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폭염의 요즈음이다.
자칫 더위에 입맛을 잃어버리기 쉬운 계절에 입맛도 살리고 영양도 보충하는 데는 죽만 한 것도 없을 듯싶다.
일반 보양식은 음식 자체로도 무거운 것들이라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죽은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부평시장 죽거리집 골목.
부산에서 죽 관련 먹거리로 제일 유명한 곳이다.
국제시장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접한 부평시장은,예로부터 깡통시장,도깨비시장으로 불리며
6·25 동란을 이겨낸 곳이다.
이 곳에서 가난했던 시절,굶주린 이들의 끼니를 돕던 죽집들이 죽을 쑤기 시작했는데
벌써 50년이 넘어가는 세월이다.
죽거리집 골목은 크게 나누어 죽을 쑤어 파는 죽집과
각종 잡곡으로 죽거리나 선식,이유식 등을 만들어 주는 죽거리집으로 대별된다.
죽집들은 이제 2대째 대물림하면서 영업을 해오고 있는데 거의 40~50년의 세월을 견뎌온 곳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7집이 있었으나 요즘은 4집만 죽집 골목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주로 호박죽과 녹두죽을 팔며 그 외에도 흰 쌀죽,팥죽,전복죽,깨죽,잣죽 등
다양한 맛과 영양의 죽을 손님의 입맛에 따라 만들어 주고 있다.
값도 싸거니와 시장기를 속이는 데도 안성맞춤이라 인기가 높다.
특히 참살이(웰빙) 열풍이 불면서 영양가 높은 주전부리로도 크게 각광 받는 요즈음이다.
요즘 들어 젊은 주부들도 많이 찾지만 주로 60~70대의 어르신들이 자주 드나드는데
거의 30~40년 단골들이라고 한다.
아침 일찍이 솥에다 죽을 쑤기 시작하여 1~2시간을 은근한 불에서 계속 저어야 하기 때문에
정성도 정성이거니와 힘 또한 보통 드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새벽에 죽이 다 될 때쯤이면 '방금 쑨 따끈한 죽'을 못 잊어 하는 단골들이 줄을 서 기다리곤 한단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먹던 죽 맛을 기억하며 호박죽과 녹두죽을 시킨다.
그릇 가득한 죽 두 사발이 내 앞에 놓인다.
2천원이면 손해 볼 것 같은데 아직도 그렇게 팔고 있다.
우선 녹두죽을 한입 떠먹는다.
심심하여 처음에는 아무 맛이 안 나는 듯하다가 몇 입 떠먹으니 점점 깊고 구수한 맛이 난다.
후후 불어먹는 맛도 그런대로 괜찮다. 특
히 반찬으로 나오는 국물김치가 깔끔하고 담담해 뒷맛을 개운하게 한다.
호박죽은 어린 시절부터 참으로 좋아하던 먹거리였다.
후후 불어 한 움큼 떠먹는다.
과연 좋다.
단맛이 입 전체로 퍼지며 구수하다.
죽 속에 양대콩과 팥,찹쌀 옹심이가 들어가 살살 씹히는 맛도 일품이다.
약간 달다 싶을 때 국물김치나 깍두기를 씹으니 단 맛은 온데 간데 없어진다.
어르신들이나 환자들에게도 맞춤식 식사가 되겠다.
두 그릇을 먹고 나니 땀이 팥죽처럼 흐른다.
그래도 시원한 느낌이다.
얼음 보리차 한잔을 마신다.
감로수 같다.
죽집 옆으로는 죽거리집들이 한 골목을 차지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죽거리와 선식,이유식들을 팔고 있는데 참살이가 유행하면서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한 20년 전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이 곳은 이제 10여집이 큰 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잡곡 40~50가지와 야채 50~60가지를 준비하여 고객의 입맛대로 섞어 빻아 주는데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미숫가루 주문이 많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 입맛이 없을 때,몸이 아파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부모님께서 입이 궁금하실 때 죽거리는 효자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여름! 시원하게 보내는 방법 중의 하나로 죽거리를 새삼 권한다.
최원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