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스타의 '킬러'로 떠오른 김남일과
'천재 플레이메이커' 프란체스코 토티
이탈리아축구의 기본 공격 스타일은
수비라인에서 길게 연결되는 역습 패스를
최전방 스트라이커들이 ‘적진에 홀로 선 장수처럼’
개인 능력으로 돌파해 골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탈리아가 90분 내내 미드필드를 포기한 것처럼
경기를 하지만 최강의 지위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카테나치오(빗장수비)’ 못지않게
탁월한 공격수들의 능력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거꾸로 보면 공격수들의 발이
단단히 묶였을 경우
후방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연결된다.
18일 2002월드컵축구 8강 진출을 다투는
이탈리아의 ‘중원 지휘자’
프란체스코 토티(26·AS로마)와
한국 팀 제1의 ‘전담 수비수’
김남일(25·전남 드래곤즈)의
맞대결에 세계 축구계가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토티는 이탈리아 축구의 색깔을 바꿨다는
평을 듣고 있는 천재 플레이메이커.
93년 17세의 나이에 명문 AS로마의 주전 자리를 꿰찼고
지난해에는 주장 완장을 두르고
프로축구 세계 최고봉으로 평가받고 있는 세리에A와
이탈리아 슈퍼컵 우승컵을 팀에 바쳤다.
2000년 유럽선수권(유로2000) 때는
‘아주리 군단’의 당당한 일원으로 팀을 결승에 올리기도 했다.
토티에 비해 김남일의 지명도는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김남일은 더 이상 상대의 명성에 주눅들지 않고 있다.
16일 한 이탈리아 언론이 당연한 듯
스타군단 이탈리아 선수 중
김남일의 우상이 있을 것이란 지레짐작으로
“이탈리아 선수 중 누구를 좋아하느냐”고 묻자
그는 “그럴만한 선수가 한 명도 없다”고 맞받아쳐
상대를 당황케 했다.
그만큼 최근 경기를 통해 어떤 선수를 상대로 하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은 것.
특히 김남일의 이날 대답은 토티가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상대로 마음만 먹으면 골을 넣을 수 있다”고
자만심에 가까운 자신감을 표현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 한 것으로
둘의 치열한 기싸움이 이미 그라운드 밖에서부터 시작됐다는 풀이다.
-김남일-
생일: 1977년 3월 14일
신장: 180 cm
체중: 75 kg
포지션: MF
소속팀: Chunnam Dragons (KOR)
국제 경기 득점: 1 (통계일: 2002년 5월 27일)
국제 경기 출전: 22 (통계일: 2002년 5월 27일)
국제 경기 데뷔: 베트남 (1998년 12월 04일)
잘생긴 넘들도 스타일에 따라 분류가 가능한데 꽃미남파로는
이동국, 안정환, 이관우 정도를 들 수 있겠다. 호남형은
홍명보, 장대일, 김도균 정도다. 그리고 분명 미남형이지만
한성깔 할 것 같아 차마 언급하기 어려운 김남일 정도가 있다.
-딴지일보-
김남일은 지치지 않는 체력과 강인한 승부근성을 갖춰 한국
선수중에서는 대인마크의 1인자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 자칫 잘못하면 옐로카드까지 받을 수 있는 거친 플레이로
일관, 상대선수들을 심리적으로도 압도할 수 있어 적격이다.
-fifa공식페이지-
“한국 선수들은 김남일처럼 할 줄 알아야 한다.
유명한 선수를 상대하면서도 기죽지
않고 심판이 안 볼 때마다 걷어 차는 근성이 있다”
-히딩크-
올 초 북중미 골드컵에서 베스트11에 선정될 만큼
해외에서도 인정받았고,또 지난달 벌어진 스코틀랜드나
잉글랜드,프랑스 등과의 평가전을 통해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바 있다. 외국의 언론들이 “이탈리아나 잉글랜드
리그에 진출해도 손색이 없다”며 칭찬했던 김남일은
이번 폴란드전에서도 상대 플레이메이커 시비에르체프
스키와의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둬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이날 외신기자들은‘대단한 선수’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stoo-
상대 플레이의 축이 되는 미드필더 시비에르체프스키를 90분간
꽁꽁 묶은 김남일의 소금역할. 김남일의 수훈은 공포의
대상이었던 올리사데베의 위력을 50%로 반감시켰다
-신문선의 관전평. 김남일의 [족쇄수비] 수훈. 이라는 제목-
김남일이는 항상 공과 관계없이 자신이 맡은 선수와 싸우고
있으므로 경기중 어디에선가 김남일 아니면 상대선수가 상대
반칙으로 쓰러져 구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단도
그렇게 소리소문없이 부상당했다)
등번호는 5번!
김남일의 근성과 대담성은
장난기 가득한 얄개였던 고교 시절에 형성됐다.
고교 3학년 겨울,대학진학을 위해 수능시험을 치러야 했던
김남일과 축구팀 일당 5∼6명은 한달간 숙소에 모여 공부를 했다.
운동장을 휘젓던 몸들이갑자기 공부를 하려니 좀이 쑤실 수밖에 없었다.
마침 이들의 뇌리에 ‘여학생이 깔고 앉던 방석을 훔쳐서
시험 당일 거기에 앉으면 시험을 잘 본다’는 묵은 속설이 떠올랐다.
이에 김남일은 일당을 선동(?)해 부평여고로 진군했다.
그러나 한밤중이라 문은 꽁꽁 닫혀 있고,
오로지 4층 창문 하나만 열려 있었다. “내가 올라간다”고 나선
김남일이 졸지에 ‘스파이더맨’처럼 벽을탔고,
친구들은 혹시 떨어지면 잡기 위해 밑에서 대기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다행히 불상사 없이 교실에 도달해 친구 수대로 방석을 수집하고
칠판 앞에서 실례(?)까지 하며 정상에 오른 쾌감을 만끽하던 즐거움도 잠시.
방망이를 들고 뒤쫓아오는 당직 선생님을 피하느라 혼이 빠졌다.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는 다음이다.
하필이면 같이 방석을 훔치러 갔던 친구의 여자친구가
그 반의 아침당번이라 김남일의 영역표시물을 치우게 돼
엄청난 원망을 들어야 했단다.
이밖에 고 1때 축구부 단체 탈퇴를 주도한 뒤
다른 친구들이 복귀한 후에도 8개월간 웨이터 생활 등을 전전하다가 아버지의 눈물 때문에 결국 축구부로 되돌아온 일화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