(馬頭娘)이라 하였다. 누에는 오래 전부터 길러왔기 때문에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를 묘(imagefont), 아직 검은 털을 벗지 못한 새끼를 의자(蟻子), 세 번째 잠자는 것을 삼유(三幼), 27일 된 것을 잠로(蠶老), 늙은 것을 홍잠(紅蠶), 번데기를 용(蛹), 성체를 아(蛾), 고치를 견(繭), 누에똥을 잠사(蠶砂)라 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 누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➊ 두산백과 / 양잠(養蠶 : sericulture) : 《누에를 사육(飼育)하여 고치를 생산하는 일. 누에가 사육되기 시작한 연대와 장소는 확실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처음 시작된 곳은 기후가 온난하고 뽕나무가 잘 자라는 ‘아시아 중앙부’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BC 770~BC 221년인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까지에는 이미 화베이[華北] 지방에 퍼져 있었다. 그러나 당시 중국에서는 뽕나무·누에씨·명주를 나라 밖으로 반출하는 것이 금지되었으므로, 중국 이외에서는 거의 실시되지 않았다. 이것이 인도·이란을 거쳐 유럽에 전해진 것은 BC 200년경으로 추정된다. 한서지리지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양잠이 시작된 시기는 고조선(古朝鮮) 시대로 기록되어있고, 삼한과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양잠이 더욱 발전되고 장려되었다. 중략(中略). [네이버 지식백과] 양잠 [sericulture, 養蠶] (두산백과)》
➋ 양잠업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양잠업(養蠶業, Sericulture)의 역사는 오래되었고, 중국으로부터 다른 나라로 전해졌다고 추측된다. 양잠업은 지금도 여전히 중국, 한국, 일본, 인도, 브라질, 러시아, 이태리,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에서 중요한 제품 중의 하나이다. 오늘날에는 중국과 인도 이 두 나라가 주요 생산국이며, 전 세계 생산량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누에를 키워서 양잠을 한 것은 양사오 문화기인 기원전 5000년에서 기원전 10000년에 이르지만, 실크제품의 발견은 기원전 27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의 고서 ‘잠경(蠶經)’에는 “황제비 서릉씨가 누에키우는 것을 시작했다.(黃帝王妃西陵氏始蠶)”라는 기록이 있어, 기원전 2650년경에 누에치기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원후 1세기 초기에는 서역의 호탄에까지 이르렀으며, 약 300년경에 인도로 전파되었다. 유럽과 지중해, 그리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확산된 것은 그 이후이다. 한서(漢書)의 기록에서는 "기자(箕子)가 조선으로 와서 백성들에게 예와 전잠을 가르쳤다(漢書,地理地,卷028下,燕條,箕子去之朝鮮,教其民以禮義,田蠶織作)라 하였는데, 이는 은나라 말기인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였던 기원전 1170년경이다. (인용 / 끝).》
○ 뽕나무(桑)는,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가 원산지(原産地)일 가능성(可能性)이 많다고 보아지는데, 양잠(養蠶)은 중국(中國)에서 먼저 시작(始作)되었다?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논자(論者)들의 설명(說明)대로라면 : 뽕나무의 원산지(原産地)나 양잠의 시원지(始源地)는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로 추정(推定)되나, 「양잠(養蠶)은 중국(中國)에서 시작(始作)되었으며, 기원전(紀元前) 200년 전(前) 쯤에 구라파(歐羅巴)에 전해졌을 것이다.」라고 유추(類推)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 양잠(養蠶)의 근원(根源)인 뽕나무(桑)와 누에(蠶)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지방이었다면, “그곳이 양잠(養蠶)의 시원지일 것이다.”라고 추정(推定)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닐까? 또 “양잠(養蠶)이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에서 먼저 시작(始作)되었으나, 중국(中國)으로 건너가 발전(發展)된 것이 아닐까”하는 것이 올바른 이해(理解)일 것 같다. 어찌됐든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지방(地方)에서도 양잠(養蠶)산업(産業)이 많이 이루어졌다는 것에는 이의(異義)가 없다. 왜냐하면 옛 기록(記錄)도 “그렇다”고 했으니 말이다.
양잠산업(養蠶産業)이 대규모(大規模)로 이루어진 곳에서, 대량(大量)으로 비단(緋緞)을 수입(輸入)했다는 말은, 당시(當時)의 사회상(社會相)으로 볼 때, 이해불가(理解不可)한 이야기다. 따라서 실크로드(Silk Road)란 말 대신에, “무역로(貿易路 : 트레이드 로드(trade Road)”로 바뀌어야 옳은 것이 아닐까!
● 그런데 여기서 나라이름(國名)이 “잠상(蠶桑)”과 직접(直接) 관련(關聯)되는 나라가 신라(新羅)다.
유양잡조전집속집(酉陽雜俎前集續集) 券 一, 支諾皐 上, 本文 中 : 《新羅國有第一貴族金哥其逺祖名旁㐌有弟一人,甚有家財其兄旁㐌因分居乞衣食國人有與其隙地一畆乃求蠶榖種於弟弟蒸而與之㐌不知也.至蠶時有一蠶生焉日長寸餘居旬大如牛食數樹葉不足其弟知之伺間殺其蠶經日四方百里内蠶飛集其家國人謂之巨蠶意其蠶之王也.中略.》라고 하였으니, 신라(新羅)의 선대(先代) 나라이름 중에서 “비집기국(飛集其國)-유잠국(有蠶國)”이란 나라이름은, 모두가 잠상(蠶桑)과 직접(直接) 관련(關聯)되는 것들이다. - [2편]으로 계속(繼續) -
2020년 05월 09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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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상적인 클릭이 아닌 것 같습니다.
글을 올린지 얼마되지 않아서부터 클릭수가 현저하게 증가하는 것을 보았는데......!
정상적인 하루가 되길 희망합니다.
정상적인 클릭 일수 있습니다.
퍼나르기 가능 합니다.
대륙조선사 문제점이,
회원들이 홍보 엄청 안한다란 것이지요.
지 혼자만 알겟다란,못된 자들이 많은데~
홍보들 하시면 좋겟네요.
문무대륙사 카페 회원님들~
@자오지천자 싸이비 증산도인 종교도 아닌데,반도식민사관에 쪄든 자들에게 비난 받는게 그게 문제가 될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