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 세계관의 자살(1)
대표적인 다윈주의자인 마이클 루스(Michael Ruse)는 생물학이 설계유형적 사고에 의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생물들은 장기들이 지향하는 목적을 발견해내야 설명될 수 있다. 심장의 목적은 피를 퍼 올리는 것이고, 눈의 목적은 보는 것이고, 지느러미의 목적은 수영을 위한 것이고, 날개의 목적은 비행을 위한 것이다. 이 모든 구성 요소가 통전적이고 협력하는 방식으로 작용하여 목표를 이룬다.
미국의 신경외과 의사 에그노르(Egnor)는 과학적 유물론자임에도 불구하고, 다윈주의는 사람들 사이에 유전자의 일부 형식과 변이를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연과 필요가 생체의 복잡성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에그노르에 의하면 프로이드는 종교가 희망을 성취하려는 시도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무신론이 전형적인 희망 성취를 위한 시도라는 점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사후에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을 믿으면, 현세 안에서 무슨 짓을 해도 심판을 받지 않으니까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상에 기반한 모든 세계관은 환원주의적이기 때문에 자살골을 넣게 되어 있다. 환원론이 인간의 마음에 적용되면 이성을 이성보다 열등한 어떤 것- 자연선택의 산물(다윈주의), 경제적 조건(마르크스주의), 전기화학반응(현대신경과학)-으로 환원시킨다. 그러나 세계관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성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때 이 세계관은 자신의 세계관의 토대를 무너뜨린다. 이 세계관은 자가당착에 빠진다.
논리실증주의는 어떤 진술이 경험적으로 시험해 볼 수 있을 때만 의미 있는 진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 자체는 경험적으로 시험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규칙일 뿐이다. 따라서 이 진술은 자가당착이 된다.
마르크스는 진리에 대한 진술은 경제적 이익의 합리화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법은 부자가 자기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해낸 것이고, 종교는 가난한 자를 행복한 사후생활이라는 거짓된 약속으로 위무하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 자신의 주장도 경제적 이익의 반영이 아닌가?
~이상원, 《프란시스 쉐퍼의 기독교 변증》, p.2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