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발바르 여행 중.
새하얀 설원의 섬들 사이로 북극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유빙들이 떠다니는 북극해를 누비는 크루즈 여행은 지루할 틈이 없다. 갑판이나 선실에서 수시로 바뀌는 바깥 풍경들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고, 식당 앞의 홀에서는 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동식물들과 풍경들의 영상을 대형 TV 화면으로 계속 보여주고, 강의도 한다. 가끔씩은 선물처럼 북극 연안에서 살고 있는 특이한 동물들을 만나기도 한다. 절벽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오리 떼와 물개, 고래, 순록을 몇 번 만났다. 짧은 여름을 만나 애써 꽃을 피운 야생화들도 귀한 존재였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북극곰과 바다코끼리를 만난 것이다.
스발바르에는 현재 약 3천 마리의 북극곰이 산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곰을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리고 여기서는 북극곰이 최상위 포식자로서 사람에게도 위험한 동물이므로, 사실 섬에 북극곰이 있다면 랜딩하지도 않고 피한다. 섬에 랜딩하려면 항상 사전에 망원경으로 세심하게 정찰을 하고, 또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안전 요원들이 먼저 섬에 내려 여러 방향으로 보초를 서고, 총을 가진 보안 요원이 우리와 동행한다.
3일 오전, 북극곰이 나타났다는 선내 방송을 듣고(전달사항, 오리엔테이션이 있을 때나 동물 등 볼거리가 나타나면 수시로 안내 방송을 해 준다) 카메라를 들고 갑판으로 달려 갔더니, 멀리서 작은 점으로 보이는 곰 한 마리가 우리 배 앞으로 넓은 얼음 대지 위를 전진해 오는 것이 보인다. 그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마침내 배 바로 밑까지 접근해 오는 것이 아닌가.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즐겁게 새하얀 털옷을 입은 북극곰을 구경하고 사진에 담는다. 마치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듯이 눈 위에 뒹굴며 온갖 재주도 부리고, 배의 옆구리에 앞발을 걸치기도 한다. 한참을 그렇게 신나는 구경거리를 보여주더니 제 갈 길을 찾아 멀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