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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9일 주일 [(녹)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평신도는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으로서,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신자를 가리킨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역할을 크게 부각하면서, 평신도를 통하여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러한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1968년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지금은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의 결성과 더불어 해마다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 사도직의 날’로 지내기로 하였다.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사도직의 사명을 거듭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뒤 1970년부터는 연중 마지막 주일의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 오고 있다. ▦ 오늘은 연중 제33주일이며 평신도 주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창조와 은총의 모든 복을 사람의 손에 맡기시어, 우리가 좋은 뜻을 세워 아버지의 섭리로 많은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 돌아오실 아버지를 깨어 기다리는 충실한 종으로서,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는 기쁨을 누리도록 합시다. 잠언의 저자는, 우아함은 거짓이고 아름다움은 헛것이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은 칭송을 받는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주님의 날이 도둑처럼 덮치지 않을 것이라며,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으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며, 탈렌트의 비유를 드신다(복음). <훌륭한 아내는 제 손으로 즐거이 일한다.> ▥ 잠언의 말씀입니다. 31,10-13.19-20.30-31 10 훌륭한 아내를 누가 얻으리오? 그 가치는 산호보다 높다. 11 남편은 그를 마음으로 신뢰하고 소득이 모자라지 않는다. 12 그 아내는 한평생 남편에게 해 끼치는 일 없이 잘해 준다. 13 양모와 아마를 구해다가 제 손으로 즐거이 일한다. 19 한 손으로는 물레질하고 다른 손으로는 실을 잣는다. 20 가난한 이에게 손을 펼치고, 불쌍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준다. 30 우아함은 거짓이고 아름다움은 헛것이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은 칭송을 받는다. 31 그 손이 거둔 결실을 그에게 돌리고, 그가 한 일을 성문에서 칭송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5,1-6 1 형제 여러분, 그 시간과 그 때에 관해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습니다. 2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3 사람들이 “평화롭다, 안전하다.” 할 때, 아기를 밴 여자에게 진통이 오는 것처럼 갑자기 그들에게 파멸이 닥치는데, 아무도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4 그러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5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6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4-30<또는 25,14-15.19-21>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를 보면, 종들에게 돈을 맡기고 길을 떠났던 주인이 돌아와서 그들과 셈을 합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와 두 탈렌트를 받은 이는 저마다 받은 돈을 활용하여 두 배씩 벌었지요. 반면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은 주인이 두렵다는 핑계로 활용하지 않다가 급기야 쫓겨났다는 비유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에 주저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주님께 받은 탈렌트, 곧 재능이 있습니다. 저마다 그 능력이 다를 뿐이지요.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1코린 3,6).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에 저마다 역할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잘하는 일을 다른 이는 못할 수도 있고, 다른 이가 쉽게 하는 일이 나에게는 매우 힘들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모든 것을 나의 기준에 맞추려다 보니, 모든 일을 내가 다 하려 하다 보니 무리가 따르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나 자신의 역할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내가 이런 일을 얼마만큼 했다면, 다른 사람이 그다음 일을 할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나 물을 주는 사람, 다섯 탈렌트를 받은 사람이나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 모두 하느님의 일꾼임을 명심하며 서로 협력해 나가는 삶을 추구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모든 것이 다 선물입니다.
시각장애인 이재서 교수님 자전 에세이 「아름다움은 마음의 눈으로 보인다」를 읽으면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너무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고난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아픔이지만 창조를 위한 기회입니다. 고난은 언제나 설명서 없이 불쑥 찾아옵니다. 하지만 설명서는 언제나 나중에 옵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고난이 끝인 줄 알고 쉽게 행동하면 안 됩니다. 어떻게든 인내하고 참아야 합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기쁨과 감사로, 그 고난이 무슨 의미였는지를 말해주는 설명서를 받아 읽을 날이 올 것입니다." 이 에세이에는 15살 때 찾아온 실명(失明)을 다정한 친구로, 축복 중 축복으로 여기는 이 교수님의 특별한 인생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실명한 것에 대해 억울해 하지 않고, 원망도 않으시는 교수님은 이렇게 외칩니다. "실명, 그것은 축복이었습니다. 실명 덕분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실명한 이후 기나긴 좌절과 고통의 세월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네 가지 눈'이라는 제목의 강의였답니다. "사람은 사물을 보는 육안(肉眼), 지혜를 터득해 가지는 지안(智眼), 마음으로 보는 심안(心眼), 종교의 힘으로 영원한 세상을 보는 영안(靈眼) 등 네 개의 눈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비록 육안은 잃었지만 나머지 세 개의 눈은 정상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이었기에 겪어야만 했던 모진 난관들을 극복해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힘이 돼준 것은 다름 아닌 신앙의 눈이었습니다. 육신의 눈이 아니라 신앙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니 그런대로 견딜 만하게 됐답니다.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니 가끔씩 마주서는 절벽 앞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됐답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습니다. 자신에게 아직 남아 있는 달란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찾아냈고, 그것을 키워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이 교수님은 보란 듯이 우뚝 섰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강단에 서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북한 장애인 지원 사업에 열정적으로 투신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의 귀감이자 큰 빛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각자가 받은 달란트를 최대한 활용할 것을, 그래서 하느님께는 영광을 드리고, 이웃들에게는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하고 계십니다.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노심초사했던 종에게 주인은 화가 잔뜩 나서 호통을 칩니다. "너야말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곳에 내쫓아라." 주인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성실하게 노력해서 맡긴 재산을 불리기는커녕,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놓고 빈둥거리며 게으름을 피운 종을 주인이 잘 봐줄 리 없습니다. 그는 주인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결실 없는 인생, 자신의 인생에 불충실한 삶, 숱한 은총의 선물을 받고도 감사할줄 모르는 사람을 하느님께서는 슬픈 시선으로 바라보실 것입니다. 나이가 만만찮게 들어가면서, 수도생활 연륜도 점점 늘어만 가는데도 제대로 된 열매 한 번 맺지 못하니 하느님 앞에 부끄럽기만 합니다. 아무런 장애도 없으면서, 특별한 불편이나 어려움도 없으면서 '나는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하며 자신을 비관만 해왔습니다. 그 숱한 황금 같은 시간들을 아깝게도 그저 '죽이며' 지내왔습니다. 아직도 새파란 나이에 '이 나이에!' 하며 거드름을 피웠습니다. 제게 주어진 이 건강한 몸 하나만으로도 저는 참으로 큰 은총을 넘치도록 받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조금만 생각을 바꾼다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은총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약점, 상처, 고통, 십자가조차도 일종의 달란트들입니다. 우리를 보다 큰 그릇으로 만들고자 하느님께서 보내신 선물들입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든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하루, 어떠한 시련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하루,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하느님을 찬미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감사의 회복이 구원의 열쇠다
미국 위스콘신 주 「천체연구소」에 근무하던 찬드라세카르(S. Chandrasekhar, 1910~1995.)박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1947년 어느 날 시카고대학에서 박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겨울방학동안 고급물리학에 관한 특강을 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박사는 흔쾌히 승낙하고 강의 준비를 했습니다.
몇 주 후 학교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특강을 신청한 학생 수가 두 명밖에 되지 않아 강의를 취소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찬드라세카르 박사는 숫자에 상관없이 두 학생을 위해 강의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미국 위스콘신 지역은 11월부터 4월까지 눈이 내리는 겨울이 긴 동네입니다. 게다가 당시는 도로와 차량의 상황들이 지금처럼 좋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박사는 한 주에 두 번씩 몇 주 동안 세 시간을 넘게 운전해가며 시카고 대학까지 갔습니다. 학생은 단 두 명뿐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강의 했습니다.
10년 뒤인 1957년에 양첸닝(Chen-Ning Yang, 1922~)과 리청다오(Lee Tsung-Dao, 1926~)라는 30대 중반에 불과한 두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두 사람은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열정적으로 강의해 주셨던 찬드라세카르 박사님이 오늘 저희들을 이 자리에 서게 해주셨습니다.”
< 국민일보, [오늘을 행복하게] ‘한 영혼을 귀하게’, 2005. 11. 22. 참조 >
선생님이 아이들을 이용해 자기만족을 얻으려고 해서 뉴스에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대부분의 이런 선생님들은 선생님으로 사는 것에 만족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자기만족을 위해 이용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의 미래도 망치고 자신의 삶도 망가지게 됩니다.
반면 위 사례의 찬드라세카르 박사는 단 두 학생만이라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자신이 가르친 학생이 모두 노벨 물리학상을 타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결과의 차이는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만족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그 경중의 차이에 상관없이 감사할 수 있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고 그렇지 못하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탈렌트 비유가 이것입니다. 하느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누구에게 다섯 탈렌트, 누구에게 두 탈렌트, 누구에게 한 탈렌트를 주시지 않습니다. 각자 능력에 따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운전면허도 없는 아이에게 트럭 운전을 시키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아이가 트럭운전을 하고 싶은데 방청소 하는 일만 시킨다고 불평을 하면 방청소가 잘 될 리가 없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았던 사람이 한 탈렌트를 받았던 종입니다. 그러나 하루 일당을 10만원으로 따진다면 한 탈렌트도 6억이나 되는 큰돈입니다. 이 종은 그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덜 받았다는 느낌 때문에 주인에게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원망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구원을 위해 각자에게 필요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힘은 감사인데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야 그 능력으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늘나라로 오라고 자전거를 주셨는데 감사는 그 자전거를 움직일 수 있는 체인과 같습니다. 체인이 끊어지면 아무리 발을 저어도 자전거가 나가지 않습니다. 빠져버린 체인을 끼우는 일은 본인 자신이 해야 합니다. 닉 부이치치는 팔다리가 없이 태어났어도 하느님께 감사하며 희망 전도사로서 수많은 이들에게 힘을 주며 살아가고 있지만, 키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살이 쪘다는 이유만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을 못 받아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그것밖에 주지 않으신 하느님께 원망스러워 어떠한 일도 해 드리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그렇다면 감사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학살기념관> 앞마당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유대 아이들을 끌어안고 있는 한 남자 의 동상이 서있습니다. 폴란드인 초등학교 교사였던 코르작크 선생님의 동상입니다.
히틀러의 독일군은 폴란드에서만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했습니다. 어느 날, 폴란드의 어느 한 초등학교에 한 무리의 독일군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아이들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는 유대인임을 표시하는 별을 가슴에 단 아이들을 전부 나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명령이 무슨 명령인지를 알고 있는 유대 아이들은 벌벌 떨면서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여자 학생이 두려워 떨며 선생님을 꼭 끌어안았습니다. 선생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 아이들을 꼭 껴안았습니다. 독일군은 그 선생님을 향해 물러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이들을 꼭 껴안은 놓지 않았습니다. 독일군은 울며 매어달리는 유대 어린이들을 강제로 트럭에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폴란드인 선생님은 그 여자 아이들을 껴안은 채 같이 트럭에 올랐습니다. 그 트럭은 독가스실로 향했습니다. 극도의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어디를 가든 선생님이 너희들과 함께 갈 테니까 너무 걱정 말아라. 자, 우리 함께 기도하자!”
그리고 선생님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에 선생님은 아이들을 향해 물었습니다.
“이제 마음이 편안해 졌니?”
아이들이 대답했습니다.
“예! 편안해요.”
그리고 코르자크 선생님은 아이들을 꼭 껴안은 체 함께 가스실로 들어갔습니다.
여기 유대 아이들과 함께 가스실로 들어갔던 폴란드인 선생님이 바로 동상의 주인공이 바로 코르작크 선생님입니다. 코르작크 선생님은 유대인이 아니고 폴란드인이었기 때문에 가스실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 기념관에 들어가 크르자크 선생님의 동상을 보는 이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유다인들은 감사의 마음이 일 것이고, 만약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이 교사라면 자신도 그런 삶을 살고 싶어 질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기념관’에 들어가야합니다. 그 기념관이 성당이고 그 기념행사가 미사입니다. 만약 부모님께 대한 감사는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바로 부모님이 우리에게 해 주신 고생을 기억하고 묵상하면 됩니다.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바로 미사입니다. 미사 안에서는 주님 사랑을 기억하며 오로지 감사가 솟아 나와야합니다. 그래서 한 때는 미사를 그저 ‘감사’로만 부른 적도 있었습니다. 그 감사가 일상이 되어야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닥쳐와도 그 감사의 기운으로 밀고나갈 수 있습니다.
1991년 사과 재배로 유명한 일본 아오모리 현에 기록적인 태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1년 동안 땀 흘리며 재배했던 사과의 90%가 떨어져 버렸습니다. 농민들은 비탄에 빠졌고 하늘만 원망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떨어지지 않은 10%의 사과를 정성스럽게 거둬들였습니다. 그리고 예쁘게 포장한 후 ‘합격 사과’라는 상표를 붙여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물량이 많지 않아 보통 사과에 비해 10배 이상 비싼 가격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특이한 상표에 매료된 소비자들의 구매 요구가 빗발쳤고 사과는 금세 등이 나고 말았습니다. 특히 엄청난 위력의 태풍 속에서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합격 사과’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런 희망을 잃지 않는 마음은 한 순간에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시스템을 무한긍정으로 바꾸어놓았기 때문에 10%만 남았어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우리 안의 무한 감사의 시스템으로 바꾸어놓는 미사가 되어야하고 그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될 때 우리는 하느님나라에서 열 탈렌트를 가지게 된 종처럼 기쁠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운명하시던 날 저녁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임종경을 바쳐드렸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힘이 들어 기도를 조금 멈추었더니 눈도 못 뜨시는 아버지께서 머리를 저 있는 쪽으로 돌리셨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다시 주위 분들과 함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필요한 것은 주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무한감사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수 없어서 감사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얼마나 감사한 분인지 기억하려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부족하게 받은 것에 대한 불평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력하여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사람이 됩시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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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9일(일) 음 10/2 47세에 사제가 되어 열성을 다한 聖 라파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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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파엘 칼리노프스키 신부는 1835년 9월 1일 빌나 (Vilna, 오늘날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 Vilnius)에서 귀족 출신의 저명한 수학교수인 안드레아 칼리노프스키(Andreas Kalinowski)와 요세파 포이온스카 칼리노프스키(Josepha Poionska Kalinowski)의 아들로 태어나 요셉(Josephus)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빌라에 있는 귀족들을 위한 학회에서 아버지로부터 수학하여 학업에 있어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다. 1851년부터 다음해까지 그는 호리호르키(Hory-Horky)에 있는 농업학교에서 동물학, 화학, 농학, 양봉을 배우고, 1853년부터 1857년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Sankt Petersburg)에 있는 공병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였다.
공학 학위를 취득하고 위관급 장교로서 공병학교의 수학강사로 있으면서 1859년에는 쿠르스크-키예프-오데사(Kursk-Kiev-Odessa)를 잇는 철도의 설계를 담당하였다. 1862년에 대위로 승진하여 브레스트-리토프스크(Brest-Litovsk)로 배치된 그는 그곳에서 주일학교를 시작하여 모든 비용을 제공하며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와서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1863년 러시아의 압제에 대항하여 폴란드 반란이 발발했을 때 그는 러시아 군대에서 제대하고 빌나 지방의 반란정부의 각료가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죄수에게 사형을 선고하거나 집행하지 않겠다는 양해를 구했다. 1864년 3월 24일 러시아에 체포된 그는 반란의 책임을 물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정치적 희생양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러시아 정부는 다시 그의 형을 시베리아(Siberia)에서 10년간의 중노동으로 감형하였다. 복역 기간 중 그는 놀라우리만큼 강한 정신력과 인내심 그리고 사랑을 가지고 동료 죄수들에게 기도의 정신과 평온함 그리고 희망을 갖도록 도우며 위로할 줄 알았다. 프랑스 파리(Paris)로 가서 3년 동안 개인교사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1877년 마침내 그는 오랫동안 간직해 온 성소에 응답하여 오스트리아의 그라츠(Graz)에 있는 맨발의 카르멜회에 입회하여 성 요셉의 라파엘(Raphael a Sancto Ioseph)이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는 헝가리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1882년 1월 15일 크라쿠프(Krakow) 근처의 크체르나(Czerna)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다른 카르멜회 수사와 수녀들이 완덕의 산에 오르도록 도와주었다. 고해성사를 통해 죄에 빠진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고, 교회의 일치를 위해 그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래서 그의 장상은 그에게 많은 중요한 임무를 맡겼고, 죽을 때까지 그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실행하였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던 그는 1907년 11월 15일 마침내 하느님께 자신의 영혼을 바쳤다. 그는 바도비체(Wadowice)에 자신이 설립한 수도원에서 선종하였고, 그의 유해는 크체르나에 있는 수도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1934년부터 크라쿠프 교구에서 그의 시복에 대한 절차가 시작되었고, 1983년 6월 22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그의 시복식이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 거행되었다. 그 후 1991년 11월 17일 같은 교황으로부터 시성되었다. 그는 교황으로부터 보편교회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범으로 칭송받았다.
* 자료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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