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출신인 김형국목사(나들목교회)는 고려대학교 IVF에 다니던 나를 친밀하게 지도하던 간사였습니다. 참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사람을 사랑하던 사람이었죠. 우리를 이끌고 듣도보도 못하던 강원도 산골의 예수원에 갔습니다. 그 유람이 내 인생을 바꾸었죠
장난기 있는 김형국목사는 겨울날 예수원에서 맨발로 예배실을 다니다 꾸사리 먹고, 돌아가신 대천덕신부가 우리일행을 초청해 희년, 토지문제, 기독교의 사회참여, 세계관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해 준 것이 내 삶의 한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그 뒤 저는 희년과 헨리조지 사상에 심취했었고, 헨리죠지협회 간사, 해비타트 총무,사무국장 등의 활동을 하게 되었지요. 정림건축의 김정철 장로님은 해비타트의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인천공항, 월드컵주경기장을 설계하던 정림건축의 걸출한 건축가들이 15평짜리 해비타트 주택을 설계하는데 30명이 투입되었죠. 그들과 함께 일한 것은 참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분들은 15평 주택 설계가 제일 힘들었다고 고백했죠. 누가 살지를 아니까요
부자집 아들의 일탈(?)을 묵묵히 지켜보며 믿어주던 건축가의 아들 사랑을 저는 멀리서 가까이서 지켜보았습니다. '고맙다. 아버지 편안히 가셨어' 하는 아들이 얼마나 허전할까 생각했습니다. 형국이 형 정말 좋은 목사 되야해요. 그렇게 되실 거에요.
제가 하는 트위터에라는 인터넷에서 본 내용이에요.
위 사람이 쓴 거죠. 김장로님 돌아가신 것도 트위터로 알았죠. 오늘 추모예배였죠. 아빠, 엄마 전화 다 안받으시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