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나토가 러시아의 안보제안에 대해 서면으로 답변했다. 존 설리반 주러 미국 대사는 지난 26일 저녁 러시아 외무부를 방문, 알렉산드르 그루쉬코 차관에게 미국의 답변 문서를 건넸다.
러시아 측의 첫 반응은 이날 저녁 늦게 나왔다. 문서를 받은 그루쉬코 차관은 기자들과 만나 미국에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미국의 답변서를) 읽고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나토가 러시아 측의 안보제안서를 읽고 연구한 뒤 답변를 보내는 데 한달 보름 가량 걸렸다"며 그같이 말했다.
공은 이제 러시아로 넘어갔다. 어떤 반응과 대응 조치를 내놓을 지 궁금하다. 미-나토의 답변 내용에 대한 러시아 측의 반응은 일단 부정적이다. 미 백악관과 국무부가 러시아 측에 추가협상을 요청하고 나선 것도 결과를 미리 예측했거나, 상황이 더욱 악화하는 것 막기 위해서다.
미 국무부, 내주에 블링컨-라브로프 새 외무장관 회담이 내주에 열릴 수도/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는 28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우리의 국익을 침범하고 무시하는 것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언은 특유의 이중적 화법을 구사했다. 전쟁을 치르지 않고도 국익 침범을 막을 수 있을까? 제 3의 길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답변의 일부 내용에 알맹이가 들어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나토의 동진(東進) 금지 약속 과 같은 핵심 내용은 빠져 전혀 만족스럽지 않지만, 2차적 문제에서는 '알맹이'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알맹이는 미국측의 답변 내용 중 중·단거리 미사일의 유럽 배치 동결과 군사 훈련 금지, 전투기 및 함정들의 근접 거리 허용 범위 설정 등을 말한다.
나토의 동진정책/사진출처:나무위키
라브로프 장관은 또 나토의 답변이 미국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고 했다.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나토의 '문호 개방' 원칙 고수다. 언제든지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조지아)의 나토 가입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와 협상이 가능한 세 가지 영역을 제시했다. ▽군사 부문을 포함한 러-NATO 관계 재개(정상화) ▽ 러시아 안보 우려 해소 ▽군사 훈련 문제 등에 대해 추가 협상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이 역시 러시아가 원하는 안보문제의 핵심을 빗겨나 있다.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의 나토 가입 금지 약속과 러시아 국경지대로부터 나토 미사일의 철수가 핵심이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외무부 인스타그램
현지 언론은 라브로프 장관이 러-나토의 서면 답변을 읽고 연구한 뒤 러시아측 대응에 관한 보고서를 만들어 푸틴 대통령의 재가를 얻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측의 대응 수위가 결정될 것이다.
상식적으로 즉각적인 강경 대응은 예상되지 않는다. 라브로프 장관은 "미국과 나토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으며 현재 정부 부처 간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답변을 준비하는 것으로 미뤄 아직 협상의 문을 닫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대화를 통해 미국과 나토로부터 최대한 양보를 얻어낼려고 할 것이다. 2월 중에는 추가 협상이 성사될 것 같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미국이 끝까지 기존 입장을 번복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그동안 누차 강조해온 기술·군사적 대응 조치를 보다 구체적으로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 상대에 상응하는 대응 조치라면 미-나토의 지역적 안보를 위협하는 조치일 터. 미국의 뒷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중남미(쿠바, 베네수엘라, 니콰라과)에 중·단거리 미사일 배치를 예상해볼 수 있다. '제 2의 쿠바 사태'로 가는 길이다.
러시아가 그 길로 급하게 달려가는 건 너무 위험부담이 크다. FBM.ru 등 현지 언론에는 러시아가 취할 다음 행보를 예상 혹은 조언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실리기도 한다.
마르줴츠키: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의 나토 가입시 가능한 러시아 대응조치 3가지/현지 언론 웹페이지 캡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법조인 출신의 정치·안보·군사부문 전문가(칼럼리스트) 세르게이 마르줴츠키(Сергей Маржецкий)의 예상이다. 마르줴츠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설'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한다. 2021년 봄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지만,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나토가 러시아 제안을 계속 거부할 경우, 상대에게 압박을 가하는 '기술 군사적 조치'의 3단계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가 NATO에 가입하는 경우에도 그 길을 선택할 것을 조언했다.
우선 경제적 대응 조치다. 서방진영의 경제 제재에 의해 경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미리미리 중국과 협력 관계를 더욱 독독히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중국을 통해 생필품및 비필수 상품 생산에 필요한 장비 및 부자재 공급 라인을 확보하고, 수입 대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내달 베이징 동계올림픽 참가차 중국은 방문하는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추정된다.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푸틴 대통령, 쿠바와의 정상 통화서 군사기지 설치와 방공망 강화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얀덱스 캡처
두번째 단계는 미국의 뒤통수 때리기다. 미국에 적대적인 이란과 시리아에 군사적 지원을 강화하고 미국의 뒷마당에 군사력을 배치하는 것이다. 마르줴츠키는 그러나 쿠바 등이 러시아의 미사일 배치를 거부할 것으로 예측했다. 대신, 러시아의 이스칸데르-E 미사일과 전투기, S-300, S-400 대공방어시스템, 대함 미사일 시스템 발(Бал)/바스티온(Бастион). 장거리 MLRS(다중발사 로켓시스템) 스메르치(Смерч)/우라간(Ураган) 등은 기꺼이 구매할 것으로 예상했다. '제 2의 쿠바사태'는 피하면서 미국의 뒤통수를 겨누는 효과를 기대하는 방식이다.
마지막 단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 압박이다. 예컨대, 에너지 가격의 폭등은 우크라이나에 새로운 '마이단(키예프 중심가) 시위'를 촉발시킬 수 있다. 최근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에서 보듯, 현 정권의 무능과 부정부패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에너지 가격의 폭등을 계기로 거리로 몰려나올 수 있다고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