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편지 63신]행복한 주말, 꿈같은 가족여행
사랑하는 큰아들 내외에게.
너희 어머니 회갑생신을 기념하여 코로나시국에도 가족여행을 준비,
지난 주말 2박3일을 다녀온 게 꿈만 같구나.
세상에 여행을 하면서 ‘가족관계증명서’를 갖고 다녀야 하다니,
이런 희비극喜悲劇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직계존비속이래도 여섯 살 손자가 있어 5명이 되므로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진짜 이게 무슨 풍속도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애썼다,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해야겠다.
소노문 델피노, 대명콘도 속초점의 이름조차 신기하더라.
대체 왜들 이러는지? 아파트 이름들도 보자. 여기가 미국인지 아니면 미국 식민지여서 그러는지,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외래어가 아닌 외국어, 그것도 국적불명國籍不明의 단어들이니,
어쩌란 말인지 모르겠다. 60이 넘은 아날로그세대들은 혀조차 잘 돌아가지 않는데.
그나저나 ‘마운틴뷰mountain view’는 프리미엄이 있어 요금을 더 내야 한다고?
울산바위 전경이 한눈에 보이니, 좋긴 좋더라.
너희 덕분에 눈 호사豪奢, 입 호사, 잠자리 호사를 다했지만,
그중에서도 손자와 꼬박 두 밤을 같이 하는 행운은 행복 그 자체였다.
큰며느리답게 말수는 별로 없으면서 비교적 진중한 새아가 덕분에
이번 주말 참 좋은 가족여행을,
코로나시국에도 불구하고 하게 된 것이 어찌 고맙지 않으리.
호텔요금, 밥값 등 온갖 비용을 너희가 다 부담한 것도 그렇다.
마지막으로 일요일 점심값을 내가 내려고 하자 네가 말했지.
“이번 여행은 그냥 가만히 계셔주셔야 한다”고.
주최측이 모든 비용을 해결하는 것을,
우리는 ‘턴키베이스turn key base(시공일괄입찰방식)’라고 했지.
시국이 시국인만큼 이런 가족여행도 흔치 않고 쉽지 않았을텐데
모든 일정(관광, 맛집 순례 등)을 기획하여 빈틈없이 추진한 것도 한없이 기특했다.
둘째아들 내외가 한국에 있었다면 머리를 맞대며 상의했으리라.
4월은 또한 가족중 세 명의 생일이 들어 있어 더욱 좋았다.
작은아들, 손자, 큰새아가. 합동으로 축하연을 가지는 게 마땅한 일.
강릉의 명물이 된 ‘테라로사’공장 견학과 레스토랑 점심도 탁월한 선택이었고,
속초 청호호수 트레킹과 전망대, 맛집인 청호수물회집의 저녁도 너무 좋았다.
수산시장의 닭강정과 맥주 한잔, 울산바위 아래의 델피노호텔앞 포토존 가족사진.
손자의 끝없는 재롱, 금강산 화암사의 만발한 벚꽃나무 두 그루.
우리 모두 너무 좋았던 추억追憶들을 한보따리 안고 돌아온,
모처럼의 가족여행(2015년 9월쯤 제주도 가족여행이후 처음, 그때는 작은아들과 새아가가 된 애인이 있었지).
딱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작은아들 내외의 부재不在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이제 곧 반가운 재회再會에 이어 3번째 빛나는 가족여행이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말자.
아버지는 이런 모임, 이런 여행을 언제나 희구希求해 왔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한문漢文 문구가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情話’이다.
이번 경우의 친척은 ‘가족家族’이라고 바꾸면 좋겠다.
‘형제 등 일가친척이 모여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 한다’는 뜻으로,
도연명陶淵明의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나오는 구절이지.
너희도 모처럼 엄마-아빠와 꼬박 사흘동안 시간을 같이 보내며 즐거웠으리라.
서로 떨어져 살고 있으므로, 이런 의미있는 시간은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좋지 않겠냐?
서로를 더욱 친밀히 이해하게 되고, 가족의 의미를 새삼 되새길 수도 있지 않겠냐?
굳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사족蛇足이겠지만, 말할 때는 또 말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하는 ‘꼰대의 말’을 아닐 것이다.
또한 손자가 할아버지-할머니와 같이 하는 시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기도 할 터이고.
엄마와 아버지는 속초에서 너희를 만나기 전에 오대산 월정사와 그앞 전나무길을 걸었다.
모처럼 한가로이 데이트를 너희 덕분에 즐긴 셈이다.
이제 즐거운 주말이 지나고 오늘은 월요일. 또 바쁜 일상의 시작이다.
너는 너대로 은행에서, 새아가는 항공사에서, 손자는 어린이집에서 종일 지내야 하고,
나는 나대로 고향집에서 왕할아버지와 같이 지내야 한다.
엄마는 또 초중고등생 논술지도로 날마다 여념이 없을 터이고.
그렇게 서로 바쁘게 살다 몇 달만에, 아니 1년에 최소한 한번 정도 함께 추억도 쌓으며
힐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필요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열심히 일한 그대, 떠나라"는 교보문고 대향글판도 있었다.
일상 속에서 덕지덕지 붙은 스트레스도 훌훌 털어내는 시간이 없으면 질식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번 주말 여행은 너무 좋았다.
이 정도 호사를 누릴 자격은 우리 모두에게 다 있다고 생각한다.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밤이 깊어간다. 아버지도 오늘 제법 바빴구나.
표고버섯 종균 심어놓은 참나무 토막에 물을 흠씬 주고, 뒷산 고사리바탕에 가 고사리도 제법 꺾어왔단다.
좋은 꿈 꾸어라. 늘 건강하고. 사랑한다.
4월 12일
고향에서 아버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