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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재(鬼才) 이도사(李道士)
이조판서를 꿈꾸며.
조선조 중엽에 풍수설과 팔괘에 능통한 이도사(李道士)가 있었다. 이도사는 어머니가 노비로 있는 집주인을 통하여 태어났기 때문에 사실상 서자출신이나, 천민의 신분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 노비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게 된, 그의 어머니는 어린 이도사를 데리고 나와 따로 살아가고 있었다. 아침저녁끼니를 걱정할 만큼 살림이 몹시 궁핍하여 겨우겨우 연명하는 처지였지만 이도사를 한 삼 년 공부시켜 제 밥벌이나 하라고 어느 풍수(지관)를 따라 다니게 했다.
머리가 총명한 이도사는 풍수의 뒷심부름을 하면서도 열심히 팔괘공부를 하여 풍수에 대한 지식도 웬만큼 익혔다. 몇 년간 뒷심부름을 하면서 세상동정도 알게 되고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안목과 눈치도 비상해졌다.
팔도 방방곡곡을 다니며 객지에서 살다보니, 어느 덧 열일곱 살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어머니께서는 세상을 떠난 지 이미 오래고 집은 이곳저곳이 무너져 바람만 불어도 금방 쓰러질 듯싶은 흉가로 변해 있었다.
혈혈단신 어느 곳에도 의지할 데가 없어진 이도사는 따뜻한 봄날, 잠자는 일이 고작이었고 언제부턴가는, "나도 출세를 해야지. 판서쯤은 돼야지. 아니 그보다 더 높은 사람이 돼야지." 하는 야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양반과 상민이 엄연히 구별되는 세상이고, 적자와 서자가 철저히 구분되어지던 당시의 사회적 제도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허황한 생각이었다.
이도사는,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는데 왜 안되겠나.'라는 생각에 우선 그동안 봐두었던 명당자리 중에서도 판서가 나올 수 있는 자리에 어머니 묘를 이장했다.
산세를 보니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가 뚜렷하고 득수득파(得水得破) 안산(案山) 등이 조공하는 형국으로 이조판서 한자리는 해볼만한 명당자리였다.
어머니의 유골을 아무도 모르게 밀장한 이도사는 별다른 할 일도 없던 터라 우물가를 구경 삼아 나가보았다. 그랬더니 어릴 때 친구였던 옥녀(玉女)가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러 오는 것이었다. 어릴 때는 시커멓던 얼굴이 이제는 백옥같이 하얀 얼굴에 은은하게 피어오른 여드름은 이도사의 마음을 무척이나 울렁거리게 했다.
이도사는 그 자리에서 결심을 했다. '저 옥녀를 내 각시로 만들어야지.' 그리고는 옥녀에게로 다가가 목이 마르니 물을 좀 먹자고 이야기를 건네자 옥녀는 수줍어하면서도 나이가 짐짓 든 처녀인지라 침착한 자세로 물을 떠주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는 동안 상당한 시간이 흘렀을 즈음에 이도사가 대범하게 옥녀를 향해서,"야∼아, 옥녀야, 너 내 각시 안 할래?"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청혼을 했다. 그러자, 옥녀는 콧방귀를 뀌면서, "나하고 살려면 이조판서만 되라지." 하고 농담조로 답을 했다. 이도사는 때를 놓칠 새라, "좋다. 그러면 옥녀 너도 나하고 약속해라." "뭘?" "내가 앞으로 5년 안에 이조판서가 돼 가지고 금의환향할 테니, 꼭 그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이도사의 이 같은 제의에 옥녀도 쾌히 대답하고 앞으로 부부가 될 것을 언약했다.
그리고는 헤어져 각자 집으로 돌아왔다. 야망인지 허황한 망상인지 분명하진 않았지만, 이도사는 옥녀와 결혼하기 위해선 꼭 이조판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조판서는 고사하고 군마장(軍馬場)에서 말똥을 치우는 하급 벼슬조차도 할 수 없는 처지인데 감히 이조판서라니? 정말 이도사 자신이 생각해 보아도 꿈같은 망상이 아닐 수 없었다.
이도사는 며칠을 두고 비장한 각오 끝에 어깨 너머로 배운 덫 놓는 기술을 이용하여 산토끼 한 마리를 다치지 않게 잡았다. 그리고는 화살과 활 등을 갖추어 집을 떠나 한양으로 발길을 옮겼다.
가진 여비도 별로 없는 그는 특유 재담으로 사람을 사귀어가며 시장기를 면했고, 딱히나 어려울 때는 주역팔괘(周易八卦)를 이용하여 운명을 봐주면서 그때그때 어려움을 면해갔다. 더욱이 산토끼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잘 가지고 가야했으므로 특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
한달 남짓, 갖가지 고생을 하고 나자 목적지인 한양에 당도하게 되었다. 여름이라서 사방 곳곳에서는 매미와 각종 풀벌레소리가 한가하게 들려왔으나 많은 사람들은 배를 곯아 얼굴과 손발 등이 부은 채 살 방도가 막막한지라 길거리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는 것이었다.
이도사는 한양에서 앞으로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주역팔괘(周易八卦)를 이용하여 알아보기로 했다.
작괘를 해본 결과 뇌수해괘(雷水解卦)를 얻어 이를 풀어보니, 우산희생(憂散喜生) 즉, '지금까지의 고생은 사라지고 새로운 즐거움이 싹 트이기 시작한다.' 라는 보다 희망적인 괘였다. 이도사는 상당한 길괘(吉卦)임을 알고 가슴속에 품고 있던 이조판서였다.
이 괘는 매사가 풀린다는 것으로 득괘(得卦)하기 전까지 지긋지긋한 고통이 있었다면, 앞으로는 그 고통이 풀려 행운이 있을 것이고, 반대로 득괘 이전까지 호의호식으로 행복한 삶을 해왔다면 그 행운이란 운명체(運命體)가 풀려버려 앞으로는 불행해질 것을 의미하고 있는 괘였다.
이도사는 지금껏 자신이 고통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앞으로는 뭔가 서광이 비칠 거라는 희망적인 괘였다. 이도사는 상당한 길괘(吉卦)임을 알고 가슴속에 품고 있던 이조 판서의 꿈을 펼쳐 보고자 고향에서 떠나오면서 생각했던, 인토입궁(因兎入宮), 다시 말하면 고향에서 떠나올 때부터 가지고 온 토끼를 이용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임금이 계신다는 궁궐을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는 그 결행일을 음양오행(陰陽五行) 법칙에 따라 만사유길하고 귀인을 만날 수 있다는 계묘(癸卯)일로 정했다. 그리고는 매일같이 궁궐 주위를 서성거리며 동태를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이런 식으로 며칠을 지내는 동안 결행일이 다가왔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그동안 많은 신세를 진 주막 주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주막을 나섰다. 궁궐을 들어갈 명분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고향에서 떠나올 때부터 생각한 것이었지만 막상 결행해야 하는 당일을 맞이하자 가슴이 설레는 반면에 만약 잘못되는 날에는 목숨도 부지하기 힘들 거란 생각에 은근히 겁도 났다.
'제기랄, 사람이 한번 죽지 두 번 죽는가? 죽어도 이조판서가 돼 고향으로 돌아가 옥녀를 꼭 내 각시로 맞아 들여야지.'하고는 입궁(入宮)의 기회를 파악하기 위해서 궁궐 주위에 숨어서 주변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궁궐 주위에는 친위대로 보이는 병졸들이 물 샐 틈 없이 지키고 서있었고 각 출입문에는 체구가 건장한 장정들이 뾰족한 긴 창을 든 채 버티고 있어 보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어둠이 깔리는 저녁 무렵까지 기다렸다가, 고향에서 가지고 온 토끼의 그 동그란 눈에다 긴 활촉을 푹 꽂아 궁궐 안쪽으로 힘껏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궁궐 문을 통해 부리나케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궁궐 문을 호위하고 서있던 병졸들은, "어떤 미친놈이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들어가려는 수작이야! 나쁜 놈 같으니. 야 이놈아, 여기는 상감이 사시는 곳이야! 알기나 해?"
이도사는 병졸들이 그렇게 하기를 고대하고 있었고 문제가 더 크게 일어나 임금 앞에 꿇어앉기를 고대하던 터였기 때문에 병졸들의 큰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대들었다. "내가 쏜 활에 토끼가 맞았고, 그 토끼가 이 집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내 토끼 내가 잡으러 여기 좀 들어간다는 데 뭐가 그렇게 말이 많소. 그것 참 인심도 고약하네. 저리 비켜! 병졸이면 단가!" 하며 한술 더 떠서 시침을 뚝 떼고는, "이곳이 무엇 하는 곳이 길래 이렇게 인심이 야박하단 말이오." 그러자. 병졸 한 명이 이도사의 멱살을 조이면서, "야 이놈아, 여기가 상감마마가 계신 곳이라고 아까부터 말했잖아. 그러니 어서 가 봐!" 병졸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이도사를 땅바닥에 팽개쳤다.
그러자, 이도사는 속마음으로, '옳지 잘 됐다.' 싶어 큰소리를 치며, "사람 살려, 병졸이 착한 백성을 죽이려고 하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하고 생떼를 쓰자. 사방에서 모여든 병졸들이, "왜 그래? 왜! 이놈은 누구야?" 하면서 한 마디씩 내뱉었다.
그때 마침. 궁궐 안에서는 임금이 정원을 거닐고 있다가 시끌벅적한 소리를 듣고는 신하에게 그 연유를 알아보도록 했다. 신하로부터 이도사의 이야기를 들은 임금은, "백성의 눈이 있는데 그게 무슨 꼴인고?" 하고 나무라며, 당장 이도사와 다투고 있던 병졸과 이도사를 불러들이도록 명을 내렸다.
공주의 병을 고쳐라.
어전에 꿇어앉은 이도사는 마음 속으로 '옳지, 올 것이 왔구나. 바로 이거다.' 하면서 당당하게 이렇게 말했다. "상감마마, 황송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소인은 어려서부터 활쏘기를 좋아한 까닭에 늘상 사냥을 해오던 차 우연치 않게 날쌘 토끼 한 마리를 몰다가 마지막 남은 화살하나를 쏘았더니 공교롭게도 눈에 화살이 맞아 이곳으로 도망쳐 들어가 그 토끼란 놈을 찾으려고 하다가 이렇게 큰 소란을 피웠사옵니다. 그러하오니 상감마마께서 소인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이도사의 말을 듣고 있던 임금께서는 신하들에게 명을 내려 그 토끼를 찾아 오라 했다. 한참 후에야 이도사가 말하는 토끼가 어전 앞에 놓여졌다. 임금은 깜짝 놀란 얼굴을 하며 이도사에게, "정말, 네가 이 토끼를 쏜 게 분명하단 말이냐?"
죄인을 국문(鞠問)하듯이 날카롭게 물었다. 가슴이 철렁한 이도사는, '아이고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을 순간 가졌다. '그렇다고 이대로 끝날 수야 있겠나?' 싶어, 임금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 상감마마. 소인이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사옵니까. 그러니 소인을 벌해 달라는 게 아닙니까. 어서 벌을 내려 주시옵소서."
이도사의 이 같은 말에 임금은 무엇인가 기쁘다는 표정으로, "날이 밝는 대로 내가 따로 너를 부를 테니 그리 알라." 하며 신하들에게 이도사의 거처를 마련해 주도록 명을 내렸다.
일생 처음으로 그것도 어명에 따라 마련해 주는 거처에서 잠을 자보다니 실로 가슴 부푼 일이었으나 내일 임금이 어떻게 할지 걱정되었다. '일단은 내가 예상한 대로 진행되어 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내심 기쁘기도 하지만 내일이 어떻게 될지? 내 모든 것이 낱낱이 밝혀져 당장 목을 베라는 어명이 있을지, 아니면 곤장으로 버릇을 고쳐주라며 겨우 목숨만이라도 부지할 정도의 매를 맞고 쫓겨 보낼지? 아니면 불쌍히 여겨 궁중 노비라도 일자리를 마련해줄지…….' 이도사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밤을 꼬박 새웠다.
날이 밝자 임금은 다시 이도사를 불렀다. 어전에 다시 꿇어앉은 이도사는 마음 속으로, '저 임금의 말 한 마디에 내가 죽느냐 사느냐의 판국인데 그러나 저번 주역팔괘(周易八卦)에는 만사가 풀리고 귀인을 만난다고 했으니 뜻밖의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임금은 이도사를 한참동안이나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다. 이도사는 말할 것도 없고 주위의 신하들까지도 긴장된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임금께서 갑자기 이도사를 향해서, "이놈∼, 네 이놈. 네놈이 진정 토끼의 눈을 꿰뚫었단 말이냐?" 이도사는 마음 속으로, '아이쿠 이제 꼭 죽었구나. 그렇지만 호랑이가 물어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하였으니, 나도 정신을 똑똑히 차려야지.'하고는 임금께 정중한 어조로 우는 시늉을 하면서,"상감마마, 어찌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겠사옵니까(一口二言)?"
이도사는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절박감에서 끝까지 토안지적 즉, 토끼 눈은 자신의 활로 맞춘 거라고 끝까지 주장했다. 그러자 임금은 이도사에게, "그렇다면 정녕 그대가 명포수임을 증명할 수 있겠느냐." 라고 단호한 어조로 묻고 또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왕실에는 내가 부덕한 소치로 공주(公主)가 시름시름 앓고 있어 여간 걱정이 아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스러운 것은 궁중 앞뜰에 있는 느티나무에서 삼경(三更)이 넘은 깊은 밤에 부엉이란 놈이 울기만 하면 공주가 더욱 심하게 앓게 되느니라.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그 부엉이를 잡으려고 백방으로 애를 써 보았으나 나무가 너무 높아 화살을 쏘아 올려도 미치지 못하는 데다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포수는 다 불러보았어도 허사였느니라. 그러니 네가 그 부엉이를 잡아보아라. 다만 어느 명포수나 어느 명장(名將)도 부엉이가 앉아 있는 가지 끝까지는 화살을 쏴 올리지 못했으니 다른 방법을 써도 좋으니라." 임금의 이 같은 이야기는 공주를 아끼는 마음이라 무척 단호하면서도 한편으로 이도사에게 크게 기대하는 눈치도 엿보였다.
이도사는 마음 속으로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가 없음을 판단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상감마마, 그 일은 염려마시옵소서. 소인이 열·성·기(熱誠技:활솜씨)를 다하여 공주님의 병을 완치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소인은 어려서부터 활과 주역팔괘, 그리고 더 나가서는 풍수지리에도 다소 아는 바가 있사오니 때를 맞추어 시행할 것이옵니다. 그러니, 너무 상심(傷心)하지 마시옵소서."
이도사는 겸손한 척하면서도 우선 위급함을 면하기 위해 매사에 때가 있음을 주장했다. 이도사는 이왕지사 모든 것이 들통나 죽더라도 마음껏 호의호식 한 번하고 주지육림(酒池肉林)에 수많은 계집을 품안에 안아보는 일생일대 최고의 낙을 누리다 멋있게 죽을 양으로 임금께 아뢰기를, "상감마마 황송하옵니다. 송구스럽게도 지금 당장은 시행이 어렵고 앞으로 백일 후에야 가능하겠사옵니다."
그래도 임금은 기쁜 모습으로, "때가 그렇다면 할 수 없는 일. 그대가 정히나 그렇다면 기다리는 수밖에. 그러면 짐이 어떻게 해주면 될꼬?" 이도사는 기회를 놓칠세라, "예. 상감마마. 우선 무엇보다도 앓고 있는 공주마마를 한번 뵈었으면 하옵고, 두 번째는 그 느티나무에 백일 동안 백옥같은 여인 이 삼십명이 매일 고기와 술을 바쳐 지성을 드릴 수 있게 선처해 주시옵소서."
임금은 이도사 말대로 행하게끔 신하들에게 명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수 이도사의 손을 꼬옥 잡고, "공주가 죽고 사는 것은 그대에게 달려있으므로 심혈을 기울여 주시오." 하고 부탁했다. 신하들의 안내로 앓고 있는 공주를 본 이도사는 공주의 앓고있는 병에 관심이 있다는 것보다는 침상의 여리디 여린 옷차림으로 누워있는 아름다운 모습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멍하니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가 누군가가, "그만 일어나시지요."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당황하여, "예∼에∼예, 알겠습니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제의 그 느티나무가 있다는 궁궐 뜰 앞으로 가 보았다. 같이 간 신하에게, "아니 이 나무를 베어버리면 될 게 아니요?" 하자 듣고 있던 신하는, "이 나무로 말할 것 같으면 수백 년 된 신목(神木)으로 손을 댈 수가 없소이다." 이도사는 자신이 실언하였음을 알고, "내가 어찌 그것을 모르겠소. 그냥 해 보는 소리지요." 하고 어물어물 넘겨버렸다.
느티나무가 어찌나 큰지 나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폭은 장정들 십여 명이 양팔을 쭉 뻗어 둘레를 재어도 모자랄 정도였다. 보기만 해도 겁이 난, 이도사는 마음 속으로, '아이고, 나는 꼭 죽었구나. 차라리 약속날짜 백일 되기 전에 공주가 우연히 낫기나 하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내 목숨은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구나.'하며 자탄했다.
거처하는 방으로 돌아온 이도사는 앞으로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 하고 역괘(易卦 )를 만들어보았다. 자신이 앉아 있는 방위가 정동쪽이므로 상괘를 뇌(雷)로 하고 시작이 미시(未時:오후 1∼3시)이므로 지(地)로 하괘를 하여 뇌지예(雷地豫)란 대성괘(大成卦:상하괘를 합하여 산출된 괘)를 구성하게 되었는데 뇌지예란 괘는 이도사가 처해 있는 입장과는 대조적으로 아주 전도가 밝은 괘였다.
특히 뇌지예 괘는 과거보다는 앞날이 길운(吉運)일 것을 희망하여 예(豫)자로 표기했다. 이 예는 기쁘다는 것을 예측한다 하여 기쁠 열자(悅字)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한 마디로 좋은 괘였다. 더욱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예괘(豫卦)에 대한 문구(文句)를 보면 '봉황생추 만물시생(鳳凰生雛 萬物始生)'이라 하여 마치 봉황이 새끼를 낳은 것 같으며 매사가 새롭게 시작된 다는 뜻으로, 이 괘의 내용대로라면 이조 판서가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벼슬도 할 수 있다는 대상괘(大祥卦)였다.
괘를 뽑아본 이도사는 불행중 다행이라는 생각에 이내 상감마마와 약속을 백일로 했던 바, 결행일을 조화가 많다는 경진일(庚辰日)로 정했다. 비록 역괘(易卦)는 좋은 시운(時運)으로 나왔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는 게 사실이었다. 만약 자신이 지금 거짓말을 했음이 탄로 난다면 살아서 이 궁궐을 나갈 수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죽을 때 죽을 망정 역괘를 막연하게나마 믿어보는 것뿐이었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며칠 간 걱정을 하다보니 얼굴은 말이 아니었고 이러다 죽으면 더 원통하다는 생각에 매일같이 고목에 제사를 올리는 여자(궁노)들과 어울려 마음껏 호색을 즐겼다. 이제 열다섯 살에서 열아홉·스무 살이 태반인 궁녀들과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즐기고 마셨다. 백옥같은 궁녀들의 육체까지도 마음껏 희롱하는 이도사의 행색이야말로 삼천 궁녀를 거느린 의자왕이 무색할 정도였다.
이러한 향락 속에 시간은 흘러 약속했던 백인이 이 삼일밖에 남지 않자. 주색을 멀리하고 두문불출하여 궁궐안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로 했다. 어전에서 우선 죽음이나 면해 보겠다는 절박감에 부엉이를 잡는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이젠 그 실행일이 바로 내일, 모레지 않는가?
이도사는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때로는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힘껏 쥐어틀어 보기도 하고 몸 이곳 저곳을 꼬집어보아도 시원치 않았다.
부엉이를 잡아라.
그러나 시간은 흘러 드디어 운명의 날은 다가왔으나, 아직 신기묘출한 방법이 서지 않아 고민을 하다가 무언가 중대한 결심을 하고 가능성이라곤 전혀 없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첫째 일을 거행하려면 엄청나게 큰 시루가 필요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비밀이 요구되었으므로, 신하 한 사람을 통해 화살 하나와 큰 시루를 필요로 한다며 어명으로 느티나무 부근에 절대 잡인들의 출입을 삼가키 위해서 금족령(禁足令)을 내려줄 것을 간청했다.
그 결과 화살과 큰 시루는 물론 느티나무 부근에 어느 누구도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어명이 내려지게 되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한밤중이 되자. 부엉이는 여느 때와 똑같이 느티나무 꼭대기에서 부엉부엉 하고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 날 따라 때마침 부슬부슬 내리는 이슬비는 금방 어디선가 귀신이라도 나올 듯한 적막하고 소슬한 분위기까지 자아내니 더욱 등골이 써늘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도사는 초저녁부터 이미 비장한 각오를 했던 대로, 느티나무 밑에서 시루를 거꾸로 뒤집어 쓴 채로 부엉새가 암놈인지 아니면 수놈인지를 분간하기 위해서 우는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았다.
목소리가 긴 소리이고 어딘가 모르게 가냘픈 데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음양오행(陰陽五行)상 음성(陰聲)이 분명해, 암놈이란 것이 직감되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수놈이 필요할 것이란 생각에 이도사는 시루로 뒤집어 쓴 채로 조금은 강하게 양성(陽聲), 즉 수놈 부엉새 소리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높은 느티나무에서 부엉이가 부엉부엉 하고 울면 이도사도 따라서 부엉부엉 하기를 수십 차례, 그러나 부엉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애가 타고 환장해 죽을 심정이었으나, 다시 목청을 가다듬어 숫부엉이 소리를 몇 백 번이고 반복하는데, 어찌나 정신을 몰두했던지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이제는 끝장이라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까지 흘러나왔다.
그런데 부엉부엉 소리를 계속하고 있는 동안 기적 같은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다름이 아니라 부엉이소리가 조금씩, 조금씩 가깝게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부엉이란 놈이 이도사가 흉내내는 부엉이 소리를 듣고 나뭇가지를 한 칸, 한 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시루 속에서 구멍을 통해서도 반짝거리는 부엉이 눈이 구슬처럼 보일 정도로 가깝게 내려와도, 이도사는 시루 속에서 계속 부엉부엉 하고 음조를 맞추어주면서, 한편 마음 속으로는, '부엉아, 제발 나를 좀 살려다오. 나의 목숨이 너에게 달려 있다. 자, 이렇게 점잖게 부엉부엉 하지 않느냐.'하며 땀을 뻘뻘 흘렸다.
그러는 동안 부엉이는 이도사가 흉내낸 목소리가 마치 숫부엉인 줄로 착각하고는, 이도사가 둘러쓰고 있던 시루로 점점 다가와 앉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도사는 손에 땀을 쥐고는 계속 부엉부엉 하고 울어댔다. 긴장된 순간이었다. 여기서 만약 부엉이란 놈이 눈치라도 채고 휙 하고 날아 가버리는 날에는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고, 이도사는 임금을 속인 대역죄인으로 목이 댕그랑 떨어져 높은 장대에 매달려 저자거리에 놓일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기만 한 것이다.
이도사는 시루에 앉아 있는 부엉이를 생포하기 위해서 시루 구멍으로 오른손을 조심스럽게 조금 씩, 조금 씩 내밀었다. 부엉이란 놈은 눈치를 챘는지 알 수 없지만 계속 울어대며 쿠, 쿠, 쿠 소리와 함께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이 순간 이도사는 비호(飛虎)와 같은 손놀림으로 부엉이 다리를 힘껏 거머쥐었다. 그러자 부엉이는 속았다는 듯이 그 큰 날개를 활짝 펴서 날아가려고 사력(死力)을 다하며 이도사의 손을 날카로운 입 부리로 마냥 쪼아댔다.
그래나 이도사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란 생각에 지금껏 시루 속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키면서 부엉이와 시루를 머리에 인 채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시루는 박살이 나고 부엉이는 최후의 발악을 하며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괴상한 소리를 내며 푸드득푸드득 날려고 안간 힘을 썼다.
이도사의 머리는 시루 파편에 찢겨 피가 줄줄 흐르는데, 이도사는 그런 줄도 모르고 부엉이를 몸으로 덮쳐 겨우 붙잡았다. 조금은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화살을 부엉이 눈에 힘껏 꽂아 왼쪽 눈에서 오른쪽 눈으로 관통시켜 마치 활을 쏘아서 잡은 것처럼 가장해 놓았다. 그리고 나서야 이도사는 자신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알고 웃옷을 찢어 피가 솟는 머리를 감싸 맸다.
처소로 온 이도사가 잠깐 눈을 붙이고 있을 때 보고를 받은 임금은 설마 했다가 잡았음을 실제 확인하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더구나 지금까지 죽을 남만 기다리고 있던 공주는 언제 아팠더냐 는 식으로 씻은 듯이 나아 임금은 물론 온 나라가 대단한 경사라고 떠들썩했다.
이도사의 활 솜씨로 부엉이를 잡은 것으로 알고 있는 임금은 이도사에게 천하에서 활 솜씨가 제일이다. 하여 국궁(國弓)이란 칭호를 하사하고 나라에서는 잔치를 베풀어 죄인을 특사 하는 등 큰 은덕을 베풀었다.
너무나 갑자기 명포수(名抱手)가 된 이도사는, 임금은 물론 공주까지도 자주 만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가능했다. 더욱이 공주는 이도사를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여 은연중에 좋아하고 있었으나 고향에 두고 온 옥녀와의 약속 때문에 오히려 이도사가 피하는 입장이었다.
궁궐 안에 있는 만조백관들은 왕실을 서슴없이 출입하는 이도사를 몹시 부러워하였고, 아부하는 무리까지도 생겨날 만큼 이도사의 세도는 빠른 시간 안에 성장했다. 호랑이를 잡아라
황실의 고민거리였던 부엉이를 해결하여, 지위와 명성을 함께 얻은 이도사 앞에는 또 하나의 난관이 놓여있어 이를 극복해야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금의 지리산(智異山)에 큰 호랑이(大虎)를 이도사에게 잡아오라는 어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마을사람들을 물어가거나, 해치는 등 호환(虎患)이 극심하여 그동안 몇 차례 명장군과 명포수 등을 보내 사살하도록 했지만, 워낙 크고 날쌘 호랑이를 아무도 잡지 못하고, 오히려 호랑이한테 당해 함흥차사가 돼버린 불상사까지도 있었던 것이다.
이도사는 임금께 며칠 동안만 생각할 여유를 달라고 사정했지만, "오직 그 호랑이를 잡을 사람은 국궁(國弓) 그대 하나 뿐이니 하루속히 해결해 짐의 걱정을 덜어주시오." 하는 바람에 어쩔 수없이 지리산을 향에 출발했다.
임금은 많은 군사와 무기를 주었지만 이도사는 소행이 탄로날 것을 걱정하여 모두 사양하고 오직 화살 한 촉과 말 한 필만 준비하였다. 사실은 말도 탈 줄 모르기 때문에 필요도 없었지만 단신(單身)이면 의심하겠다는 생각에 할 수 없이 말 한 필은 데려간 것이다.
한양에서 지리산까지 천리가 넘는 길이었으므로 계속 걸어야 했다. 생각해 보면 느티나무 위의 부엉이를 잡는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 보다 쉬웠으나 이번에는 명장 명포수들 까지도 생식(生食)해 버린다는 호랑이인 만큼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었다.
그 하나는 순수하게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대로 도망을 쳐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로 걱정이 돼 전주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주역 괘를 뽑아 보았다. 앉아 있는 방위가 동북간 방이므로 산괘(山卦)를 상괘로 하고 작괘 시간이 유시(酉時:오후 5∼7시)이므로 택괘(澤卦)를 하괘로 하여 산택손괘(山澤損)를 구성해 보았다.
이 산택손 괘를 풀이해 보면 선곤후길(先困後吉) 격으로 처음에는 어렵지만 나중에는 이익이 있다는 것으로, 그에 상응한 문구(文句)로 '탁마견옥 굴토성산(琢磨見玉 掘土成山)'이라 하여 돌맹이를 깎아 옥을 만들고 굴을 파서 태산을 이룬다는 뜻으로 무엇인가 계속 노력하면 마지막에는 마침내 목적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라, 다소 기대는 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로만 여겨졌다.
이도사는 전주에서 다시 호랑이를 잡기 위한 대장정(大長征)의 발걸음을 서서히 옮겼다. 남원, 운봉, 인월, 산내 등을 경유하여 반선 달궁(達宮)에 이르렀다.
호랑이가 있다는 노고단과 뱀사골 일대는 수백 년 묶은 원시림이 하늘을 찌를 듯한 빽빽한 숲을 이루었고 여기 저기에서 드려오는 새소리와 짐승소리는 심산유곡(深山幽谷)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더욱 더 크게 들려왔다.
호랑이란 놈은 음양오행(陰陽五行)상 양성음동(陽性陰動)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본성은 양성적이고 맹렬한데다 포악, 잔인하지만 본격적인 활동은 밤에 하므로 아무래도 깊은 밤을 이용하여 접근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도사는 호랑이가 잘 나타나는 곳을 근처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서 파악하고는 그 곳을 향하여 출발했다. 그믐이라서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칠흑같이 어둡고 원시림이 꽉 차 있는 숲 속에서 각종 짐승들의 발자국소리가 으시시하게 들려와 어명만 아니라면 당장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고픈 생각이 간절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만감이 교차되는 이 순간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호랑이의 으르릉거리는 포효소리는 금방이라도 이도사의 목덜미를 물고 통째로 먹어치울 듯한 긴박감 마저 들게 했다. 숨을 죽인 채 말고삐를 꼭 붙들고 어깨와 몸을 낮춰 가시덤불을 헤쳐 지날 때 갑자기 머리 위쪽에서, "꼬르륵, 까욱" 하며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가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데, 이도사의 뒷목 부위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체가 철썩하고 떨어져 목이 수건처럼 걸쳤다.
이도사는 본능적으로 "으악." 고함을 치며 손으로는 목에 걸쳐 있는 물체를 엉겁결에 땅으로 떨어뜨렸다. 땅에 떨어진 것은 커다란 뱀으로써 뱀은 시∼시이 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아휴 십 년은 감수했네.' 온몸에 맥이 쭉 빠지고 식은땀까지 주루루 흘린 이도사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걷기 시작했으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명을 이행해야 하는 의무감 때문에 한참 동안을 계속 걸어가는데 짐승 썩은 것과 사람 머리통, 발목, 팔 등이 굴러다니는 것이 보였다. 호랑이란 놈의 본거지가 근방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도사는 숨을 죽인 채, 그 자리에 앉아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갑자기 돌과 흙더미가 굴러오면서 양 눈에 시퍼런 불을 켠 호랑이가 쏜살같이 이도사를 향해 쫓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도사는 일어서서 뛸 겨를도 없이 뒹굴고 기어서 숲 속으로 달아났다.
한참을 정신없이 기어가다, 머리를 고목에 턱하고 부딪쳐 뒤로 나자빠졌다. 금새 머리엔 주먹만한 혹이 툭 튀어나왔지만, 경황중이라 그것은 둘째로 치고 숨을 곳은 고목나무 뒤쪽이었다. 휘번덕이는 호랑이는 이도사가 숨은 곳까지 와서 코를 벌름 벌름대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어흥, 어흥." 하는 포효소리가 온 산에 울려 퍼졌다. 이도사는, '이제는 끝장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머리를 부딪쳤던, 그 고목나무 뒤에서 호랑이 동태를 살펴보는데, 말 그대로 황소 만한 몸에 입은 어찌나 큰지, 이도사 같은 사람은 몸통 째 들어갈 정도여서 더욱 겁이 났다.
처음 계책으로는 가지고 간 말을 호랑이가 덤벼들면 대신 잡아먹게끔 묶어 놓고 도망칠 예상이었으나 호랑이소리가 나자 말은 어디론가 도망쳐버려 그 계책은 무너지고 말았다. 고목나무 뒤에 숨어서 호랑이 동태를 살피는,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으니 나도 그래야 되겠다.' 하고 다짐을 몇 번씩 했다.
그러던 순간 어디선가 달아났던 말이 소리를 쳤다. 그 순간 호랑이는 쏜살같이 숲 속을 가로질러 말이 있는 쪽으로 달렸다. 기회를 놓칠세라, 이도사는 재빠르게 이곳 저곳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러던 중 부딪쳤던 고목이 수명을 다하여 윗 부분에는 가지도 없고 안이 텅 비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도사는 그 고목이 오래 전부터 풍수해로 윗 부분이 잘려 있음을 알고, 있는 힘을 다하여 그 부러진 곳까지 올라 우선 나무 속으로 몸을 피했다. 이만하면 안전하다는 생각에 긴장된 마음이 풀리자 묘책이 떠올랐다.
그것은 일단 호랑이를 고목나무 있는 곳까지 유인하는 작전이었다. 이도사는 큰소리로 고함을 치며 호랑이 유인에 미친 사람처럼 열을 올렸다. 호랑이란 놈은 쫓아갔던 말도 놓쳤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도사가 들어앉아 있는 고목나무 밑까지 다가와, 그 나무를 발톱으로 득득 긁어도 보고 머리통으로 나무를 들이받으면서 소리를 쳐보는 등, 분통에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
이도사는 자신이 숨어있는 그 나무통 안이 안전함을 새삼 느끼고 비장의 수단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서 말한 비장의 수단이란 호분자사(虎賁自死) 즉, 호랑이란 놈의 약을 바싹 올려 그 호랑이란 놈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죽게 하는 것이었다.
이도사는 서서히 고함을 쳐 호랑이의 약을 올리기 시작했다. 호랑이란 놈이 이도사 고함소리에, '어흥, 어흥' 하면서 고목나무 주위를 날뛰면 이도사는 더 약을 올리는데, 때로는 호랑이와 같이, '어흥, 어흥' 해보기도 하고 손이나 발 또는 머리통을 고목나무가 부러진 구멍으로 순간순간 내보이기도 하는 등 갖가지 수단을 다 하자 호랑이는 분통이 극도로 올라 십여 척 높이까지 펄쩍펄쩍 뛰어 올랐다가 다시 멀찌감치 뒤돌아 갔다가는 거세게 달려와 고목나무를 공격하며 최후의 발악을 했다.
이렇게 하는 동안 호랑이는 지칠 대로 지쳐 입과 코에서 피가 쏟아지는데 모습은 아무리 짐승일망정 차마 불쌍해서 못 볼 정도였다.
그러나 이도사는 그러한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약을 계속 올리는데 어느덧 새벽이 다가왔고, 호랑이는 비틀비틀 하더니 땅바닥에 퍽 쓰러져버렸다.
이도사는 그래도 계속 약을 올리며 이젠 한 술 더 떠서 나무에 있는 나무 깍지를 호랑이에게 힘껏 던졌다. 호랑이는 몸을 겨우 일으켜, '어흐흥' 앓는 소리를 한번 약하게 내더니 다시 퍽 하고 쓰러져버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쓰러진 상태에서 옆구리가 벌렁벌렁 숨을 몰아 쉬는 움직임이 있더니 이제는 아예 털끝하나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미 지쳐 죽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만사불여 튼튼이란 말처럼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신발을 벗어 던져보았다. 그러나 퍽 하는 소리만 있을 뿐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이도사는 조심스럽게 그 나무에서 내려와 멀찌감치 서서 제법 큰 돌맹이 하나를 호랑이 머리통에 던졌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는 호랑이가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알고는 등 짝에 신주단지 모시듯 묶어 놓았던 화살을 꺼내어 이도사는 호랑이 고환에 꽂아 놓았다. 그리고는 산을 내려와 운봉 현감에게로 가서 그 소식을 임금께 알려줄 것을 청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임금님은 설마 했다가 또 다시 그 무서운 호랑이를 혼자서 잡았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이국포(李國抱)를 정중히 모셔오고 호랑이를 이송해 오라."는 어명을 내렸다.
활쏘기 무술대회.
운봉 현감이 보내어 궁궐에 도착한 호랑이를 보고 대단히 놀란 사람은 임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곳도 아니고 호랑이 고환을 관통시킨 그 솜씨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궁궐에 있던 명장들은 이도사의 활 솜씨에 또 한번 놀란 데다 은근히 시기도 있었지만 워낙 임금이 신임하는 터라 어찌 할 수도 없었다.
임금은 호랑이 고환에 꽂힌 화살이 이도사가 쏘아 맞힌 것으로 생각하고 너무도 감탄한 나머지 공주와 짝을 지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기까지 했다. 그래서 우선 이도사를 장군으로 승진시키고 온 나라에 잔치를 베풀었다. 뿐만 아니라 사위를 삼기 위해서 뚜렷한 명분과 이도사의 활 솜씨를 직접 보아야겠다는 마음에서 무술대회를 열 것을 명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가장 답답하고 걱정이 태산같은 사람은 역시 이도사였다.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시험대에 오른 이도사는 앞으로 다가올 무술대회(활쏘기)야말로 부엉이를 잡았던 것이나 호랑이를 잡았던 정도와는 차원이 달라 피할 레야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나 다름없었다.
무술대회를 열겠다는 방은 이미 나붙었고 임금으로부터 다소 언질을 받았던 공주는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라 하여 좋아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내색하였고, 온 나라에서는 부엉이와 호랑이를 활로 잡았다는 이장군을 보기 위해서 백성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게 될 것은 뻔한 사실이었다.
답답하고 걱정이 된 이도사는 주역팔괘를 응용하여 무술대회에서 어떻게 될 지를 알아보았다. 앉아 있는 방위가 정 북쪽이어서 수괘(水卦)를 상위(上位)로 하고 작괘 시각이 술시(戌時:오후 7∼9여서 천괘(天卦)로 하위(下位)를 하여 수천수(水天需)란 대성괘를 만들었다.
이 괘는 백사(百事)를 기다려야 한다는 뜻에서 주역 원문에는 기다릴 대자(待字)로 총의(總意)를 압축하기도 했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문구는“운무중천 유운불우(雲霧中天 有雲不雨)”라 하여 하늘에 구름은 잔뜩 끼어 있는데, 비는 쏟아지지 않아 심사가 답답하고 구름에 가려있는 괘상(卦象)이라서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불분명하므로 기다려야 된다는 괘였다.
다른 때는 길괘(吉卦)가 나와 막연하게나마 큰 믿음을 가졌던 게 사실이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못한 괘상이라서 더욱 불안하고 답답할 뿐이었다. 도망이라도 칠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으나,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소위 장군이란 허울좋은 감투 때문에 더 의심을 받을 게 뻔하여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이도사의 입장이 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무술대회가 한 달도 채 남지 남았는데, 비밀리에 활 쏘는 법을 배울 수도 없는 일로써,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까지 속여온 모든 사실들이 들통나 목이 잘리는 비참한 생애를 마치는가 싶었다.
무술대회가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인가는“밤에 도망이라도 칠까?”하고 궁궐 담 장을 몇 번이고 서성거리기도 했었으나, 실행을 못하고 있는데, 속도 모르는 주위사람들은, “요즘 이장군이 왜 저렇게 바짝 마르는지 몰라, 걱정이라도 있나?" 하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는 사이에 무술대회 날이 다가와, 무술대회장에는 임금을 비롯하여, 왕비, 공주. 그리고 만조백관들이 이도사의 무술솜씨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하여 모두 나와 있었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 든 백성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더욱이 전국에서 출전한 명포수들과 수십 차례나 전쟁의 경험을 겪은 장수들은 한결같이 나는 새도 잡을 듯 의기양양한 모습들이었다.
시합을 알리는 요란한 북소리가 울려 퍼지자. 첫 번째 순서인 박장군이란 사람이 어찌나 멀리 위치해 있던지 보일락 말락한 표적을 향하여 시위를 힘껏 당겼다. 그러더니 한참 있다가 퉁 하는 소리와 함께 표적 한가운데에 화살이 똑바로 꽂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장군이 보기에는 화살 시위를 그렇게 당기면 적중하지 못할 것이라고 무식한 소치로 생각했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장군이야 말로 화살을 어떻게 잡아야 바른 자세인지도 모를 뿐 아니라, 표적의 백 분의 일에도 화살이 미칠 수 없었다.
첫 번째 장수가 적중을 하자. 임금과 왕비, 그리고 공주 등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두 번째로 등장한 인물은 홍포수란 사람이었다. 머리는 허리춤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시커먼 구렛나루는 아무리 보아도 무인으로서 훌륭한 풍모를 가진 듯 보였다.
홍포수는 준비된 화살 세 개를 한꺼번에 시위에 당겨, “으 앗.”기압을 넣으며 쏘자. 3개 모두가 표적 판에 퍼드등 하고 적중했다. 수많은 군중들은, "와 아-.”하며 흥분을 하고 여기 저기서, "아 휴 우, 겁나네, 단 한번에 세 개의 화살을 날리다니.”감탄의 소기가 하늘을 찌를 듯한 사기로 고조되었다.
세 번째로 이장군이 등장하자 임금을 비롯한 온 군중들은, “와∼아-.”하고 열기를 더 했다. 이장군은 자신이, 활을 당기는 장소까지 어떻게 걸어 왔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돼 있었다. 그리고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탄로나 죽는구나. 차라리 고향에서 머슴살이나 했으면 그래도 생명은 부지할 텐데 이게 무슨 꼴이냐?'
화살 하나를 집어 시위에 걸고 힘껏 당겼지만 활이 어찌나 강궁(强弓)인지 제대로 당겨지지 않아 할 수 없이 당기기 쉬운 방법으로 화살을 허공으로 추켜들고 허리에 힘을 다하여 당겼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임금이나 만조백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표적을 향하여 시위를 당기는 이장군을 보고, '이장군은 활시위를 왜 저렇게 엉거주춤하게 공중을 향하여 당기는 것일까?' 하고 어리둥절해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아직껏 시위를 제대로 못 당겨 애를 먹는 이도사를 불안하게 보고 있던 공주가 큰소리로, "장군님!" 하고 소리치는 바람에 엉겹결에 시위를 놓치고 말았다.
군중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에이." 하며 웅성웅성 하기 시작한 순간 놓쳤던 화살 하나에 두 마리의 새가 관통된 채로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것도 모르고 눈을 감은 채로 빳빳하게 굳어 있던 이장군은 터져 나오는 군중의 박수소리에 실눈으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새 두 마리가 자신이 너무 긴장한 바람에 놓쳤던 화살에 꽂혀 있는 게 아닌가.
그때서야 엉겹결에 놓친 화살에 날아가던 새들이 우연히 맞았음을 알고 이렇게 외쳤다. "에이, 공주가 아무 말만 하지 않았어도, 세 마리의 새를 모두 잡는 것인데? 여자가 남자하는 일에 간섭하는 바람에 겨우 두 마리밖에 못 잡았지 않소?"
이렇게 해서 무술대회도 무사히 마쳐지고 임금은 이장군을 불러 무엇이든지 소원이 있으면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이장군은 너무나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예, 상감마마. 소인은 어려서부터 이조판서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소인이 그럴 만한 인재라고 생각하신다면 이조판서를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이장군의 말을 듣고 있던 임금은 겨우 그 정도냐며 즉석에서 이조판서를 제수(除授)했다. 그리고서 또 한편으론 공주와 결혼을 시키려고 했지만, "고향의 옥녀란 처녀와 5년 전 언약을 해뒀사옵니다." 는 이도사의 말을 듣고 공주와의 결혼은 단념했다.
그렇게 갈망하던 이조판서가 된 이도사는 어사화(御史花)를 꽂고서 수많은 신하를 거느리며 꿈에 그리던 금의환향을 했으나 맨발로 맞이할 줄 알았던 옥녀는 부모들의 고집에 못 이겨 얼마 전에 이미 혼인을 한 몸이었다.
모든 내막을 자세히 알게된 이조판서는 실망과 울분을 감추지 못하고 며칠 동안 자리에 눕고 말았다.
사람에게는 누구를 막론하고 각자 할 일이 따로 있으며 순리를 따르지 않으면 어제고 그만한 대가가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뼈저리게 느낀 그는 그 길로 서울로 올라가 이조판서 벼슬자리를 그만두고 모든 것을 사실대로 밝히고 대죄(待罪)를 기다렸다.
임금과 신하들 간에는 서로들 갑론을박만 무성할 뿐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만 끌자, 공주가 눈물로 그를 구제해줄 것을 간청한 덕분에 공직을 삭탈 관직하는 것으로 겨우 매듭을 지었다.
이도사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궁중을 나와 그 길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운명을 예언해 주기도 하고, 명당자리 등을 봐 주는 지관의 일로 지난날의 허황한 꿈에 사로잡혀 한 나라의 임금까지 속이면서 이조판서를 했던 잘못을 참회했다.
한때 돈과 권력만 있게 되면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을 것으로 잘못 생각했던 자신을 깊이 자책하는 생활로 일관했다.
특히 묘 자리를 잡아 주는 일이나 사람일을 예언하는 따위는 마음과 행동이 착하지 않으면 제대로 판단할 수 가 없음을 알고 인격수양에 더욱 노력하기 위하여 전국 방방곡곡으로 발길을 옮겨다니다가 충청도 계룡산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영의정 친부모 묘 자리를 찾아주다.
이도사는 이렇게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조선 팔도의 명산대천(名山大川)을 돌아다니면서 세월을 보내다가 어느 날 계룡산(鷄龍山) 어느 깊은 골짜기에 산사태로 무너진 흙더미 속에 해골이 굴러다니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다 싶어 호주머니에서 철패(鐵牌:풍수들이 가지고 다니는 일종의 나침반)를 놓아 보았더니, 뜻밖에도 그 자리는 재상이 나올 명당이었다.
그래서 이도사는 나뭇가지를 꺾어 해골의 왼쪽 눈에 꽂아 표시해 놓은 채로 장안으로 내려 왔다. 그런데 영의정 벼슬에 있던 한 재상이 별안간 왼쪽 눈이 칼로 도려내는 듯, 송곳으로 쑤셔대는 듯, 소금을 뿌리는 듯한 따가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이러한 변괴로 영의정 집안은 온통 난리가 일어나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시끌벅적하며, 유명하다는 명의를 모셔다 손도 써보고, 귀신이 씌웠다하여 굿을 해보기도 했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으며, 온 마을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소문만 자자할 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때마침 마을 주막에서 그 소문을 듣게 된 이도사는 초라한 모습을 한 채로 영의정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그랬더니 하인들은 이도사의 행색을 보고는 노발대발하며 당장 나가라고 고함을 쳤다.
그래도 사정 사정을 한 연후에 겨우 영의정을 만나게 되었는데, 영의정과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던 이도사는 갑자기 한참을 눈을 감고 있다가 환약 하나를 꺼내 영의정의 왼쪽 눈에 붙여주었다.
그리고는 주역팔괘로 치료가 가능하겠는가 하고 괘를 만들어 보더니 자신이 전에 해골에다 나뭇가지를 꽂아 놓은 그 해(年)의 안손방(眼損方)과 관계 있음이 나타났다.
본래 안손방이란 눈이 아프거나 심한 경우에는 실명(失明)까지 하게 되는 것으로써 이사를 하거나 묘를 옮기는데 대기(大忌)하고 있는 천체(天體) 구성(九星) 중의 하나였다.
이도사는 일단 영의정 집을 나와 다시 계룡산으로 급히 가서 해골 왼쪽에 꽂아두었던 나뭇가지를 빼고 영의정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후 영의정은 그 무시무시한 통증이 씻은 듯이 가시고 시력도 점차 회복되는 기쁨을 맞게 되었다. 영의정은 이도사의 은덕을 무엇으로 보답할지 모르겠다며 극진한 대접을 했다.
그러한 과정에 이도사는 영의정에게 이렇게 말했다. "영상대감, 소인이 영상의 눈을 치료했다고 물질적 보답을 받는 것은 도리가 아니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이 집안의 대대로 내려오는 조상의 내력을 알고자 할 뿐이오."
영의정은 이도사의 말대로 조상의 내력을 설명해 주고는 부모님의 무덤까지 안내해 주었다. 이도사가 영의정 부모가 묻힌 묘 자리를 살펴본 바 겉으로 호화스럽게 꾸며 놓은 것과는 달리 좌청룡(左靑龍)·우백호(右白虎)·안산(案山:묘가 바라보는 산)·득수(得水, 水口:물이 처음 보이는 곳)·사봉(砂峯:묘 주위에 있는 여러 모양의 봉우리)등을 견주어 볼 때 결코 재상의 묘 자리는 아니었다.
더불어 그 윗대 조상들의 묘 자리까지 보았으나 역시 재상이 배출될 만한 묘는 하나도 없어 이도사는 자신이 하늘같이 믿어오던 풍수설이 허황한 것은 아닌지 또는 자신이 뭔가 잘못 배운 것은 아닌지 하고 허탈감에 빠져 한숨만 쉬었다.
게다가 또 한 가지 풀리지 않는 난제는 계룡산 그 해골이었다. 주역상으로는 틀림없이 그 해골 때문에 눈이 아팠고 영의정의 집안과는 무관한데 어찌 그런 현상이 날까하고 고심하다가 영의정의 말이 뭔가 잘못이 있나 싶어 주역팔괘로 영의정의 심사(心事)를 알아보기도 했다.
이도사 자신이 앉아 있는 방위가 정서쪽이고 작괘 시간이 아침 묘시(卯時:05:00∼07:00시)이므로 진위뢰괘(震爲雷卦)가 구성되었다.
이 진위뢰괘는 상하 모두가 진뢰(震雷)가 겹쳐 실속이 없는 괘로써, '진경백리 유성무형(震驚百里 有聲無形)'이라 하여 진동하는 소리가 백 리까지 들리는데 형체가 없다는 뜻으로 영의정 말에 거짓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도사는 영의정을 은밀히 만나 괘(卦) 설명을 하면서 사실을 털어놓을 것을 부탁했다. 그랬더니 영의정은 이도사의 부탁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참동안 눈을 감은 채로 뭔가 골돌이 생각을 하다가 결국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 요전에 본 부모님의 영택(永宅: 묘 자리)은 친부모가 아니고 백부 백모님입니다.
그 까닭은 아들이 없는 백부모님께서 저를 양자로 삼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내 생부님께는 항시 송구스런 생각과 함께 더 민망스러운 것은 생부의 묘 자리도 모르는 불효자이기 때문이지요."
그때서야 이도사는 자신이 계룡산에서 보았던 해골 이야기를 해주고 그 해골이야말로 영의정의 생부임에 틀림없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한 까닭은 명당 중에서도 재상이 나올 명당인데 해골이 굴러다니기에 임자를 찾아주려고 시험삼아 나뭇가지를 꽂아보았다는 것을 서로간에 얘기를 나눔으로서 알게 되었다.
영의정은 이도사가 시키는 대로, 친부모의 유골을 명당자리에 묻고 정성껏 모시게 되었으며, 이도사는 영의정이 보답사례로 주는 거금도 뿌리친 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구제해 주고 다니다가 말년에는 도(道)에 능통한 축지법 변장술로 간혹 세상에 나타나 사람을 종종 놀라게 했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