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출범(1982년) 이래 정규리그의 팀 순위 결정방식은 무려 6차례나 되는 변화의 과정을 밟아왔다. 여기에 중간중간 4차례의 시간제한(무제한→22시 30분→무제한-4시간→무제한)과 3차례의 이닝제한(15회→12회→무제한→12회) 규정이 바뀐 것까지를 포함한다면, 한 경기의 경기결과 도출문제를 놓고 관계자들이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왔는지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프로야구도 내년이면 29살이다. 그럼에도 고착화된 규정이 아직까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지금에도 변화의 길을 계속해서 모색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과거 이와 같은 해묵은 논쟁의 중심에는 언제나 ‘무승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논쟁의 끝은 무승부를 바라보는 시각과 이해도 차이에 따라 매번 방향성이 극명하게 갈려오곤 했다.
때문에 그 어떠한 선택도 오래 지속될 수 없었고, 숙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무승부를 때마다 이렇게도 손질해 보고 저렇게도 다루어보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는 무승부경기 자체가 야구경기를 치르는 목적으로 규칙에 명시된 ‘상대팀보다 더 많은 득점을 해 승리하는 것’이라는 대 명제와 어울리지 않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처럼 이닝이나 시간제한 없이 승부를 가리면 무승부에 대한 고민 없이(규칙이나 특별 조례에 따른 무승부는 예외) 팀 승률을 따져 순위를 간단하게 추릴 수 있지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그 해 딱 한번 나온 연장 18회 경기 그림이 결정적 빌미가 되어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에도 불구, 끝장승부는 시행 1년 만에 전격 폐지되었고, 잠시 잊었던 무승부에 대한 고민은 다시 시작되었다.
상식이지만 시즌 팀 순위를 결정하는 일에 있어 무엇보다 기본이 되어야 할 기준은 다른 팀보다 조금이라도 이기는 확률이 더 높은 팀을 서열상 앞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두에서 말했지만 팀 승률을 구하는 방식은 그간 여러 가지 형태의 공식을 두루 거쳐왔다. 승률계산에 있어 무승부를 0.5승으로 계산(1987~1997년)해보기도 하고, 승률계산에서 아예 제외(1982~1986년, 1998~2002년, 2005~2008년)시켜보기도 했다. 심지어는 팀 순위 왜곡현상(승률 낮은 팀의 우위 현상)이 심하다는 단점을 내포하고 있는 다승제를 채택(2003~2004년)해 본 적도 있었다.
허나 그 어느 방법도 무승부가 안고 있는 모순점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완벽한 해답을 제시해주진 못했다. 더욱이 밤 10시 30분 이후 새로운 이닝에 들어갈 수 없다는 시간제한 규정이 공존하고 있던 터라 승률계산상 별로 손해 볼 것 없는 팀들이 경기를 더 이상 끌고 나가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고의적으로 제한시간을 넘기기 위해 시간 끌기 추태를 보이는 등, 볼썽 사나운 장면들이 속출되기도 했다.
그래서 26년 만에 찾아간 곳이 끝장승부였다. 하지만 투수 층이 두텁지 않은 우리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는 점, 장시간의 피곤한 승부에 뒤따를 부작용이 크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끝날 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대한 마운드 운영상의 두려움 등을 호소하는 현장의 볼멘 목소리에 발이 묶여 무제한 승부는 결국 단명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무승부=패’ 방정식은 끝장승부의 대안
2008시즌 종료 후, 이미 문제점이 드러났던 과거의 승률제도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팬들이 절대적으로 지지했던 끝장승부를 유지하지 못한 반대급부로서의 대안이 절실히 필요했고, 그래서 떠오른 차선책이 바로 2009시즌의 ‘무승부=패’라는 방정식이었다.
이 2009년식 승률제도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면 무승부와 패를 동일시 취급함으로써 팀들이 무승부를 피하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물론 6월 25일, SK가 연장 최종회인 12회말 비기나 지나 어차피 패전인 것은 매한가지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우회적인 경기 운용책을 쓴 일과 같은, 일말의 부작용도 있기는 하지만, SK가 이 경기를 KIA에 헌납함으로써 훗날 결과적으로 정규리그 1위 싸움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던 사실을 생각해보면, 당장 아군에게 이득이 별로 없다 해도 상대를 같이 물고 늘어지는 물귀신 작전도 결코 무의미한 작전만은 아님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래도 가장 장점이 많은 승률제도였다고 볼 수 있다.
다만 9승 1패와 9승 1무 팀의 우열을 좀더 세분화해서 명확하게 가름 지을 수 있는 보조규정을 덧붙이지 못했다는 점에서 불합리한 제도라는 현장의 따끔한 지적을 피할 수 없었던 rjt은 불만이다.
승률계산상 무승부를 패로 간주한다 해도 같은 승수를 가진 팀끼리의 우열을 가림에 있어서는 패보다 무승부가 하나라도 더 많은 팀의 순위를 앞서게 만들어주는 보조규정이 함께 마련되었더라면….
응급처치보다는 장기처방전이 필요한 승률제도
이제 2010년 한국프로야구는 무승부를 가운데 둔 승률제도를 놓고 또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들리는 바로는 무승부경기를 제외한 경기수로 승수를 나눴던 과거 방식으로의 회귀안이 좀더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승률계산상 무승부경기의 산술적 처리 문제에 있어서는 어떠한 판단과 결정 이전에 곰곰이 생각해 볼 점이 한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승률’ 계산에 무승부를 포함시키는 것과 아예 제외하고 계산하는 것이 출발선상에서 근본적으로 어떠한 차이를 갖고 있는 지에 대한 해석이다.
승률은 풀어 말하자면 이기는 확률을 말한다. 10번 싸워 9승 1패면 승률 9할이 된다. 문제가 되는 무승부를 집어넣어 9승 1무로 가정해보자. 역시 10경기를 치렀다는 것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승률은 9할이 되어야 맞다.
그러나 무승부를 아예 없는 경기로 간주한다면 9승 1무는 승률 10할이 된다. 이길지도 질지도 모를 경기를 대회규정상 중간에 그만 두어야 했기 때문에 무승부 경기자체를 승률계산에서 제외해야 맞는다는 사람들의 견해는 분명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프로야구 경기의 모든 기록은 정식경기로 인정된 순간, 투수의 투구수나 견제구 하나까지도 없던 일로 처리하지 않는다. 이것이 프로야구의 기록정신이다.
극단적이지만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1승 9패를 기록한 팀과 10무승부를 기록한 팀이 있다고 할 때, 무승부를 승률계산에 포함을 시키면 각각 승률 1할과 0할이 된다.
반면 무승부를 아예 계산해서 뺀다면 1승 9패는 여전히 승률 1할이지만, 10무승부 팀의 승률은 0할이 아니라 계산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분모자리에 있어야 할 승+패 경기수가 ‘0’ 이기 때문에 셈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10무승부는 계산상 단 한 경기도 치르지 않은 꼴이다.
따라서 무승부를 제외하고 계산하는 방식은 이론적으로 블랙홀에 빠질 수도 있는 방식이다. 10무승부를 기록한 팀이 승률 1할을 기록한 팀보다 위인지 아래인지를 판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말이다.
현재는 과거처럼 시간제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연장 최종회에 시간 끌기를 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말은 충분히 납득이 가지만, 무승부가 결국 손해라는 인식으로 접근하느냐, 아니면 무승부가 되어도 이득은 없지만 크게 나쁠 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느냐 하는 문제는 분명 차이가 있다. 전자는 스타트라인에 서있는 주자의 옷 매무새가 어딘지 모르게 흐트러져 보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지금 과거의 승률제도로 돌아가려고 하는 시도가 현재의 불합리한 부분을 상당부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현재 시행하고 있는 승률제도가 갖고 있는 일정 부분에 대한 마땅치 않은 마음 때문인지를 가만히 따져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