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가 어때서 84회 LAST...
밤이 깊었지만 철수도 은정이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철수는 걸지 않을 전화기를 들었다 놓는 것을 반복하더니 이불을 뒤집어 쓰고
끼끼 거렸다. 그러다 벌떡 일어 나 태권도 발차기 같은 걸 하더니 또 이불을 뒤
집어 쓰고 낄낄 거렸다. 잠이 들었다 싶었는데 또 벌떡 일어나 뺨을 꼬집고 헤
헤 거렸다. 그렇게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철수는 결국은 옥상으로 올라
갔다.
"잘 삽시다!"
뒷 집을 향해 큰 소리를 질렀다. 하늘에 두팔을 벌리고선 멋있게 외쳤다.
"어떤 놈이여!"
철수는 급히 옥상 난간에 몸을 숙이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고개를 조금 내 밀
고 뒷집을 빼꼼히 쳐다 보았다. 쌈쟁이 할머니가 무슨 일인지 잠이 들지 않고 밖
을 나와 있었다.
그 시간 은정이도 잠을 못 이루긴 마찬가지였다. 침대에 누워 이리 뒤척이다 저
리 뒤척이다 결국은 잠을 포기하고 방에 불을 밝혔다. 그리고 사진첩을 꺼내 침
대에 앉았다. 어린 시절 철수를 모르던 때의 사진첩을 펼쳐 놓고 부모님과 함께
있던 작은 소녀를 보고 그리운 미소와 작은 눈물이 맺히는 가슴떨림을 느꼈다.
자기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모습을 떠 올리며 고운 시선으로 생각에 잠기
는 표정이다. 방에 걸려 있는 가족 사진을 보고 눈을 붉혔다. 철수와 알게 된 시
절의 사진첩을 펼쳐 보면서 살포시 웃음을 맺었다. 그러고도 잠이 안 오는지 은
정인 조용히 거실로 나왔다. 주방에는 내일 결혼식에 필요한 것인지 보자기에 쌓
인 물건들이 많았다. 은정인 그 것을 보고 또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은정인 주
방 한 구석에 담궈 놓은 과일주 유리병에서 술을 한 잔 따랐다. 그 술잔을 들고
자기 방에 들어 가 내일 입을 웨딩 드레스를 보며 쭈욱 들이켰다. 그리고 히죽
웃다가 입술을 떨다가 눈물을 맺기도 하면서 또 미소짓곤 했다.
둘이 언제 잠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새벽 두 세시는 넘긴 거 같다.
날이 서서히 밝아 온다. 아직은 주위가 어둡다. 하지만 철수네와 은정이네는 새
벽부터 불을 밝히고 부산하다.
"오빠 일어 나."
"으응... 아직 해도 안떴는데... 새벽부터 왜 그래?"
"안 일어 날거야?"
"나 늦게 잠 들었어."
"안일어 날거야?"
"쫌만 더 자자. 무슨 일인데 깨우는거야?"
"엄마!"
철수방으로 들어 왔던 수희가 그 소리를 듣고 쪼로로 달려 나간다. 철수는 왜
저럴까? 의아해 하면서 부시시 이불을 밀치고 일어 났다. 아직 잠에서 덜 깼는
지 허리멍텅한 표정으로 담요 위에 앉아 있는 철수에게로 엄마와 수희가 다가왔
다. 둘 다 동시에 혀를 찬다.
"쯔쯧, 저거 오늘 결혼 할 놈같이 보여?"
"아니. 엄마 나는 저런 사람에겐 시집 안 갈거야."
"그래 내 딸은 저런 놈에게 시집 안 보내지. 암."
"에이쒸! 서운하면 서운하다 그래요. 저 정신 차렸어요."
"니가 할 일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일찍 일어 나 있어야지. 우린 바빠. 아침 먹
을 준비 해."
"알았어요."
엄마와 수희는 철수가 일어 나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걸 보고 주방으로 돌아 갔
다.
철수는 세수를 하고 난 다음 식탁으로 와 앉았다. 아버지는 평상시처럼 식탁에
앉아 신문을 보신다. 아직 식탁 위에 밥은 올라와 있지 않다.
"오늘 네 평생의 가장 중요한 날이다. 잘 해라."
"아버지, 저에게 시선을 주시고 말씀해 주세요."
아버지는 철수 말대로 눈은 신문에 가 있었다.
"장가가는 게 뭐 그리 대수냐? 나도 갔었다 임마."
"앞의 말씀하고 틀리잖습니까."
"너야 뭐. 사돈 댁에선 많이 서운하겠다."
"저도 따로 나가 살거잖아요"
"이 놈아. 당분간만이야. 나중엔 같이 살아야지. 하지만 은정인 그게 아니잖
아. 딸자식하고 사내는 달라."
"구세대시군요."
"그래, 나 구세대다. 신세대야! 잘 살아 임마."
"네."
"먹자."
밥 그릇과 국 그릇이 식탁 위에 놓여지자 아버지는 신문을 놓으시고 말씀하셨
다.
"제 총각 시절 마지막 식사네요."
"묘하냐?"
"기분이요? 그렇죠 뭐."
"허허, 대답이 영... 오손도손 잘 살아. 우리 집엔 이혼 같은 거 없다? 한 번
가족이 된 이상 끝까지 우리 사람이다. 알았냐?"
"인내하며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조금 철 든 말같다."
"하하."
은정인 아침부터 바빴다. 새벽에 술을 약간 마셨던 탓인지 늦잠을 잤다.
"좀 깨워 주시지 그랬어요."
은정인 식탁에 앉자 마자 빵을 먹는 듯 마는 듯 입에 넣고는 바로 다시 일어 섰
다.
"잘한다. 이런 중요한 날 늦잠이니?"
엄마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딸의 볼을 두 손으로 감싸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은정인 엄마와 같은 미소로 답을 한다.
"잘 살아."
"네."
"미용실은 누가 따라 갈 거니?"
"정희가 온댔어요."
"그래. 나는 병원 갔다가 먼저 식장에 가 있으마."
"아빠는요?"
"출근하셨어."
"벌써요? 나 일어 나는 것도 안 보구요?"
"너 자고 있는거 보고 가셨어."
"흠. 저 너무 서둘렀을까요?"
"아니야. 늦어지면 아빠도 나도 더 힘들었을거야. 너도 그랬을거구."
"동생 하나 낳지 그랬어요."
"흠, 그게 맘대로 안돼더라."
"고마워요."
"그래, 이렇게 예쁘게 키웠으니 그 말 들을 자격은 되지. 흠... 내가 미용실까
진 태워 줄게."
"참, 외할아버진..."
"내일 도착하신데."
미용실 은정이는 꼼짝을 못하고 있다. 은정이 헨드폰이 울리자 책을 보고 있던
정희가 대신 받았다.
"왜 누나가 받아요?"
"신부 화장 때문에 바빠."
"많이 예뻐지고 있어요?"
"그래."
"조금 있다 간다고 전해 줘요."
"알았어. 결혼 축하 해. 이제 아저씨네."
"아직 안했어요."
"후후. 이제 나 아줌마라 놀리지 마?"
"생각해 보고."
붉은 카페트가 깔려져 있고 원탁의 테이블들이 놓여진 호텔의 웨딩 홀에는 사람
들이 한 둘 찾기 시작했다. 호텔 직원들이 테이블에 음식들을 갖다 놓고 있을
때 철수는 결혼 예복으로 갈아 입고 입구에 섰다. 어머니가 철수의 옷 매무새를
봐주며 그 옆에 서 있다. 그때 은정이의 어머니가 나타났다. 철수는 무언으로 환
한 표정을 보이며 허리를 숙였고 옆에 서 있던 어머니가 은정이의 어머니를 맞았
다.
"오셨어요?"
"네. 신랑이 믿음직 해 보이네요."
"철없는 자식에게 귀한 딸자식을 맺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네."
"은정인 아직 안왔나 보네요?"
"아직 미용실에 있나 봅니다."
어머니 둘은 철수만 남겨 놓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왔냐?"
"야, 제법 멋있네."
"그럼 새꺄."
"우린 어디 앉아 있어야 되냐?"
"저기 자리 줄테니까 돈 잘 받아?"
"신랑이 그런 거 밝히면 안돼."
"승헌이는 그런대로 봐줄만 한데 동엽이 넌 영..."
"그렇냐? 내가 양복이 없잖아. 울 형 거 입고 왔더니 좀 그렇다."
"너네들은 부조금 없어?"
"야, 일 봐주잖아."
"그래도 낼 건 내야지."
"학생인디?"
"나도 학생이야."
"외상."
시간이 다가 오자 양가 귀빈들이 하나 둘 식장에 입장을 하기 시작했다. 철수
는 잘 알지 못하지만 성의를 다해 인사를 드렸다. 옆에 서 있는 아버지가 허허
웃는다.
"아들을 참 잘 두셨네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하시는 일은 잘 되시죠?"
"네."
철수는 긴장이 되기는 하지만 여유있는 표정으로 귀빈들을 맞았다. 계단 쪽이
웅성거렸다. 철수는 고개를 들어 그 쪽을 쳐다 보았다. 아버지께서 손을 잡아 끌
어 내린다.
"나중에 봐도 돼."
"신부 오는 거에요?"
"평생 같이 살 사람인데 좀 있다 봐."
은정이는 화사하게 화장을 하고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신부 대기실로 들어 갔
다. 철수는 하객들과 인사를 하면서도 시선은 방금 문이 닫힌 신부 대기실로 가
있다.
"어?"
"축하 해."
"형 오랜만이에요. 저한테 온 거 아니죠?"
"그럼, 난 신부 하객이지."
"하하, 미안합니다."
"뭐가? 은정인 네 인연이었나 보지 뭐."
"잘 오셨어요."
철수에게 승주가 와 악수를 하고 갔다.
"오빠! 결혼 축하해요."
"은정이구나."
"금방 신부 보고 왔어요."
"넌 내 하객이잖아."
"호호, 그러니까 신부가 궁금하죠."
"참, 승주형 봤는데... 그 형 자주 만나지 않았냐?"
"신부 대기실에 같이 들어 갔다 왔어요."
"승주가 먼저 봤어? 나도 아직 제대로..."
작은 은정이 뒤에 승주가 나타나 히죽 웃는다. 철수는 하던 말을 멈추고 입만
쭝긋 내밀 뿐이다.
화환들이 입구 쪽에 많이 놓여 있다. 성균*대 정보공학과 **연구실 일동. 성균*
대 약학과 **연구실. 두개는 붙어 있지만 나머지 화환들은 패를 지어 나눠 대치
하고 있었다. **한의원 누구. 한약사 협회** 기타 등등. **제약회사. 전국 약사
협회 누구. **약국 누구. 기타 등등.
방송으로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려 왔다.
긴장 된다. 신랑측 푯말 앞에 서서 신부 대기실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예쁜 미소를 머금은 하얀 천사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다들 그 모습을
부러워 하는 표정이다. 하하, 진짜 예쁘다. 그녀가 지금 내게로 오고 있다.
사회자를 내 불쌍해서 내 친구들 제쳐 두고 배군으로 했다. 잘해야 되는데...
"마이크 테스트! 신랑 신부 준비 하세요. 테스트! 테스트!"
잘못 시켰다. 제기랄...
누나 친구들의 경호(?)를 받으며 신부가 풍선으로 만들어 놓은 식장 입구 쪽으
로 다가 왔다. 나는 넋을 놓고 그 모습을 쳐다 보았다. 그녀는 말도 못 붙일 만
큼 예뻤다. 나는 아마도 선녀의 옷을 훔치고 바위 뒤에 숨어 있던 동화속의 그
사람 같은 모습일게다. 옆에 계시던 아버지가 날 떠밀었다. 따지 듯 실 고개를
돌렸다.
"넌 안들어 갈거야?"
아 맞다. 내가 저 여자 신랑이구나.
신부 옆에 가 섰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미소와 다른 무언가를 담은 표정으
로 다소곳하다. 그녀와 팔짱을 꼈다. 그녀가 날 쳐다 보며 어색하게 입을 열었
다.
"아직 아니야."
꼈던 팔짱을 풀고 주위를 살피며 머쩍은 웃음을 지었다. 처음엔 다 그러는거지.
"신랑 입장!"
드디어 입장이다. 브이자를 그리며 여유있는 모습으로 입장하고 싶었지만 사람
들의 시선 때문에 다소 굳은 모양으로 앞만 보고 걸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나
와 누나의 미래를 축하해주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다. 엄숙해 보였다.
"신부 입장."
피아노와 현악 오중주. 오중주는 아닌 거 같다. 네 명뿐이다. 제법 거창하네.
드디어 신부가 내게로 오고 있다.
"이제 팔짱 껴도 되지?"
"들려."
"헤헤."
원래 큰절 하는 거 아닌가?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신랑은 큰절을 하던데... 사람
들이 웃었다. 처음엔 다 그렇지 뭐.
옆에 아름다운 신부를 두고 주례사를 들었다. 아버지 선배 분으로 한의학계에
서 알아 주시는 분이었다.
"... 산삼은 오래 되야 효력을 발휘하고 가치가 높 듯 결혼생활도 마찬가집니
다. 조급하지 말고 세월을 감싸며 오래 된 산삼처럼... ... 요즘 같은 인스턴트
시대에 화톳불에 약탕기를 올려 놓고 쓴 연기를 불어가며 약을 다리던 예전 어머
니같은 그런 모습의 신부가 되기를 바라며 바로 약효를 기대하고 화학 작용으로
언젠가는 부작용을 야기하는 양약 같은 그런 사람은 되지 말고 지긋하게 익어가
는 한약처럼..."
여기 저기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 왔다. 여기 약사 분들이 참 많을텐데...
주례사를 마치고 부모님과 같이 하는 시간이 왔을 때 누나의 눈물을 보았다. 여
자가 평생 흘리는 눈물 중 저 눈물은 분명 베스트 파이브에 들어 갈 것이다. 고
운 눈물이다.
후우, 폐백식 까지 마치고 나니까 좀 정신이 드네요. 아침부터 힘들었어요. 예
쁘게 보이는 것도 좋지만 신부 화장 참 오래 하더군요. 머리 손질도 그렇고...
옷 입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배가 다 아프네요.
한복 차림으로 하객들이 모여 있는 뷔페 식당을 다녀 오고 나면 결혼식 행사는
끝이 납니다. 에구, 저 아줌마네요.
엄마, 아빠를 보니 눈물이 났어요. 그냥요. 감사의 눈물이겠죠.
피로연 장이다. 철수 친구 네 명과 은정이 친구 다섯 명이 모여 간단하게 피로
연을 가졌다.
"피로연이 무슨 필요가 있나. 그냥 가서 자면 되지."
철수는 공개적으로 그렇게 떠벌렸다. 그러나 친구들은 그런 철수의 마음을 몰라
주며 은정이에게 술을 권했다. 그리고 은정이 친구들은 후배, 동생들의 하는 짓
이 귀여운 지 재잘거리며 철수 친구들에게 호응을 했다.
"야, 송승헌. 그만 줘 임마."
"에이쒸. 신랑이 분위기 깨네. 신부만 있으면 되니까 쟤는 갖다 버려."
"뭐야 임마!"
둘이 말다툼 하고 있을 때 동엽이가 술 잔을 은정이에게 갖다 바친다.
"재수씨 제 잔도 한 잔 받으세요."
"너 생일 언제야 임마."
"다 그러는 거야. 안 그래요 재수씨?"
"후후, 그래 오늘은 봐준다. 하지만 동엽씨? 제가 선배거든요. 다음에 재수씨
그러면 죽을 줄 알어?"
"무섭네요?"
"그래, 너 철수씨에게 잘해?"
"철수씨? 철수야 너보고 철수씨랜다."
"이 새끼가 분위가 파악을 전혀 못하네. 그럼 신부가 신랑한테 씨자 붙이는 거
당연하지."
철수는 동엽이를 후딱 밀어 버렸다.
"에구구."
동엽이는 땅바닥에 픽 꼬꾸라 지면서도 헤헤 거리며 즐거운 표정이다. 벌써 술
에 취한 듯 하다. 철수는 못마땅했다. 벌써 11시가 넘었는데 파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야 되는데... 오늘 하루가 피곤했던 이유보다 철수에겐 다른
큰 이유가 있었다.
"안 피곤해요?"
철수는 친구들과 즐거운 은정이의 허리를 푹 찔렀다.
"응? 헤헤, 너 피곤해?"
"안 잘거야?"
"헤헤, 자야지."
은정인 술을 많이 마신 것 같다. 하긴 주는 술 넙죽 넙죽 다 받아 먹었으니까.
은정인 기분이 좋은가 보다. 그리고 뭔가 달래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
피로연은 자정이 다 되서 끝이 났다. 철수는 정신이 헤롱한 은정이를 부축하고
호텔 로비로 들어 섰다.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됐어요. 제 신부에게 손 대지 마요."
"네?"
"열쇠나 좀 갖다 줘요."
엘레베이터 안 철수는 자기 부축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은정이를 보며
히죽 거리고 있다. 엘레베이터 거울에 얼굴을 비추며 웃어보고 이빨도 비추어보
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야! 누나 방 분위기 죽이지 않아요?"
"음냐."
철수는 호텔방의 아늑함과 고급스러움에 환한 말을 내 뱉었지만 은정인 눈이 풀
려 있었다. 그래도 철수는 기대했다. 은정일 침대에 눕혀 놓고는 자기는 바로 샤
워를 하러 들어 갔다.
"룰루 랄라! 크크크레이지 러브..."
노래를 불러 가며 온 몸에 비누거품을 묻히고 엉덩이를 실룩거렸다. 그리고 자
신 있게 수건으로 아랫 부분만 가리고 침대 앞으로 나왔다.
"뭐야 이거!"
은정이는 철수가 눕혀 논 그대로, 그 옷차림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
다.
"음냐."
"누나? 일어나요."
"아이씨."
"아이씨? 첫날 밤인디?"
"불 꺼."
"플리즈. 제발 눈 좀 떠 봐요."
"나 졸려. 불 끄고 자자."
"에? 옷은 벗고 자야지."
"박철수?"
"왜요."
"헤헤, 사랑해."
"미툰데... 그냥 자는거야? 내가 옷 벗겨 줄까?"
"으으응. 빨리 불꺼."
철수의 손이 은정이 가슴으로 가자 은정인 몸부림 치며 등을 돌려 버렸다. 철수
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흑흑, 알았어요."
철수는 불을 꺼고 은정이 옆에 누웠다.
"이씨."
"음냐."
"에이쒸."
"음냐."
철수는 잠을 청하려다 도저히 안되었던지 벌떡 일어 났다. 그리고 불을 켰다.
은정인 등을 돌리고 철수 몫의 이불까지 다 뺏어 돌돌 말아 자고 있다. 히터가
켜져 있지만 다소 추워 철수는 구비된 잠옷을 입었다. 그리고 과감하게 은정이
를 일으켜 세웠다.
"누나? 겉옷은 벗고 자요."
은정이는 일으켜 세워졌으나 철수의 손이 떨어지자 마자 다시 픽 쓰러졌다. 철
수는 그런 은정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은정인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철수는 노력해서 은정이의 겉 옷을 벗겨 주고 그녀가 말고 있던 이불을 빼앗아
다시 잠을 청했다.
"우쒸!"
철수는 누웠다 다시 벌떡 일어 났다. 멀뚱히 은정이만 쳐다 보다가 긴 한 숨을
내 쉬었다.
"야이 나쁜 놈아."
"새벽에 전화해서 무슨 말이야. 첫날 밤 어땠냐?"
"니가 제일 나쁜 놈이야. 니가 제일 많이 먹였지?"
"응?"
"니가 누나에게 술 제일 많이 권했잖아. 나중에 니 결혼식 때 보자."
"잘 안됐냐?"
"송승헌! 그렇게 살지 마 새꺄."
철수는 한 참을 침대에 앉아 있다 승헌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나서 또
전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어? 수고하십니다."
"누구세요?"
"저 오늘 결혼 한 박철수라고 하는데요."
"아, 아. 근데 이 시간에 어쩐일로...?"
"누나 있으면 좀 바꿔 주실래요?"
"지금 자는데..."
"중요한 질문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그 참, 잠시만 기다려 봐요."
"감사합니다."
철수는 새벽 두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에 정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철숩니다. 잘 들어 갔어요."
"응? 오늘도 챙겨주는거야? 고맙네."
"씨이. 내가 누나를 왜 챙기나."
"그래 신혼 첫날 밤에 아줌마에게 왠 전화?"
"뭐 좀 물어 봅시다."
"물어 봐."
"은정씨 그러니까 내 신부가 지금 술에 취해 그냥 자빠져 자거든요."
"그래서?"
"그냥 자야 되는거에요?"
"헛! 완전 맛이 갔니?"
"응. 아주 맛이 갔어."
"좀 많이 마신다 했다."
"깨울까?"
"그냥 자."
"첫날 밤인데?"
"할 수 없잖아."
"에이 쒸."
"에구 박철수!"
철수는 첫 날밤 그냥 잤다. 그 꿈꾸던 가슴도 한 번 못 만져 보고 억울함과 분
통함에 못이겨 이를 바득바득 갈며 어느 꿈나라로 가 있는지 모를 은정이 옆에
서 그냥 잤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일어나자 마자 바빴다. 호텔을 나오자 마자 부모님께 인
사 하느라 바빴다.
"나 어때? 괜찮아 보여?"
"어제보다는 낫네. 에구 불쌍한 박철수."
"니가 왜?"
"첫날 밤이었는데..."
"혼자 심심했어?"
"첫날 밤인데... 꺼이 꺼이."
"그럼 깨우지 그랬어."
"깨워? 깨워서 뭐 하게?"
"응?"
오전에는 철수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려야 했고 또한 여행 출발 준비도 해야 했
다. 그리고 오후에는 은정이 외할아버지가 한국에 오셨다.
결혼 식 다음 날 오후에는 외할아버지를 맞으며 처가댁에서 철수와 은정인 자리
하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은정이와 참 격이 없었다. 철수는 그런 외할아버지
께 은정이에게 못되게 굴면 용서치 않겠다는 으름장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덕담
도 들었다.
철수는 저녁까지 처가댁 신세를 지고 저녁 8시경에 자리에서 일어 섰다.
"자네도 여기서 자고 가."
아버님이 그런 철수를 붙잡았다.
"내일 일 때문에 준비할 게 많아요."
"그럼 은정이 너도 따라 가."
"할아버지 오셨는데?"
"은정씨는 여기서 자고 와요."
"너 혼자 갈거야?"
할아버지와 붙어 있던 은정이가 철수를 쳐다 보며 말했다.
"쓰으, 말버릇 고쳐."
어머님이 따끔하게 은정이를 꾸짖었다.
"새로 살 집에 가 봐야죠. 은정씨는 그럼 내일 아침 일찍 그 곳으로 와요. 집
에 들렸다 그리 가 있을게요."
"잘 가."
'서러버라.'
철수는 잠시 집에 들렸다 아버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다음 은정이와의 미래
를 꾸밀 보금자리로 갔다.
그 곳에서의 느낌은 좋았지만 철수는 지금 혼자다. 베낭을 챙기며 많은 상상들
을 하고 웃고 있지만 억울하다는 듯 간혹 우쒸,라는 말을 뱉어냈다.
"우쒸, 오늘도... 어떻게 된게 결혼하고 바로 권태기여 뭐여. 전화도 없어? 설
버라."
철수는 짐들을 다 챙겨 두고 침대에 누웠다. 하얀 형광등이 불을 밝히고 있는
천정을 보며 넓은 침대에 홀로 누워 눈을 말똥거리고 있다.
"더블 침대라 좋다. 누나는 뭐 하고 있을까?"
철수는 불을 켜 둔채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딩동!"
철수는 벌떡 일어 났다. 그리고 시계를 보았다. 새벽 3시 17분. 철수는 그걸 보
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딩동!"
철수는 다시 일어 났다.
"딩동! 딩동!"
철수는 달려 나가 문을 열었다. 은정이가 작은 가방을 들고 들어 와 웃는다.
"헤헤, 나 보고 싶었지?"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긴 낭군님 보고 싶어 왔지."
"아, 여기 누나하고 내가 살 집이지 참. 할아버님은?"
"주무셔. 몰래 나왔어."
"허허."
"짐 챙겼어?"
"응. 누나 것은 다시 한 번 점검 해."
"알았어. 잤니?"
"응."
"씨."
"왜?"
"난 네가 보고 싶어 잠이 안오던데. 그래서 달려 왔는데..."
"헛! 그런 사람이 어제는 그렇게 퍼질러 잤냐? 첫날밤인데 씨..."
"오늘 첫날밤 하면 되지."
"정말?"
철수는 갑자기 신났다.
"너 어디가?"
철수는 방으로 들어 가지 않고 욕실로 가며 윗도리를 벗으려고 하고 있다.
"첫날 밤 하자며?"
"준비할 게 많잖아. 내일 아침은 우리집 가서 먹어야 돼. 할아버지께 인사는 하
고 가야지. 그리고 자기 집에도 가야 되잖아."
"첫날 밤 하고 준비하면 안될까?"
"왜 그리 밝히니? 시간 별로 없어."
"내 것은 다 챙겼어."
"방으로 들어 와."
철수는 할 수 없이 짤래 짤래 은정이를 따라 방으로 들어 갔다.
"야 좋다. 여기가 철수와 내가 잠들고 깰 방이란 말이지?"
"그 철수라 부르지 말고 서방님으로 해 주면 안될까?"
"흠, 하는 거 봐서. 베낭이나 들고 와 봐."
"그러지요. 근데 누나?"
"왜?"
"옷 안 갈아 입냐?"
"무슨 옷?"
"야한 잠옷."
"으이그."
철수는 베낭 두개를 은정이 앞에 놓아 두고 침대에 앉았다. 베낭 둘 다 여유가
있어 보였다. 신혼 여행이라 보통 베낭 여행 보다는 여유로운 자금이 있다. 베낭
의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먹을 것이 이 둘에게는 빠져 있었다.
"큰 베낭 둘은 낭비다."
"그럼?"
"하나는 작은 베낭으로 바꾸자. 베낭 때문에 괜히 번거롭게 하지 말자구."
은정이는 철수가 챙겨 두었던 베낭 속의 짐들을 하나 둘 씩 꺼내기 시작했다.
철수는 시계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숨을 내 쉰다.
은정이는 큰 베낭 하나를 치우고 학교 가방을 들고 왔다.
"그건 아무래도 댁이 짊어 질 것 같수."
"맞아. 속옷이나 양말 같은 건 이리 줘."
짐이 배분 되었다. 철수가 짊어 질 베낭은 아까보다 더 뚱뚱해지고 무거워 졌
다.
"나는 더 번거롭게 됐는데?"
"너 남자잖아. 이 것도 못 드냐? 옷이 많아서 보긴 저래도 안 무거워."
"말 잘했다. 베낭 여행인데 무슨 옷이 그리 많냐?"
"신부가 예뻐 보이는게 싫어?"
"자기 짐은 자기가 들고가기 하자."
"여전히 속이 좁구나? 부부는 일심동체 몰라? 니거 내것이 어딨냐."
"내가 안 좁아지게 됐냐?"
"왜?"
"그제 결혼식 올렸는데... 언제 첫날 밤 할겨?"
"푸우! 너 디게 밝힌다. 총각 땐 안그랬잖아."
"그때는 내가 누나를 조심해서 그런거구. 이젠 누나 말처럼 부분데."
"씻고 올까?"
"지금 시계 봐라."
"다섯시 반이네?"
"누나집 갔다 우리집 갔다 9시반까지 공항 도착하려면 지금 나갈 준비 시작해
야 돼."
"그러네."
"씨."
"후후, 철수씨?"
"왜?"
"잠시만 누웠다 가자."
"뭐하려구?"
"한 번 안겨 보게."
동이 터 오른다. 침대 위에는 철수가 은정이에게 팔 베개를 해 주며 웃고 있
다. 은정이는 그런 철수에게 안겨 있다.
'하하, 잘 살아야지. 암. 사랑하며 눈 감는 그 날까지 그대는 내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가슴이나 함 만져 볼까?'
'따뜻하다. 그래 사랑하는 사람의 품은 따뜻하다. 그의 가슴이 항상 따뜻하도
록 내 그대를 위하며 살겠습니다. 근데 어떻게 잡고 살지?"
창 밖은 아직 어둠이지만 이제는 아침이다. 은정이와 철수는 침대에 누워 마주
보며 웃고 있다. 저렇게 계속 안고 있으면 아침이 참 바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