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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밥
도치씨는 그날 오후 잉어가 잘 나오던 강으로 갔다.
새벽에 받은 도암의 문자메시지 때문이 아니었다. 도치씨는 자동차트렁크에서 자루 한 포대를 꺼내 어깨에 메고 강의 지류로 내려갔다.
곡우가 지난 강물은 푸르기 이를 데 없었다. 오세니아 바다를 코발트 빛 이라면 도치씨의 강물은 에메랄드 빛이었다. 아니 쪽빛이라 해야 맞나?
여하튼.
자루를 강가에 내려놓은 도치씨는 흐르는 강물에 손을 담갔다. 살을 베는 듯했던 찬 기운은 어느새 사라지고 시원한 봄기운이 느껴졌다.
자루를 풀자 피톤치드향이 물씬 풍겼다. 도치씨가 가져 온 자루 안엔 미색톱밥이 가득 들어 있었다.
뭘 하려는 걸까?
메기 잡으러 가서 메기도 못 잡는 사람이보면 의아해 하겠지만, 도치씨가 가져 온 톱밥은 잉어를 유혹하기 위한 최상의 유인제다. 도치씨가 이 톱밥을 잉어 잡이에 이용한지는 꽤 오래됐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낚시 갔을 때였다.
물이 뒤집힌 탓인지 전혀 입질이 없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한 도치씨는 새로운 포인트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이동했다. 그러나 일반 낚시꾼들이나 그 흔한 메기 잡으러 가서 꽝치는 사람처럼 무작정 포인트를 찾아 이리저리 배회하는 도치씨가 아니다. 지형과 지세 그리고 지질 대를 파악하고 새로운 포인트로 옮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좌청룡우백호처럼 풍수지리를 파악하며 옮긴다는 것이다. 그런 점이 여느 낚시꾼이나 메기에 걸신들린 사람과 다르다.
도치씨가 옮기는 곳은 전날 태풍으로 산사태가 일어나 신토新土가 흘러내린 강의 가파른 취였다.
가는 도중 도치씨는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커다란 미루나무가 뿌리 채 뽑혀 강물에 잠겨 있었는데, 그 미루나무 둥치 사이로 엄청난 물 자국이 일어나고 있었다. 처음엔 물의 역류현상인가 해서 지나치려다 도치씨는 이상한 예감에 그 물체를 한참동안 지켜보며 정체를 파악했다. 물 제비를 만들며 움직이는 그 물체는 대형이어잉어였다.
얕은 물속이지만 토사로 인해 물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경험과 짐작으로 계산해 본 그 대형잉어의 크기는 최소한 4자는 되어 보였다.
간혹, 커다란 등지느러미를 수면위로 내놓고 회유하는 잉어에 군침이 돌았지만 도치씨는 포획작전으로 돌입하지 않았다. 가지고 간 장비도 부실했고 범람한 황토 물속에서 움직이는 물고기는 코앞의 미끼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도치씨는 낚시할 생각은 접고 오랫동안 그 잉어의 행동을 지켜보며 여러 가지 생각으로 골몰했다.
한 마리가 아니고 수십 마리의 대형잉어들이 바글거리고 있다는 것은 뒤집힌 물속환경 때문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모든 수중생물들은 장애물이 있는 곳을 은신처로 하지만 대형물고기들은 토박이 터를 선호하기 때문에 쓰러진 나무 등을 은신처로 하지 않는다.
도치씨가 목적했던 토사 흘러내린 곳은 대형어들이 은신처 구축을 위해 모여드는 것이 아니고, 신선한 흙냄새를 맡기 위함이다. 신토엔 다량의 산소가 함유되어 있고 자연정화정수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대형어들이 포피세척과 기생충 제거를 위해 모여든다. 그러나 쓰러진 나무에 대형 어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은 이변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경우에 관한 구전이나 정보는 금시초문이었다.
한참 생각하던 도치씨는 흥분했다.
곧장 집으로 돌아온 도치씨는 대형잉어와 쓰러진 나무에 관한 역학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잉어의 신생태연구에 집념을 쏟은 결과 마침내 결과를 얻었다.
잉어가 모여든 이유는 황토와 돌무더기가 무너져 내린 곳처럼 쓰러진 나무에서 발생하는 산소공급 때문이다. 쓰러진 나무가 곧장 고사하는 것은 아니어서 어쩌면 더 많은 산소공급이 이루어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도치씨는 산소 외에 아주 중요한 단서하나를 더 발견했다.
나무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가 대형잉어에게 아가미와 포피세척을 위해 필수조건이 되었는지 모른다는 이론의 고리를 세웠다. 즉 피톤치드는 잉어에게 치유개선물질이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도치씨의 이 결론은 명확했다.
피톤치드는 물에 닿으면 육안으로 얼핏 식별하기 힘든 소량의 방울기름띠가 형성된다. 이 피톤치드기름 띠는 병든 잉어에게 자생치료 및 자생정화 역할을 하는 것이 맞다. 그러면 병든 잉어만 모여든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민물이든 갯물이든 급류에 서식하지 않는 한. 수생 또는 수중생물은 필연적으로 기생충에 감염된다. 기생충을 청소해주는 빨판상어와 상어같이 공생관계가 없는 모든 수중생물은 자력으로 자신의 포피를 치유해야하기 때문에 수족이 없는 잉어 같은 척추생물은 함몰된 황토무더기나 수심 얕고 햇빛이 아주 잘 드는 자갈밭에서 일광소독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치유방법은 간접치유지만 피톤치드유막은 직접치료효과가 있다.
그래서 도치씨의 연구는 정확하게 맥을 짚었다.
도치씨는 곧 임상실험에 착수했다.
처음엔 통나무를 베어다 물속에 꽂아 두고 관찰했다. 그러나 운반이나 설치에 난관이 많아 대타로 찾아낸 것이 톱밥이다. 톱밥 중에서도 참나무나 소나무 톱밥이 월등하게 피톤치드함량이 많다는 것을 임상실험으로 확인하고 매번 잉어낚시 갈 때는 항상 이 참나무 톱밥을 찰 진흙에 반죽해서 포인트에 뿌려 놓고 시간이 흐른 후 낚시했다. 톱밥덕분에 도치씨는 낚시터를 어슬렁거리거나 실컷 놀다 낚시해도 조과는 상상 초월이었던 것이다.
도암에게 일주일 이내에 양팔길이 잉어를 걸게 해주겠다고 큰소리 팡팡 친 것도 절대 꽝이 없는, 마음먹으면 마음먹은 대로 큰소리치면 큰소리 친 대로 척척 걸었던 이 톱밥의 위력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도치씨는 한 자루의 참나무 톱밥을 가져 온 것이다. 오늘 가져 온 톱밥은 특제다.
도치씨는 제재소 직원에게 소주사주고 담배 사주면서 특별부탁해서 가져온 참나무톱밥을 강 언덕의 황토에 섞어 강물에 아낌없이 투척했다.
“풍덩 풍덩 풍덩 철버덩 퐁당!”
강물이 휘돌아 쉬어나가는 홀 통에 30분이나 걸려 투척했다.
7일 뒤.
이 비밀의 장소에 설치한 대형잉어의 X파일 알집을 풀면, 도암은 도치씨의 톱밥프로그램에 꼼짝없이 걸려든 잉어를 끌어내느라 입에 게거품을 물고 말 것이다.
“하이고, 도치조선釣仙님. 저 도암 죽습니다요. 하이고, 하이고!”
도암의 쩔쩔매는 꼴을 재미있게 바라보며 도치씨는 코딱지나 후빌 것이고 도암은 끝내 기절할 것이 자명하다.
첫댓글 잉어 낚시에 꿈을꾸는 도치 역시 낚시광 분명 합니다.
도암의 놀랄만한 잉어 잡이에 부푼꿈을 꾸고있는 도치
곁에서 보기에도 제미 있슴니다.
네 김일수님
멋진 주말되세요
재미나네요 즐거운 휴일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잘 봐어요 ~
편한 밤되세요
연제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도치 손수만든 톱밥 미끼가 잉어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도암의 만족할만한 대어를 낚아 볼 꿈에 부픈 도치
잠시 오늘만큼은 깊은 잠에서 께어난것 같슴니다.
사는게 그렇죠
깼다 혼미해지고...그런게 사는거 아닐까 싶습니다
편한 밤되세요
도암의 욕구를 채워주기위해서
도치도 많은 연구를 하는군요..
손수만든 미끼 이름있는 미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