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1988년 가을 어느 날, 혼자 이리저리 리모컨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채널이 딱 돌아간 순간, 어떤 뚱뚱한 남자가 방망이를 휘둘렀는데 거기 맞은 공이 총알처럼 쭉~ 뻗어나갔습니다. 너무 신기했습니다. "우와~ 저게 뭐지"?
(나중에 알게 된 일인데, 타자는 장채근이었고 좌중간 가르는 2루타였습니다. 아주 잘 맞은 시원한 타구)
2_그 운동이 야구라는 건 알았습니다. 하지만 야구가 어떤 스포츠인지는 몰랐는데 타구가 빨래줄처럼 뻗어가는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10여분 남짓 채널을 고정했습니다. 던지고/치고/달리고... 제법 재밌었나 봅니다. 초딩 4학년 1번선발은 "우와~ 야구 재밌다, 나 오늘부터 야구팬!" 하고 마음 먹습니다.
3_우리 아버지는 축구-권투를 좋아하셨고 야구 문외한입니다. 어머니는 스포츠에 전혀 관심이 없으셨고요. 저는 외아들인데다 삼촌 고모부 이모부, 사촌형 등등 일가친척 통틀어 야구 좋아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아빠가 야구장에 데려가고 어린이 회원 잠바를 사주셔서~" 그런 스토리가 제게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응원팀을 골라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88년 그 가을날부터 야구팬이 되기로 결심 했으니까요.
4_저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경기도 어머니는 서울토박이 입니다. MBC청룡이나 OB팬이 되어야 옳았지만, 그때는 두 팀이 서울 연고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5_내게 야구에 대한 첫 인상을 안겨준 장채근의 소속팀, 검빨 타이거즈의 팬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해태가 그렇게 야구 잘하는 팀인지 몰랐습니다.
6_그로부터 4년 전, 모 중소기업에 다니시던 이모부가 분홍색 펭귄 모양의 물통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어려서부터 핑크 홀릭에 귀여운걸 좋아했던 1번선발은, 학교 소풍만 가면 꼭 그 물통을 목에 걸고 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중에 크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게 펭귄이 아니라 독수리였다는 것을. 그리고 뒤늦게 기억해냈습니다. 그 독수리 궁뎅이에 '빙그레 이글스 창단기념품' 이라고 써있었다는 것을요.
7_내가 야구팬이 됐다고 떠벌리고 다니자 같은반 친구가 이상한 잡지책 한권을 갖다 줬습니다. 삐까뻔적한 컬러에 야구선수 사진이 큼직큼직하게 박혀 있었습니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 책을 밤낮 들여다 봤습니다. 다른 사람은 기억나지 않는데, 대한민국 최고의 중견수라고 써있던 남자가 타격하는 사진, 그리고 가장 훌륭한 3루 수비수라고 그 잡지에서 주장하던 남자의 사진이 참 멋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아직도 기억납니다. 장태수와 김용국이었습니다.
8_1번선발은 고민합니다. 세상 모든 공을 다 때려낼 것 같은 강렬한 인상의 뚱뚱한 아저씨네 팀을 응원할 것이냐, 아니면 대한민국 최고의 중견수와 3루수가 있다는 파란색 한문 유니폼 팀을 응원할 것이냐, 그것도 아니면 누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내가 애지중지 아껴왔던 '펭귄물통'팀을 응원할 것이냐.
9_그 순간의 선택이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뚱뚱한 아저씨와 사진으로 본 파란색 아저씨들의 포스가 너무 강렬했지만, 내 첫사랑과 같은 펭귄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1번선발은 빙그레를 응원하기로 합니다. 멋모르고 야구를 보기 시작했는데 송진우니 장종훈이니 하는 이름들이 점점 익숙해집니다. 야구팬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며칠 안가 그 해 시즌이 끝났지만, 몇달 기다려보니 갑자기 펭귄팀이 맨날 이깁니다. 결승전도 갑니다. 결승전에서 뚱뚱한 아저씨네 팀에게 아깝게 지지만 그래도 야구를 잘하는 것 같습니다. 신납니다. 좋았어! 내가 야구팬이 된 것은 인생 최고의 결정이야 하면서 신나합니다.
10_에라이~
그 분홍색 펭귄 물통이 그렇게 귀엽지만 않았어도,
그랬다면 저는 V10팀을 응원했거나, 암흑기라고 해봐야 고작 5위 언저리인 평생 강팀을 응원했을겁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합니다.
첫댓글 ㅋㅋㅋ전우리아버지와 "장.종.훈."이 제일 원망스럽네요 ㅋㅋㅋ
장종훈 코치님이 그때 홈런만 안쳤어도 ㅜㅠㅋ
저도 우리 아버지가 원망스럽고요... ㅋㅋㅋ 지금은 원망받을 아버지의 자리에 놓여있네요 ㅋㅋㅋ
저도 장종훈선수가 제일 원망스러움~ㅋㅋㅋ
난 왜 99년 로마이어의 3루타와 구대성과 조경택의 포옹 장면을 봐버린건지..ㅠㅠ 그 장면만 아니라면 딴팀을 응원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몇년도였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당시 열혈 야구팬이셨던 울 아부지의 젤 먹구싶은게 머냐는 질문에 빙그레바나나우유!! 라고 답한게 시작이었죠
이 모든게 아부지의 철저한 의도된 계산이었지만 이닝 끝날때마다 사다주신 바나나우유가 너무 좋았고... 집에 돌아오는길에 채 다먹지못해 비닐에 바리바리 싸들고왔던 바나나우유를 바라보며 담에 또 야구장 가자고 졸라야지했던게 시작이었습니다ㅎㅎ
솔직히 지금 삼십대나 이십대 후반분들은 대부분 장종훈 코치님의 영향이 컷죠~ ㅎㅎ 아후 ㅎㅎㅎ
왜 나의 모교는 빙그레 우유를 아이들에게 먹였을까요...
전 작년부터 한화 팬이되었는데 영 안옮겨지네요 한용덕 코치님과 류현진 선수는 왜 그때 한화에 계셔서 ㅜ ㅜ ㅎㅎ
청주구장... 장종훈.... 한국시리즈 패배... 대문앞에서 밤새 울던 기억이 ㅋ 다 추억이네요
다들 장종훈선수네요ㅎㅎ 전 92년 한국시리즈 이후 야구를 보게돼서 그런가 정민철선수때문에 계속 좋아하게 됐네요ㅎㅎ
ㅎㅎㅎㅎㅎ 잼나게 잘 봤습니다~^^ ㅋㅋ
전 처음 야구를 알았을때 무조건 연고지로 좋아하고 응원하는 줄 알았습니다...내가 왜 예산에서 태어나고 자랐을까요ㅠ.ㅠ
ㅋㅋ 동생하고도 비슷한 얘기 많이 합니다. 왕종훈이란 만화는 제목을 왜 그렇게졌을까요?? ㅎ
저는 파란색을 좋아해서 야구만빼면 다 삼성팬인데 같은 이유로 어려서 처음본 삼성 빙그레 경기에서 너무나도 압도적인 송진우 투수를 보고 이 선수의 팀을 응원해야겠다 마음먹었는데 리그 최고의 스타 장종훈 코치님도 있었지만 얼마후 더 멋있는 영건 에이스가 등장하는게 아니겠습니까 ㄷㄷ 저는 그만 빠져버렸습니다
갑자기 아들놈에게 물려주지 말아야 할 유산을 물려주는 것 같아 미안해지네요..가뜩이나 지기 싫어하는 놈인데..
저랑 똑같은 고민 중이시군요 ㅠㅠ
첨에는 한화팬이라고 하고 다니다가
요즘엔 암말 안하고 다닌답니다.
서울이라 애들이 놀린대요. ㅠㅠ
저도 동의...동네 모두들 해태라는 구단과 LG라는 구단에 아이들이 미쳐있었고, 저는 아버지에게 야구장에 데려가 달라고 합니다...
경기는 때는 92년 5월 LG와 빙그레의 잠실 경기 였습니다...
저의 어렴풋한 기억에 12:3의 빙그레 승리였고, 9회초 빙그레 마지막공격에 장종훈 타석 응원석이 들썩거리기 시작합니다.큰거 한방 나올때가 됬다며, 딱이라는 소리와 함께 야구공은 좌측광중석 가장 끝에 쳐박히고..장종훈은 베이스를 다 돌기 시작합니다..그것이 홈런이라는 걸 알았고..그이후 빙그레광팬과 장종훈빠가 되었습니다..
근데 얼마전 집에서 지는 야구를 매일 보는 저에게 3살짜리 아들이 아빠 따악 보러가자고 합니다..야구라는 단어는 모르고
중계할때 딱 소리와 함께 공이 날라가서 우리아들은 야구를 따악이라고 합니다...문학경기장에 아들과 한화를 사랑해서 결혼 했으나 어느덧 야구보는 저를 뭐라고 하는 마누라와 갔습니다..결과는..ㅠㅠ
이러다가 아들내미랑 야구장 가는 꿈은 접어야 할 지도..ㅠㅠ한화는 맨날 져서 싫다며 안간다고 할까 두렵습니다..ㅠ
재밌게 읽었습니다ㅋㅋ 한화도 언젠가 다시 강해지겠죠~
군대간 아들 ... 하던 말 우리집은 빙그레(한화) 지면 왜 밥두 안먹는지 모르겠다고.... 그래도 암흑기에도(지금도 진행중 이지만) 꾿꾿하게 우승기념 모자를 쓰고 다니던 아들넘이 생각납니다.^^
10년이상 한팀만을 응원하는 사람이 다른팀으로의 변경은 힘듭니다. 애인과는 만나고 헤어지지만, 야구팀은 이혼하지 않는이상 마누라와 같습니다. 저도 마누라를 잘못 얻은건지..승리의 희열보다는 패배의 아픔이 더 큰팀을 응원하게 되었네요. 아버지가 한화그룹 임직원만 아니었어도..ㅜㅜ빙그레 잠바를 안입는거였는데ㅋㅋ
전 왜 야구를 좋아하게 된 건지...하필? 이글스였는지..그 이유를 지금도 잘 모릅니다.;;;;;야구를 이글스를 좋아한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말이죠~ㅋㅋ
하~ 크리스마스 선물로 배트와 글러브만 안받았어도.. 친구가 해태팬이 아니라 빙그래 팬이었다면.. (서로 내기하느라), 장종훈, 이정훈, 송진우 선수를 좀만 늦게 알았더라면 ㅠㅠ 그래도 어린시절 빙그레 덕에 너무 즐거웠었네요~ㅋㅋ
저는 1988년 초등3학년때 산 팽이에 빙그레가 적힌걸 사는 바람에 ㅠㅠ
한참 좋아했던 선수들이 이젠 코치로 있으니...ㅠㅠ
순혈주의의 또다른 부작용이 이것 같네요. 추억때문에 팀을 못 버리네요 ㅠㅠ
처음 프로야구가 출범했을땐 OB가 대전이어서 좋아했다가 서울로 이사가고 빙그레 창단때부터 쭈욱~~팬입니다.
충청도에서 나고 자랐으니까 당연히 우리고장 야구단을 좋아했죠...
지금은 경기도에 살고 있지만 항상 한화이글스, 대전시티즌....좋아합니다.
배구만 삼성을 안좋아하네요...ㅋㅋ
아. 삼성화재는 좋아할수가 없어요..
야구 버금가게 현대자동차서비스 팬. .
저는 태어나보니 빙그레 이글스 어린이 회원이더군요......
집이 충청도 이긴 하지만... ㅎㅎㅎ ㅠㅠ
저렇게 생생하게 야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와 좋아하고난 후의 일들이 기억나는게 부럽네요.
글쓴 분처럼 저런 생생한 기억을 가지신 분이 얼마나 있을까요.
전 엊그제 일도 가물가물
귀엽ㅋㅋ내팀이있어행복했으면된거죠
영원히함께한다이글스~~^^
김우열 현 두산 코치께서 아버지 후배라... 처음엔 OB였다가 김우열 아저씨께서 빙그레로 오시면서 자연스럽게 빙그레 팬이 되었죠... 그 때부터 쭈욱~~ ^^
6살 꼬마에 형의 한 마디는 컸죠~ 우린 충청도 사람이니 빙그레 이글스라고.....
분홍 펭귄(?)이 크게 잘못했네요 꼭 사과받으시길 ㅎㅎ
1번선발님 글중에 제일 재미난 글이네요.. 웃고 갑니다.
빙그레 이글스는 몰라도 적어도 요즘 한화 이글스는 좀 많이 미안해 해야할 것 같네요. ^^
장종훈코치님의 더위사냥이 문제
ㅋㅋㅋㅋㅋㅋㅋ
빙그레 이글스 창단할때 아부지가 빙그레만 안다니셨어도 ㅠㅠ
천안이라 그냥 운명이거니 빙그레를 좋아했습니다..다만 딸에겐 미안하죠;; 걘 인천출신인데 야구 보게 되면 이글스 응원하라고 얘기할테니..근데 고분고분 들을지 의문이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