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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글을 읽기 전에 제가 지난 6월 1일 자로 산행기에 올린 전편을 먼저 보심이 전체 문맥을 이해 하시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문경이란 지명은 기쁘고 경사스런 소식을 가장 먼저 듣는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과거급제를 위하여 한양으로 향하는 길은 한반도 우측의 소백산맥에 있는 죽령, 좌측의 대관령에 있는 추풍령
그리고 가장 중심부의 문경새재 세 갈래 길이 있었는데 문경새재가 가장 단거리 이기도 하고 추풍령은 추풍낙엽 처럼, 죽령은
우후죽순 처럼 우수수 떨어 진다는 속설이 있어 문경새재 길을 가장 선호 했던 바 과거를 급제한 연후에도 그 기쁜 소식을
고향에 가장 먼저 전해 줄 수 있는 곳이 이곳 문경 땅이였다고 한다.
조령산의 새 조자는 이 고개에 본디 초점 즉 억새풀이 많아서, 무엇 무엇과의 틈새 즉 사잇길, 일제 때 조령산 중턱 즉 이화령을
경유하는 새길(신작로)을 개설한 연유로 아마도 새자가 붙여 졌다가 이를 한문화 하면서 새 조자를 쓰면서 부연하여 새도 넘기
힘든 고개턱이라고 하여 조령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들 한다.
전편에 기술 하였던 내 친구 깽판이 넘은 불우한 가정 형편이 고려되어 일등병을 달기 바쁘게 흔히들 말하는 의가사 제대를 하곤
우선 관광회사에 입사를 하여 약 일년간을 다니며 업무 파악을 한 이후에 어머님이 결혼 자금으로 주었던 오천만원을 투자하여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서 인바운드 즉 국내여행권을 취득하여 상호를 그대로 쓰면서 별도 법인을 설립하여 30대 초반에 사장에
취임 하였는데 생긴 쌍판데기와는 달리 무신 재복이 그리 많은지 삐까뻔쩍하는 관광뻐스가 자고 나면 증차가 되기 시작하여
일취월짱케 되는데 예상했던 바 결혼생활은 원만치가 못 했던 가 보다.
꼭두새벽에 차량을 배차하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차량 입고를 확인해야 하는 깽판이는 새벽밥을 먹어야 되는데 밥 달라고
디비 자는 예팬네를 깨우면 한쪽 눈만을 비시시 열어 제킨 여깡 같은 예팬네가 일갈을 한다고 한다.
야! 임마 전자밥통에 밥 잇꼬 냉장고에 반찬 들어 잇써
한놈만 일어 나서 쳐 먹고 나가면 될 일을 무엇땀시 두 년놈이 일어 나서 부산을 떨어야 하냐는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깽판이 넘이 결혼을 한 이후에 술만 쳐 먹으면 혼자서 중얼 중얼 거리는 말이 다름 아닌
어떤 개새낀진 잘 모르겠지만 전자밥통 이란 걸 만든 새끼를 만나기만 하면 때려 쥐기뿌고 싶다는 것이다. 글구
이놈 예팬네가 사흘이 멀다고 처녀 시절 친구들을 신사동 네거리에서 만나 선 술이 꼭지가 돌아야 집꾸석에 들어 오는데
서방 이라고 잔소리 라도 쬼 할려고 들면 부엌으로 들어 가서 정지칼을 들고 나와선 행패를 부려 댄다고 한다.
부모님들의 불운한 결혼 생활 덕분에 평탄치 못한 유년 생활을 보냈던 깽판이는 차마 이혼이란 걸 할 수는 없고 해서 이리 저리
고민을 하다가 어느 덕 높은 스님을 친견하여 자문을 구 하니 당신의 현재 재복은 거의 모두 다 부인 덕 인지라 복덩어리로
생각하고 부인이 술 먹고 들어 와서 곤히 주무시거든 아무 소리 말고 부인을 향해 삼천배를 올리라고 말씀하여 실제로
여러 번이나 삼천배 꺼정 올렸다고 한다. 허지만 그너무 돈도 좋지만
차라리 땅벌 구멍에 그시기를 디 밀어 넣고 사는 게 헐 낫다는 심정이 아니 들 수야 있겠습니껴?
은행원 남편과 엘에이로 도피 행각을 했던 깽판이의 옛 애인 불여우가 참으로 우연한 기회에 고국엘 들렀다가 명동 입구에
있었던 깽판이 회사 간판에 써 있던 전화번호를 보고선 마지막 인사나 할려고 다이얼을 돌렸는데 전화 응대를 하는 여직원
말이 지꿈 사장님께선 외근 중이시라며 연락처를 남겨 달라고 한다.
머어 사 사장이라고? 이미 엘에이에서 은행원 남편으로 부턴 단물이란 단물은 다 빨아 먹은 불여우의 눈깔이 디집어 진다.
마포에 있는 모 호텔 커피샾에서 마침내 도킹을 하는 그 순간 정과 사랑에 굶주린 깽판이 넘은 불여우의 간교한 계략에 여지 없이
한방에 넘어 가게 된다. 머리 회전이 빠른 불여우가 어깨를 들먹이며 눈물 어린 눈빛으로 시종일관 그날 했던 말은 크게 두가지로
보면 된다. 첫째는
당신과 재회를 하게 되면 일평생 당신을 위해서 따수븐 밥상을 잘 차려서 올릴 것이며 두번째는 갈롱 스럽게도
당신과의 연애 시절 대천 해수욕장 허룸한 텐트에서의 하룻밤이 성숙한 여인이 되고난 이후 남정네와의 첫 밤이란 것이다.
사내 자식들이란 처음처럼에 뿅 가지 않는 인간이 별로 없다. 처음처럼 행세를 했었을 뿐이지 세상에 숫처녀 란게 어데 있노?
어리 버리한 깽판이는 이 처음처럼에 학 맛이 가고선 그 즉시 커피샾과 연결된 엘리베이트를 타고 그 불여우와 함께
호텔 객실에 방부를 드리 밀었는데 당근 다음 날 출근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약 일주일 간을 같은 호텔에서 먹고 자고 하여 마침내 깽판이의 걸음걸이가 갈 짓자로 걸을 지경 까정 맹글어 놓은 불여우는
황급히 엘에이 행 비행기를 탄다.
유능한 변호사를 사선 그리 오래 되지 않아 쌈빡하게 이혼 소송을 끝낸 불여우는 지체 없이 귀국을 하여 깽판이가 미리 장만해 둔
아파트에 여장을 풀곤 큼직한 냉장고에 미국 마트에서 파는 왼갖 음식 뿌스레기와 건강 보양 음식을 켜켜이 쌓아 두고선
깽판이에게 이혼을 종용한다.
깽판이가 밍기적 거리는 말투로 여깡에게 처음으로 이혼 얘기를 꺼냈을 때 그 즉시 식칼이 날아 올 것이란 여러 사람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 진다.
머 이 이혼? 니깐 넘 마음대로 함 해 봐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던 여깡은 그 자리에서 아무런 조건도 없이 협의 이혼 서류에
우선 도장 부터 찍어 준다.
80년대 후반 노 태우 대통령의 6.29 민주화 선언이 있은 이후 국내가 파업과 노동운동으로 몸살을 앓던 시절 깽판이는 당시 돈으로
팔억 사천만원을 받은 관광회사를 비롯하여 국내에 있는 팔 수 있는 재산이란 재산은 모두 처분을 하곤 그 돈을 갖고 불여우와
함께 엘에이로 잠행을 하게 된다. 행복한 나날 이였느냐구요?
모 명문여대 영문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불여우는 미국 본토 사람 뺨 치게 비지네스 영어에 유창하여 제법 큰 세탁소를
여러 개 운영 하였었는데 콩구리쉬 수준인 깽판이가 할 일이 무어 있었겠습니까?
불여우가 델꼬 온 남매와 깽판이가 델꼬 간 남매 도합 네 명의 학생들 어렵게 운전면허를 따선 통학이나 시켜 주고 나선 세탁소에
먹통들이 맡긴 청바지 물 빠질까바 디집어서 세탁기에 넣다가 운 좋으면 주머니에서 떨어 지는 동전 몇 개 집어 드는 일이나 하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세시 경이면 뜬금없이 나를 비롯한 몇 몇 친구들에게 전화질을 해 댄다. 그 시간이면 엘에이는 아마도
잠 드는 시간인 가 본데 침대 머리맡에서 쏘세지에 깡쐐주 마시고 있다는 것이다.
조경사업, 자동차 수리업을 비롯해서 좌우간 손을 댔다 하면 엎어 먹기가 일쑤란 말 만을 들었을 뿐인데 세월이 지나면서 연락
마져 끊어 버려 근황을 모르고 지낸 지도 무척이나 오래 된 올 봄 여기 저기서 깽판이가 귀국을 했다고 하는데 호옥 나 한테
연락이 오질 않았냐는 것이다.
이쪽 저쪽 귀동냥을 해 보니 이미 미국에선 이혼 소송이 거의 끝이 난 상태이고 문제는 깽판이가 미국으로 잠행할 무렵
휴전선 근처에 있어서 팔지 못 했던 철원땅과 서울 시내에 있었으나 여러 악조건으로 도무지 팔리지 않았던 땅이 몇 필지
있었는데 마한너무 불여우가 이 땅에 마져 가압류를 걸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깽판이 넘은 바지 가랭이에 찡겨 다니는 감자 두 쪽 밖엔 남은 게 아무 것도 없다.
식칼을 들고 덤볐어도 타고 난 재복이 많았던 여깡이 아무래도 깽판이에겐 조강지처가 틀림 없어 보인다. 참고로
쓸모가 없어서 버려 두었던 서울 시내 땅엔 요즈음 아파트가 들어 설 예정이라고 한다.
조령산 정상에서 신선암봉을 경유하는 능선길에서는 자연의 신비스런 조화를 잠시 훔쳐 볼 기회를 갖는다.
순간 순간 거의 초 단위로 운무가 걷히면서 촌처녀 볼기짝 같은 허연 바위 덩어리가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먼 산 가까운 산이 교대로 시야에서 들어 왔다 나가기를 마치 만화경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땀을 흘리고 수고로움을 아낌없이 내 던졌던 이들 만이 누릴 수 있는 과분한 자연의 선물 앞에 서니 잠시 자신을 잃어 버리는
무아의 경지란 게 바로 이건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많은 분들이 산행 매니아를 자처 하며 산을 찾는 이유를 제각각 든다.
저기 산이 있으니깐 오른다는 분도 있고 자연으로의 회귀를 말씀 하시는 분, 땀을 흘린 뒤 션한 산바람을 맡는 쾌감 때문이란 분,
산엔 남녀가 혼성으로 다니는 통에 호옥 하는 마음으로 다니시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허지만 난
솔직히 말 해서 이 너무 과도한 체중 덕분에 숨을 헥 헥 거리며 산엘 오르는 것은 여엉 즐거운 일 만은 아니다. 다만
산엘 오르면 집꾸석을 비롯하여 속세의 일 들을 비록 잠시 잠깐 이긴 하지만 말끔히 잊어 버릴 수가 있다는 것이고 덤으로
산행을 마친 이후에 뒷풀이로 껄쭉한 안주에 쐐주 한잔을 곁 드릴 수 있는 고 쏠쏠한 재미 때문이다.
깽판이가 여깡과 함께 살던 시절 여깡이 자신의 친구를 전편에서 기술한 중동고 산악부 출신 내 친구에게 소개를 해 준다.
이 친구는 얼굴이 당나귀 처럼 길쭉해서 나구라고 불리기도 하고 요들송을 잘 불러서 매미라고 불리우기도 하는데 참으로
귀하디 귀한 자식이다. 2대 독자 이셨던 매미의 아버님께서
내리 일곱명의 누나를 낳으신 이후엔 본 삼대 독자가 매미 이고 매미가 소개 받은 여친은 늘씬한 키에 조막만한 얼굴과 뽀얀 피부
에 켵들여 반짝 빤짝 빛 나는 금테안경이 무척이나 조화로운 여인네 인데 행동거지는 만만치가 않다.
이북 출신으로 모 법대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는 엄한 아버님 덕에 고등학교 까증은 그럭 저럭 착실한 생활을 했었는데 대학을
들어 와서 여깡의 똘마니가 되면서는 상황이 하악 바껴 버린다. 술 담배 하고 늦은 시간 끼 집어 들어 오기를 밥 먹듯이 해 대자
완고한 아버님께서 이 딸의 머리를 박 박 깎아 버린다. 머리 정도 깍는다꼬 될 일이 아니다
옛말에 자나 깨나 불죠심 자는 딸도 다시 보자 라고 하는 말이 있듯이 요즘 조폭들이 하고 다니는 깍뚜기 머리를 헤어졀로 납작
하게 붙이곤 종로나 명동 거리를 활보 하였었는데 늘씬한 키 덕분에 보는 사람들이 모델들의 뉴헤어 스타일 인 줄로만 알았다.
좌우간 생긴 것 하곤 다르게 약간 맹한 구석이 있는 매미의 여친을 우리는 맹희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매미 아버님의 결사 반대에도 불구하고 둘은 마침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는데 맹희네 집안이 아마 개신교 집안 이였는지
예배당에서 목사님의 집전으로 식을 거행 하였는데 원래 목사님께선 말씀이 많지 않습니껴?
긴 주례사에 이어 찬송가 까정 불러 대는 것 정도는 그래도 참을 만 했었는데 이제나 저제나 끝을 내는 가 하고 기달리고 있으니
찬송가 끝나기 무섭게 모두들 눈을 감으라고 하신곤 기도란 걸 올리기 시작한다.
사실 결혼이란 건 오늘의 결혼이 있기 까지 낳아 주고 길러 주신 부모님 즉 혼주님들께 대한 감사의 표현이 우선이데 목사님께선
심사가 이미 틀릴대로 다 틀려 버린 매미의 아버님을 앉혀 두고, 매미의 부모님은 온데 간데 없고 하느님 아버지의 자제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서 주님의 은총을 어쩌고 저쩌고 하며 기도 삼매에 빠질 무렵 갑자기 매미의 아버님이 벌떡 일어 나신다.
좌중을 둘러 보시던 매미 아버님께선 이 중에서 신랑 혼주를 보고 찾아 주신 하객들은 전부 자리에서 일어 나라고 하시더니
일어 나신 많은 하객들을 양몰이 하듯 예배당 밖으로 끌어 내시곤 집으로 횡 허니 발길을 돌려 버리셨다.
이미 결혼식장은 난장판이 되어 버렸고 사색이 된 매미 부부가 얼결에 도망치듯 신혼여행이나 갈려고 김포공항으로 내 달렸는데
어랍쇼 제주행 비행기표 예매가 틀림 없이 캔슬 되어 버렸다.
여행사를 하던 깽판이가 김포 공항에 파견 나가 있는 직원에게 연락을 하여 정식으로 예매를 취소해 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장난 치곤 넘 심한 장난 이였던 것 같다.
제주행 비행기가 이륙을 하고서도 한참이나 공항 구내에서 머물던 매미 내외는 별 도리가 없게 되자 공항 근처에 있는 허룸한
여인숙에서 첫날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이 푼수 대가리 같은 맹희가 남편과 중대사를 치루기 전에 남편 귓볼에 대고 머라 머라
주졀 댔는데 나도 먼 후일 그 내용을 들었던 바
여보 매미씨! 당신을 만나기 전에 당신 친구 돌삐씨를 먼저 만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 이란 것이다.
매미 아버님은 일자 무식으로 일제 때 만주에서 소장사를 하여 거금을 만졌던 분인데 돈을 버는 쬭 쬭 예전 머슴살이 하던
설븐 심정을 만회하고져 전 답과 임야를 가리지 않고 아주 헐값으로 무진장 사 두셨는데 다행히도 일자 무식인지라 사업 같은 건
생각지도 못했으니 한 필지도 팔지 않고 고스란히 간직해 온 그 땅 그러니깐 쌍문동,창동,방학동 일대의 땅들이 상계동 일대가
개발 되면서 엄청난 폭등을 하게 된다.
지방에서 공장인가 먼가 하다 죄 말아 먹은 내가 구겨진 담뱃갑 처럼 풀이 푸욱 죽은 상태로 혹여 친구로 부터 위안이나 얻고져
쌍문동에서 이미 누나들과 약간의 칼부림을 한 연후에 아버님의 알토란 같은 땅들을 독식하여 이곳 저곳에 주유소를 개설 하곤
비싼 승용차를 사서 거들먹 거리고 있던 매미를 찾아 가는 내 인생 최대의 실수를 하게 된다.
이미 딸을 둘이나 본 매미 내외가 쌍문동 일대에서 소문난 고깃집에서 떡 벌어 지게 한 상을 차려 줄 때 끄정만 해도 난 참
사업에선 비록 말아 먹었지만 오늘 하루만은 행복하고, 진정으로 감사하고 고마운 친구를 두었다는 생각만 골똘히 하며 허겁 지겁
소주잔을 들이 키는데 갑자기 매미 넘이 자기 마누라를 향해 벽력같이 큰소리를 쳐 댄다.
야 이 뜨발 같은 인간아! 너 돌삐 저새끼 앞으로 엄청 잘 나갈 큰 인물이라고 주절댔지? 하더니 촌각을 지체치 않곤
내 쪽으로 시선을 향하면서 한쪽 손꾸락을 창날 처럼 내 이마빡에 내리 꽂는 가 하더니
잘 봐 돌삐 이새끼 오늘날 요 모양 요 꼴이야 똑 바로 봤어?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아서 신발장에서 신발을 찾는데 무쟌 고생을 하다 갠신히 고깃집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청승 맞게
가을비가 부실 부실 뿌리고 있다.
어디로 걸었는지 어느 곳에서 또 술 한잔을 더 마셨는지 아무런 기억도 나질 않았다.
발길 닿는 대로 마냥 걸으면서 내 대가리와 가슴만 연신 쥐어 박았다. 저룬 쓰레기 같은 인간을
평생지기로 생각해 온 내가 바보란 생각과, 내가 언젠가 능력이 닿으면 꼭히 손을 봐 주어야 겠다는 인간이 딱 한명 있었는데
그 리스트에 매미란 인간, 아니 개새끼만도 못한 어떤 놈의 이름이 한명 더 등재 되었다는 생각 뿐이였다.
후일 카더라 방송에 의하면 나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이 이런 봉변을 당 하였는데 봉변을 당한 사람들의 유형이 동일 하다고 한다.
매미 넘이 어려웠던 시절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나 현재는 사정이 그리 넉넉치가 않은 그렇고 구런 인물.
돈을 많이 벌어서 예팬네를 갈아 치우는 몹쓸 인간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 보았지만 지전 몇 푼 움켜 쥐었다고 친구를 물갈이?
매미 넘이 형제들과 칼부림을 벌이며 아버님의 재산을 독식한 땅 덩어리는 80 년대 말 돈 단위로 60 억이 넘는 거금이였으니
매미 놈이 뱃때지 할랑 뒤 집어 지는 환장을 하고도 사실 남을 돈 이긴 하다. 헌데 그 돈 지꿈도 매미 놈이 갖고 있냐구요?
물론 그 날 이후로 매미놈 낯짜기를 본 적이 없으니 정확하게 어떤 사유로 그 많던 재산을 다 말아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러 사람들의 후일담을 종합해 보면 매미놈 재산의 반수 이상은 쌍문동 일대에 즐비하게 들어 섰던 룸 싸롱 마담년 치마 가랭이
속에 쑤셔 넣은 건 틀림 없어 보인다. 그리고
매미 놈의 재산이 가압류다 가등기다 머다 해서 거의 다 넘어 갈 무렵 우연히 매미네 집을 방문했던 친구의 말에 의하면 술이
곤죽이 되어 집꾸석에 들어 온 매미 넘이 부인에게 손찌검을 해 대고 있을 때 안방에서 나온 매미 노모께서 마루 바닥에 털석
주져 앉으시며 대성 통곡을 하시면서 매미 이 놈아 귀하디 귀한 내 자식 놈이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느냐면서...
날머리인 수옥정 인근에 오니 맑디 맑은 계곡물이 철 철 거린다. 함께 내려 왔던 두발로님과
약간은 시간이 지체 되었는지라 대충 세면만을 했었는데 난 담배 피울 욕심에 두발로님을 먼저 떠나시게 한 것이 엄청난
화근이다.
계곡을 막 벗어 나서 콘크리트 길로 오르니 멀지 않은 곳에 매점 같은 것이 있고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 혹 우리 느림보님
들의 뒷풀이 장소가 이곳인가 하며 급한 발걸음을 내 달리는데 어떤 남정네가 내 쪽으로 다가 오는 듯 하더니 자꾸만 피해 가는
내 앞길을 여러 번이나 막는데 난 취객인 줄로만 알고 또 한번 더 옆으로 비켜 서는데 이 남정네 뒷편에 갓난 애기를 안은
어떤 여인네가 떨리는 목소리로 돌삐씨 맞죠 돌삐씨 틀림없자나요
아마도 내가 자신들을 알고도 모른 척 하는 줄로 알았던가 본데 난 정말 얼굴을 제대로 알아 보질 못 했다. 으악
매미 개새끼와 그 예팬네 맹희년 이닷. 이 무신 얄랑 궂은 운명의 장난인가?
그 많던 재산 다 덜어 먹곤 귀촌이나 귀향이 아니라 서울에서 먹고 살기가 힘 들어서 이곳 인근에 있는 농가로 이사를 왔다고
하는데 매미놈은 여태도 무위도식 하며 백수 생활을 하고 있고 부인이 인근 도시에 있는 마트에서 캐셔로 일 하고 있다고 한다.
말문이 막힌다고 하더니 넘 심한 충격 때문에 한마디 말도 못 하고 그져 빙그시 웃고만 있다가 종내는 딱 두 마디만 했다.
맹희씨! 매미 이 인간 여태도 발기는 잘 되니껴?
웬걸요 인쟈는 증말 조또 아녜요.
차를 끌고 온 맹희가 자신의 차로 느림보 뒷풀이 장소 까지 데려다 준다고 억지춘양을 부려 할 수 없이 차를 타고 오는데
맹희 말이 좀 전에 자신들이 있었던 매점 앞으로 느림보 아줌마들이 꽤 여럿 지나 가는 것을 보았는데 돌삐씨가 어떤
아줌마들 하고 어울려 다니는 지를 꼬옥 직접 확인을 해 봐야 겠다는 것이다. 어울려 다니는게 아니라 단지
제 각각의 사유로 제 각각의 시간에 이곳 느림보 산악회엘 오는 것 뿐인데
오늘은 내일이 복날이라고 하여 강 대장님께서 특별히 보양식으로 황기 백숙을 끓여 주신 지라 많은 느림보 벗님들이 오손 도손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며 맛난 백숙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바로 코 앞에 차를 멈춰 세운 맹희 왈
돌삐씨는 지끔 꺼정도 여자들 보는 눈이 높은 건 그대로네요.
(물론 너희 두 년놈 보단 꼴백배는 헐 낫다)
돌삐씨 얼굴도 좋아 보이고 행복하게 사시는 걸 보니 넘 좋아요.
(입이 침이나 발르고 씨부려라)
오랫만에 사람을 보고선 왜 말이 한마디도 없으세요? 두번째로 한마디 던졌다.
저 이뿐 아줌마들 이 산악회에 왜 나오는질 알어? 다 내 때문이야.
돌삐씨 뻥 까는 솜씨 또한 그 때 그 대로 이네요.
느림보 버스에서 부터 술이 떡이 되었는데 오리역에 내려 탄천을 건너기 전에 또 한잔을 더 마시곤 아마도 엉금 엉금 기었던
기억만 난다.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한은 모래에 새겨야 한다고들 하지만 젊은 날 입었던 가슴의 상채기는 세월도 약이 되질 못 하는 경우가
있기는 있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심한 충격으로 안절 부절을 못 하고 있는 나를 위해 마치 한살 많은 누님들 처럼 옆에서 위로해 주시고 술잔을 권해 주시던
영식님! 텔미님! 그리고 카타리나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탄천변에서 나팔꽃 인생 돌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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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돌삐님이 하산이 늦은 이유?
픽션인지..넌픽션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만..
재밌는 소설한권 읽은 기분입니다.
조령산 시원한 바람맛 생각납니다.
아니예요 리얼이예요
세상 참 넓은디 참 좁은것 같아요
단편소설같은 재미난 글,그리고 결코 웃어넘길수 만은 없는 진한 삶의 모습들이 그려져오는 글,
애독자가되어 다음편을 기대합니다 ^^
인생은 돌고 돈다는 진리가 맞군요...우연치곤 참 기막힌 만남...
산세수려하고 물맑은 조령산 잘 다녀오셨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구요..다음글 기대만발입니다..ㅎㅎ
항상 건승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