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잠실 신천의 해주냉면을 아시나요?
보통 직장인들 이라면 다 그렇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금요일을 심하게 기다린다.
그렇다고 주말에 즐거운 약속이 있어서도 아니고, 아님 영화, 연극을 보는 스캐쥴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이유는 금요일 뒤 토, 일요일의 2일간의 휴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중 금요일은 어떤 시간을 보내든 토요일이 받쳐 주어 보다 정신적 부담을 주지 않는 요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전하게 된 동기를 적다보니 서론이 너무 길어진 것 같다.
그러니까 지난주 금요일(4월14일)이다.
그날도 주부의 할 일을 다 하고 부담 없이 늦게까지 공영방송을 보고 쉽게 잠이 오지 않아
리모콘을 이리 저리 돌리다 위성방송중의 하나인 “휴먼TV”라는 채널을 잠시 고정시키게 되었다.
SBS에서 방영한 “대박 집과 쪽박 집, 돈이 보인다”라는 프로그램을 재방송 해주고 있었다.
한때 다이어트 잘못하여 세상을 시끄럽게 하였던 코메디언 이영자,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남자 코메디언 둘이서 호들갑 떨며 진행 하는 조금은 시끄러운 프로그램이다.
그래도 “쪽박집”의 사연과 “대박집”의 사연을 들어보면 세상사 사는 방법과 인생유전이 코끝을 찡하게 해주어 SBS에서 방영 때도 가끔 본적이 있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금요일 밤 자정이 다 지나서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던 중
마마를 앓은 흔적이 있는 대박집 사장의 얼굴이 어디서 안면이 있다 하며 계속 보았다.
자막에 이름이 적혀 나왔지만 이름으론 기억을 살릴 수 없었고
뒤이어 비친 여사장의 얼굴을 보니 아!!! 이럴 수가!!! 지...지은 엄마??
거실에서 스포츠프로그램을 보고 있던 남편을 재촉해 불러 확인 결과 맞다고 했다.
새벽이 넘은 시간에 주소와 연락처를 찾아내려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SBS에서 04년 2월에
방영한 프로그램을 2년 후 휴먼TV에서 재방송 했던 것이다
아이의 이름조차 기억이 아물거리지만, 지은엄마가 대박집 사장이 되다니...
또 내가 아는 사람이 대박사장으로 방송을 다 타다니... 하며 잠을 청했다.
내가 지금의 대박집 사장과의 인연은
그 당시 나는 강동구에서 살았다. 직장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큰아이를 낳고 뒤이어
연년생으로 아이를 갖게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는데 가정형편상 시댁이나 친정의 어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세를 노면 혼자 아이를 키우며 급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 빈방을
내 놓았다. 첫해는 지금의 우리 부부 정도의 노년부부가 들어와 그야말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
그러자 일년후 노부부가 경제적으로 조금 나아져 가까운 곳의 독채 전세로 이사 간다 하여
다시 세를 내 놓자
오늘의 주인공인 남편 만 와서 집을 보고 계약하였다.
이사 오던 날
같이 살던 노부부는 가까운 거리로 이사 가서 그런지 서로 믿음 때문인지 돈은 나보고 가져오라고 짐부터 나갔다.
그러자 새로 이사 올 세입자 아니 남자가 먼저 도착하여 돈은 지불하지 않고 짐부터 재빨리 들여 놓기 시작했다.
그때는 아무 의심할 줄도 모르고 설마 돈 없이 이사 오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세상물정 모르니 따질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하는가 보다 하며 아무 말도 않고 기다렸다.
짐이 다 들어오자 남자가 잔금을 받지 못해 빨리 가서 돈을 받아오겠노라고 하면서 가버렸다.
저녁시간이 지나 밤이 되도록 아무도 나타나지 않고, 소식도 없었다.
이사 간 노부부는 돈 독촉하고... 정말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급하게 친정엄마한테 세상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고 호되게 야단맞으며 구급 요청하여 급한 불부터 해결했다.
정리도 안 된 짐을 보며 열흘은 지났을까? 일요일 남편과 같이 계약서의 주소를 들고 찾아보았으나 미 거주 주소였다.
우리 남편이 물건을 함 부러 건드리면 법에 걸리니 스스로 찾아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자 이십일 쯤 지나자 네살 된 딸과 두살 된 아들 두 아이와 함께 부부가 나타났다.
정말 그땐 잔뜩 겁을 먹고 있었던지라 찾아와 주었던 건 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그런데 부부가 한 푼도 없이 나타나서 봐달라고 하지 않던가!!!
기억이 잘나지 않지만 겨울에 두 아이와 오도 갈데없는 상황이라 그냥 받아 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상황은 같이 살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수입이 없으니 식생활조차 어려웠고 남편의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둘째아이가 겨우 돌 지난 우리아이와 동갑으로 두 아이의 간식과 식생활비의 부족과 연료비 등등...
암튼 내 기억으로는 월세는커녕 일단 연탄과 관리비는 내가 충당 해주었고 아이들 간식 정도는 우리 아이와 많이 나누워 먹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러자 같이 살던 지은엄마가 셋째 아이를 임신하였다.
내가 보건소에 가면 무료로 유산도 해주고 가족계획 방법이 있다고 알려주었으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일년 못되어 용산에 남편 취업이 되었고 아래 신우가 보태주었다며 밀린 월세와 연료비를
계산하고 이사를 해 난 내심 큰 짐을 내려놓은 듯 좋았다.
그 후 난 집을 팔고 이사해 소식이 끊겨 알 수 없었지만 항상 어디서 잘 살고 있을까?
셋째 아이는 출산을 했을까? 아님 유산을 했을까? 하며 간혹 우리 남편과 지나간 생활 속의 한 이야기 거리로 올리곤 했다.
그러던 지은 엄마가 대박사장으로 변신하여 방송을 타다니....
그것도 2년 전에 방송나간 것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다니.
조금 더 빨리 소식을 들었더라면 좋았을텐데 ...
토요일(15일) 오전9시경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사장님 계세요? 당연히 아직은 나올 시간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급한 마음에 걸었다.
전화 받은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직감적으로 그때 두살 된 우리 큰아이와 동갑인 아들 같았다.
나의 연락처를 알려주자 빠르게 연락이 왔다.
서로의 확인이 끝나자 너무 반갑고, 항상 잊지 않고 살았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전화로
어찌 다하겠냐고 당장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꼭 오라고 전화로 큰 소동이 벌어졌다.
그 당시 젊은 새댁이 말없이 받아 들여 준 마음이 너무 고마워 평생을 잊지 못해 만나길
기도했다고 하더군요.
저녁 약속을 정해놓고 아이들과 시간을 갖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 우리 부부가 신천 해주냉면 가게로 6시경 방문을 하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순서를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져 있고 안에는 바글바글 손님들로 혼을 빼고 있었다.
헤집고 들어갈 수 없어 유리사이로 지은엄마의 모습이 보여 신호를 보내니
한참 후에 나와 다른 장소로 옮겼다.
두 집부부가 마주앉자 지은아빠의 말씀이 부인한테 이야기 들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그러자 부인이 그 당시 당신이 미안하니까 통금이 지나 술 취해 들어왔다가 새벽에 나가든지
아니면 들어오지 않았으니 기억이 날 리가 있냐고 퉁명을 주더군요.
그러고 보니 남자들끼리도 통성명하고 소주한잔 할 시간조차 갖지 못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어제가 25년 만에 처음 정식으로 부부가 마주 앉은 게 되었답니다.
우리집에서 이사 나간 후 하는 것 마다 실패로 인디언 담요 한 장 들고 나와 시련의
고통이 너무 커 자살을 시도 하려고 했던 일이며 잠실에서 살기위해 무허가 포장마차를 하자
주변상가들의 투서가 청하대 까지 들어가 다시 문 닫고
배불러온 아이를 유산하러 빚을 내어 병원을 갔지만 시기를 놓쳐 생명의 위험과
병원비가 모자라 어쩔 수 없이 낳은 딸이 지금의 복 덩어리인 것을
큰일 날 뻔했다고 하며 웃었습니다
포장마차 냉면에서 지금의 신천 해주냉면을 탄생하기까지 역경을 들으니 눈물 없이 들을 수가 없었고 25년의 생활 역경을 어찌 세 시간 동안에 하겠냐고 두고두고 하자고 하더군요.
부유한 선친의 몰락으로 남편의 재기가 어려운 지경이었지만 언젠가는 남편이 해낼 것 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푸념 없이 참았으며 해주냉면이 탄생되기 까지 시간이 걸렸을 뿐이라고 담담히 말하더군요.
식당이 잘되서 체인점을 만들면 많은 돈을 벌수 있지만 가족들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돈만 벌면 되기 때문에 가격도 올리지 않고 3000원을 지금껏 고수하고 있다고 합니다.
냉면집으로 돌아와 시식해보고 가라고 해 배는 부르지만 조금 맛을 보았는데
와~~~정신을 쏙 빼는 매운맛.
콧등에 땀이 송송 나고 그러면서도 웬~지 다시 젓가락이 가는 유혹의 불타는 냉면 맛!
아마도 이 맛이 젊은이들을 유혹 하는가 봅니다.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 이 맛을 찾는 주부들도 많다고 하더군요.
집에 가서 해먹어 보라고 재료를 싸주어 오늘 점심을 해주냉면으로 다시 맛보니 매운맛에
깜짝 놀라 잃은 기억을 다시 찾을 만큼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다.
이글이 우리 홈페이지에 올리기엔 조금 쑥스럽지만 인생유전의 한편으로 심심히 적어 보았습니다
첫댓글 한 편의 감동 휴먼 드라마같은 추억담입니다. 살다 보면 옛 인연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던데 고마운 추억을 남긴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하고 간간이 떠올리고 잇지요. 세상물정 모르는 새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천성이 곱고 인자한 탓으로 한겨울 맨손을 받아들이신 난초님은 지금도 여전한 인정의 화신입니다.
집에서 가까우니 저도 한번 찾아가 봐야겠네요.
아 ~~그 냉면집이요~~정말 맵고 맛있어요. 꽤오래전에 갔는데요 그때도 사람이 많았어요. 난초님 지인이라니 다시금 그맛이 새롭네요....
역시 난초님의 아름다운 품성이 이렇게 아름다운 인연을 탄생시켰군요. 어렵고 힘들었던 지난날도 이렇게 돌이켜보면 가슴 뭉클한 추억이 되는가봅니다.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감동의 인생유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