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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6:19~31 천국과 지옥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 그의 자녀들을 지키시고 높이시고 영화롭게 하시고 만족케 하시겠다는 약속이며 우리는 그 약속을 이루시는 줄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의 확실한 증거는,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를 통한 구원과 십자가와 부활로 보이신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믿는냐?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해설하면서 지옥에 대해 가장 많이 가르치셨는데 특히 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는 비록 생각하고 싶지는 않더라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사후의 삶과 영원에 관한 진리를 가르친다"고 밝힌다.
지옥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은 분명히 "지옥의 두려운 현실과 공포를" 분명하게 경고하며, 이 경고의 가르침의 목적은 종국적으로 인간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도록 이끄는데 있다"고 부연한다.
믿지 않으면 ....종교인으로 ,,,
‘먹고 마시고 즐기자 이 시간을 위해 살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의 대다수 사람들이 이런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은 그 결과들에는 무관심하며,
그들의 영원한 운명에는 아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 보다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히 살아 갑니다.
특히 이 세상은 타협의 세상입니다.
편리와 실용을 선호해서 도덕적인 기준과 원리를 포기했다.
편리와 실용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을 성취하려는 철학이 내제 되어 있다.
자기 중심적인 관점에서 “ 당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그 일을 해라” 결국 양시과 확신이 타협에 이르게 한다.
그러기에 더 이상 국가적인 양심[도의]은 없다.
예을 들면 정치가는 선거전에는 자신의 고상한 기준과 이상을 말하지만 일단 정권을 잡으면 타협한다. 이는 법조계, 스포츠인, 삶의 모든영역에서 거짓말을 하고, 부정하고, 훔치고, 진실을 숨긴다.
이것이 교회안에 까지 스며들면서 교회에 상처을 주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찾는다. 회개도 없고, 변화도 없는 복음을 제시하고 있다. 복음을 희석 시킨다.
결국 사탄의 계략에 의해 죄에 대한 결과의 불행을 보지 못하게 할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회개와 원인을 부인하게 하면서,
죄의 실체와 회개의 가능성을 저지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없앤다. 선악의 개념은 뒤틀렸고 정의에 대한 이해는 왜곡 되었습니다.
무슨 죄인지 모르겟고 내가 한 것이 죄가 아닌 것입니다 .
성경은 ... 롬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당신이 죄를 짓고 있는 것, 그 모든 죄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과 결코 손을 잡을수 없다.
하나님은 단 하나의 죄도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죄에 익숙한 사람은 이것이 납득이 안됩니다.
죄에 대하여 어물쩡 넘어 가는데 에도 너무나 익숙해져 있습니다.
모세 때 신32;22 그러므로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스올의 깊은 곳까지 불사르며 땅과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불타게 하는도다 – 지옥 까지 이르는 하나님의 분노로 표현 하고 있다.
구약은 지옥을 - 스올 ,신약은 - 하데스
계시록- 불못[ 불과 유황으로 타는 호수], 희랍어 - 게헨나 _
사람들이 영원한 형벌과 고통을 받는곳 이라고 말합니다.
끝이 없는 형벌 ,의식과 생명을 가진채로 영원한 형벌에 맞게 부활한 몸을 가진채로 받게 되는 형벌입니다.
▲ 예수님의 비유에는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부자와 거지죠
나 이 비유에서 거지로 등장하는 ‘나사로’의 이름만 나옵니다
성경에 부자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당시 이스라엘의 배경에서 이 부자는 당연히 신명기의 율법을 잘지켰기 때문에 복을 받았을것이라고 생각 했을 것 이다.
그리고 거지 나사로는 병들고 가난했다고 합니다. 이 병든 나사로는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저주을 받아 가난하고 병들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자는 지옥에 가고 , 거지는 천국에 갑니다.
이 비유는 바리새인들뿐만 아니라 당시 듣는 모든 이에게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부자는 누가 봐도 당시 "회당에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을" 위치의 사람으로 보인다.
부자가 입고 있었던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은 당시 제사장들이나 귀족들이 입는 옷의 형태였고, 또 날마다 즐거운 만찬을 열 정도의 사람이면 사회적 위치도 어느 정도 높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자는 이 지옥에 있습니다 왜죠?
눅16;1 이하에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을 하면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을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의로운 부자가 아니라 불의한 부자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율법을 지켜서 부자가 되었으니 마땅히 천국에 갈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기 나사로에게 시켜 물을 가져달라고 하는 [자기 종처럼] 취급합니다.
온갖 부정한일을 다지으면서 의로운척 합니다.
◑1.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
‘자기 좋은 것을 추구하며 살았으므로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가 석연치 않다고 말합니다.
단지 부자라는 이유로, 지옥에 간다고 말할 수는 당연히 없습니다.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에 대해,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25절에 나옵니다
‘생각해 보아라 너는 살아 있을 때 좋은 것을 마음 껏 누렸다!’ 마16:25 부자는 이미 얻었다는 거죠 네 인생 중에 가장 좋은 것을 이미 누렸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구절은, 부자의 자기 생각에 ‘최고 좋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에 의해 지배을 받습니까?
자기가 “최고로 좋아 하는것에 ” 지배을 받습니다.
“저렇게 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들의 지식과 위대한 두뇌, 그리고 놀라운 자질이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신의 욕정[한순간의 충동으로 일어나는 욕심]과
열정[ 열렬한 애정]그리고
욕망에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 저희는 부패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라고 묘사 하고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그는, 죄의 정의에 대해 씨름합니다 그리고선 죄를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통해 정체성[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세우는 것’이라 정의하죠
▲여러분의 ‘최고 선’은 무엇입니까?
즉, 여러분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궁극적 가치(최고 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최고 선)은 무엇이며 여러분에게 삶의 정체성[내면에서의 -어떤 존재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을 부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이 각자에게 다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 정체성을 부여합니다
그것의 성취가 자기 삶의 목적입니다
부자는 그것을 이미 얻었다는 것입니다‘생각해 보아라
너는 살아 있을 때 좋은 것을 마음 껏 누렸다!’ 눅16:25과거형입니다
부자에게 그 최고 선이란,
그에게는 <지위와 부>가 자기 정체성의 기초이자 최고 목표였습니다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또는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지옥은 스스로 선택하는 정체성[내면에서의 -어떤 존재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정체성, 자기 만족을 찾아야 되는데
‘자기 생각에 좋은 것을 다 누리려고’ 합니다
다른 말로, 스스로 선택한 정체성[존재의 본질]입니다
그 잘못된, 죄성의, 자기 육신의 소욕에 따른 정체성으로 계속 살면..
회개하기 전까지 영원한 현재 지옥에서 살죠.
사람들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자기 살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라고 합니다 . 간섭하지 말라고 합니다,그 상태가 바로 지옥이라니까요!
이 현실 속 '미완성의 지옥'입니다
지옥은 자기 선택입니다 하나님이 거기로 보내시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기가 선택하는 곳입니다
오히려 그런 자기를 내버려두고, 간섭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히려 양심의 소리에 저항 합니다.
양심은 “ 왜? 그렇게 사냐?
그런짓 하지마. 거짓말 하지말라 ...
나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성령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정체성
[내면에서의 -어떤 존재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
의 핵심을 하나님께 두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최고 선, 여러분의 이 세상에서 원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이루고 싶은 일이 ‘하나님의 영광’이십니까?
바꾸어 말하면 나사로는 비록 현세에서 부자로는 살지 못했지만
자기의 최고 선, 자기가 이 세상에서 원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이루고 싶은 일이 ‘하나님의 영광’이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
왜? 그이 이름‘나사로- 하나님이 도우시다“ 였다.
그는 가난하고 병들어도 의롭게 살았다. 그래서 그는 천국간다.
눅 16;25] 그래서 그가 천국에서 위로와 평안을 얻은 것입니다!
◑2. 둘째로, 흥미를 느끼는 점은 25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천국에서 지옥을 바라보며 부자를 바라보며 뭐라고 말하나요? ‘이 악마 같은 죄인아!’ 이러나요?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부자를 '얘야'(Son, 아들아)라고 부른다.
부자는 언약의 백성이자 아브라함의 후손이었고,
그들의 이해에서 이들은 혈통을 따라 마땅히 천국에 들어갔어야 한다. 그러나 부자가 다음 세상에서 처한 현실은 음부(지옥, the hell)이었다
어느 주석가는 말합니다 이 말에는 연민이 묻어 있습니다.
슬픔도 묻어있고,
비극적인 마음도 묻어 있죠 아브라함이 부자를 지금 경멸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지옥에서 구원 받으시기 원합니다.
신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마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3 부자는 그의 5형제들을 위해 아브라함 에게 요청합니다
“나사로를 세상에 다시 보내주세요”그들은 나사로가 이미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만약 나사로가 갑자기 무덤에서 일어난다면 부자의 5형제 앞에서 말이죠
나사로가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부자의 말을 전해 줍니다
(이래도 물론 믿기 어렵겠지만요) ‘지옥은 존재 한단다!’
5형제가 뭐라 말할 것 같나요? ‘이런 잰장, 좀 더 착하게 살아야겠군, 지옥에 가긴 싫어’
그런데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서 사람들을 설득 할찌라도
성경을 들기 싫어 한다면 듣지 않는 것입니다.
벧전2;1-2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말로 ,음악의 성향으로,
지옥가는 사람을 설득 할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성경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설득이 불가능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을까요?
성경은 어리석은자를 깨우쳐 줍니다.[지혜로운자 - 묵상, 모방, 경험[고통] ]
어리석다 - 히브리어 “ 열린문”을 가리킵니다.
마음이 어리석은 사람은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분별없이 받아들이지만 아무것도 담지 못합니다.
성경은 좀 더 신중하게, 쓸모 없는 것 들은 구별 할줄 모르는[단순한]사람을 지혜롭게 합니다.
선한일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선한일이란 하나님이 볼 때 선한 것 이며 그분을 높이는일 입니다.
딤후3;16-17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 마5;16절 ]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성경의 목적은
우리가 선한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성경은 우리 삶속에서 우리을 책망 합니다.
우리의 죄와 잘못된 부분을 지적 합니다.
왜곡된 생각을 바르게 합니다.
그런후에 바르게 회복시키 주십니다.
그래서 모든 해답은 “성경에 ” 있습니다.
성경을 말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성경으로 인도 해야 합니다.
성경은 성령께서 영혼들을 거듭나게 하시고 지옥 에서 건지시는 유일하게 믿을수 있는 수단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경을 아는것과 이용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