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서울교육 10월호] 특별기획 | 선행학습 추방, 자기주도학습으로 시작한다 ①
선행학습은 '같기도' 학습?
효과적인 공부방법 될 수 있을까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은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릴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19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은 교실 이데아를 통해 학생 우열화와 대학 서열화를 거듭하는 당시 교육 체제를 비판한 바 있다. 그런데 18년이나 된 이 노랫말. 우리를 조금 뜨끔하게 한다. 오늘날 아이들은 여전히 경쟁 속에 몰려 있다. 조금 더 높은 성적을 위해 학생들은 어김없이 학원에 간다. 선행학습을 하지 않는다면…… 불안한 쪽은 오히려 학부모다. 성적에서 뒤처지면 자녀의 삶도 뒤처지고 말 것이란 불안한 예감 때문이다.
통계청에서 실시한 2011년 사교육비 조사 실태에 따르면 대한민국 전체 학생의 71.7%(학교별; 초등학교 84.6%, 중학교 71%, 고등학교 51.6%)가 학교 수업과는 별도로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적과 등수를 올리기 위해 아이들은 선행학습체제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초등교육 이전의 조기 영어교육을 시작으로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이전까지 사교육이라는 갑갑한 레일에 몸을 싣고 달린다. 명문대행 고속열차를 타고 말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아이의 담임선생님께서 이렇게 말했어요. 아이가 참 평범하다고.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아들은 입학 전부터 ○○영어 프로그램이라고 대치동까지 왔다갔다 하면서 조기교육을 받았거든요. 그전까지는 제가 교육에 열성적인 부모라고 생각했어요. 이상하게 자존심도 상했어요. 도대체 얼마나 해야 평범하지 않단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하고요. 망설이다가 결심했었죠. ‘그래, 어디 1등 한번 만들어보자’하고요.”
-초등학교 입학 당시를 떠올린 학부모 Y씨-
부모의 욕심과 함께 선행학습에 길들여진 우리 아이들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려 해도 주변을 돌아보면 안 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 학부모들은 Y씨의 경우처럼 참 많다. 물론 학생에겐 공부가 ‘본업’이니까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열심히’를 넘어서, 조금씩은 ‘지나치게’ 공부하고 있다. 부모는 우리 아이가 올바른 교육의 길을 걷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조금은 의심도 가지만 ‘모두가 가고 있는 것만 같은 교육의 길’에 동참하지 않을 순 없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보내준 학원에서, 그리고 과외 후 과제로 받은 문제를 매일 푼다. 반복적으로 문제를 풀면서 문제에 익숙해진다. 틀리는 게 점점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아이도 판단이 선다. ‘이제 이 과목은 다 했어’하고 말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지난달에 배운, 조금 심하면 반 년 전에 배웠던 학습단원과 교실에서 다시 마주친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에게 지금 이 수업은 ‘진도를 다 뗀’ 수업에 불과하다. 재미가 있을 리 없다. 졸리고, 따분하다. ‘지금 이 시간에 학원에서 내준 과제를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루 일과 중 절반 이상을 공부에 파묻혀 살다보니 우리나라 학생들의 공부시간은 그야말로 참 길다. 이와 같은 사실은 통계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질문이 점점 사라져 가는 교실, 아이들은 정말 다 알고 있을까
선행학습을 포함한 지나친 사교육은 이처럼 아이들을 공교육의 울타리에서 몰아낸다.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정규과목의 내용을 이해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수동적이다. 배울 내용들을 이미 알고 있는 학생들과 마주하는 건 교사의 입장에서도 쉽지 않다. 수업 흥미가 떨어진 교실에서 질문은 점점 사라져 간다. 일부 학생의 경우, 학교에서 진행되는 수업과 자신의 공부는 ‘별개의 문제’로 인식하기도 한다. 단기 선행학습에서부터 장기 선행학습까지 학생들은 저마다 공부하는 진도가 다르다고 쉽사리 판단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정말 ‘다 알고’ 있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밤낮없이 의자에 앉아 문제를 풀고 또 교재를 넘기지만 학습효율화 면에서도 학생들은 상당히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공부하고 있다. 위의 표는 서글픈 우리 교육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선행학습을 비롯해서 사교육을 시키는 이유는 아주 간단해요. 아이에게 처음부터 ‘나는 공부 잘하는 아이야’라는 자존심을 만들어주는 거죠…. 그렇게 되고나면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아이는 더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첫 단추를 잘 꿰는 게 중요해요. 공부하고 싶은 욕구를 심어주는 거죠. 또 우리나라에서 학벌은 절대 무시 못해요. 학벌은 곧 인맥이기도 하잖아요. 당장에 드는 사교육비는 월 100만 원이 조금 안돼요. 물론 힘들죠. 그래도 상관없어요. 아이가 공부 잘하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나면 그만큼 다시 거둬들일 수 있잖아요. 우리 아이 꿈이요? 솔직히 대학 못가면 꿈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해요.”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S씨-
무리한 사교육비 지출, 그러나 성적향상은?
사교육비가 감당이 되지 않는 가정을 만나는 것도 드문 경우는 아니다. “교육이 곧 아이의 미래를 보장하고, 점수와 좋은 학벌이 소위 ‘잘 나가는’ 사람으로 만들 것”이란 환상이, 학부모들에게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고 믿게끔 만든다.
아이의 성적향상을 위해 그리고 사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부모는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결과는 부모의 기대에 못미치기도 한다. 상위성적 30% 학생들의 국어 성적에 대해 선행학습 과외를 받은 집단과 비과외집단을 비교해 본 결과는 조금 충격적이다.
중학교 2학년 중반부터 과외집단은 비과외집단의 성적보다 떨어졌으며, 특히 입시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시기에 점수 차이는 더 크게 벌어졌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떨어지는 성적 때문에 힘들어한다. 결국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와 각종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지역별 우울증 학생비율을 조사한 결과(1,000명 대상), 사교육열풍이 뜨거운 서초(7.4명)·강남(6.8명)·송파(6.1명)·양천(7.2명)지역에서 평균(5.0명)비율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삶에서도 선행학습이 통할까? 미래는 모두 아이들의 몫
선행학습으로 인해 아이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언제나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학습을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지고, 공부의 구경꾼으로 전락하게 된다. 선행학습으로 교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자녀는 부모의 말대로 좋은 기업에 취직하는 걸까. 그것도 쉽지가 않다.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 요건과는 정반대의 ‘또 다른 인재’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2008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100대 기업이라고 손꼽을 수 있는 기업들은 저마다 문제의식과 창의적 사고력이 뒷받침된 인재를 요구(71%)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열심히 달려온 아이들은 다시금 창의적 사고력이 뒷받침된 인재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21세기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양성은 어떻게 가능할까? 창의력을 갖추는 것은 선행학습보다 더 녹록지 않다. 자신이 없다면 다시금 취업 과외를 받아야 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이런 모든 점에서 자기주도학습은 ‘길게 볼수록 더욱 효과적인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성적향상에 당장의 효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학습방법을 스스로 깨우치고, 학습동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아이에게 궁극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주체성을 가지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선행학습으로는 이루지 못하는 효과다.
대학교육과 취업 후의 삶에서 선행학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완벽한 부모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최적의 부모가 되어주길 바라는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 차도록, 교실에 질문이 넘쳐나도록…. 그리하여 일선 교사들은 아이들의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활기찬 교실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과도한 사교육으로부터 우리 자녀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지금, 서울교육은 서서히 학교와 학부모들이 모여 그 공감대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츨처 - http://blog.naver.com/seouledu2012/1101495605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