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지니 지난시절 그 가난의 질곡속에서 신문배달을 했던 어린시절이 생각난다.
우리집은 서울 영등포구 도림2동 어느집에 단칸방 전셋집이였고, 나는 신길동에 있는 똥통학교인 지지리도 공부못하는 애들
만 다니는 장훈중학교라는 3류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지금은 똘똘하지만 그때는 아스키가 공부도 지지리도 못했었다.
중학교를 다니면서 노량진에 있는 중앙일보 신문보급소에 소속이 되어 노량진 본동과 상도동, 장승베기, 그리고 봉천동일대
를 포함하여 총 360부를 돌렸다. 어린 내가슴으로 품에 다 안기도 벅찬 부수였다.
노량진 본동을 다 돌리고 난 나머지 신문은 수북히 옆구리에 끼고 버스를 타야 했다. 장승베기까지는 먼거리여서 버스를탄다.
마침 학생들의 하교시간과 겹쳐서 정류소에는 항상 긴 줄이 서있었다. 나는 맨뒤에가서 신문을 단단히 움켜쥐고 기다리다가
차에 오를 준비를 한다.
하지만 버스 안내양이 기분나쁜눈으로 쳐다보고 쌀쌀맞아 눈치를 많이 봐야 했다. 그리고 사람들도 겨우타야 하는 복잡함속
에서 승객들도 불만이 많아 시선이 곱지가 않았다. 그래도 기를쓰고 겨우 한쪽 손으로 바르르 떨며 손잡이를 잡고 한 발들여
놓는찰라, 창틀을 움켜진 버스 안내양이 이게 짐차인줄 아느냐며 내려가라고 악을쓰면서 나를 발로 걷어찬다.
나는 신문뭉치와 함께 땅바닥으로 구르고 그사이 버스는 출발해 버린다.
당해야 할 것이라면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속해야 될 생활의 일부라면 마다 할수 없지 않겠는가 하는 결심을
하며 다시 입술을 깨물고 다음차를, 그리고 또 실패하고 또 다른차를 겨우 얻어타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배도 고프고 고단했지만 나는 악착같이 참고 신문을 돌렸다. 그것이 매일반복되는 아픔이였다.
그래도 나는 더이상 서글퍼하지 않았고 그런 사람들이 다 밉지는 않았다. 그것이 당연한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한 것 뿐이였다.
그것이 바로 순수성이 때묻지 않은 참마음이 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의 때가묻고 약아져서 누가 뭐라고 싫은소리
한 마디만 해도 잡아먹을듯이 독기를 품고 어떻게해서든지 복수하려고 눈까리 뒤집고 노려본다.
나도 참 더러워진 인간이 아닌가 싶다뭐 진짜다뭐 그러니까 건들지좀 마로............괜히 챙피만 당하거덩 진짜다뭐!
호홍^^
첫댓글 카페세상에서 자랑질은 많이 들어봤지만
3류 중학교에 신문배달 등 힘 든 어린시절
이야기들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아침입니다
산전수전 많은 풍파를 겪었으니 지금 이렇게
꿋꿋하게 잘 헤쳐 나가시나 봅니다.
그 초심 잃지 마시고 계속 전진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창밖에 비가 내리는 군요^^
카페에서 자랑질 한다고 인생이 빛날까요 있는 그대로
사람사는 이야기 솔직히 하는것이지 뭐 숨긴다고 달라지겠는지요
저는 누가 뭐래도 있는 그대로를 말합니다
감사합니다^^
"눈물과함께 빵을먹어보지 않는자 참맛을모른다" 는 괴테의 명언이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지금의 마두님은 누가 소년기에 빈곤과 아픔을겪었다 생각 할까요 ?
항상 타인에게 웃음을선물하고 상쾌,통쾌 하신 분을..
그러나
인간은 아품만큼 성숙해지고 그아픔속에서.
자신의 인격을 형성하지않습니까?
마두님의 무한한 창작력은 아마도 소년기의 그 아픔속에서
이미 빛을 발하고 었었나봅니다
저도 예술가인 것은 분명한데 그렇다고 뭐 크게 성공한 예술가는 아니지만
말씀입니다^^
이상하게도 예인들은 인생길이 참으로 고단하고 아픔의 질곡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역시 사실 지난 청년기에는 너무 아픈사연이 많습니다 하지만 타고난 천성이
밝아서 그런지 웃음은 잃지 않고 살았어지요 예나 지금이나 저는 항상 천성을
그대로 입니다
감사합니다^^
공부 지지리도 못한 사람이 조강지처, 어부인님
만나서 똘똘이로 변했다는 말씀으로 새겨
듣겠습니다. ㅋ
하하하...........뭐 그것도 맞는 말이구먼요
그래도 뭐 그렇게 똘똘하지는 못해요
좀 멍청끼는 여전합니다.^^
신문 배달 끝나고 몇 부 남으면 보급소에 반납 않고
팔아서 아이스크림 사서 동생들과 나누어 먹고 그랬는데
차마두 선생님도 분명 그러셨을 것 같은데요.
아이고 그런것은 몰랐지요^^
사실 제가 배달할 때는 신문값도 쌌구요
숭실대학교가 당시에는 숲속에 처박혀있어서 그기 넣을 때가 고통이였는데
기숙사 어는 여학생이 갈때마다 식빵줘서 그것때문에 즐거웠었지요 나중에
보니 목발짚고 다니는 장애인이더라구요 누나뻘이였는데 참 마음이 좀 거시기
했었지요^^
태어나서 다섯살까지 살았던 노량진 본동.
동네 이름만 보아도..........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는 "젊어 고생".....장하십니다.
아 그러시군요 지금은 많이 변했겠지요
당시에는 상도동과 연결하는 굴을 파느라고 본동 재래시장
옆에 언덕베기가 엉망이 였었지요^^
감사합니다^^
@차마두 그 상도터널 한강쪽 입구 본동국민학교 근처 입니다.
@흐르듯이(無香) 그래요 지금은 반듯하겠지요
그 입구를 넘어서 한강 중앙에 있는
작은섬에 외딴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도
제가 배달했습니다 물론 집은 나무로 지은 하꼬방집이
였었지요^^
아이구 ....
참으로 어린시절의 신문배달부터 .....
제가 공직초창기에 영등포구청애서부터 출발해서 영등포쪽은 훤합니다
허름한 영등포역뒤로 도림2동에서 살으신것이 꼭 등장하데요
그러면 점심이나 식사는 제대로 하여면서 커나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그정도는 고생을 하지않했습니다.
한편의 인생사가 펼쳐지는군요.마음이 숙연해 지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작가님으으로 성장을 하였나 봅니다.
서울시 선배님들의 삶들도 그러한 어려움을 뚫고 공직으로써 성공한 삶들이
있으라고요.
참 ! 장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참 그때 도림2동에 살 때 우리집에 밥은 누가줘서
먹고 살았는지 모르겠네요 아마도 큰누나가 마루보시 다니는 큰매형이
노동해서 벌어온 돈으로 쌀을 사다준 것 같아요 나는 끼니를 거르지는
않았는데 우리 엄니는 많이 굶은셨던것을 어린저는 몰랐지요
외동아들이라고 그래도 밥은먹였던 것 같아요 물론 반찬은 항상
김치쪼가리 쉬어빠진 것 뿐이였지만요
지금 생각하니 참 그게 사는건지 거지나 다름없었던 것 같네요
에잉~~짜증나요 왜 그렇게 가난하게도 살았는지 참네!
@차마두 작가님 ....
우리세대들은 그가난의 질곡에서 헤쳐나온 옂전의 용사들입니다
그 어려운 가운데도 올바른 정신을 잃지않고 자신을 위한 삶 ...
꿋굿히 지키고 가장으로 혹은 아버지로써 자녀들을 키우고 ......
떳떳한 우리들의 삶이라고 생각이 듬니다.
그러한 가운데도 정의감이 살았으시고 ,올바란 가치관이 ,많은 공부를 하셔서
그 어려운 만화를 자유자재로 그리시는 작가님은 훌륭하십니다
마두님도 참 휼륭하십니다
우리 세대의 어린시절은 대부분 이렇게 어렵게 고생하고 자라면서
치켜운 생활이고 나라인데 지금은 몇배나 잘살고 있는데도
왜 이리 복잡하고 사는것들이 또 다른 힘이 들까요~
아유~~신문배달 하나 한게 뭐 그리 훌륭까지는 아니고요
그렇게 악착같이 삶에 적극성을 가졌다는 것 뿐이지요^^
요즘은 시대가 달라져서 그런지 정말 아이들이 너무 어려운
것을 모르는 것 같아 좀 그렇기는 하지요^^
추억은 아름답고 숭고하기까지 삶의현장과도 같은 씩씩함
작심삼일 어려움을 헤치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봅니다
공부 등
마지막 맨트가 멋짐니다
하하하하.......성질머리 나오지요^^
어쩌겠어요 가진 것이 없으니 악다구니라도 있어야지요
하하하하^^
저는 이런 글만 읽으면 눈물부터 남니다.
늙어가는 증거일까요?
어릴 적 하도 고생을 많이해서 지금은 키도 수축이 되다보니
바짓단 길이도 길어지고 헐렁해지고 그런 것 아닐까요?
여유와 웃음과 해학이 그저 나온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요 고생을 하신분들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에
눈시울이 붉어지지요 억울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지요
그러나 어쩌겠어요 우리네들의 운명인 것을요
글을 쓰는 저도 같은 마음으로 글을 써놓고 울때도 있답니다.
너무 내처지가 처량하다는 마음입니다.
차마두님 소싯적에는 인내심 강하고
마음이 굳세었네요.
대개 사람들은
나이 먹으면
그럴 수도 있지...하며
못마땅한 것도
그냥 봐주는데,
차마두님은 거꾸로
독기를 품는다니
아이고, 무서워요~
독해야 합니다
순하고 약해보여도 어느면엔가는 저도
정말 지독합니다.
가끔 가다가 알고도 모른척
구렁이 담 넘어가듯 가야 하는 실버 카페란 특성엔 쪼꼼 안맞을진 몰라도
차마두님은 우리나라 서울법대를 나온사람들 보다 백배 똑똑, 비상 하십니다.
어린시절 겪기엔 너무나 잔인하게 아픈 경험에도 아직 순수가 남아 있으니
아주 우수한 DNA 십니다~~~~인정~!!!
하하하하하................. 우리동네에도 빨강색 노랑색
천을 바람이 휘날리며 영업하고 있는 집이있는데요 쪽집게 점술가
집이라고 하던가요?
혹시 그 동네 옆에 사셨었나요?
참말로 귀신이 따로 없네요
제가 서울대 나온거 어떻게 아셨지요?
하도 가난해서 봉천동 살 때약수물 뜨러 다녔잖아요
서울대마당에 있는 약수물 참 좋아요 그거 몇년을 다녔어요
서울대를요
호홍^^
저는 좋은 환경보다는
어려운 곳에서 뜻을 이루어 내는
님에게 갈채를 보냅니다.
감명깊은 글입니다 쫙 쫙 쫙----
아이고 그냥 지난시절의 한토막을 회상한 것 뿐입니다
비가오니 공연히 생각이 나더군요
감사합니다.^^
젊어서 고생 사서 하라고 했나요?
그래도 아직도 동안이시니 더없이 성공한 분 이네요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 건강미가 있는 분 이랍니다
하하하하.......동안이야 타고 났으니 제마음대로 못하지요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니 저의 고생을 당시 누가 좀 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하하하 즐거운 주말 되세요^^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라는말이 차마두님에게 딱 맞는말 같네요 과거 보다는 현재가 중요한 것이지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장훈중학교 나는 담위에 있는 학교에 다녔거든요 옛동네 친구를 만난듯 반갑네요 ㅎㅎ
아.그러시군요 영여군요
그곳은 공부 잘 하는 여학생들이 다녔지요
우리 학교 꼴통들이 넘보는 선망의 대상이였습니다
반갑습니다 영등포여자 중고등학교 학생님 하하하하^^
그때는 잘살았던집 아이들은 지금은 대부분 고생하며 살고있고
고생하며 어렵게 자란 사람들이 오히려 잘사는 내주변 사람들을 보며
인간사 공평하다는 생각을 해보며 어릴적 나의 모습을 보는것 같은
정감어린 글을 읽으며 옛날 고생 스러웠던 시절의 생각에 잠겨 보았습니다......
우리네 신중년연대 엇비슷한 삶을 살아온 연대라
공감대가 형성 되지요
고맙습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
어려운 시절이 있기때문에 훌륭한 작가님이 되셨다고 항상 느꼈습니다.
풍자만화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울고 웃기는 감동의 글이었습니다.
꿈과 소망 이루시길 기대합니다.
아이고 이거 과찬이십니다 훌륭한 작가는 못되고
그냥 같이 즐길 수 있는 정도의 만화가 입니다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