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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조선사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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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게시판 고려말의 홍건적은 거란이었다?
fitfear 추천 1 조회 189 22.08.19 16:39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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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2.08.20 00:30

    첫댓글 중종실록 15권, 중종 7년 1월 15일 辛酉 8번째기사 1512년 명 정덕(正德) 7년 원본이미지엔
    거란의 홍군이 맞는데 , 해석은 거란과 홍건적이 쳐들어온다고 하네요. "거란의 침구는 현종(顯宗) 때의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뢴 것은 틀림없이 잘못 기억한 탓일 것이다" 적극적으로 친절하게 부인하는 설명까지.

    속잡록 1(續雜錄一)기미년 만력(萬曆) 47년, 광해군 12년(1619년) .
    옛날의 대금(大金)ㆍ대원(大元)이 삼오(三吳)까지 병탄하여 홀로 존재하려 했으나, 결국은 그 훗날이 영구하지 않아서 자기의 뜻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三吳) : 오흥(吳興), 오군(吳郡), 회계(會稽) 지방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몽고의 일족인 거란(요)이 홍건적이라면, 알타이산(백두산)의 상도.대도를 공격하고, 압록강을 건너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오.월 땅을 소유한 백제.신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고려에게 한족의 홍건적 난은 가당치도 않은 사건아닌가요? 원의 후예들이 청나라에 원하던 것도 산서.섬서성입니다. 한족의 홍건적 난은 의심의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해봅니다.참고로 구한말 청의 군대수는 30만이랍니다. 홍건적은 40만이죠.

  • 22.08.19 22:31

    고맙습니다

  • 작성자 22.08.19 22:47

    감사합니다. 비가 많이 옵니다. 좋은 밤 되세요^^

  • 22.08.20 08:41

    역사 재해석의 좋은 기본자료를 발견하셨군요. 수고하셨습니다.

  • 작성자 22.08.21 16:18

    동문선에도 공민왕이 신축년에 사적(沙賊)을 피하여 안동으로 간 기록이 있네요. 한족과는 전혀 관련없는 홍건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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