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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충성척도(평형저울)의 심판
진정한 충성척도(尺度:평가판단기준)의 순종결과[평형(平衡:수평)저울-양팔저울]
많은 사람은“내가 어떻게 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것인가?”하고 묻는다. 그대들은 그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하나, 도덕적 힘이 약해서 유혹의 종이 되고, 죄악적 생애의 습관에 지배를 받고 있다. 그대들의 약속과 결심은 썩은 새끼와 같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생각과 동기와 애정을 억제[죄를 피하지 못함]할 수 없다. 그대들이 약속을 어긴 것과 맹세한 것을 이행치 못해 온 사실을 깨달을 때에, 그것이 그대 자신의 성실성에 대한 그대들의 신임을 약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그대들을 받으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그대들은 낙심할 필요는 없다. 그대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곧 의지의 참 힘이다. 이것이 사람에게 있는 지혜력이요, 결정력이요, 선택력이다.
만사(萬事:모든 일과)는 의지를 옳게 쓰는지 여부에 달렸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셨으니, 그대들은 이것을 사용할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마음을 고칠 수 없고, 그대 자신으로는 애정을 하나님께 바칠 수 없다. 그러나 그대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할 수는 있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의지를 하나님께 바칠 수 있나니, 그리하면 그는 그대들 안에서 그대들이 원하고 행하는 것을,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들의 성질(性質:마음 본바탕)은 그리스도의 신[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고, 그대들의 애정은 그에게 중심을 두게 되고, 그대들의 사상(思想:마음생각)은 그와 조화(調和:진리로 어울려 하나)될 것이다.(SC 47.1)
영원히 되찾을 수 없이 빨리 지나가고 있는 순간[시간과 시간사이-찰나]들의 중요성을 깨닫고, 하나님의 큰 날[마지막 심판의 날]에 서기 위하여 준비하지 않는 한, 우리는 불충실한 청지기[주님의 종]가 되고 말 것이다. 만사는 지금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엄숙성(嚴肅性:엄한 두려움)을 띠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날을 염두(念頭:마음과 생각)에 두고 행동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세상에 임하려 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큰 날을 위하여 준비할 필요가 있다.(3TT 14.1) 성경이 그대의 일상생활의 척도[기준]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누구나 구원에 이르는 지혜[성령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UL 348.2)
그대의 의지력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연합하여 열심히 사업에 종사한다면, 그대는 책임을 질 수 있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정신력을 기르는 동시에, 육체적인 훈련도 결코 소홀히 하지 말라. 지적(知的:지식적-진리)인 태만(怠慢:외면과 게으름)으로 인해 보다 중요한 지식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지 말라. 연구하는 것과 함께 숙고(熟考:깊이 생각-묵상기도)하는 것을 배우라. 그리하면, 마음이 넓어지고 강해지고 계발된다. 충분히 배웠으므로 이제는 노력을 늦추어도 좋다는 생각은 금물(禁物: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계발된 마음은 그 사람을 재는 척도가 된다. 교육은 평생 계속되어야 한다. 매일 배우고, 배운 지식을 실생활(實生活:실제의 생활)에 적용해야 한다.(1TT 581.2)
하나님께서는 잠시 후에 일어날 엄숙한 사건들에 관하여 예언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대들이 이런 말씀을 읽을 때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으십니까? 아니면 그럴 듯한 철학적 이론에 귀를 기울임으로, 하나님께 대한 그대들의 신앙을 포기하였습니까? 그대들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겸비하게 하지 않고 그대들의 죄를 자복하지 않으므로 그대들에게 내리게 될 징벌을 그 어떤 세력이 피할 수 있게 하겠습니까? 나의 형제들이여, 의료선교사업의 모든 현황이 어떠합니까?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는 모든 사건들에 관하여 성경을 통해서 그대들에게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마지막 큰 심판의 날이 불원간 임할 것입니다.
그대들의 생애[일생행위]가 성소의 저울에 달아보아 부족함이 없다는 판정[심판결정]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생애였습니까? 아니면 그대의 신앙이 불신의 사상을 드러낼 때까지 추락(墮落:불순종]하여 왔습니까? 인간들에 대한 그대들의 순종이 하나님께 대하여 배반[대적]하게 하였습니까?“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13:5).(1SM 198.3) 그대의 품성의 두루마기는 모든 더러움을 위하여 열린 샘에서 점이 없기까지 빨아야 한다. 그대의 도덕적 가치는 성소의 저울에 의해 달릴 것이며, 부족한 것이 드러나면, 그대는 영원히 손실(損失:손해로 잃어버림)될 것이다. 모든 야비(野鄙:성질행동이 천하고 교활)함, 모든 거친 것들이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 그대의 품성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이는 그가 오실 때 모든 영혼들의 준비는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3SM 155.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품과 행실과 동기를 성소의 저울에다 달아 보신다. 우리의 마음을 그분에게로 이끄시기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우리의 구속주에게 사랑과 순종이 부족하다는 선언을 받는 것은 두려운 일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크고도 귀중한 은사(恩赦:은혜와 용서)를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빛과 그분의 뜻에 대한 지식[믿음의 신뢰심]을 주셔서, 우리가 실족하거나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도록 하셨다. 마지막 결산[심판]과 보상의 날에 저울에 달려서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요, 결코 고칠 수없는 무서운 과오[불순종의 죄]가 될 것이다. 젊은 친구들이여, 하나님의 책에서 그대들의 이름을 찾는 것이 헛된 일이 되어야겠는가?(CCh 188.2)
여기서 신자[성도]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저울질을 감당(堪當:견뎌 이김)치 못할 것이다. 성소의 저울로 달아볼 때, 그들은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여,“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고후6:17,8). 얼마나 귀한 약속인가! 그러나 이것이 명령(命令)에 대한 순종(順從)에 기초(基礎)되어 있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세상과 분리하도록 부르신다. 그대는 그들의 행습을 따라서는 안 되며,어떤 점에서라도 그들의 행동을 본받아서는 안 된다.“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2T 43.2)
하나님께서는 경홀(輕忽:가볍고 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에 대해서 오래 참으실는지 모르나, 결단코 저들의 악[죄악]을 갚으시되, 각자의 행동[행위]에 따라 각자에게 갚으실 것이다. 비록 인간이 자만하게 말하고, 스스로의 지혜에 대해서 교만을 부릴지 모르나, 하나님의 입술은 단숨에 그들의 명예와 자랑을 진토 가운데 내던질 수 있다. 나는 B형제가 하나님의 날, 곧 모든 것이 성소의 저울에 무게가 달리는 날, 용서받지 못하게 될 것임을 보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하신 사업의 성격을 판단할 만한 충분한 증거[양심과 죄의식]를 가졌다. 이 사업의 열매가 그의 앞에 있으며, 만일 그가 원한다면 그는 그것을 보고 이해할 수 있다.(3T 444.1)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충성한 자는 큰 것에도 불충성하니라.” (눅16:10). 그것을 옳고 그르게 하는 것은, 일의 경중(輕重:크며 무겁고 작고 가벼움)에 있지 않다. 사람은 그의 동료를 대하는 방식대로 하나님을 대할[동료에 행함이 주를 대함과 같음] 것이다. 불의한 재물에 불신실한 자는, 참된 부[하늘 재물]에 신실(信實:믿음직하고 진실)할 수 없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모든 사업상 거래행위에 입각(立脚:확고한 양심적 정상거래)하여, 성소(聖所:거룩한 보좌가 있는 곳)의 저울에 달려서 그들이 시험을 받고 있다는 사실[즉각적인 심판기록]을 잊어서는 안 된다.(4T 311.1)
제 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는 성소의 저울로 달려질 것이다. 그 교회는 받은바 특권과 이점(利點:예수증거의 진리를 위탁받음)에 의하여 판정을 받을 것이다. 만일 그 교회의 영적경험이 그리스도께서 무한(無限:끝없는 은혜)한 대가(代價:구속의 경륜과 십자가)로 그에게 준 특권(特權:죄 속함의 구원)에 일치[순종으로 진리와 하나] 하지 못한다면, 받은바 축복이 그에게 위탁(委託:구속사업 부여)된 사업을 수행할 자격을 그에게 갖추어 주지 못했다면,“부족함이 뵈었다”는 선고(宣告:죄의 형량을 크게 선언)가 그에게 내릴 것이다. 주어진 빛[진리]과 받은바 기회[속죄의 시간]에 의하여 그는 판정(判定:결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8T 247.2)
가난한 자들도 주[베풀어 줌]는 특권에서 제외(除外:예외)되지 않는다. 그들은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사업에서 한 몫을 담당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과부의 두 ‘렙돈’[화폐단위]에 관하여 주신 교훈은, 사랑의 마음으로 바쳐지기만 하면, 가난한 자가 즐겨 바치는 가장 적은 액수의 헌금이, 부자의 가장 큰 기부와 똑같이 열납(說納:가납-헌납)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성소의 저울에서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므로 바친 가난한 자들의 선물이 바쳐진 양에 따라서 평가되지 않고, 그 희생(犧牲:자신의 모든 것을 바침)의 동기(動機:사랑의 마음이 되는 계기가 되는)가 되는 사랑에 의하여, 평가(評價:말씀실천의 순종가치가 인정)된다.(9T 224.3)
많은 사람들의 품성(品性:품격)은 세속적[세상적]인 부자들에게 둔 거짓평가[인간기준]에 의하여 꼴 지어져 왔다. 저택[화려한 고급주택]과 토지들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지는 존경으로 칭찬을 받고, 기만당하여, 부자가 갖지 못한 덕성(德性:어질고 덕스러운-구주의 품성)들을 소유한,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蔑視:업신여겨 깔봄) 할 수도 있다. 성소의 황금저울에 달릴 때 이기적이요, 욕심 많은 부자들은 부족함이 드러날 것이다. 그와 반면[그와 다르게]에 자기의 덕성과 선이 오로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달려있는 것으로 신뢰(信賴:굳은 믿음의 의지)한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부[유업]를 상속받는 자로, 선언(宣言:칭찬의 큰 발표)을 받게 될 것이다.(WM 173.1)
여기 죄진[죄 지은] 인간들이 성취(成就:속죄의 구원 이룸)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 하나 있다. 이 말씀은 참된 회개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다. 율법사(律法司:율법연구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영생을 구하는 사람들의 전반적(全般的:모든 율법의 순종)인 의무를 포함(包含:함께 속함)하고 있다. 율법사는 영생의 조건에 대해 이처럼 직접적이고 정수(精髓:영생의 중요한 논리)를 찌르며 묻는 질문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 질문의 취지를 이해했다. 율법의 요구에 응하여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아껴야 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이들 중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성령의 감화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명백(明白:명명백백-확실)하게 제시되어 있는, 첫 네 계명과 두 번째 여섯 계명을 따르지 않은데 대한 죄책감(罪責感:범죄에 대한 책임감정)을 느꼈다.
그는 성소의 저울에 달려 부족함을 보이는 자신을 보았다. 그는 하나님을 최고로 섬기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율법에 나타난 이 요구(要求:하나님 사랑을 통한 속죄)를 성실히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일도 충실(忠實:충성신실)히 하지 못했다.(UL 221.4) 하늘의 하나님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 위에 축복해 오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귀한 백성으로 서 있겠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율법을 짓밟으면서, 율법이 폐했다고 말하겠는가? 율법을 폐한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폐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FLB 95.3)
그리스도와 함께 성소에 들어감(히7:25,요일2:1)—지금은 대속 죄 일이다. 우리의 대언자(代言者: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앞에 서 계시며, 우리의 중보자로서 간구하고 계신다. 우리는 자기의 의로 겉옷을 삼지 말고, 매일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비(謙卑:자신을 겸손히 낮춤)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죄를 고백(告白:숨김없이 죄를 고함)하며, 죄의 용서를 구하고,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도록 준비하는 일에 그리스도와 협력하는 자로 발견되어야 한다. 우리가 위에 있는 성소에 들어가지 않고,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으면, 우리는 성소의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하다는 선언(宣言:판정)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7BC 933.14)
우리 하나님께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는 지식에 넘치는 이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에 관하여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될 때, 그분에 대한 사랑이 움튼다. 그리스도의 매력적인 사랑이 계시되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에게 나타내신 그분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완고(頑固:고집의 강퍅)한 마음은 녹아지고 부드러워지며, 죄인은 변화를 입고 하늘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은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사랑은 그분께서 마음에서 죄를 제거(除去:용서)하실 때 사용하시는 대리인이다. 사랑으로써, 하나님은 교만을 겸손으로, 적의(敵意:대적하는 마음씨)와 불신(不信:믿지 않음)을 사랑과 믿음으로 바꾸신다.(MB 76.3)
그러나 하늘의 하나님은 도덕적 가치를 달아보고 계신다. 그분은 의롭게 판단하실 것이다. 악인들은 항상 제지(制止:통제)받지 않은 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내적(內的:마음과 정신)생애에 들어와 품성 가운데 짜 놓인 은혜만이 가장 위대한, 가장 큰 재능을 받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도덕적으로 바르게 지켜줄 수 있다. 지성적인 위대함이 충분할 수 있었다면, 그들의 품성은 반석(磐石:튼튼한 큰 바위같이 믿음직하고 든든한 구주)처럼 견고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덕성 있는 품성을 필요로 했다.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일어나서 의의 전신갑주로 무장[성령으로]하지 않으면 안 된다.(TSB 92.1)
삶을 정결케 하고 품성을 고상하게 하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새로운 생각과 거듭남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이 연결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하늘의 영광스런 왕국에 적합하게 한다. 인간의 발명이 결코 죄 지은 영혼을 치료할 수 없다. 오직 회개와 굴복, 신성한 요구에 순종해야 은혜의 사역을 수행할 수 있다. 죄인이 오랫동안 모욕하고 부당(不當:정상적이지 않게)하게 대한 그분, 하나님은 죄악을 심히 불쾌히 여기시며, 그 때문에 회개는, 범한 죄의 특성과 상응(相應:서로 합당하게)하여 종종 견디기 힘든 영적고뇌(靈的苦惱:마음의 시련)를 가져온다.(BLJ 371.3) 하늘의 하나님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축복해 오셨다.(SD 47.5)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조화되기를 바라신다. 그들의 악한 행위를 벗어 버리면, 하나님은 그들을 받으실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의 성품과 연합함으로 이 세상의 타락한 영향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때는 우리가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를 결정할 때이다. 사단의 대리자들은 사단의 조작을 받도록 마음을 허락한 사람들의 마음을 가지고 일할 것이다. 그러나 또한 하늘의 대리자들도 하나님을 가까이 받아들이려고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의 밝은 빛을 전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리이다. 진리는 자유와 기쁨을 가져다줄 것이다.(BLJ 378.4)
하늘의 문은 다시 한 번 들리어져서, 우리의 구주께서는 천천만만의 거룩한 자들과 더불어“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로서 나타나실 것이다.(딤전 6:15). 여호와 임마누엘은“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슥14:9),“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계21:3)실 것이다.(HP 340.4)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신자들의 특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의 사랑이 인간에게 전달되는 통로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지성의 매체이다.
성령은 하늘의 대리인들과 동역하는 인간대리자에게 주어진다. 사람은 성령을 통해 보이지 않는 그분을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마음과 품성을 변화시킨다. 진리를 믿고 성령을 받아들일 때만 완전한 사랑을 누릴 수 있다...(UL 104.2)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신자들의 특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의 사랑이 인간에게 전달되는 통로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지성의 매체이다. 성령은 하늘의 대리인들과 동역하는 인간 대리자에게 주어진다. 사람은 성령을 통해 보이지 않는 그분을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마음과 품성을 변화시킨다. 진리를 믿고 성령을 받아들일 때만 완전한 사랑을 누릴 수 있다.... (UL 104.2)
하나님의 창조의 안식일을 대적(對敵:맞서 겨루는 사단)하는 한 법률이 있게 될 것이요,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땅 위에 “기이(奇異:기적과 이적)한 일”(사28:21)을 행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사악(邪惡:간사하게 범법)한 인류를 오래 참아 오셨다.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셨지만, 그들의 죄악의 잔(盞:멸망의 잔)이 채워질 때가 올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다. 그때가 거의 이르렀다. 하나님은 나라들과 함께, 한 기록을 보존하고 계신다. 하늘의 책에는, 그들을 대적하는 기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주일[일주일] 중 첫째 날[일요일 예배일]을 범하는 자들에게 형벌(刑罰:범죄자 처벌)을 가한다는 것이 법률로 될 때에, 그때에 그들의 잔은 가득 차는 것이다.(7BC 910.5)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피난처(시27:5,91:9,10 사2:17-21)(창6:17,계20 : 9, 10, 14주해 참조)—인자가 구름 가운데 나타나기 전에 천연계의 모든 사물이 진동할 것이다. 하늘의 번갯불이 땅의 불과 연합하면서 산들을 용광로같이 불타게 할 것이다. 용암의 홍수가 도시들과 촌락들을 덮칠 것이다. 높은 바위들이 지각의 융기로 인하여 다량으로 바다에 던져져서 물이 부글부글 끓고 이로 인하여 바위들과 흙이 튕겨서 솟구칠 것이다. 어마어마한 지진들이 있을 것이며, 엄청난 인명의 손실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홍수 때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방주 속에서 노아를 보전해 주셨던 것과 같이 이 엄청난 재앙의 날에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의 피난처가 되실 것이다.(시91:9, 27:5) (7BC 946.7)
물과 불의 파멸(破滅:멸망)(시144:5,6 나1:5,6)—하나님은 땅속 깊이 무기들을 저장해 두셨으며, 죄 많은 인류를 멸망시키실 때 그것을 사용하실 것이다. 대홍수[노아방주] 이후로 하나님은 사악한 도시들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땅 속에 감추어 두신, 물과 불을 둘 다 사용하셨다. 최후의 대화재[지구 종말의 큰 화재]가 있을 때, 하나님은 진노 중에 하늘의 불을 보내시사, 땅에서 솟아오르는 불과 연합(聯合:하늘과 땅의 불이 합께) 하게 하실 것이다. 산들은 용광로(鎔鑛爐:쇠를 녹이는 화로속의 쇳물) 같이 불탈 것이며, 용암(鎔巖:바위와 쇳물)의 중심이 분출(噴出:한꺼번에 터져 나오게)되어 나올 것이다.(나1:5,시144:5,6인용)(7BC 946.10)
그대는 이 지상[세상]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를 즐기지 않는 한 결코 하늘에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지상이야말로 하늘을 위한 가장 적절한 장소인 까닭이다. 하나님은 심령의 가장 높은 존경과 사랑과 두려움의 대상물이[창조주가] 되어야 한다. 이 세상은 그대가 보다 높은 학급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유일[오직하나]의 학교이다. 이 세상에서 그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기에 기뻐하지 않는 자들, 이생에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을 귀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은 내세에서 결코 그리스도와 더불어 즐거움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자아쾌락을 위하여 선택하고 사랑하는 바로 그것들은, 하늘의 교훈이 제어함을 받도록 그들의 기호(嗜好:즐겨 좋아하고)를 교육하는 것이다. 그대의 심령을 하나님께 가져가 훈련되도록 하라.(HP 161.3)
백성들을 위하여 매우 많은 일을 하신 하나님께서는 죄 있는 백성들과는 일하지 않으심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분은 일편단심으로 그를 섬기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하나님 앞에 그들의 행위가 부패한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지 않으시고, ‘느헤미야’를 통해서 일하셨다. 이는 그가 하늘의 책들에 한 ‘사람’으로 등재(登載:등록하여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나를 존귀히 여기는 그들을 내가 존귀히 여기리라”(삼상2:30)고 하신다. ‘느헤미야’는 몸소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은 그를 쓰셔서 거짓 원칙들을 누르게 ,하늘에서 난 원칙들을 회복케 하셨다. 하나님은 그를 존귀(尊貴:거룩)히 여기셨다. 주께서는 자기의 사업에서 원칙에 강철같이 굳세고, 영적 안목(眼目:분별함)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궤변에는 흔들리지 않을 사람들을 쓰실 것이다.(3BC 1135.4)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막13:35~36). 깨어 있다가 지쳐 버린 자들, 세상의 매력을 향하여 마음을 돌린 자들은, 참으로 위험한 상태에 처해 있다. 사람들이 사업으로 이윤을 남기는 데 마음을 쏟고, 향락을 즐기는 자들이 자기 멋대로 살며, 유행을 좇는 사람들이 치장(治粧:곱게 꾸밈)에 겨를이 없을 바로 그때, 온 세상의 재판장 되신 예수께서,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단5:27)라고 선고하실 것이다.(CIHS 189.3)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는 날에 바벨론이 당할 형벌이 이와 같다. 바벨론은 그 죄의 분량을 다 채웠다. 그의 때가 이르렀고, 멸망의 시기는 무르익어 있다.(GC 653.3)
천사들을 지배하며 가장 은밀한 사상과 욕망과 기질에 순결성을 요구하며, “영원무궁”(시111:8)토록 존재할 이 율법으로 온 세상이 신속(迅速:빠르고 긴급)히 다가오고 있는, 하나님의 날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범죄자들은 스스로 지존 자께서는 알지 못하시고, 전능자께서는 생각지 않으시며, 하나님께서 항상 저들을 용서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불원간(不遠間:앞으로 오래지 않아) 저들은 저희 행위에 대한 보상[보응], 곧 죄의 값인 사망을 받게 될 것이며, 율법을 지킨 의로운 백성은 하늘 도성(都城:예루살렘 성)의 진주문을 통하여 천국으로 인도될 것이며, 하나님과 어린 양의 앞에서 불멸(不滅:영원)의 생명과 기쁨의 면류관을 쓰게 될 것이다.(1SM 220.3)
하나님의 날에 설 수 있는 백성들을 준비시키기 위하여서는 하나의 큰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었다. 그분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의 대부분이 영원한 것을 위하여 준비하지 않고 있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비로써 그들을 혼수상태에서 깨워 주님의 재림을 위하여 준비를 갖추게 하시고자 경고의 기별을 보내실 예정이었다.(GC 311.2)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지각으로 영혼을 채우며 열매를 맺는 겸비는, 사람들이 그들의 행위를 따라 상급을 받는 그 큰 날에 그것을 간직해 온 자들을 위하여 말할 것이다.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자는 행복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성령]이 이 사람을 헛되이 감동시키지 않았다. 그는 힘에 힘을 얻어 앞으로 위로 나아갔다. 그의 생애에 자아[자기]는 짜 넣어지지 않았다.”(3SM 360.2)
상징적[십자가 이전] 의식에는 죄를 회개하고, 고백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들, 곧 그들의 죄가 속죄제물(동물의 피)를 통하여 성소로 옮겨진 자들만이 대 속죄일의 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대 속죄와 조사심판의 날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사건만을 다루게 된다. 악인들의 심판은 완전히 구별되어 있으며, 그것은 그 후에 집행된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벧전4:17) 할 것인가.(GC 480.1) 하나님의 날에 어떤 사람들은 이 귀한 영혼들을 잃은 것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4T 424.1)
그대는 듣기를 속히 하고, 말하기와 노하기는 더디 할 것이다. 그대의 말을 조심하라. 사단이 그대를 다른 사람들의 거친돌로 만들지 못하게 하라. 그대의 사업거래상 실수가 있다. 그대는 사업을 경홀히 한다. 그대는 할 수 있는 대로 일을 빨리 끝낸다. 잘 되지도 않는데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그대는 철저함이 없다. 그대는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멋과 질서를 길러야 한다. 이왕 할 것은 잘 해야 한다. 그대의 사업에서 신실성이 모자란다면, 신앙생활에서도 모자랄 것이며, 하나님의 날에 성전저울에서 그대의 부족한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그 결핍(缺乏:모자라고 없어짐)은 그대의 신앙에 누가 된다. 불신자들이 그것을 부정직이라고 책[견책]할 것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이 그렇다면 나는 교인이 되지 않겠다.”(2T 83.2)
사람 됨됨이는 그가 하는 말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크다. 조용하면서도 일관된, 경건한 생애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읽히는 산[살아있는 모범] 편지이다. 사람이 천사처럼 말하고 글을 쓸 수 있겠지만, 그의 행실은 타락한 대적마귀를 닮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한행실에 열심인 진리의 신자들을 가지실 것이다. 그들이 높은 직임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더 높은 표준으로 시험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체질을 당할 것이다. 결점들과 악덕들이 발견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말과 행동으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참된 품성은 밖에서 형성되거나 덧입혀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안에서부터 밖으로 비쳐 나오는 것이다. 참된 선량함, 순결, 온유함, 겸비함, 그리고 공평성이 마음에 있으면, 그 사실은 품성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품성은 능력이 충만하다.(TSB 82.2)
거룩한 생애에서 향상[그리스도의 정신으로]하려면, 기도를 많이 드려야 한다. 진리의 기별이 처음 선포되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도를 드렸던가! 얼마나 자주 중보의 음성이 방에서, 헛간에서, 과수원이나 숲속에서 들렸는가. 빈번히 우리는 열렬한 기도로 여러 시간을 보내고, 두세 사람이 함께 약속을 주장했다. 때때로 우는 소리가 들리고, 감사의 음성과 찬양의 노래도 들렸다. 지금은 하나님의 날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훨씬 더 가까워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창기보다 훨씬 더 열렬하고 열성적이어야 한다. 우리의 위험은, 그 당시보다 훨씬 더 크다. 심령들은 더욱 굳어져 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물들어야 하며, 우리가 그것을 받을 때까지는 쉬지 말아야 한다.(5T 161.4)
황금률을 준수하라—하나님께서는 이따금, 심지어 불리한 일을 당할지라도, 가난한 자가 손해되는 처지에 놓이지 않도록 보호해 줄 누군가를 일으키신다. 이것이 자기 동료에 대한 인간의 의무이다. 행동의 결과를 분별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람의 무지를 이해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가 맹목적으로 행동하지 않도록, 그리고 당연히 그의 것이 되는 자원들을 잃지 않도록, 각 방면으로 문제를 고찰하여, 직접적으로 그 사람 앞에 분명하고 성실하게 그 문제를 보여 주는 것이, 그의 형제가 해야 할 의무이다. 사람이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고 하신 황금률을 준수하면, 오늘날 존재하는 많은 문제들이 신속히 조정되었을 것이다. (WM 202.2)
우리는 세상의 끝이 곧 올 것이라는 이 사실을 모를 수가 없다. 사탄은 남녀의 마음속에서 일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오락과 흥미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는 듯이 보인다. ‘노아’의 때와 같이 모든 종류의 죄악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혼과 결혼이 이 시대의 현상이다. 이와 같은 시대에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遵守:온전히 지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도시들로부터 떨어진 한적(閑寂:조용한 시골에)한 장소들을 찾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 경고의 기별을 전하기 위해 그 도시들에 남아야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점점 더 위험해진다. 태초부터 그 끝을 알고 계신 그분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신 것과 같은 그 진리들을 오늘날 이 세상에 여전히 전해야한다.(MTC 112.3)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비슷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다. 모든 의의 적으로부터 충동을 받아 악을 선이라고 하고 진리를 거짓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바로 선지자가 말한 대로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도다”(사59:14)라는 말씀의 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거기서 나와 따로 있으라고 하신 세상의 형편이요, 정신이다. 세상과 섞인 사람들은 사물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속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고6:14,15)하겠는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분이 보시는 것처럼 본다. 순결하고 선한 것은 선한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LP 236.2)
사단이 그리스도를 공격했지만, 복수심을 촉발시키지는 못함—사단은 모든 점에서 그리스도를 공격했지만, 그분은 생각으로나, 말로나, 행동으로도 범죄 하지 않으셨다. 그는 광포함도, 그 입에 궤사도 없으셨다. 죄의 한 복판을 행하면서도 그는 거룩하고, 순진하고, 더러움이 없으셨다. 그는 나쁜 사람이라는 고소를 당하였지만, 자신을 정당화시키려고 입을 열지 않으셨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죄한 일로 고소를 당할 때에, 참는 것도 한도가 있다고 생각하고, 화를 내고 성령을 슬프게 하는 말을 하는가?(4BC 1148.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리이까? 예수께서 가하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마18:21,22). (OHC 178.1)
많은 사람은“내가 어떻게 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것인가?”하고 묻는다. 그대들은 그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하나, 도덕적 힘이 약해서 유혹의 종이 되고, 죄악적 생애의 습관에 지배를 받고 있다. 그대들의 약속과 결심은 썩은 새끼와 같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생각과 동기와 애정을 억제[죄를 피하지 못함]할 수 없다. 그대들이 약속을 어긴 것과 맹세한 것을 이행치 못해 온 사실을 깨달을 때에, 그것이 그대 자신의 성실성에 대한 그대들의 신임을 약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그대들을 받으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그대들은 낙심할 필요는 없다. 그대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곧 의지의 참 힘이다. 이것이 사람에게 있는 지혜력이요, 결정력이요, 선택력이다.
만사(萬事:모든 일과)는 의지를 옳게 쓰는지 여부에 달렸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셨으니, 그대들은 이것을 사용할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마음을 고칠 수 없고, 그대 자신으로는 애정을 하나님께 바칠 수 없다. 그러나 그대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할 수는 있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의지를 하나님께 바칠 수 있나니, 그리하면 그는 그대들 안에서 그대들이 원하고 행하는 것을,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들의 성질(性質:마음 본바탕)은 그리스도의 신[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고, 그대들의 애정은 그에게 중심을 두게 되고, 그대들의 사상(思想:마음생각)은 그와 조화(調和:진리로 어울려 하나)될 것이다.(SC 47.1)
영원히 되찾을 수 없이 빨리 지나가고 있는 순간[시간과 시간사이-찰나]들의 중요성을 깨닫고, 하나님의 큰 날[마지막 심판의 날]에 서기 위하여 준비하지 않는 한, 우리는 불충실한 청지기[주님의 종]가 되고 말 것이다. 만사는 지금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엄숙성(嚴肅性:엄한 두려움)을 띠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날을 염두(念頭:마음과 생각)에 두고 행동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세상에 임하려 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큰 날을 위하여 준비할 필요가 있다.(3TT 14.1) 성경이 그대의 일상생활의 척도[기준]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누구나 구원에 이르는 지혜[성령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UL 348.2)
그대의 의지력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연합하여 열심히 사업에 종사한다면, 그대는 책임을 질 수 있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정신력을 기르는 동시에, 육체적인 훈련도 결코 소홀히 하지 말라. 지적(知的:지식적-진리)인 태만(怠慢:외면과 게으름)으로 인해 보다 중요한 지식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지 말라. 연구하는 것과 함께 숙고(熟考:깊이 생각-묵상기도)하는 것을 배우라. 그리하면, 마음이 넓어지고 강해지고 계발된다. 충분히 배웠으므로 이제는 노력을 늦추어도 좋다는 생각은 금물(禁物: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계발된 마음은 그 사람을 재는 척도가 된다. 교육은 평생 계속되어야 한다. 매일 배우고, 배운 지식을 실생활(實生活:실제의 생활)에 적용해야 한다.(1TT 581.2)
하나님께서는 잠시 후에 일어날 엄숙한 사건들에 관하여 예언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대들이 이런 말씀을 읽을 때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으십니까? 아니면 그럴 듯한 철학적 이론에 귀를 기울임으로, 하나님께 대한 그대들의 신앙을 포기하였습니까? 그대들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겸비하게 하지 않고 그대들의 죄를 자복하지 않으므로 그대들에게 내리게 될 징벌을 그 어떤 세력이 피할 수 있게 하겠습니까? 나의 형제들이여, 의료선교사업의 모든 현황이 어떠합니까?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는 모든 사건들에 관하여 성경을 통해서 그대들에게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마지막 큰 심판의 날이 불원간 임할 것입니다.
그대들의 생애[일생행위]가 성소의 저울에 달아보아 부족함이 없다는 판정[심판결정]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생애였습니까? 아니면 그대의 신앙이 불신의 사상을 드러낼 때까지 추락(墮落:불순종]하여 왔습니까? 인간들에 대한 그대들의 순종이 하나님께 대하여 배반[대적]하게 하였습니까?“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13:5).(1SM 198.3) 그대의 품성의 두루마기는 모든 더러움을 위하여 열린 샘에서 점이 없기까지 빨아야 한다. 그대의 도덕적 가치는 성소의 저울에 의해 달릴 것이며, 부족한 것이 드러나면, 그대는 영원히 손실(損失:손해로 잃어버림)될 것이다. 모든 야비(野鄙:성질행동이 천하고 교활)함, 모든 거친 것들이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 그대의 품성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이는 그가 오실 때 모든 영혼들의 준비는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3SM 155.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품과 행실과 동기를 성소의 저울에다 달아 보신다. 우리의 마음을 그분에게로 이끄시기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우리의 구속주에게 사랑과 순종이 부족하다는 선언을 받는 것은 두려운 일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크고도 귀중한 은사(恩赦:은혜와 용서)를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빛과 그분의 뜻에 대한 지식[믿음의 신뢰심]을 주셔서, 우리가 실족하거나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도록 하셨다. 마지막 결산[심판]과 보상의 날에 저울에 달려서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요, 결코 고칠 수없는 무서운 과오[불순종의 죄]가 될 것이다. 젊은 친구들이여, 하나님의 책에서 그대들의 이름을 찾는 것이 헛된 일이 되어야겠는가?(CCh 188.2)
여기서 신자[성도]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저울질을 감당(堪當:견뎌 이김)치 못할 것이다. 성소의 저울로 달아볼 때, 그들은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여,“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고후6:17,8). 얼마나 귀한 약속인가! 그러나 이것이 명령(命令)에 대한 순종(順從)에 기초(基礎)되어 있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세상과 분리하도록 부르신다. 그대는 그들의 행습을 따라서는 안 되며,어떤 점에서라도 그들의 행동을 본받아서는 안 된다.“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2T 43.2)
하나님께서는 경홀(輕忽:가볍고 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에 대해서 오래 참으실는지 모르나, 결단코 저들의 악[죄악]을 갚으시되, 각자의 행동[행위]에 따라 각자에게 갚으실 것이다. 비록 인간이 자만하게 말하고, 스스로의 지혜에 대해서 교만을 부릴지 모르나, 하나님의 입술은 단숨에 그들의 명예와 자랑을 진토 가운데 내던질 수 있다. 나는 B형제가 하나님의 날, 곧 모든 것이 성소의 저울에 무게가 달리는 날, 용서받지 못하게 될 것임을 보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하신 사업의 성격을 판단할 만한 충분한 증거[양심과 죄의식]를 가졌다. 이 사업의 열매가 그의 앞에 있으며, 만일 그가 원한다면 그는 그것을 보고 이해할 수 있다.(3T 444.1)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충성한 자는 큰 것에도 불충성하니라.” (눅16:10). 그것을 옳고 그르게 하는 것은, 일의 경중(輕重:크며 무겁고 작고 가벼움)에 있지 않다. 사람은 그의 동료를 대하는 방식대로 하나님을 대할[동료에 행함이 주를 대함과 같음] 것이다. 불의한 재물에 불신실한 자는, 참된 부[하늘 재물]에 신실(信實:믿음직하고 진실)할 수 없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모든 사업상 거래행위에 입각(立脚:확고한 양심적 정상거래)하여, 성소(聖所:거룩한 보좌가 있는 곳)의 저울에 달려서 그들이 시험을 받고 있다는 사실[즉각적인 심판기록]을 잊어서는 안 된다.(4T 311.1)
제 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는 성소의 저울로 달려질 것이다. 그 교회는 받은바 특권과 이점(利點:예수증거의 진리를 위탁받음)에 의하여 판정을 받을 것이다. 만일 그 교회의 영적경험이 그리스도께서 무한(無限:끝없는 은혜)한 대가(代價:구속의 경륜과 십자가)로 그에게 준 특권(特權:죄 속함의 구원)에 일치[순종으로 진리와 하나] 하지 못한다면, 받은바 축복이 그에게 위탁(委託:구속사업 부여)된 사업을 수행할 자격을 그에게 갖추어 주지 못했다면,“부족함이 뵈었다”는 선고(宣告:죄의 형량을 크게 선언)가 그에게 내릴 것이다. 주어진 빛[진리]과 받은바 기회[속죄의 시간]에 의하여 그는 판정(判定:결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8T 247.2)
가난한 자들도 주[베풀어 줌]는 특권에서 제외(除外:예외)되지 않는다. 그들은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사업에서 한 몫을 담당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과부의 두 ‘렙돈’[화폐단위]에 관하여 주신 교훈은, 사랑의 마음으로 바쳐지기만 하면, 가난한 자가 즐겨 바치는 가장 적은 액수의 헌금이, 부자의 가장 큰 기부와 똑같이 열납(說納:가납-헌납)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성소의 저울에서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므로 바친 가난한 자들의 선물이 바쳐진 양에 따라서 평가되지 않고, 그 희생(犧牲:자신의 모든 것을 바침)의 동기(動機:사랑의 마음이 되는 계기가 되는)가 되는 사랑에 의하여, 평가(評價:말씀실천의 순종가치가 인정)된다.(9T 224.3)
많은 사람들의 품성(品性:품격)은 세속적[세상적]인 부자들에게 둔 거짓평가[인간기준]에 의하여 꼴 지어져 왔다. 저택[화려한 고급주택]과 토지들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지는 존경으로 칭찬을 받고, 기만당하여, 부자가 갖지 못한 덕성(德性:어질고 덕스러운-구주의 품성)들을 소유한,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蔑視:업신여겨 깔봄) 할 수도 있다. 성소의 황금저울에 달릴 때 이기적이요, 욕심 많은 부자들은 부족함이 드러날 것이다. 그와 반면[그와 다르게]에 자기의 덕성과 선이 오로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달려있는 것으로 신뢰(信賴:굳은 믿음의 의지)한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부[유업]를 상속받는 자로, 선언(宣言:칭찬의 큰 발표)을 받게 될 것이다.(WM 173.1)
여기 죄진[죄 지은] 인간들이 성취(成就:속죄의 구원 이룸)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 하나 있다. 이 말씀은 참된 회개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다. 율법사(律法司:율법연구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영생을 구하는 사람들의 전반적(全般的:모든 율법의 순종)인 의무를 포함(包含:함께 속함)하고 있다. 율법사는 영생의 조건에 대해 이처럼 직접적이고 정수(精髓:영생의 중요한 논리)를 찌르며 묻는 질문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 질문의 취지를 이해했다. 율법의 요구에 응하여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아껴야 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이들 중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성령의 감화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명백(明白:명명백백-확실)하게 제시되어 있는, 첫 네 계명과 두 번째 여섯 계명을 따르지 않은데 대한 죄책감(罪責感:범죄에 대한 책임감정)을 느꼈다.
그는 성소의 저울에 달려 부족함을 보이는 자신을 보았다. 그는 하나님을 최고로 섬기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율법에 나타난 이 요구(要求:하나님 사랑을 통한 속죄)를 성실히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일도 충실(忠實:충성신실)히 하지 못했다.(UL 221.4) 하늘의 하나님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 위에 축복해 오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귀한 백성으로 서 있겠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율법을 짓밟으면서, 율법이 폐했다고 말하겠는가? 율법을 폐한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폐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FLB 95.3)
그리스도와 함께 성소에 들어감(히7:25,요일2:1)—지금은 대속 죄 일이다. 우리의 대언자(代言者: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앞에 서 계시며, 우리의 중보자로서 간구하고 계신다. 우리는 자기의 의로 겉옷을 삼지 말고, 매일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비(謙卑:자신을 겸손히 낮춤)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죄를 고백(告白:숨김없이 죄를 고함)하며, 죄의 용서를 구하고,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도록 준비하는 일에 그리스도와 협력하는 자로 발견되어야 한다. 우리가 위에 있는 성소에 들어가지 않고,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으면, 우리는 성소의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하다는 선언(宣言:판정)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7BC 933.14)
우리 하나님께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는 지식에 넘치는 이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에 관하여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될 때, 그분에 대한 사랑이 움튼다. 그리스도의 매력적인 사랑이 계시되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에게 나타내신 그분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완고(頑固:고집의 강퍅)한 마음은 녹아지고 부드러워지며, 죄인은 변화를 입고 하늘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은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사랑은 그분께서 마음에서 죄를 제거(除去:용서)하실 때 사용하시는 대리인이다. 사랑으로써, 하나님은 교만을 겸손으로, 적의(敵意:대적하는 마음씨)와 불신(不信:믿지 않음)을 사랑과 믿음으로 바꾸신다.(MB 76.3)
그러나 하늘의 하나님은 도덕적 가치를 달아보고 계신다. 그분은 의롭게 판단하실 것이다. 악인들은 항상 제지(制止:통제)받지 않은 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내적(內的:마음과 정신)생애에 들어와 품성 가운데 짜 놓인 은혜만이 가장 위대한, 가장 큰 재능을 받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도덕적으로 바르게 지켜줄 수 있다. 지성적인 위대함이 충분할 수 있었다면, 그들의 품성은 반석(磐石:튼튼한 큰 바위같이 믿음직하고 든든한 구주)처럼 견고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덕성 있는 품성을 필요로 했다.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일어나서 의의 전신갑주로 무장[성령으로]하지 않으면 안 된다.(TSB 92.1)
삶을 정결케 하고 품성을 고상하게 하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새로운 생각과 거듭남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이 연결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하늘의 영광스런 왕국에 적합하게 한다. 인간의 발명이 결코 죄 지은 영혼을 치료할 수 없다. 오직 회개와 굴복, 신성한 요구에 순종해야 은혜의 사역을 수행할 수 있다. 죄인이 오랫동안 모욕하고 부당(不當:정상적이지 않게)하게 대한 그분, 하나님은 죄악을 심히 불쾌히 여기시며, 그 때문에 회개는, 범한 죄의 특성과 상응(相應:서로 합당하게)하여 종종 견디기 힘든 영적고뇌(靈的苦惱:마음의 시련)를 가져온다.(BLJ 371.3) 하늘의 하나님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축복해 오셨다.(SD 47.5)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조화되기를 바라신다. 그들의 악한 행위를 벗어 버리면, 하나님은 그들을 받으실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의 성품과 연합함으로 이 세상의 타락한 영향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때는 우리가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를 결정할 때이다. 사단의 대리자들은 사단의 조작을 받도록 마음을 허락한 사람들의 마음을 가지고 일할 것이다. 그러나 또한 하늘의 대리자들도 하나님을 가까이 받아들이려고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의 밝은 빛을 전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리이다. 진리는 자유와 기쁨을 가져다줄 것이다.(BLJ 378.4)
하늘의 문은 다시 한 번 들리어져서, 우리의 구주께서는 천천만만의 거룩한 자들과 더불어“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로서 나타나실 것이다.(딤전 6:15). 여호와 임마누엘은“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슥14:9),“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계21:3)실 것이다.(HP 340.4)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신자들의 특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의 사랑이 인간에게 전달되는 통로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지성의 매체이다.
성령은 하늘의 대리인들과 동역하는 인간대리자에게 주어진다. 사람은 성령을 통해 보이지 않는 그분을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마음과 품성을 변화시킨다. 진리를 믿고 성령을 받아들일 때만 완전한 사랑을 누릴 수 있다...(UL 104.2)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신자들의 특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의 사랑이 인간에게 전달되는 통로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지성의 매체이다. 성령은 하늘의 대리인들과 동역하는 인간 대리자에게 주어진다. 사람은 성령을 통해 보이지 않는 그분을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마음과 품성을 변화시킨다. 진리를 믿고 성령을 받아들일 때만 완전한 사랑을 누릴 수 있다.... (UL 104.2)
하나님의 창조의 안식일을 대적(對敵:맞서 겨루는 사단)하는 한 법률이 있게 될 것이요,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땅 위에 “기이(奇異:기적과 이적)한 일”(사28:21)을 행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사악(邪惡:간사하게 범법)한 인류를 오래 참아 오셨다.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셨지만, 그들의 죄악의 잔(盞:멸망의 잔)이 채워질 때가 올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다. 그때가 거의 이르렀다. 하나님은 나라들과 함께, 한 기록을 보존하고 계신다. 하늘의 책에는, 그들을 대적하는 기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주일[일주일] 중 첫째 날[일요일 예배일]을 범하는 자들에게 형벌(刑罰:범죄자 처벌)을 가한다는 것이 법률로 될 때에, 그때에 그들의 잔은 가득 차는 것이다.(7BC 910.5)
물과 불의 파멸(破滅:멸망)(시144:5,6 나1:5,6)—하나님은 땅속 깊이 무기들을 저장해 두셨으며, 죄 많은 인류를 멸망시키실 때 그것을 사용하실 것이다. 대홍수[노아방주] 이후로 하나님은 사악한 도시들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땅 속에 감추어 두신, 물과 불을 둘 다 사용하셨다. 최후의 대화재[지구 종말의 큰 화재]가 있을 때, 하나님은 진노 중에 하늘의 불을 보내시사, 땅에서 솟아오르는 불과 연합(聯合:하늘과 땅의 불이 합께) 하게 하실 것이다. 산들은 용광로(鎔鑛爐:쇠를 녹이는 화로속의 쇳물) 같이 불탈 것이며, 용암(鎔巖:바위와 쇳물)의 중심이 분출(噴出:한꺼번에 터져 나오게)되어 나올 것이다.(나1:5,시144:5,6인용)(7BC 946.10)
그대는 이 지상[세상]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를 즐기지 않는 한 결코 하늘에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지상이야말로 하늘을 위한 가장 적절한 장소인 까닭이다. 하나님은 심령의 가장 높은 존경과 사랑과 두려움의 대상물이[창조주가] 되어야 한다. 이 세상은 그대가 보다 높은 학급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유일[오직하나]의 학교이다. 이 세상에서 그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기에 기뻐하지 않는 자들, 이생에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을 귀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은 내세에서 결코 그리스도와 더불어 즐거움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자아쾌락을 위하여 선택하고 사랑하는 바로 그것들은, 하늘의 교훈이 제어함을 받도록 그들의 기호(嗜好:즐겨 좋아하고)를 교육하는 것이다. 그대의 심령을 하나님께 가져가 훈련되도록 하라.(HP 161.3)
백성들을 위하여 매우 많은 일을 하신 하나님께서는 죄 있는 백성들과는 일하지 않으심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분은 일편단심으로 그를 섬기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하나님 앞에 그들의 행위가 부패한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지 않으시고, ‘느헤미야’를 통해서 일하셨다. 이는 그가 하늘의 책들에 한 ‘사람’으로 등재(登載:등록하여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나를 존귀히 여기는 그들을 내가 존귀히 여기리라”(삼상2:30)고 하신다. ‘느헤미야’는 몸소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은 그를 쓰셔서 거짓 원칙들을 누르게 ,하늘에서 난 원칙들을 회복케 하셨다. 하나님은 그를 존귀(尊貴:거룩)히 여기셨다. 주께서는 자기의 사업에서 원칙에 강철같이 굳세고, 영적 안목(眼目:분별함)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궤변에는 흔들리지 않을 사람들을 쓰실 것이다.(3BC 1135.4)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막13:35~36). 깨어 있다가 지쳐 버린 자들, 세상의 매력을 향하여 마음을 돌린 자들은, 참으로 위험한 상태에 처해 있다. 사람들이 사업으로 이윤을 남기는 데 마음을 쏟고, 향락을 즐기는 자들이 자기 멋대로 살며, 유행을 좇는 사람들이 치장(治粧:곱게 꾸밈)에 겨를이 없을 바로 그때, 온 세상의 재판장 되신 예수께서,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단5:27)라고 선고하실 것이다.(CIHS 189.3)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는 날에 바벨론이 당할 형벌이 이와 같다. 바벨론은 그 죄의 분량을 다 채웠다. 그의 때가 이르렀고, 멸망의 시기는 무르익어 있다.(GC 653.3)
천사들을 지배하며 가장 은밀한 사상과 욕망과 기질에 순결성을 요구하며, “영원무궁”(시111:8)토록 존재할 이 율법으로 온 세상이 신속(迅速:빠르고 긴급)히 다가오고 있는, 하나님의 날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범죄자들은 스스로 지존 자께서는 알지 못하시고, 전능자께서는 생각지 않으시며, 하나님께서 항상 저들을 용서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불원간(不遠間:앞으로 오래지 않아) 저들은 저희 행위에 대한 보상[보응], 곧 죄의 값인 사망을 받게 될 것이며, 율법을 지킨 의로운 백성은 하늘 도성(都城:예루살렘 성)의 진주문을 통하여 천국으로 인도될 것이며, 하나님과 어린 양의 앞에서 불멸(不滅:영원)의 생명과 기쁨의 면류관을 쓰게 될 것이다.(1SM 220.3)
하나님의 날에 설 수 있는 백성들을 준비시키기 위하여서는 하나의 큰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었다. 그분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의 대부분이 영원한 것을 위하여 준비하지 않고 있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비로써 그들을 혼수상태에서 깨워 주님의 재림을 위하여 준비를 갖추게 하시고자 경고의 기별을 보내실 예정이었다.(GC 311.2)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지각으로 영혼을 채우며 열매를 맺는 겸비는, 사람들이 그들의 행위를 따라 상급을 받는 그 큰 날에 그것을 간직해 온 자들을 위하여 말할 것이다.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자는 행복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성령]이 이 사람을 헛되이 감동시키지 않았다. 그는 힘에 힘을 얻어 앞으로 위로 나아갔다. 그의 생애에 자아[자기]는 짜 넣어지지 않았다.”(3SM 360.2)
상징적[십자가 이전] 의식에는 죄를 회개하고, 고백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들, 곧 그들의 죄가 속죄제물(동물의 피)를 통하여 성소로 옮겨진 자들만이 대 속죄일의 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대 속죄와 조사심판의 날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사건만을 다루게 된다. 악인들의 심판은 완전히 구별되어 있으며, 그것은 그 후에 집행된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벧전4:17) 할 것인가.(GC 480.1) 하나님의 날에 어떤 사람들은 이 귀한 영혼들을 잃은 것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4T 424.1)
그대는 듣기를 속히 하고, 말하기와 노하기는 더디 할 것이다. 그대의 말을 조심하라. 사단이 그대를 다른 사람들의 거친돌로 만들지 못하게 하라. 그대의 사업거래상 실수가 있다. 그대는 사업을 경홀히 한다. 그대는 할 수 있는 대로 일을 빨리 끝낸다. 잘 되지도 않는데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그대는 철저함이 없다. 그대는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멋과 질서를 길러야 한다. 이왕 할 것은 잘 해야 한다. 그대의 사업에서 신실성이 모자란다면, 신앙생활에서도 모자랄 것이며, 하나님의 날에 성전저울에서 그대의 부족한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그 결핍(缺乏:모자라고 없어짐)은 그대의 신앙에 누가 된다. 불신자들이 그것을 부정직이라고 책[견책]할 것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이 그렇다면 나는 교인이 되지 않겠다.”(2T 83.2)
사람 됨됨이는 그가 하는 말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크다. 조용하면서도 일관된, 경건한 생애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읽히는 산[살아있는 모범] 편지이다. 사람이 천사처럼 말하고 글을 쓸 수 있겠지만, 그의 행실은 타락한 대적마귀를 닮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한행실에 열심인 진리의 신자들을 가지실 것이다. 그들이 높은 직임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더 높은 표준으로 시험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체질을 당할 것이다. 결점들과 악덕들이 발견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말과 행동으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참된 품성은 밖에서 형성되거나 덧입혀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안에서부터 밖으로 비쳐 나오는 것이다. 참된 선량함, 순결, 온유함, 겸비함, 그리고 공평성이 마음에 있으면, 그 사실은 품성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품성은 능력이 충만하다.(TSB 82.2)
거룩한 생애에서 향상[그리스도의 정신으로]하려면, 기도를 많이 드려야 한다. 진리의 기별이 처음 선포되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도를 드렸던가! 얼마나 자주 중보의 음성이 방에서, 헛간에서, 과수원이나 숲속에서 들렸는가. 빈번히 우리는 열렬한 기도로 여러 시간을 보내고, 두세 사람이 함께 약속을 주장했다. 때때로 우는 소리가 들리고, 감사의 음성과 찬양의 노래도 들렸다. 지금은 하나님의 날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훨씬 더 가까워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창기보다 훨씬 더 열렬하고 열성적이어야 한다. 우리의 위험은, 그 당시보다 훨씬 더 크다. 심령들은 더욱 굳어져 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물들어야 하며, 우리가 그것을 받을 때까지는 쉬지 말아야 한다.(5T 161.4)
황금률을 준수하라—하나님께서는 이따금, 심지어 불리한 일을 당할지라도, 가난한 자가 손해되는 처지에 놓이지 않도록 보호해 줄 누군가를 일으키신다. 이것이 자기 동료에 대한 인간의 의무이다. 행동의 결과를 분별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람의 무지를 이해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가 맹목적으로 행동하지 않도록, 그리고 당연히 그의 것이 되는 자원들을 잃지 않도록, 각 방면으로 문제를 고찰하여, 직접적으로 그 사람 앞에 분명하고 성실하게 그 문제를 보여 주는 것이, 그의 형제가 해야 할 의무이다. 사람이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고 하신 황금률을 준수하면, 오늘날 존재하는 많은 문제들이 신속히 조정되었을 것이다. (WM 202.2)
우리는 세상의 끝이 곧 올 것이라는 이 사실을 모를 수가 없다. 사탄은 남녀의 마음속에서 일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오락과 흥미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는 듯이 보인다. ‘노아’의 때와 같이 모든 종류의 죄악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혼과 결혼이 이 시대의 현상이다. 이와 같은 시대에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遵守:온전히 지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도시들로부터 떨어진 한적(閑寂:조용한 시골에)한 장소들을 찾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 경고의 기별을 전하기 위해 그 도시들에 남아야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점점 더 위험해진다. 태초부터 그 끝을 알고 계신 그분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신 것과 같은 그 진리들을 오늘날 이 세상에 여전히 전해야한다.(MTC 112.3)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비슷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다. 모든 의의 적으로부터 충동을 받아 악을 선이라고 하고 진리를 거짓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바로 선지자가 말한 대로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도다”(사59:14)라는 말씀의 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거기서 나와 따로 있으라고 하신 세상의 형편이요, 정신이다. 세상과 섞인 사람들은 사물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속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고6:14,15)하겠는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분이 보시는 것처럼 본다. 순결하고 선한 것은 선한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LP 236.2)
사단이 그리스도를 공격했지만, 복수심을 촉발시키지는 못함—사단은 모든 점에서 그리스도를 공격했지만, 그분은 생각으로나, 말로나, 행동으로도 범죄 하지 않으셨다. 그는 광포함도, 그 입에 궤사도 없으셨다. 죄의 한 복판을 행하면서도 그는 거룩하고, 순진하고, 더러움이 없으셨다. 그는 나쁜 사람이라는 고소를 당하였지만, 자신을 정당화시키려고 입을 열지 않으셨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죄한 일로 고소를 당할 때에, 참는 것도 한도가 있다고 생각하고, 화를 내고 성령을 슬프게 하는 말을 하는가?(4BC 1148.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리이까? 예수께서 가하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마18:21,22). (OHC 17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