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 Quixote de la Mancha and Sancho Panza, 1863, by Gustave Doré/public domain
돈키호테는 어릴 적 만화에서 풍차를 보고 괴물로 착각해서 돌진하던 우스꽝스러운 기사의 모습으로 기억합니다. 동명의 돈키호테는 스페인의 세르반테스가 쓴 소설로 2002년 노벨연구소 선정, ‘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이라네요.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는 4대 해전으로 유명한 레판토 해전에서 포병 대령으로 참가했었습니다.
레판토 해전은 1572년 신성동맹 함대와 오스만튀르크 함대가 맞붙어 신성동맹 함대가 승리했던 전투입니다. 오스만튀르크는 현재 튀르키예인데요, 당시에 이슬람화되어 있어서 레판토 해전은 기독교 함대와 이슬람 함대의 대결이었습니다. 이슬람권 세력이었던 오스만튀르크가 동유럽을 호시탐탐 노릴 때, 기독교 국가들은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빈번히 땅을 뺏기기 일쑤였고, 그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의 노예로 전락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레판토 해전으로 인해 이슬람 세력과의 전투에서 첫 승을 올린 쾌거가 되었고, 이슬람 함대에서 노잡이를 하고 있던 기독교인 노예들이 15,000명이나 풀려나기도 했던 전투였습니다.
레판토 해전은 오스만튀르크가 키프로스 섬을 침공하면서 벌어졌는데요, 당시 키프로스 섬은 동지중해 해역의 중요 거점으로 이곳을 점령하면 동지중해 무역을 장악할 수 있게 됩니다. 당시 이 지역의 패권을 쥐고 있었던 베네치아 공화국은 발등에 불 떨어진 격이었고, 이슬람의 침공이라는 이유를 들어 교황에게 SOS를 쳤지요. 교황은 당시 스페인 황제와 친분이 있었기에 스페인에 같이 참전해 달라고 요청했고, 스페인이 여기에 응하면서 이루어진 전투였습니다.
스페인의 1500년대는 남미 식민지 개척 시절이었습니다. 스페인 서쪽 대서양을 건너면 남아메리카가 나오는데, 여기를 콜럼버스가 다녀와서는 금과 은이 풍부하다고 설레발치는 바람에 금과 은을 뺏으려 스페인 함대가 쳐들어갔었지요. 덕분에 아스테카 문명과 잉카 문명이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고, 그 자리에 멕시코, 브라질 등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레판토 해전 당시 스페인은 대서양 무역에 집중해서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있을 때여서 딱히 동지중해 무역에 관심 없었지만, 교황의 설득에 참전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처음에는 소극적이었다가 스페인 무적함대의 자존심이 살짝 긁히자 적극적으로 참전해서 승리를 쟁취한 것입니다. 당시 스페인 함대는 대포와 총으로 무장된 함대였고, 오스만튀르크 함대는 거기에 비해 다소 미개한 함대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스페인 함대의 노잡이들은 용병들로서 여차하면 바로 군인으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오스만튀르크 노잡이들은 기독교 노예들로서 기독교 국가와의 전투에 이슬람 노잡이로 참전하느니 차라리 반기를 들고 순교하는 편이 나을 것으로 여겼던 모양입니다. 이에 오스만튀르크 해군은 기독교 노예들의 반란도 제압해야 하고 스페인 무적함대도 상대해야 하는 이중고에 빠져 자멸하고 말았습니다.
레판토 해전을 기준으로 이후 오스만튀르크는 제대로 된 지도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점점 쇠락의 길을 걷고 맙니다. 반대로 기독교 국가들은 잃어버렸던 땅들을 회복하면서 레판토 전투가 중요한 의의를 가지게 된 것이지요. 이런 탓에 레판토 해전은 서양 역사의 4대 해전에 그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4대 해전에 한산도 대첩이 포함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는데, 일반적으로 4대 해전으로 불리는 전쟁은 SALT 해전입니다. 소금해전이라고도 부르죠.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살라미스 해전(Battle of Salamis)입니다. 그리스 아테네 대 페르시아의 전투로 그리스 연합군 380척과 페르시아 1,200척과의 싸움에서 그리스 연합국이 승리한 전투입니다. 영화 300에서 멋진 아테네 군과 괴물 같은 페르시아 군의 싸움을 보셨을 겁니다. 이런 전투의 해전이었습니다.
둘째, 악티움 해전(Battle of Actium)입니다. 로마 제국 옥타비아누스 대 안토니우스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7세의 연합군의 싸움이었습니다. 37년경 로마의 두 장수가 싸운 내전 성격의 전쟁이었습니다. 옥타비아누스나 안토니우스 두 사람 다 로마의 명장들이었지요. 당시 로마는 이러저러한 내전을 많이 겪었는데 안토니우스의 반란이 제법 위협적이었습니다.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랑 합세하여 덤볐는데 옥타비아누스가 이를 제압하고 로마 내전을 종식시킨 해전입니다.
셋째, 레판토 해전(Battle of Lepanto)입니다. 베네치아, 제노바, 에스파냐의 신성동맹 함대와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맞붙은 오늘 이야기한 바로 그 해전입니다.
끝으로 넷째, 트라팔가르 해전(Battle of Trafalgar)입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스페인 연합함대가 영국의 넬슨 제독과 대결한 해전으로 당시 나폴레옹이 유럽을 완전 정복하는 일에 제대로 제동이 걸렸던 해전이지요. 이때 해전으로 넬슨 제독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관이 되었고, 영국에 기념 동상이 세워진 사람입니다. 영국 침공에 실패한 나폴레옹이 러시아로 방향을 틀었고,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와 늪지대 같은 길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고 나폴레옹은 새드 엔딩을 맞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4대 해전에 왜 한산도 대첩이 포함된다는 말이 돌았을까요? 외국 해군들이 중요 해전을 공부할 때 한산도 대첩을 같이 공부했다는 말 때문에 아마도 약간의 와전이 되어서, 4대 해전만큼이나 중요한 해전이었다는 것이 ‘4대 해전이다’로 알려진 것이 아닌가 싶어요. 생각해보면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과 명량해전 등의 승전보가 없었다면, 그로 인해 일본군에게 보급이 원활하게 이뤄졌더라면 한반도는 물론 중국까지 역사가 바뀔 수 있었기에 매우 큰 의미를 지니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이야기에 불과하고, 서양인들의 눈에는 자기들 바다에서 벌어진 해전이 더 중요하겠지요.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가 16세기 레판토 해전의 참전했었다는 것만으로도 돈키호테의 역사적 배경을 조금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스페인은 식민지 개척으로 떼돈을 벌었다가 레판토 해전으로 탈탈 털렸기 때문에 스페인의 국내 사정이 썩 좋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고, 당시에 식민지 개척은 대포와 총으로 했던 시절이니까 딱히 기사도가 있던 시절은 아닐 듯합니다.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처럼, 유럽의 기사도 정신이 있는데, 세르반테스 시절 이런 기사도가 땅에 떨어져 있었을 거라 여겨집니다. 식민지 개척으로 생긴 갑작스러운 부는 타락을 불러왔고, 레판토 해전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위기는 절망을 만들며 스페인 백성들의 정신적 공황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식민지 정책으로 인해 도덕성 논란도 가중되었을 것이고, 이런 여러 가지 사회 상황 속에서 다소 미치광이 기사였던 돈키호테는 스페인 백성들의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돈키호테는 당시 사회를 풍자한 소설이었다고 하지요.
돈키호테가 아이들 문고판에서 제대로 된 소설로 역간되었다고 하니까 아직 안 읽어보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