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을 휘리릭 읽고 마는 분들에게 드리는 글
- 이 글의 핵심은 왜 작가인 이 사람이 이런 말 까지 썼는가를 꼭 꼭 씹으면서 읽어야 수필문학이 발전한다는 뜻입니다.
1. 시작하는 말
기행 수필 〈단속사 가는 길〉은 기본적으로 ‘정당문학’에 대한 이해와, 글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거인들의 ‘지행합일(知行合一)’ 정신을 알아야 제대로 된 음미가 가능합니다. 속세와 인연을 끊은 단속사의 호젓한 축대 위, 지는 꽃잎과 이제 막 맺히기 시작한 푸른 매실을 바라보며 조선의 두 거인이 이별하고 있습니다. 칼날 같은 기개의 대유학자 남명 조식, 그리고 훗날 승병을 이끌고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할 젊은 청년 사명대사 유정. 남명은 떠나는 사명에게 시 한 수를 건네며, 밤새워 나눈 대화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당부를 전합니다.
“이별하던 때 잘 기억해 두게나. 정당매(政堂梅) 푸른 열매 맺었을 때.”
남명이 던진 이 짧은 시 구절 속에는 한 시대의 철학과 묵직한 화두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리에게 조금 낯선 ‘정당문학(政堂文學)’이라는 이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2. 정당문학이란 무엇인가?
"정당문학"은 ‘정치’와 ‘지성’이 하나 되던 고려조의 관직이었습니다. ‘문학’이라는 부드러운 단어가 들어가 선비들의 학술 모임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던 최고위급 재상(종2품 부총리급) 자리였습니다. 당시 국정을 총괄하는 관아를 ‘정당(政堂)’이라 불렀고, 그곳에서 당대 최고의 학문과 문장력인 ‘문학(文學)’을 바탕으로 정치를 편 사람을 일컬어 "정당문학"(요즘 말로 고위 공무원단 )이라 했습니다.
오늘날의 장관이나 총리는 행정, 경제, 법률 등 각 분야의 ‘기술적 전문가’들이 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전통 사회에서는 “인문학적 소양이 당대 최고 경지에 오른 자만이 국가를 이끌 자격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시(詩)·부(賦)·송(頌)·책(策)’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문과 과거 시험의 핵심 과목이었습니다. 필자는 지금 이 시대 역시 이러한 지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시대를 보면 국가를 경영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들 중에 "내 놓고 뻔뻔한 소리를 하는 자"들이 참으로 많아졌습니다.
3. 왜 최고의 인문학자가 최고의 정치가여야 했을까?
당시 정치는 단순히 예산을 나누고 법률을 집행하는 행정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도덕적으로 바르게 이끌 것인가(왕도의 실천)?”를 고민하는 철학적 행위였습니다. 선조들은 역사(史) 속에서 흥망성쇠의 교훈을 얻고 철학(經)을 통해 정의가 무엇인지 분별하는 눈은 오직 깊은 인문학적 탐구(문·사·철)에서만 나온다고 보았습니다. 문·사·철이야말로 도덕적 판단력의 원천이었던 셈입니다.
특히 당시의 외교는 세련된 공식 문서로 칼날을 겨누는 쟁투의 장이었습니다. 국가 수뇌부의 문장력이 곧 나라의 힘이자 품격이었기에, 재상은 상대국을 감동시키고 압도할 당대 최고의 문장가여야 했습니다. 치열한 인문학 서바이벌인 과거 시험을 뚫고, 국격(國格)을 결정하는 문장력과 학문적 명망의 정점에 오른 이들만이 오를 수 있었던 자리가 바로 ‘정당문학’이었습니다.
4. 푸른 매실에 담긴 묵직한 당부
고려 말, 단속사에서 치열하게 공부하던 청년 강회백은 마당에 매화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훗날 그가 최고의 학문과 정치 능력을 인정받아 ‘정당문학’의 자리에 오르자, 사람들은 그 나무를 ‘정당매(政堂梅)’라 불렀습니다. 선비들에게 이 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학문의 결실’이자 ‘선비의 지조와 책무’의 상징이었습니다. 남명 조식이 사명대사에게 저 정당매의 푸른 열매를 기억하라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네가 비록 속세를 떠난 승려이나, 이 땅의 백성이 고통받을 때 외면해서는 안 되네. 강회백이 이곳에서 청운의 뜻을 품고 나가 정당문학이라는 나라의 기둥이 되었듯, 자네 역시 훗날 세상에 나아가 저 푸른 매실처럼 단단한 실천의 결실을 맺게나.”
남명은 지는 꽃을 뒤로하고, 다가올 단단한 실천의 시간을 시 한 수로 당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5.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문학과 정치가 분리되지 않고, 최고의 지성이 곧 최고의 정치가 되던 시대. 정당문학이라는 관직과 정당매라는 나무에는 “지식은 반드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실천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숭고한 시대정신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날 단속사에서 나눈 두 거인의 묵직한 대화는 훗날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국난 앞에서 찬란하게 증명되었습니다. 사명대사는 승병을 일으켰고, 남명의 제자들은 의병을 일으켜 이 나라를 지켜냈던 것입니다. 필자는 자신에게 추상같았던 지도자들의 지행합일 정신, 바로 여기에서 훗날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맹아가 싹튼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당문학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 파편화된 지식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참된 지성의 역할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집니다. 그리고 문학의 길을 걷는 우리 수필가들에게도 어떤 글을 남겨야 하는지 커다란 울림을 줍니다.
혹자는 문학 카페에서 정치와 종교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선을 긋기도 합니다. 하지만 권력 정치에 직접 참여(앙가주망)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우리의 삶을 에워싼 거시적 환경인 정치의 잘잘못을 냉정하게 비판하는 일은 사람과 생명을 사랑해야 하는 문학인의 기본 정신입니다. 이것이 결여된 문학을 하는 분들은 “나는 무엇 때문에 글을 쓰는지”, 더 나아가 “자식 공부는 무엇 때문에 시키는지” 스스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순수문학’ 속에도 이러한 치열한 시대정신과 인간애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보이지 않은 문장 속에서 도도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