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의 땅에
-정성수鄭城守-
내게 손자가 생긴다면
손가락을 꼬무락거리며 배냇짓을 하는
그런
손자가 생긴다면
한 평의 땅에 씨 뿌리는 법을 가르쳐 주겠네
손자와 함께 씨를 뿌려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서 알곡을 얻으면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밤 동안
우리 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고 말하겠네
내게 손자가 생긴다면
넓은 아파트와 두툼한 지갑을 물려주지 않겠네
오직 제 손으로 씨를 뿌리고
제 손으로 거둬들이는 기쁨을 주겠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한 평의 땅에
씨를 뿌리는 일이라고 할아버지답게 말하겠네
□ 시작노트 □
유산 상속이라는 단어에는 부잣집 자식들의 다툼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상속자들 간에 재산 분쟁이 벌어지고 급기야는 고소 ․ 고발로 등을 지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대화와 이해로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 야 함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인 사고에 기인하여 불만 불평을 갖게 한다. 상속자들 모두가 만족한 유산 분배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최소한 서로 수긍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더불어 무작정 유산을 물려주기 보다는 유산 양도인이 평생 마음에 담고 살아온 정신적인 가치를 물려주는 것도 좋은 유산 상속이 될 것이다. 물질적인 유산과 정신적인 유산을 적절하게 물려받은 자손들이 자신의 후손들에게도 값진 유산을 물려 줄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유산을 남겨 줄 수 있을까?
내게 거짓말을 해 봐
-정성수鄭城守-
빵을 먹는다
이집트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빵
속이 텅 빈
공갈 빵 - 에이슈 Aishu
그녀의 가슴은 공갈이다
가슴에 넣은 뽕 두개
공갈이다
그녀의 가슴을 더듬는 내 손
공갈이다
의수義手다
쇼윈도의 마네킹도
공갈일 것이고
좌판 위의 먹거리들 모두
공갈일 것이고
구강기의 아기가 입에 물고 빨아대는 젖꼭지
공갈 젖꼭지
또한 진짜 공갈이고
밑져봤자 본전인
□ 시작노트 □
늙으면 죽어야한다는 우리 할머니, 밑지고 판다는 구멍가게 주인아저씨, 시집가기 싫다는 노처녀 우리 고모가 입만 벌렸다하면 하는 말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3대 거짓말이다. 이 거짓말을 뺨치는 거짓말은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면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는 말은 거짓말 중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남을 속이려고 생각하거나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하고 증거하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하루 평균 1.5회씩 거짓말을 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도 10분 만에 거짓말을 3번이나 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다. 웃어넘길 수 있거나 상대를 배려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 있는 반면 남을 등쳐먹는 새빨간 거짓말이 있다.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작심하고 한 거짓말에는 당여 낼 지간이 없다.
거울 속의 사내
-정성수鄭城守-
거울 앞에 있던 사내
노크도 하지 않고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왜소해서 슬프다는
사내는
조금은 왜소해서 외롭고
조금은 왜소해서 쓸쓸하고
왜소해서 많이 아파한다
거울 속에 있다 보면
사방 유리벽에 숨어서 실눈을 뜨고 바라보는
또 다른 사내들
상처가 거울인줄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투영되어
무수히 겹치는 얼굴에
얼굴을 감싸 쥐는
거울 속에 갇혀 흔들리는 사내가 거울을 본다
□ 시작노트 □
거울을 들여다보면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보이고 더럽혀진 옷자락이 보인다. 그래서 거울이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거울을 자주 보아야 한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곱고 단정하게 매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거울이 있어야 할 이유다. 다이아몬드도 갈고 닦지 않으면 빛이 나지 않듯이 훌륭한 인품과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마음의 거울에 비추어 보고 씻어내고 닦아내지 않으면 결코 인격자가 될 수 없다. 아침 한번만이 아니고 앉으나 서나 마음의 거울에 행동과 생각과 지난날을 비쳐보고 삐졌던 일, 미워했던 사람, 꾸불꾸불 걸어왔던 길 모두모두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벽에 걸린 거울은 사물을 비추지만 마음의 거울은 인품을 비춘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마음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 양심이 찔리지 않으면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꽃
-정성수鄭城守-
아이야 내 아이야 꽃 같은 아이야
춤을 추어라
세상의 꽃밭은 넓고
꽃밭은 너의 것이다
아이야
하늘이 푸른 것은 네가 있기 때문이고
하늘이 높은 것도
너를 위해서이다
어느 날 어른은 슬픈 것이라고
어른들이 말을 하면
너는 미소 띤 얼굴로 말하여라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어른을 닮지 않겠다고
아이야 사랑하는 내 아이야
노래를 불러라
네 노랫소리에 어둠조차 환해지는
너는 꽃이다 세상의 꽃이다
□ 시작노트 □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자 어른의 아버지로서 장차 국가와 민족의 동량지재棟樑之材로 자라서 후세를 이끌어 갈 나라의 기둥이자 겨레의 희망이자 민족의 대들보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특정 기능이나 지도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조화 있게 발달할 수 있도록 물리적 ․ 심리적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이때의 경험들은 성인이 되어 나타나는 여러 가지 특성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는 건 어른들의 몫이다. 특히 꿈과 사랑이 가득한 심성을 길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갖가지 체험은 물론 이웃을 생각하게 하고 TV와 전자오락에서 벗어나 책 읽는 시간을 도와주고 뛰어 놀 시간과 장소를 만들어 줘야한다. 나무는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는다.
조문
-정성수鄭城守-
아파트 뒤꼍 재활용품분리수거장 한 켠에
누군가 신문 뭉치 버렸네
버림받은 신문지를 바라보며
짧은 생에 대하여 생각하네
하루를 불같이 살다가 재티처럼 사라져간
신문지의 생
돋수짙은 안경넘어로 세상을 들여다볼 때
열 받는 삶도
속터지는 일도
다 그런 것이라고
벌레 같은 글자들 흰 종이 갉아먹는 소리도 잠시였네
한 때는 뒤를 보고 밑구멍을 쓱 문지르기도 했던
신문지
생이 끝날 오후 쯤
튀기는 라면국물이 두려워 한 자락을 식탁위로 내주거나
생을 마감한 저녁에는
손톱 발톱 싸들고 휴지통에 쳐 박히기도 한다네
신문의 하루살이 삶을 조망하며
폐기처분된 내 생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쓸쓸한 생각이
헌신문지를 조문한다네 무릎 꿇고 조문 시작
□ 시작노트 □
장례의 참뜻은 이 세상에서 할 일을 다 마친 이를 떠나보내고 그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세상과 자연을 이롭게 하도록 돕는 의식이다. 그러 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원스톱 장례 문화에 따라 기성품 수의와 근조화로 효율성만을 찾는 경향이 있다.“내가 죽은 날에 모이지 말고 그냥 내 생일에 모여 절대 홍동백서 같은 제사 음식 차리지 말고 맛있는 음식 만들어서 즐겁게 먹어. 내가 없으니 내 흉 실컷 보면서 실컷 웃어. 그럼 내가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따라 웃을 거야.”1970년대에 한국에 단발머리 열풍을 일으킨“헤어 디자이너 그레이스 리”의 말이다. 장례식장은 슬픔의 공간이 아니라 추억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첫댓글 여러편의시 감사합니다
휴일 편안한밤되시고
수고하셨습니다^^
여시정 작가님 좋은 날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