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
저는 한국의 영토 민족주의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한겨레다, 단군의 자손이다' 라는 노래가 떠오릅니다. 실제로 한국 국사, 곧 나라가 만든 역사를 보면 기본 설정이 이렇습니다. 교과서 맨 앞의 개막전 부분에는 고조선이라는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가 나옵니다.
고조선이라는 최초의 민족 국가가 등장했다가.... 그를 계승한 우리 민족의 세 나라가 생기고... 이 과정에 사실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그 때 현실에 가장 가까운 증거물은 나중에 쓰인 '삼국사기' 나 '삼국유사보다 당시 쓰인 금석문들입니다. 그때그때 남긴 비문이라던가공문서나 사문서들이 요즘 역사학자들이 좋아하는 말로 '고대로부터의 통신' 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신라나 고구려 부터 전해진 통신들을 직접 읽어보면 고조선 이야기가 별로 안 나오는 것을 물론이거니와, 단군 이름이 한번도 나오지 않아요.
신라의 비문들을 보면 김알지 이후의 신라 왕들이 한나라에 귀회한 흉노 수장 김일제의 후손이라는 등의 황당한 이야기가 많아요.말하지만 중국 역사와 연결시킬 만 하다 싶은 황당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반면, 단군과 고조선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실제로 단군과 고조선이 나타나는 때는 13세기로, 몽골 침략이라는 국가적으로 커다란 위험이 눈앞에 닥쳤을 때 그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조선의 국가적 신화, 곧 천손 신화를 고려 말기에 되살렸다는 국내 학계의 통설이 성립된 배경입니다.
단군이 우리 모두의 조상으로 생각되려면 좀더 일찍 역사의 무대에 나와야 되는데, 너무나 늦게 인위적이다 싶은 방법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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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재미있는 부분이 . 단군이 고려 말기에 등장해서 조선시대에는 단군의 묘도 나오고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고 하지만, 실제로 조선 선비들이 우리 모두의 조상이자 우리 문화의 위대한 원조라고 생각한 사람은 단군보다 기자였다는 점입니다. 그러다가 단군이 갑자기 화려하게 부상하는 것은, 일제 침략기에 종교적 숭배의 대상으로 등장하면서부터지요.
민중들은 단군을 모르고 있었지만, 당시 단군 종교 즉 대종교 만든 사람들은 당시 고급 인텔리들이었는데 그 중에 유명한 분이 호남의 유림 나철 선생입니다.이분이 어떻게 단군을 끌여들였는가 하는 이야기부터가 재미있습니다.
일본에는 '국가 신도' 라는 게 있습니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곧 태양의 여신을 기리는 국가 종교로, 일본인들의 민족적인 동질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근대적인 상품이죠. 나철 선생이 그것을 보고 우리 조선에는 단군이 있는데 우리가 일본인만 못하겠느냐 하면서 그것에 착안하여 만든 것이 대종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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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은 고려 말기에 한 때 등장했다가 조금씩 퇴장한 뒤, 그 다음에는 개화기 후기, 일제 초기에 다시 한번 화려하게 부활해서 우리 모두가 한 조상의 후손이라는 혈통적 근대 민족주의 신화로 부활한 것입니다.
한홍구 :
우리 전 국민이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이라는 신화를 갖게 된 것을 빨라야 1950년대, 1960년대가 아닐까 싶어요. 그때부터 학교에서 교육이 이루어졌고요.....
그런데 사실 조선 시대에는 단군 할아버지 자손이라는 의식을 가지면 큰일나는 일이었습니다. 단군할아버지의 자손이라면 여기 모인 사람들이다 똑같은 거 아니에요. 그런데 조선 시대에 그런 발칙한 생각이 어디 있습니까? 반상의 법도를 허무는 생각이죠. 양반과 천민 사이, 양인과 천민 사이에 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는 겁니다. ... 종자부터가 틀린 건데 다 같이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이라니, 조선 시대 같으면 맞아 죽을 이야기입니다.
/ 거짓말 (한겨레 출판)