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읽는 강론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 세상 평화와 뭐가 다를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화를 남기고 가신다고 말씀하셨어요 . 그리고 그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고 하셨죠 .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평화는 어떤 평화일까요? 세상의 평화는 보통 힘과 권력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아요 . 로마 제국 시대의 '로마의 평화'처럼 말이죠 . 로마는 힘으로 다른 나라들을 통치했고, 그 힘에 눌려 억압받는 평화였어요 . 힘 있는 사람 아래에서 힘없는 사람이 나약함을 숨길 수밖에 없는 그런 평화였죠 .
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이런 세상 평화와는 아주 다르답니다 . 그것은 억압이나 통제 속에서 오는 평화가 아니에요. 오히려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환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마음에서 오는 평화라고 해요 . 고난과 어려움이 없어서 오는 평화가 아니라, 그것을 이겨내면서 얻는 평화인 거죠 .
환난 속에서도 평화를 지킬 수 있을까요?
사도 바오로의 이야기가 바로 그 좋은 예시예요 . 바오로는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아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어요 . 그런데 유대인들은 바오로를 싫어했고, 변절자라고 생각했죠 . 그래서 바오로에게 돌을 던져 반쯤 죽게 만들었어요 . 사람들이 바오로가 죽은 줄 알고 내다 버릴 정도였죠 .
하지만 바오로는 다시 일어나 다른 도시로 가서 복음을 전했어요 .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믿음을 굳건히 지키라고 격려했죠 .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면서요 . 예수님이 약속하신 평화는 이렇게 환난과 박해가 없다는 뜻이 아니에요 . 오히려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극복해야 얻을 수 있는 평화랍니다 .
마음의 평화를 얻는 진짜 방법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종교를 찾아요 . 왜 성당에 다니냐고 물으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는 답을 자주 들을 수 있죠 . 개신교인들은 구원과 영생을 얻기 위해서라고 답하기도 하는데 , 사실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마음의 평화가 곧 구원이고 영생과 같은 의미일 수 있어요 . 우리는 보통 집안에 다툼 없고, 돈 걱정 없고, 몸도 안 아프고, 자식도 잘 되는 고통 없는 세상을 평화라고 생각하죠 . 그런 세상이 오면 구원과 영생을 얻을 거라고 믿고요 .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로 가는 길이 늘 순탄하지만은 않아요 . 예수님은 많은 반대와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바치기로 결정하셨어요 . 진정한 평화는 반대하고 거절당하는 용기 없이는 얻을 수 없는 의지의 시작과 같아요 . 그래서 평화를 얻는 과정에는 상처받고 쓰러지는 어려움도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해요 . 그 과정을 거쳐야만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거죠 .
다툼 없이 평화를 지키는 예수님의 방식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투고 싸우는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 반작용 때문이에요 . 물리학 법칙처럼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따르죠 . 상대방이 나에게 기분 나쁘게 말하면, 나도 거기에 대해 반작용을 하는 거예요 . 그럼 거기서부터 다툼이 시작되죠 . 부부싸움도 마찬가지예요 . 한 사람이 뭐라고 할 때, 거기에 반박하면 싸움이 벌어져요 .
그런데 한 사람이 뭐라고 해도 "알았어", "그런가 봐" 하고 넘어가면 싸움이 안 돼요 . 예수님의 평화도 이런 방식과 비슷하다고 해요 . 내가 옳다고 주장해서 상대를 설득할 수 없다면, 차라리 싸우지 않는 것이 낫다는 거죠 . 그게 바로 평화의 길이라고요 .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신 것도 그런 마음 때문이셨을 거예요 . 우리도 예수님처럼 그런 마음을 배우면 좋겠죠 .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필요한 용기는 무엇일까요?
세상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울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어요 . 바로 침묵할 수 있는 힘과 머물 수 있는 용기예요 . 이 시대에는 그런 것들이 참 중요하다고 해요 .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을 용기도 필요하죠 .
우리가 진정으로 정의롭고 평화로우신 하느님을 믿는다면 , 세상이 아무리 흔들려도 하느님께서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실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요 . 그 믿음이 우리 마음 안에서 풍성하게 자라나기를 바랄 뿐이죠 . 아멘 .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