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rt Masur
쿨트 마주어는 독일 니더슐레지엔의 부리그에서 1927년 전기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역시 전기 기술을 배워 학업을 마치고 아버지가 다니던 전기회사에서
잠시 일을 하기도한다. 그래서 그는 전문 기술자 집단의 친구들이 많이 있다고 스스로
말하기도한다. 10세때 피아노를 누나에게 배우고 부리그 교회 올갠 연주자에게 올갠을
배운다. 15세때 무직슐레에서 피아노와 첼로를 배운 그는 16세때 오른손 약지에 이상이
생겨 피아니스트의 길을 접고 지휘 공부를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 종전후 라이프치히
멘델스존 아카데미에서 작곡과 지휘를 전공하여 지휘자의 길로 들어선다.
1948 -1951년까지 솔로레페티투어와 카펠마에스터로 할레에서 이력을 쌓은 그는
1951 -1953년 에어풀트 오퍼에서 카펠마에스터, 1953 -1955년 리이프치히 시립
테아터 지휘자, 1955년 드레스너 필하모닉 지휘자로 1960 -1964년 베를린 코미쉬
오퍼 감독으로, 1967 -1972년 드레스너 필의 수석지휘자로 1970년 부터 그는
1997년까지 27년간 장기 집권하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맡아
900번이 넘는 연주회를 지휘하고 세계적 오케스트라로 발전시킨다.
그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맡아 동서독이 갈라선 냉전시절 서독에
카라얀의 베를린 필이 있다면 동독에는 마주어의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있다는
자부심을 동독인에게 심어주었고 카라얀의 베를린 필이 잘 가꾸어 만들어 낸 장미
한다발의 느낌이라면 마주어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는 아침이슬을 품고 들에서 핀
순수한 들장미같은 때묻지않은 아름다움이 있는 오케스트라였다. 그는 엄청난 에너지와
카리스마로 오케스트라를 움직여 커다란 음악을 그려낸다. 가식이라곤 전혀 찾아 볼수
없고 레날드 번스타인처럼 쇼맨쉽이 조금도 없지만 그의 티없이 맑은 음악은 거대한
거인의 음악을 느끼게 해주고 순수한 인간미를 흠뻑 우리들에게 심어준다.
19년이 어린 쿨트 마주어는 카라얀과 많은 비교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역시 카라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폭넓은 레파투어로 많은음반을 남겼다.베토벤,슈베르트,멘델스죤,부르크너,
슈만,리스트,시벨리우스,차이콥스키등 낭만주의 음악뿐만아니라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드뷔시,브리튼,거쉬윈등 근대음악 작곡가들의 광범위한 음원들을 남긴다.
1989년 통독 후 1991년 뉴욕 필을 맡아 2002년까지 재임을 했지만 실용주의와
자본주의에 찌들어 있는 뉴욕 필 메니져들과 의견 충돌로 많은 고생을 한다. 특히 뉴욕필
상임이사 데보라 볼다와 많은충돌이 있었고 결국 2002년 그는 계약을 갱신하지않고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로 자리를 옮긴다. 레날드 번스타인,쥬빈 메터같이 적당히 자본가, 메니져와
타협을 하면서 상임지휘를 유지한것에 비해 마주어는 독일오케스트라 시스템과는 전혀다른
미국의 오케스트라를 개혁을 하려 했고 그가 재임한 9년간 뉴욕 필이 음악적으로나
앙상블적으로 단단해졌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 할수없다. 뉴욕 필은 사임한 그를위해
종신 음악 감독이란 직함을 새로이 만들어 그를 기리고있다.
2000 -2007년 런던 필, 2002 -2008년 프랑스 국립 관현악단을 마지막으로 80세가 넘는
나이까지 상임지휘자를 맡아 오케스트라의 발전에 큰힘을 쏟는다. 그후 객원지휘를 하고
2012년 4월 파리에서 지휘를 하다 연주중 졸도를 해 그가 이미 2008년부터 파킨슨병을
앓고 있음이 알려진다. 휠체어에 의지하고도 지휘를 계속 했던 그는 2012년 이후에는
더이상 연주를 못하고 병마와 싸우고있다.
그는 음악에서 동독인의 존경을 받았을 뿐만아니라 1989년 있었던 공산주의 동독치하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에 직접 참여를 하여 통독을 이끌어 낸다. 중국의 천안문 사태때
유혈을 우려해 정부측에는 강력한 메세지를 전하고 시위대에는 시위는 하되 폭동을 자제한
냉정한 시위를 주문하여 평화로운 통독을 이끌어 내고, 동독의 과도정부가 들어서 대통령을
맡아달라는 동독 시민들의 열화에도 거부를 하고 참 음악인으로만 남아 전 세계 예술인들
에게 존경을 받는다.
ps, 필자가 1981년 10월 7일 서독 tv방송을 통해 본 게반트하우스 재개관 기념음악회를
잊지 못합니다. 서독 전역에 생중계된 이연주회는 쿨트 마주어가 지휘하는 게반트하우스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했는대 그때 처음 쿨트 마주어라는 대 지휘자를 느끼고 한참 동안이나
멍한 기분에서 헤어날수 없었습니다. 이런 좋은 지휘자가 있었다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중에는 중세때 쓰는 가발을 쓰고 연주하는 스트링파트의 연주자들도 있었고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에서 보이 소프라노를 소프라노와 함께 연주를 시켜 소프라노의 날카로움을
확장시켜 특이한 칼라의 사운드를 들려주었습니다. 특히 들에핀 장미같이 순수한 음악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깊이있는 연주자세 마주어의 카리스마 넘치는 에너지등 모든것들이 생소했고 특히 거장
지휘자 쿨트 마주어를 모르고 있는 필자의 빈약한 지식에 스스로 부끄러워한 것들이 떠오름니다.
Konzertsaal Gewandhaus zu Leipzig
Ausgewählte Aufnahmen (출원 음반)
franciscopa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