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이란 무엇인가
불교의 근본 교의 중에 삼법인(三法印)이라는 것이 있다. ‘법인’은 진리라는 뜻이니, 삼법인이란 세 가지 불변하는 진리라는 뜻이다. 삼법인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을 일컫는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우주 만물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여 한 순간도 머물러 있지 아니하다는 것이다. 무상이라 하면 보통 ‘덧없다, 허무하다’라는 뜻으로 쓴다. 그러나 원래 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다. 제행무상에서 온 이 말의 본래의 뜻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항상 변한다는 의미다. 변하지 않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는 진리를 선언한 말이다.
하나의 풀잎도 자라서는 사라지고, 아름다운 나무의 꽃송이도 열매를 맺고는 떨어져 없어진다. 우주는 빅뱅을 일으켜 생성되어 일정 기간 머물다가 다시 폭발을 일으키고 없어지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과정을 거치고, 산 것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길을 밟으며, 마음도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의 과정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 진리를 체득한다면 누구나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우리는 그것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집착하여,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기 때문이다. 무상(無常)이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生滅)하며 시간적 지속성이 없음을 말한다.
제법무아(諸法無我)는 모든 것은 인연(因緣)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하므로 절대불변의 성질을 지닌 고정된 본체는 없다는 뜻이다. 우주 만유의 모든 법은 인연에 의해 생긴 것이라 실로 자아라고 할 수 있는 실체가 없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아(我)에 집착하여 잘못된 견해를 갖는다.
이 원리는 현대 물리학 즉 양자물리학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우주의 궁극적 실재는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물질로 생각했지만, 오늘날은 일종의 기(氣)라고도 할 수 있는 에너지라는 것이 밝혀졌다. 에너지가 물질이고 물질이 에너지다. 그리고 이 에너지의 장(場)은 끊임없이 소립자(素粒子)들로 변환된다. 곧 세계는 끊임없는 생성과 변화 자체일 뿐, 고정불변하는 궁극적 실체는 없다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나 아인슈타인의 E=MC² 이라는 공식도 다 이러한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렇듯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고정된 실체가 없는데, 우리는 그 진리를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집착하고 놓지 못한다. 몸에 집착하고 물질과 명예에 집착한다
열반적정(涅槃寂靜)은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난 이상세계를 말한다. 무상과 무아의 진리를 깨달은 자는 생사윤회의 일체 고통에서 벗어나 이상의 경지에 이른다. 그 경지는 모든 괴로움이 없어져서 지극히 고요하고 편안한 상태이기 때문에 열반적정이라 한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인연(因緣)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할 뿐 절대불변의 성질을 지닌 고정된 실체는 없다는 것이 공(空)이다. 이 공 사상을 체계화시킨 사람이 나가르주나[龍樹 용수]다. 그는 야스퍼스로부터 인류 최고의 이론가라는 극찬을 받았을 정도로 영민했던 사람인데 공을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모든 존재를 자성을 가진 실체로 본다면 그대는 그 존재가 인연이 없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어떠한 존재도 인연으로 생겨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어떠한 존재도 공(空)하지 않은 것이 없다.”
불교는 모든 존재의 생멸법을 인연설로 설명한다. 인연이 있기 때문에 생겨나고, 인연이 다했기 때문에 멸한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는 공이기 때문에 인연에 의한다는 것이다.
공을 설명한 반야심경에서는 오온(五蘊)이 다 공하다고 하였다. 오온은 다섯 가지 인간의 육신과 정신을 표현하는 요소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가리킨다.
색(色)은 형상과 색깔로서 형상 있는 모든 물질[肉體]을 말한다. 수(受)는 괴롭다, 즐겁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 등으로 느끼는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상(想)은 외계의 사물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그것을 상상하여 보는 마음의 작용, 곧 연상을 말한다. 행(行)은 인연 따라 생겨나서 시간적으로 변천하는 마음의 작용, 곧 반응을 말한다. 식(識)은 의식하고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여기에서 색은 인간의 육체요, 수·상·행·식은 인간의 마음을 세분한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몸과 마음은 다 공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몸과 마음에 무슨 실체가 있는 것처럼 여기고, 집착하고 고뇌하는 것은 공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혜가라는 사람이 어느 날 달마대사를 찾아왔다. 달마가 혜가에게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혜가가 말하기를,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달마대사가 대답했다.
“불안한 마음을 내놓아라. 내가 너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겠다.”
“스승님, 아무리 불안한 마음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네 불안한 마음이 이미 없어졌느니라. 너는 보는가.”
혜가는 불안한 마음을 찾아 내놓을 수가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어찌 찾아 내놓을 수가 있겠는가. 마음이란 자기가 스스로 만든 허깨비인 것을. 불안이란 원래 공한 것인데 스스로 만들어서 거기에 얽매여 속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혜가는 그 순간에 크게 깨달았다.
혜가와 같이 불안에 휩싸여 있는 정신질환을 오늘날은 강박증이라 부른다. 이러한 강박증도 참다운 공의 이치를 안다면 쉽게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우리 중생들도 이런저런 수많은 고뇌를 날마다 겪고 신음하며 살아간다. 그 고뇌는 실체가 없는 공한 것인데 내가 스스로 얽어 만든 허깨비다. 그 허깨비에 속아 비틀거리는 것이 중생의 삶이다.
진정 공을 알고 실천한다면 우리는 마음이라는 허깨비에 시달리지 않고 열반의 세계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매일 수준 높은 글을 써 주시는 교장선생님! 어제 중앙일보 기사가 생각 나서 스크랩하여 올립니다.
80대에 40대 뇌 가졌다…간단한 습관 3가지 뭐길래 [불로장생의 꿈: 바이오 혁명]
에디터:이정봉 정수경 이가진
여든 살이 돼도 마흔 살 정도의 정신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이들을 ‘슈퍼에이저 (Super-Ager)’라고 한다. 인구 10명 중 1명의 비율로 나온다. 이들은 마치 치매의 침투를 막는 방어막을 뇌에 두른 듯하다. 뇌 기능 퇴화를 겪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체 기능도 더 뛰어나다.
슈퍼에이저와 별개로 뇌에 병리가 쌓여도 또렷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뇌 영상을 찍으면 분명 치매에 접어들어야 하는데 증상이 안 나타난다. 이들 역시 치매에 강한 저항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병리학자들은 이를 ‘인지 예비능(cognitive reserv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뇌에 나타나는 병적 변화를 더 잘 견디고 기능을 유지하게 해주는 뇌의 ‘예비적인 능력’을 일컫는 말이다. 마치 뇌가 보조 배터리를 지닌 것과 비슷하다.
약물 없이 큰돈 들이지 않고 치매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러한 인지 예비능을 높이는 것이다.
인지 예비능을 높이는 활동은 슈퍼에이저의 생활습관과도 일치한다.
인지 과학은 지난 50년 동안 인지 예비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대부분 우리 생활에서 어렵지 않게 따라 할 수 있다.
자기 삶을 바꾸려는 작은 용기만 있다면 누구나 슈퍼에이저가 될 수 있다. 유전자를 잘 타고난 게 아니라도, 비싼 걸 먹지 않아도 말이다.
<https://www.joongang.co.kr/search/news> 중앙일보 2024.01.31.자 2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