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1일(토)
* 시작 기도
주님...
어제 하루도 치열한 영적 전쟁 속에서 투혼하게 하시고 오늘 이 아침에 영원에 속한 그 나라로 들어가게 하시오니 감사합니다.
육신의 두 발은 비록 이 땅을 디딜지라도 나의 영혼은 만물 위의 세계를 뛰어놀기 원하오니 이 종을 붙잡아 주옵소서.
말씀 안에서 오직 주님의 품안에 거하기 원합니다.
나를 주의 영 곧 성령으로 장악하여 주소서.
나의 벗겨지지 않는 죄의 때를 주의 보혈로 말갛게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 안에서 주님과 더 깊은 교제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오늘 하루도 거룩한 불구자, 영적 하루살이가 되어 이 하루가 주님과 온전히 연합한 주의 날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단 3:13-23
제목 : 주를 위하여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다.
13.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19.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7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20.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라.
21.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을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23.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
* 나의 묵상
바벨론의 주술사들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보고 느부갓네살 왕에게 고발하자 왕이 분노가 치밀어서 그들을 불렀다.
왕에게 끌려온 세 친구는 왕에게 취조를 당한다.
너희가 나의 신 곧 금 신상을 섬기지도 않고 그 앞에 절하지도 않은 것이 사실이냐?
너희가 혹시 실수로 그랬다면 지금이라도 괜찮으니 여러 악기 소리가 들리거든 내가 만든 금 신상 앞에서 절을 하면 된다.
만약 또 다시 절을 하지 않으면 너희를 활활 타오르는 풀무불 속에 던져 넣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 신이 너희를 거기서 건져낼 수 있겠느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기를 왕이여, 우리가 그것에 대하여는 굳이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짜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그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서 건져내실 것이며 또한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입니다.
설령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을 것이며 왕이 만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에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오르고 안색이 바뀌어서 신하들에게 명하기를 이 풀무를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겁게 하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던지라고 하였다.
그 불이 얼마나 뜨거운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불에 던지는 군인들을 태워죽일 정도였다.
결국 이 세 사람은 그렇게 결박된 채로 풀무불 속에 떨어지고 말았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믿음은 참으로 대단하다.
신앙의 순결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숨을 건다.
자기들을 집어삼킬 맹렬히 타는 풀무불이 그들 앞에 놓여 있음에도 그들은 신앙을 타협하지 않는다.
그 마음을 오롯이 하나님께 내어드린다.
결국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에 떨어진다.
그 풀무불은 마치 지옥불을 연상케 한다.
지옥불의 뜨거움이 얼마나 심한지 마치 불에 소금을 치듯이 한다.
또한 그 불은 꺼지지도 않으며 구더기도 죽지 않는다.
(막 9:48-49) 거기(지옥)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이처럼 타협하지 않는 이들의 신앙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들의 신앙은 정말이지 주님의 무덤과 연합하는 신앙이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다.
무덤에 장사되심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가장 귀한 생명의 표적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할 때 예수님께서 보여줄 수 있는 표적은 오직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하셨다.
(마 12:38-40)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것 역시 그 당시에는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지만,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을 예표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니엘의 세 친구 또한 그 당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아직 육신으로 오시지는 않았지만 오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그 신앙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주님의 무덤과 연합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이 아닌 예수로 부요한 자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 세 친구는 마음만 살짝 고쳐먹으면 얼마든지 땅의 부요함을 누릴 수 있었다.
목숨도 구하고 각종 금은보화 및 권세도 얻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신앙의 순결을 위하여, 그리고 주를 위하여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는 우리 주님의 마음과 똑같다.
주님께서는 죄를 알지도 못하셨지만 나를 위하여 친히 죄악 덩어리가 되셔서 십자가에 오르셨다.
그리고 죄악 덩어리인 자신을 심판하신 것이다.
이는 곧 나를 심판하신 것이요 무덤에 장사하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주님을 알지 못하였다.
십자가를 지기는커녕 어떻게 해서든 그런 상황을 모면하려 했고 그런 맞닥뜨린 상황을 해결하고자 부르짖을 뿐이었다.
나에게 주신 무덤의 상황을 그대로 수용하고 그 자리에서 우리 주님과 함께 연합하는 그런 자로 나아가야 함에도 나는 장사복음을 알지 못했기에 그저 믿음이 있는 자는 기도를 통해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능사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그들 자신의 죄로 인하여 풀무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목숨 버리기를 아까워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입신양명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음에도 그런 육신적이요 세상적이며 정욕적인 것들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놓았던 것이다.
예수님 역시 세상의 임금이었던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그의 마음을 조금만 바꾸면 세상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마 4:8-9)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거기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으시고 말씀으로 이를 물리치셨다.
(마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처럼 우리 주님은 늘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와 말씀으로 교제하시고 아버지의 품에 거하셨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의 품속도 알지 못하고 복음도 알지 못했으니 늘 헤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셨다.
이런 심판의 상황이 왔을 때 나는 예전의 나의 신앙으로는 마땅히 부르짖어 해결해 달라고 기도해야 했으나 복음을 알게 된 후로는 상황해결이나 신성한 감정을 체험하고 신성한 의미를 찾는 것 그리고 삶의 질을 고양시키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날마다 내가 있어야 할 곳 곧 아버지 집에 머무른다.
그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들어가는 곳이며 그곳은 곧 아버지의 품속이다.
나 비록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나의 육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그런 용기는 비록 없을지라도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날마다 주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간다.
바로 이런 삶이 그 어떤 삶보다 복되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이란 것을 믿는다.
이런 삶을 이 땅에서 지속하다가 주님 부르시는 그 날 기쁨으로 주를 바라보며 할렐루야 찬송하며 가기를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육신의 목숨에 매여 사는 인생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며 그 나라에 매여 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것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오니 성령의 줄로 그리스도께 완전히 묶인 자로 살게 하소서.
내 뜻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자가 되기를 소망하나이다.
그 뜻은 영생이오니 심지어 우리 주님조차 자신의 뜻을 위하여 일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일하신 것처럼 나도 그 영생을 이루는 삶을 오늘도 살게 하옵소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초개와 같이 목숨까지 버리는 그 신앙을 통하여 예수님을 봅니다.
이제 나를 통하여 세상이 주를 보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의 삶 자체가 복음이 되게 하옵소서.
미천하고 비천하나 벌거벗은 모습으로 벌거벗은 우리 주님과 연합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